그저 어디로든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떠난 곳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많은 사람이 삶의 방향을 찾거나 바꾸었다는 그 길을 걸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그 길은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평화로운 안전하고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꾸역꾸역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40일 후 그 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 많던 화살표가 일제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내가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다.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화살표 같은 존재들이 이젠 내 곁에 없다는 것도, 나는 화살표 없이 살아본 적이 없고 살아갈 능력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도, 그때 절절하게 깨달았다. - P12
글쓰기는 사랑했던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는데, 나의 글쓰기가 정말로 그랬던 것이다. 나는 떠나는 그 기차를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몇 번째 칸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느 정류장에서 누가 타고 내렸는지, 그것이 우리의 방향을 어떻게 조금씩 바꿔 놓았는지에 대해 밤새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내가 쓴 한 시절 우리의 역사는 내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서 나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이 나로부터 영원히 떠나가고 있었지만 전혀 아깝지도, 미련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허물을 벗고 빠져나오듯 후련했다. 이제 다른 기차를 타야 하는 것이다. 어떤 기차를 타야 할지는 여전히 알 수없었지만 똑같은 기차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 - P16
는 더 이상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 P17
도서관에서 특강을 하던 그가 유럽에서 공부했다면 나 - P21
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했다. 그것은 평생을 방구석과 집안과 시설에 갇혀서 여전히 조선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배웠다는 뜻이다. 그것은 21세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21세기를 전혀 다르게 겪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이전의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우물 밖 세상에 대해 배워야만 세상에 대해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난 우물 밖 사람 역시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힌 듯 보였고,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의 세계를 몰랐으니 그도 나의 세계를 모르는 게 공평하다고. 그러니까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고. 더 거대하고 더 유구한 우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우물들이 있을 뿐이라고. 그날 나는 나의 우물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는 다시 신문을 펼쳤다. 장애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 - P22
자, 세월호참사의 피해자 같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세상은 거기에 없었다. 나의 우물은, 한 시절 나의 우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왜 없지? 어떻게 이렇게 없을 수가있지?‘ 하며 신문을 넘기다가 금세 나는 또 그것을 의아해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들에서 매일 들으며 살았던 소리들, 나를 힘들게 하고 때론 도망치고 싶게 했던 사람들의 한숨이나 신음, 비명이나 절규 같은 소리는 노들을 그만두자마자 마치 방음설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방의 문을 꾸욱 닫고 나왔을 때처럼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세상엔 재밌고 신나는 것투성이었다. 노들은 먼지처럼 미미해서 보이지 않았다. 빛나고 화려한 무언가를 위해 기꺼이 쓸어버려도 좋은 어떤 것이 아니라 무엇이 쓸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 같았다. - P23
연말정산 철마다 그를 찾았다. 그리고 작년 겨울 그가 결국 말하고 말았다. "나가고 싶어." 시설 측은 가족의 허락을 받아오라고 했다. 가족은 물론 반대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가고 싶다는 그에게 나는 열번 스무 번 고쳐 물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요?" 사실 그는 가족의 허락 없이도 퇴소할 수 있고 주거와 정착금도 받을 수 있다. 시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이 벽관의 문이 오래전에 풀렸다는 걸 갇힌 사람들만 모른다. 그러니 질문은 실상 나를 향한 것이다. 벽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앙상한 어머니를 밀칠 자신이 있는지. 문을 열면 곧장 나를 덮쳐올 그를 업고 얼마간 전력 질주할 체력이 있는지. 그의 손에 술이 아닌 다른 것을 쥐게 할 대안이 있는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피했다. "잘 지내고 있는 사람 흔들지 마세요." 애원은 점점 호통으로 변했다. 닫힌 문 너머에 어머니의 - P35
일상이 있었다. 그것 또한 지켜져야 했으므로 나는 얌전히 돌아섰다. 그에겐 ‘어쩔 수 없다‘ 전하고 다음번 연말정산 철을 기약할 작정이었다. 그때 함께 간 동료가 어머니의 집 문틈으로 편지를 밀어 넣었다. "허락지 않으셔도 우리는 하겠습니다." 순간 나는 그녀가 벽관의 문을 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온갖 사람들의 평화를 계산하는 동안 그녀는 그 계산에서 빠진 단 한 사람을 보며 그저 신발 끈을 묶었다. 부끄러웠고 부러웠다. 그녀는 멋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수십 명의 탈출을 도와온 그녀는 싸움닭처럼 세상을 들이받으며 시설 바깥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소록도 100주년을 맞아 고흥군이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돌보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노벨평화상에 추천한다고 한다. 한센 병력으로 인해 격리된 사람들의 섬 소록도는 오랜 세월 차별과 폭력, 단종과 학살이 자행된 인권의 사각지대이자 침묵의 땅이었다. 수녀님과 같은 이들이 있어 갇힌 사람들은 고통을 덜었을 것이나, 덕분에 그 고통은 100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지속 가능함은 분명 어떤 평화에 기여했을 것이나, 그것은 실상 갇힌 사람들이 아니라 가둔 사람들, 소록도가 아니라 소록도에서 바라본 - P36
육지의 것이 아니었던가. 오래전에 깨어지는 게 더 좋았을 ‘당신들의 평화‘ 말이다. (2016. 1. 25) - P37
2001년 처음 노들장애인야학의 문을 두드렸던 나는 살면서 장애인을 거의 본 적 없는 평범한 비장애인이었다. 야학 교사인 나는 방황하던 대학 졸업반이었고, 또래인 야학 학생들은 초등학교는커녕 변변한 외출도 해본 적 없는 중증장애인들이었다. 장애인이 차별받는 세상이란 저멀리 따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일주일에 한 번쯤 ‘봉사‘하러 다녀오면 되는 줄 알았으나, 내 생각이 틀렸다. 학생들은 지나가듯 말했다. "나도 대학가고 싶어." "나도 연애하고 싶어." "나도 돈 벌고 싶어." 거기엔 모두 ‘너처럼‘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한가한 소리를 일순간 팽팽하게 당기는 말, 저항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밧줄 같은 말, 그것은 주술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 P81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김소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의 구질구질함을 이해한 자는 그 구질구질함에 순교한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누리던 그마저의 편리도 내려놓고 창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아름답다. - P102
박종필의 앎은 앓음이었다. 그는 다큐를 찍어 명예를 얻었지만 우정을 나눈 형들은 객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부채감과 자괴감으로 크게 앓았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그 앓음이 박종필의 삶을 결정지을 만큼 대단했으리란 걸, 다큐를 보며 알았다. 이후 20년 동안 그는 장애, 빈민 현장의 영상활동가로 살았다. - P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