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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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질환을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현재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믿을 수 있다면, 누가 치료비를 지급해야 하느냐에 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 P184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보장은 아픈 사람들을 인정하는 일의 시작일 뿐 아픈 사람들이 갖는 가치를 표현하는 일은 아니다.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치료를 제공하면서도 여전히 아픈 사람들을 주변부로 밀어낼 수 있다. ‘생산적이지 못한‘ 사람들, 즉 아동, 장애인, 노인, 직업 훈련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그곳에 놓인다. 치료 자체는 치료를 받는 개인이 가치 있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아픈 사람이 미래에 보여줄 생산성에 투자하는 일이다. 아픈 사람은 수리가 필요한 고장 난 몸 안에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물어야 하는 어려운 질문은, 우리가 아픈 사람들을 나머지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통찰을 주는 이들로서 가치 있게 볼 수 있느냐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기 삶을 평가하는 생산성이라는 기준을 의심해본다면, 이는 질병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의 시작이될 수 있다. 나는 다시 ‘생산성 있게‘ 되었지만 아팠던 때보다 더 잘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암은 없는 채로 그때처럼 - P187

살 수 있길 종종 바라기도 한다. 아플 때, 아마도 오직 아플 때만, 우리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암처럼 치명적인 병을 앓았기에 그저 가만히 앉아 오후의 빛을 바라볼 수 있었고, 16년 동안 봐온 야곱의 그림을 마주하고 마침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제대로 사는 법을 익힐 만큼 충분히 아프지는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내가 가치 있다.
고 여기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는지 묻는 대신, 또 사회나 조직의 요구보다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고 있는지 묻는 대신, 이력서에서 무엇이 중요하냐에 따라 선택을 가늠한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환과 고통에 두려움을 느낀다. 다시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려울 뿐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까 봐 두렵다. 고통도 무섭지만 속도를 늦추는 것도 무섭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느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광기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속도가 늦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며, 이들은 조직이라는 생산 기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겁낸다.
화학요법 치료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 아팠을 때는 너무도 하고 싶었지만 체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며 짜증을 내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나는 제대로 감각을 느 - P188

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긴다. 문득 음악이 들려올 때 느꼈던 기쁨이 그립다. 산책을 할 때, 내 집에서 밤새 잘 때 느꼈던 기쁨이 그립다. 아팠을 때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요즘 나는 사람들이 내 일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그 밖의 모든 일을 전부 몰아내야 할 만큼 그렇게 엄청나게 중요한지 자문하길 잊곤 한다.
건강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을 분리해두는 대신,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를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하는 기본 권리 중에서도 특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경험할 권리를 짚고 싶다.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내달리면서 살아가느라 사람들에겐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반추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는 법, 몸을 생산 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인생을 보낸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우리는 몸을 생산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만, 우리 자신을 생산한다는 말의 의미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이런 종류의 생산은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여야 한다. - P189

아픈 사람의 권리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한 인간이 자신을 생산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해봐야 한다. 여기에는 먼저 다른 사람이 해주는 돌봄이 필요하고, 다음으론 시간, 공간, 기본적인 생필품 그리고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또 최종적으로는 삶의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서 우리가 받은 돌봄을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 모두가 필요하다. 이 권리 중 어느 것도 특별한 권리여서는 안 된다.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 죽음은 삶의 적敵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균형 잡힌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 - P190

위해 우리는 질병을 존중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 - P191

아픈 사람의 권리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아주 단순한 질문들에 도달한다. 우리를 인간으로서 하나로 묶는 경험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에 고통이 포함된다면, 우리 각자는 바로 자신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큼 강인한가? 만일 인정할 수 있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아주 현실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세금을 낼 이유로 의료 서비스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죽어가고 있는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인간으로서 생산할 수 있느냐다. 인간인 우리를 생산하는 일은 질병이 가져오는 고통을 목격하고 공유하는 데서 시작한다. 또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고통을 공유 - P192

함으로써 배우고, 이 배운 바에 따라 살아가는 데서 시작한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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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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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질병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삶이 어디에서 끝나버릴 수도 있는지 본다. 경계에서 삶을 조망하면서 우리는 삶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보도록 허락 - P7

받는다. 여전히 살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는 멀어져 있기에 마침내 멈춰 서서 생각해볼 수 있다. 왜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살아왔는가, 미래가 있을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질병은 삶 일부를 앗아가지만 기회 또한 준다. 우리는 그저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
회복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내 경우에 심장마비 이후의 회복이란 아팠던 경험 전체를 뒤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반면 암은 이런 식으로 회복할 수 없었다. 아직도 진찰을 받을 때마다, 보험 서류를 작 - P8

성할 때마다 암에는 차도가 있을 뿐이지 ‘완치‘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암이라는 질환의 생리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암 경험이 미친 영향이다. 암을 앓고 난 후에는 예전에 있던 곳으로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변화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고통을 보았고, 특히 젊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은 갖기 어려울 수도 있는 어떤 관점에서 고통을 보았다. 삶이라는 게임을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계속할 수는 없었다. 예전의 나를 회복하기보다는 앞으로 될 수 있는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글쓰기는 이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다.
회복이 질병의 이상적인 결말이라고 보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이들은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던 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아내와 나는 장모님이 입원한 암 병동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장모님의 경우 결말은 쉰아홉 살의 죽음이었다. 만일 회복이 이상적으로 여겨진다면 계속 만성으로 남는 질병이나 죽음으로 결말나는 질병을 앓는 사람들의 경험에서 어떻게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은 회복보다는 ‘새롭게 되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인 듯싶다. 계속 아프다 해도, 심지어는 죽어간다 해도 질병 안에는 새롭게 될 기 - P9

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 제공하는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질병에 관해 생각해야 하고 이야기해야 하며 어떤 사람들, 곧 나 같은 사람들은 질병을 주제로 써야 한다. 생각하고 말하고 씀으로써 우리는 개인들이자 한 사회로서 질병을 받아들일 수 있다. 또 그때야 질병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다.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고,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 질병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자명하지도 않은 이유는 질병이 우리를 다르게 살도록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 P10

손으로 편지를 만지듯이, 접고 또 접어서 답장을 보내듯이, 내가 쓰는 이 글에 다른 사람들의 손길이 닿길 바란다. 아픈 사람들이 이 글에 응답하길 바란다. 여기서 응답이란 다른 이가 쓴 이야기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는 것이다. - P11

나는 내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독자들은 내 이야기에 자기 삶을 더할 수 있으며 각자의 상황에 맞게 내 글을 고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쳐 쓰기‘가 모여 우리 사이의 대화가 된다.
대화할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아픈 사람이 너무도 많다. 자기 질병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질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진단명을 말하거나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설명하는 일 이상이다. 아픈 사람이 자기 질병에 관해 하는 말들은 대부분 자신에게서 나온다기보다는 의사라든지 그 밖의 의료진에게서 온다. 이런 경우 아픈 사람은 환자로서 말하고 있을 뿐으로, 그저 다른 곳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의학의 이야기를 지루하게 반복한다. 전문적인 의학 용어를 써서 말하려고 애쓰면서 아픈 사람은 개인의 경험이라는 자신만의 드라마를 스스로 부정한다.
아픈 사람들은 할 말이 많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어떤 희망과 공포를 품고 있는지 듣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통증 속에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픈 사람이 자신의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사람들은 당황하며, 그래서 연습할 기회를 놓친다. - P12

또 연습한 적이 없으므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들은 질병이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믿게 되며, 다른 이와 함께 질병을 경험하고 배울 기회를 놓친다. 하지만 새롭게 되어가는 과정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할 때 더 쉽다. - P13

어떻게 하면 모범적으로 아플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혼자일 필요는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문제를 맞닥뜨렸고 또 어디에서 가치 있는 순간을 발견했느냐다. 아픈 사람들은 아픈 동안 겪는 모든 일이 이야기할 만한 소재라는 증거로 이 글을 가족과 친구와 의료진에게 내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병을 고통과 상실 너머로 고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쉽게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 P14

심각한 질병은 삶의 모든 면을 건드린다. 아픈 사람을 수 - P15

용하기 위해 지어놓은 병원과 의료 시설들은 환상을 만들어왔다. 아픈 사람을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떨어뜨려 가둬놓음으로써 질병 자체도 아픈 사람의 삶 안에 가둬놓을 수 있다는 환상이다. 이 환상은 위험하다. 아프게 되면 관계에도 직업에도 변화가 온다. 자신이 누구며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삶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다르게 느낀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무섭다. 심하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번의 경험에서 나는 변화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압도되었다.
그리하여 이 글은 질병에 압도되기 전의 젊은 나에게, 몇 년 더 젊을 뿐이지만 경험의 심연 건너편에 있는 나에게 쓰는 것이기도 하다. (...) 이제 이어질 글에서 아프기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두려울 수밖에 없겠지만 두려움에 차서 인생을 보낸다면 바보 같은 일일 거라고, 미래의 너는 고통받고 많 - P16

은 것을 잃게 되겠지만 고통과 상실은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 P17

어느 날 몸이 고장 났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우리가 아플 때 묻게되는 질문이다. 이때 문제는, 몸이 정신에게 질문을 던지자마자 의사들이 답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질환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답한다. 이들의 답은 의술을 펼치는 데는 유용하지만 한계도 있다.
(...) 몸이 고장 나면 삶도 고장 난다. 의학 - P22

이 몸을 고칠 수 있다고 해도 언제나 삶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학은 고장 난 부분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지만, 때로 아픈 사람 안에서 피어오르는 공포와 절망은 너무나 커서 고장 난 부분을 고쳐도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때 질병 경험은 의학의 한계 밖에 있다. - P22

우리는 잘못된 결과를 뱉어내는 컴퓨터 문제를 상의하는 것처럼 내 심장 문제를 두고 이야기했다. ‘그것‘에 문제가 있네요. 우리의대화는 내가 자동차 정비공과 나누는 대화보다 대체로 더 고상했지만, 고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의사와 내가 모호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정비공처럼 구체적으로 말하질 않았으며, 나는 손상이 얼마나 심한지 자세하게 듣고 싶지가 않았다. 자동차보다는 심장에 관해 더 많이 알았지만 이 심장이라는 엔진은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듣기가 꺼려졌다. - P24

경험은 살아야 하는 것이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몸 또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관리자가 나라도 그렇다. 몸은 삶의 수단이며 매개체다. 나는 몸 안에서 살 뿐만 아니라 몸을 통해서 산다. 정신을 몸에서 떼어내라고, 그러고는 몸이 어디 바깥에 놓여 있는 사물인 양 이야기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몸이 고장 났다는 말을 들으면서 여전히 냉정하고 전문가답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의학의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언제나 냉철하게 행동하라고 요구받는다. 몸이 고장 났지만 공포와 절망은 고장 난 일부가 아닌 것처럼 대해야 하고, 삶 전체가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듯이 행동해야 한다. - P25

심장마비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필요했던 것은 일종의 축하였다. 축하는 어떤 사건에 대단히 기뻐하기 위해서 하기도 하지만, 사건의 중요성을 표시하기 위해서도 한다. 장례식은 삶을 축하한다. 입맞춤과 악수가 그렇듯 눈물과 침묵은 특별한 때를 축하할 수 있다. 하지만 주치의와 나는 내게 일어나고 있던 일을 축하할 수 있는 말을 찾는 대신 그 경험을 인정하길 회피했다. 우리는 기계를 두고 말하듯 질환만을 논했다. 질병을 축하하는 법은 나 혼자서 배워야 했다. - P26

의학의 한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질환disease과 질병 illness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의학의 이야기는 질환 용어를 사용한다. 질환 용어는 몸을 생리학으로 환원하며, 측정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체온, 감염 여부, 혈액 및 체액의 순환과 구성, 피부 상태 등등을 측정하고 검사한 결과가 질환 용어에 포함된다. 질환 이야기에서 이런 결과들은 지금 일어나고 - P27

있거나 곧 발생할 어떤 고장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질환 용어는 측정된 값을 참조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다. 내 몸은 살아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주체지만, 질환 이야기에서는 그 몸, 측정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객관화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질환을 논할 때 ‘객관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의학의 이야기다. 환자는 질환 용어를 사용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재빨리 배우지만, 의학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아픈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는다. 내가 경험하는 내 몸은 다른 누군가가 측정하는 그 몸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되어 질환 이야기를 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자신의 몸을 외부에 존재하는 장소로, 질환이 발생하고 있는 ‘현장‘으로 언급한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환자는 의사와 자신을 같은 장소에 두지만, 의사에게는 환자의 몸 자체가 외부의 장소다. 아픈 사람은 의사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훨씬 더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사실을 안다. 이 같은 정체성의 혼란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래도 잘못됐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아픈 사람은 대가를 치른다. 바로 자기 존재가 ‘그 몸‘의 일부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질병은 질환을 앓으면서 살아가는 경험이다. 질환 이야기가 몸을 측정한다면, 질병 이야기는 고장 나고 있는 몸 안에 - P28

서 느끼는 공포와 절망을 말한다. 질병은 의학이 멈추는 지점에서,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단순히 측정값들의 집합이 아님을 인식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은 내 삶에도 일어난다. 내 삶에는 체온과 순환도 있지만 희망과 낙담, 기쁨과 슬픔도 있으며, 이런 것들은 측정될 수 없다. 질병 이야기에 그 몸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내가 경험하는 내 몸만이 있다. 질환 이야기는 어떤 측정값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기록한다. 질병 이야기는 완벽하게 편안했던 몸이 다른 몸이 되어가는 변화에 관해 말한다. 이 다른 몸은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것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 P29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도움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름의 방식으로 질병을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의료진 또한 지켜봐주는 것이다. 답을 받기보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 이야기를 꺼내는 데 필요한 시간을 기다려주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즉시 말로 표현이 안될 때가 가장 절박하게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때인 경우가 많다. 질문이 없다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심장마비가 있 - P30

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 말이 별로 없고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수 있을까. 아픈 사람이 풀어야 하는 문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해 표현할지 고심할 때 도울 사람을 찾는 것이다.
(...)
질병이 삶에 가져온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말해야 했다. 이야기함으로써 변화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 P31

계속 찾아낼 수 있었다. 심각하게 아픈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인정해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들은 자신을 위해서 이야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직 아프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질병은 어떻게 더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은 삶을 위협하지만 살아갈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얼마나 고통스럽든 얼마나 아픈 것을 피하고 싶어 하든 상관없이 우리에겐 질병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 책의 과제는 바로 이 필요를 표현하는 것, 그리하여 질병을 축하할 수 있는 말들을 찾는 것이다. - P32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지 배웠어야 했지만, 취약함을 부인함으로써 나는 오히려 더욱 취약한 상태로 남았다.
우리는 취약한 생물이고, 인간들은 바로 이 취약함을 공유함
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희망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취약함을 부정하기보다는 받아 안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만 또렷하게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돌아다니길 선택하는 일 이상이고,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희망하는 일 이상이고,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사랑하길 선택하는 일 이상이다. 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어디서,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모든 활동의 한가운데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돌아다니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런저런 선택을 좇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일 때 더는 건강에 - P39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심장전문의의 진료실에서 나올 때의 나는 어떻게 혹은 왜 그러한지를 이해할 만큼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해가 미처 다 가기도 전에 나는 배우게 된다. 충만한 삶을 산다는 측면에서는 아픈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음을,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의지를 발휘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고 증명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건강이 필요하다. 반면 아픈 사람은 자신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의지를 전혀 행사하지 않아도 세계가 이미 완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자유롭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다른 회복을, 사고에서의 회복이 아니라 질병에서의 회복을 배워야 했다. - P40

정치인과 의사들은 ‘의사 쇼핑‘ 같은 말을 써가며 여러 의사를 전전하는 행동을 지탄하지만, 신경을 긁는 비난이며 표현 자체도 모욕적이다. 내가 세 번째 의사를 ‘쇼핑‘해서 다른 의견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 - P46

암이라는 말을 듣는 경험은 어땠을까? 미래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이들은 다시는 못 볼 얼굴들로 변했다. 비현실적이지만 완전히 현실인 악몽 속을 걷고 있는 듯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 없어. 하지만 일어나고 있었고, 계속 일어날 것이었다. 내 몸은 바닥이 없는 모래 수렁으로 변했고 나는 자신 안으로, 질병 안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 P49

내 병은 통증을 밤과 연결했다. 종양이 몸을 장악하면서 통증은 정신을 장악했다. 통증이 빚어낸 고립과 외로움은 어둠 속에서 더 커진다. 아픈 사람이 평화로이 몸을 눕힌 사람들에게서 분리되기 때문이다. 한밤중, 통증 속에 있는 사람의 세계는 더는 하나로 붙어 있지 못하고 조각나 떨어져 나온다.
통증 때문에 조각나는 듯한 경험을 쓰다 보면 모든 것이 부서지는 듯하던 느낌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언어는 쉬이 빗나간다. 앞에서 나는 통증 속에서 보낸 밤들에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질병을 알게 됐다고 썼다. 하지만 이 비유는 경험을 왜곡한다. 내가 얼마나 질병에 얼굴을 주고 싶었든 간에, 다시 말해 얼마나 질병을 일관성 있게 표현하고 싶었든 간에 질병은 어떤 존재가 아니다. 질병에 얼굴을 주고 싶은 마음이 어둠 속에서는 더욱 커지기 때문에 나온 비유일 뿐, 질병에 얼굴이 있다는 말은 경험을 더 조각내고 뒤섞는다. 내가 한밤중에 마주한 것은 나 자신이었을 뿐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에 장악됐다고 느낄 때 인간이 흔 - P53

히 보이는 반응은, 위협이 되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통증을 ‘그것‘으로, 신으로, 싸워야 하는 적으로 만든다. ‘그것‘이 사악해서든 아니면 우리 잘못으로 ‘그것‘이 진노를 일으켜서든 우리는 통증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저주하고 그것이 자비를 베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통증에는 얼굴이 없다. 통증은 밖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통증은 바로 내 몸,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신호를 보내는 내 몸이다. 통증은 몸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몸이지, 외부에 있는 어떤 신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통증과 씨름하는 일은 몸 바깥에 있는 무언가에 맞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이 몸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통증을 전부 내 몸 안에 있는 내 것으로만 본다면 몸 안에 고립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그리고 고립은 조각나 부서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건강할 때 몸은 질서정연하고 주위 환경에 조응하며, 몸 부위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작동한다. 누웠을 때 몸은 편안함을 느끼면서 휴식하고, 깨어날 때는 활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휴식과 활동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리듬은 통증 속에서 사라지고, 그러면서 계획과 전망도 사라지며, 과거와 미래가 서로 맞물려 있을 - P54

때는 이해할 수 있었던 삶 또한 사라진다. 조화는 붕괴하고 조각난다.
조화란, 한밤중 다른 사람들이 잘 때 함께 자고 함께 휴식하는 것이다. 함께 쉬지 못하고 불려 나오면서 아픈 사람은 조각나 떨어져 나오며, 무엇보다 삶의 자연스러운 주기라는 온전함을 상실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나의 언어는 삐끗한다. 아무것도 나를 잠에서 불러내지 않았다. 몸의 통증 때문에 일어났고, 통증을 의식하며 혼자 깨어 있으면서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아픈 사람이 겪는 추방당하는 듯한 경험은 통증과 함께 시작한다. 조화롭게 통일되어 있다는 감각 안에서만 통증은 아픈 사람이 느끼는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수 있다. 이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아픈 사람은 자신이 떨어져 나온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통증 때문에 깨어 있던 밤들에 아내를 깨울 수도 있었다. 아내를 불러내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게 하고, 그래서 혼자 외로워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캐시를 깨웠다면 자연스러운 주기에 맞춰 흘러가기에 조화로운 그녀의 일상을 훼손했을 것이다. 캐시는 여전히 낮 동안 일하고 밤에는 잤다. 그녀의 삶에는 내 삶에서는 사라진 질서가 있었 - P55

다. 자연스러운 주기 바깥에 있던 나는 낮에는 너무 피곤해서 일할 수가 없었고, 밤에는 등을 망치로 치는 듯한 통증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야행성도 주행성도 아니고 어느 쪽의 존재도 되지 못한 채로 일상의 바깥에 머물렀다.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부재하고 있었지만 부재하는 이유를 전부 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삶을 살고 있었다. - P56

왜 캐시를 깨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직 절반만 답했다. 다른 절반의 이유는 캐시의 잠이 내게 유일하게 남은 질서였기 때문이다. 더는 다른 사람들이 휴식할 때 함께 쉴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족의 휴식이 소중했다. 나는 잘 수 없었지만 여전히 아내의 잠은 아껴줄 수 있었다. 그녀의 수면을 방해했다면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중에 더 심하게 아프게 되었을 때는 밖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의 능력과 그들 몸 안의 자유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길 바랐다. - P57

중요한 것은 통증이 할 일을 했다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의사를 만나보게 했다는 것이다. 주치의가 잡아놓은 비뇨기과 진료일이 됐을 때는 이미 수술도 받고 화학요법도 한 차례 받은 후였다. 통증은 원래 나를 돕기 위해 생겨났다. 무언가가 바뀌어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하는 내 몸, 그것이 바로 통증이다. - P58

표현할 수 없는 통증 속에서 아픈 사람은 고립되며, 입을 다물면서 추방되었다고 느낀다.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 일단 표현된 말은 다른 사람을 향한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라도 그렇다.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표현함으로써 아픈 사람은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에서 평화롭게 잠자고, - P59

나는 내 집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았다. 여전히 혼자였지만 나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
조각나는 듯한 경험을 쓰기가 어려운 것처럼 다시 조화속에 있다고 느꼈던 경험도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 말이 조화로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만으로도 아픈 사람은 조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시의 단어 하나하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표현하고자 했을 뿐이로, 표현이 조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 시를 ‘보기‘ 위해 창문이 필요했다. 그리고 본 것을 다른 사람들의 세계 안에 두기 위해,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세계 안에 내가 있을 자리를 되찾기 위해 나에게는 그 시가 필요했다.
소중히 하는 마음에 관해서는 좀 더 쉽게 쓸 수 있다. 가족들은 잠들어 있었고 그들의 잠은 내게 소중했다. 통증 때문에 깨어 있던 밤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가족의 휴식은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마음 때문에 통증은 견딜 만해졌다. 질병과 통증은 삶을 조각내지만, 사는 이유를 모두 빼앗겼다고 혹은 사는 이유가 막 사라질 참이라고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조화를 발견하곤 하며, 그렇기에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창에 비친 아름다움을 본 그 밤에 통증은 덜 중요했다. 내 몸에서 나를 떼어냈기 때문이 아 - P60

니라 내 몸 밖으로 나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잠도, 그 창도 소중했다. 이렇게 아끼는 마음이 다시 모든 것을 조화롭게 했고, 그래서 나 자신도 계속 소중히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창문에서 본 것을 모두 이해할 만큼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언어는 오직 나중에야 경험을 따라잡는다. 하지만 그 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소중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 P61

사람들이 애도와 관련해 겪는 문제는 대부분 상실이 겹쳐서 생기기보다는 상실한 사람이 그만 슬퍼하길 주변에서 바라기 때문에 생긴다. 의료진, 가족, 친구 등 모두가 질병에서 비롯된 상실이든 죽음에서 비롯된 상실이든 아픈 사람이나 돌보는 사람이 최대한 빨리 상실에 적응하길 바란다. 아픈 사람이 슬퍼하다 보면 치료가 늦어질 수도 있고, 한편으로 슬퍼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는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이 상실을 그리 대단치 않은 일로 정리하고 잊은 다음, 건강한 보통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라고 압력을 가한다.
전문가들은 적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나는 애도가 ‘긍정하는 일‘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질병이나 죽음 때문에 사라진 것을 애도하는 일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긍정한다. 상실이 그저 뒤돌아 나오면 되는 사건인 양 단순하게 다룰 때만 ‘신속한 적응‘을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상실 - P68

한 무언가를, 상실한 누군가를 존중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그때껏 함께 살아온 자기 몸과 헤어질 때, 또 돌봄을 주던 사람이 돌봄을 받던 사람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울 때 시간을 두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충분히 애도한 후에야 한 사람은 상실을 통과하여 다른 편에 있는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이 어떤 의미에서는 아프기 전의 젊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고 앞에서 썼다. 나는 젊은 나에게 전하고 싶다.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고, 당신이 슬퍼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찾으세요.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피해요. 이런 사람들은 당신이 느끼는 상실을 사소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상실과 비교하거나 곧 익숙해질 거라고 말하죠. 많은 것이 당신에게서 사라지고 있을 때 아무도 이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상실은 당신 경험의 일부이고, 당신에겐 슬퍼할 권리가 있어요. 질병은 삶의 모든 부분이, 상실조차, 경험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슬퍼하는 일은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소중히 하는 일과도 같아요. 상실감마저 소중히 여길 때 삶 자체를 소중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다시 살기 시작할 거예요. - P69

스포츠의학 전문의와 초음파검사를 한 의사가 마침내 내가 얼마나 아픈지 확진을 내렸을 때, 두 의사의 태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한 사람은 내게 힘을 주고 돕고자고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진단은 거의 같았지만, 스포츠의학 의사는 내게 상황을 전해주면서 자신도 그 상황 안에 함께 있었던 반면 초음파검사 의사는 평결을 내리듯 진단을 선고했다. 차이들은 증식한다. 똑같은 메시지라고 해도 환자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똑같은 내용이 두 개의 다른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 P74

차이가 인식되어야 돌봄이 가능하다. ‘암 환자에게 해주기 적당한 말‘ 같은 것은 없다. ‘암 환자‘는 포괄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다른 시작 지점을 갖고 각자의 질환에서 비롯되는 사건들을 따라가면서 다른 경험을 할 뿐이다. 의학이 환자를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일반적인 진단 범주는 질환에 쓰이는 것이지 질병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이런 범주는 치료에는 유용하지만 돌봄에는 방해가 된다.
아픈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이와 독특함을 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구별하는 데는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차이를 파악하려면 아픈 사람과 맺는 관계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반면 일반론은 시간을 아껴준다. 사람들을 범주 안에 집어넣으면 효율적이며, 범주 개수가 적을수록 더 효율적이다. 모두에게 다 맞는 ‘원 사이즈‘의 옷처럼, 같은 범주에는 같은 치료법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는 돌봄과 똑같지 않다. 치료 제공자들은 효율성과 돌봄 사이에 균형을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환자에게 마음쓰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어 책임을 모면한다. 이 환상은 ‘단계 이론‘ 같은 것에 기반을 둘 때가 많다. 이런 이론에 나오는 핵심 용어들은 환자의 심리 상태를 기술하면서 환자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치료 제공자에게 알려준다. - P75

가장 유명한 단계 이론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이론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이 겪는 경험을 설명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죽어가는 사람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단계를 거쳐간다. 퀴블러 - 로스의 원래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이론은 사람들이 경험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경험을 분류하는 데 사용된다. 이 이론에 나오는 용어들은 개인의 질병 경험에서 어떤 점이 특별한지 보게 하는 대신, 사람들이 거리를 둔 채 "예상대로 환자분은 지금 분노를 겪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또 아픈 사람이 왜 분노하는지 묻는 대신 분노를 ‘그저 지나가는 단계‘로 여기게 한다. 그리고 이미 예상한 대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픈 사람의 분노를 ‘모두들 겪는 무엇‘으로 일축할 수 있다.
어떤 경험을 진짜로 만드는 것은 경험의 특수하고 세세한 부분들이다. 한 사람의 분노나 슬픔은 다른 사람의 분노나 슬픔과는 너무도 달라서, 이 감정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 각 사람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오히려 덮인다. ‘분노‘든 ‘슬픔‘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말이든 이 단어들은 한 사람의 경험을 알려주기보다는 가린다. 이런 식의 이론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놀랍지 않다. 실제 경험은 수없이 많은 모 - P76

습으로 나타나며 각기 다른 결을 갖지만, 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산 경험에 자신이 연결되지 않고도 그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해하고 있다는 이러한 환상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 오기까지한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단계 이론은 대단한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귀중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은 아픈 사람에게 의미 깊다. 나는 암 진단을 받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공포가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알자 위안이 됐다. 혼란스럽고 우울했을 때도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 역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가 겪는 공포, 혼란, 우울함이 특별하다는 느낌, 또 나만의 것이라는 느낌이 덜해졌다. 하지만 돌봄공자의 입장은 다르다. 돌보는 사람은 아픈 사람이 느끼는 공포가 전부 그만의 것이며, 어떤 ‘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공포 단계를 지나고 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아마 아픈 사람이 가장 원치 않는 일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겪는 일임을 - P77

알 때 개인이 느끼는 공포는 줄어들지만, 예상되는 단계라는 이유로 공포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공포가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한 번 일어난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는다.
위중한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아픈 사람이 필요로 하는 도움은 지구 상의 인간들이 모두 다른 만큼이나 각기 다르다. 주위에 가족들이 모여 있길 원하는 사람도 있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즉각 의학의 도움을 받길 바라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치료받을지 시간을 두고 결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환자의 경우는 치료를 서두르는 것이 의사로서 돕는 일이고, 또 다른 환자의 경우는 의사가 뒤로 물러나 있는 게 돕는 일일 때도 있다. 돌봄 제공자에게는 아픈 사람이 자기 필요를 표현할 방법을 찾도록 지원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결국엔 아픈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과 돌봄 제공자가 줄 수 있는 것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픈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알아내도록 돌봄 제공자가 도와야 한다. 돌봄 제공자가 전문가든 가족이든 친구든 마찬가지다. 그래야만 돌보는 사람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과 아픈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절충할 수 있다. - P78

아픈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돌봄 제공자가 "무엇이 필요하세요?"라고 묻는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으며, 일관된 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진단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삶은 이미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여러 면에서 바뀌었고, 위중한 질병을 앓는 동안 변화는 계속된다. 그리고 변화가 계속된다는 점이 ‘위중함‘의 일부이기도 해서, 심하게 아픈 사람은 변해가는 자기 자신의 필요조차 따라잡기 힘들어한다. 아픈 사람은 분명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 환자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전부 다 실수였다는 말, 이것 하나일지도 모른다. 환자분 검사 결과에 이름이 잘못 붙어 있었네요. 오, 전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 P79

어쩌면 아픈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예 말로 표현하려 애쓰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필요를 발견할 때까지 아픈 사람은 자신을 그저 놔두고 주위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닌가 한다.
나는 ‘돌봄 제공자caregiver‘라는 이름을, 아픈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며 아픈 사람 개개인의 경험에 응답하고자 하는 사람에 한정해서 쓰려고 한다. 돌봄은 분류하기 위한 범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제대로 된 돌봄은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다른 점이나 특별한 점을 인식하며, 그래서 돌봄을 받는 사람은 자기 삶이 귀중히 여겨진다고 느낀다. 우리에게 사람들 - P80

을 분류할 권리는 없지만 특권이 하나 있다. 바로 각자가 얼마나 고유한지 이해하는 특권이다. 돌봄 제공자가 이 고유함에 마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픈 사람에게 어떻게든 전할 때 아픈 사람의 삶은 의미 있어진다. 나아가 아픈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돌보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면서 돌보는 사람의 삶도 의미 있어진다. 돌봄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에서 분리할 수 없으며, 이해가 쌍방향으로 일어나야 하듯 돌봄도 대칭을 이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을 돌보며 우리는 자신 또한 돌본다. 그렇지 않다면 소진되거나좌절하고 말 것이다.
의료인 대부분에게는 돌보는 사람이 될 시간이 없다. 또 그럴 의향이 없는 사람도 많다. 의료진은 치료를 제공하며 치료 제공은 돌봄 제공만큼이나 중요하지만, 둘은 아주 다르다. 아픈 사람을 저버리지 않고 곁에 남는 가족조차 돌보는 사람이기보다는 서비스 공급자가 될 때가 너무도 많다.
돌보는 사람이 마주하는 질병 경험은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질병 경험이란 오히려 공포, 불확실함, 두려움, 부정, 혼란을 뒤섞은 다음, 여기에 ‘거래하기‘를 급히 첨가한 잡탕 같은 것이다. 캐시는 내가 어떤 진단 가능성이나 치료 가능 - P81

성을 다른 가능성과 저울질해보고 혼자 거래하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며칠이고 들어야 했다. "그걸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걸 해도 괜찮겠어."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아픈 사람은 사실 거래할 거리도 없으며 거래할 상대도 없음을 깨닫는다. 또 외로움도 찾아오고, 그다음에 자신이 누구고 자기 인생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찾아오고, 우울과 뒤섞인 희망이, 다른 사람들과 닿아 있고 싶다는 욕망과 뒤섞인 분노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마음과 뒤섞인 의존 상태가 찾아온다.
앞에서 말한 내용은 어느 아픈 사람 한 명이 느꼈던 감정의 ‘잡탕‘을 보여줄 뿐이지만, 그래도 내 요점을 다시 확인해준다. 바로 경험을 몇몇 범주로 나누는 말들이 전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고통이나 상실 같은 용어는 이 말이 아픈 사람 자신의 경험으로 채워질 때까지는 실체가 없다.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고유함을 목격하고 차이를 전부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돌봄이다. - P82

아픈 사람은 자기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둘 모두에 잘 대처하려 애쓴다. 하지만 환자가 되어 의사들이 몸을 접수하면 의사들은 그 몸을 환자의 삶에서 분리해서 이해한다. 예를 들어 의학이 이해하는 통증은 아픈 사람의 경험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통증을 겪는 사람은 모든 것이 조각나고 뒤죽박죽되고 있다고 느낀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려워지고 일도 하기 힘들다. 자기가 있을 자리가 어디인지 감각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다시 제자리를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 반면 의학은 통증이 삶에서 갖는 의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통증은 질환의 증상일 뿐이다. 의학은 아픈 사람의 통증 경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며 치료법이나 관리법에만 관심을 둔다. 의학은 분명 몸에서 통증을 줄여주지만, 그러면서 몸을 식민지로 삼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학의 도움을 구하면서 맺는 거래 조건이다.
치료 경과가 좋을 때는 수동적인 환자로 있을 만한 가치가 있다. 병이 난다면 나는 환자가 되고 싶다. 의사를 피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질병이라는 드라마에서 의사들이 무대 중앙을 독차지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위험하다. 의사를 거부 - P87

하면 당장 몸이 위험해질 것이고, 의사들이 드라마를 차지하도록 둔다면 그들은 질환이 이야기의 전부가 되도록 각본을 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의사는 "이건 조사가 있어야겠네요"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이후 이어질 드라마의 각본을 짰다. 내 몸 안에 존재하는 한 인간은 그저 수동적으로 관람만 하도록 객석으로 보내졌다. - P88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감정을 보이고 친밀하게 대하길 바란다기보다는 그들이 인정하길 바란다. 질병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과거의 내가 힘든 경험을 통과하며 배운 소중한 사실이다. 이 과거의 나는 말해주었다. 암을 앓는다는 건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질병을 겪고 죽음을 무릅쓰는 것, 거의 죽어가다가 삶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아는 채로 삶을 다시 시작하는 - P89

것 모두,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처음엔 병 때문에 몸이 변하고, 다음엔 병을 낫게 하려고 받는 수술과 화학요법 때문에 몸이 변하는 것 또한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심각한 질병은 여행자를 인간 경험의 가장자리로 데려간다. 한 발짝만 더 내디뎌도 아픈 사람은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나는 이 여행이 인정받길 원한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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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아빠가 됐다 -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 이매진의 시선 6
조기현 지음 / 이매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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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해보려던 스무 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2011년 일이다. 그 뒤 1인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 P8

나 혼자만 유별난 상황인 듯해서 점점 이 세상의 분류법에 들어가지 않는 내 고통을 외면하려 했다. 사회 문제로 호명되는 ‘청년‘을 보면서 한동안 내가 ‘일반 청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청년은 학자금 대출로 힘들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버지의 부모처럼 살고 있어서 내게 청년이라는 말은 좀 어색했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청년이다. 어떤 직업적 성숙기에 들지도 않았고, 심지어 진로를 찾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벌기에는 아버지가 큰 짐처럼 느껴졌다. 내게 ‘청년‘은 나를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제였다. 가족 돌봄과 가장 구실까지 맞물려서 청년이라는 과제는 충돌하거나 가중됐다. 지난 9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간신히 샛길을 찾아 뭔가 해보려고 노력한 시간이었다. 9년의 기록을 써 내려갈수록 여전히 대답은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질문은 뚜렷해졌다. 아버지를 버리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아버지의 삶을 관리하는 수준에만 머물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희생이나 배제 없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 P9

돌봄 문제를 ‘사회가 해결‘하려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들의 나쁜 노동 여건과 낮은 임금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희생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자원인 셈이다. "과거 가부장제가 공고하던 시절 노인에 대한 돌봄은 가족 간 권력 위계에서 가장 취약한 며느리의 몫이었다. 2019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 P18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 삶이 위태로워지고, 돌봄 관련 공적 제도는 50대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돌봄은 누군가를 보호하며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돌봄과 ‘위기‘는 동의어다. 이런 악순환을 ‘돌봄 위기 사회‘로 부를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자와 돌봄을 수행하는 자, 돌봄 노동자가 모두 누군가의 공백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메운다. - P19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을 재정의해야 한다. 장수, 건강, 웰빙 같은 말에 가려 잘 안 보이던 아픔, 질병, 돌봄, 죽음을 문제로 받아들이고 응시해야 한다. - P26

사연을 말해달라는 말을 들으니 긴급 복지 지원과 기초 생활 수급자 신청 앞에서 간절하던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몇몇 서류로 증명되지 않는 사실을 사연으로ㅍ풀어내는 방식이 어쩌면 합리적인데도 내키지 않았다. 나를 사연이라는 온정적인 틀 안에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존재가 돼야 하고, 불쌍한데 착해야 하고, 그래서 지원이 더 의미 있어야 한다. 내 삶 전체를 가난으로 설명하고, 그 삶을 심사받아야 한다. 탁자에 앉아서 내 사연을 심사하는 사람은 나 같은 상황을 겪어봤을까. 차라리 서류 뒤에 숨어서 가난을 증명하는 - P41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절차들속에서 길을 헤매는 모욕은 마땅히 감수해야 했다. - P42

공장에서 일하는 내 모습, 병원에서 간병하는 내 모습, 선거 운동을 하는 내 모습이 대조됐다. 아무것도 뜻대로 하지 못하는 노예였다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보호자였다가,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내비치는 시민이 되기도 했다. 선거는 1.4퍼센트 득표로 끝났지만 좀더 해보고 싶은 의지를 얻었다. 공장 문을 나서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들을 바꾸는 시민으로 살고 싶다. 대조되는 세 모습 사이에서 가장 되고싶은 내 모습은 시민이다. - P83

공장은 나를 짓밟지 못해 안달이었고, 병원은 나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공장과 병원 사이에서 동아줄처럼 진보 정당을 잡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나를 더 하찮게 만들었다. 아주 미세하게 느끼고 있던 권리 감각이 내게 먼지 한 톨만큼의 존엄도 없는지 확인해주는 일들 앞에서 더 처참하게 뭉개졌다.
자유니 권리니 정치니 사회니 복지니, 세상이 너무 쉽게 씹어 먹어버릴 소리에 나는 심장이 뛰었다. 현실로 오면 나는 시민보다는 노예였다. 보호자는 환자 대신 제때 돈을 내야 하는 채무자였고, 치료 도중에 발생하는 법적 문제를 떠맡는 책임자였다.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듯했다. - P85

두 번이나 살려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괘씸함과 두 번이나 살려줬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한다는 서운함이 내 마음 - P90

에 가득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협력할 수 없었고, 나는 혼자 모든 일을 해내야 했다. 하루에 열댓 번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평생 돈을 벌어 병원비로 다 바쳐야 하는 걸까.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거대한 폭탄을 얻어맞았다. 나도 할 만큼 했다.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아빠 개인의 책임이다. 아빠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선택이 내 유일한 출구다.
꼬리 자르기 같았다. 내 경제 능력이나 조건으로 아빠까지 책임지는 일은 생존에 맞먹는 부담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께름칙했다. ‘정말 아빠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었다. 아빠를 타박하면서도 아빠를 이렇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도 못 다닌 사람, 어느 자리에 있는 조금만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기가 죽는 사람, 자기표현을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노동 현장에서 일을 빠르고 잘하는 게 유일한 인정이었던 사람, 그런데 이제 일을 못 하는 사람, 다시 말해 무엇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빠였다. - P91

큰마음 먹고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근로 능력 ‘있음‘이었다. 건강하다는 결과에 암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가 정말 회복이 돼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됐다. 증명되지 않는 ‘고통‘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사이를 오가며 진단명을 붙잡고 싸움을 벌였다. - P118

면회실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저 눈빛에 익숙해져야 하는 곳이었다. 저 사람들은 수급자가 됐을까? 1촌 직계 가족 두 명이 동의했을까? 어떤 박탈감을 느꼈을까? 술 마신다고 이곳에 오지는 않았겠지? 술 마시고, 돈 없고, 가족 사이 신뢰도 없는 사람들이겠지? 가족에게 짐짝이 될 때 들어오는 곳이겠지? 그 가족들은 의사를 만나 4개월짜리 신비로운 완치 과정을 듣겠지?
여기는 짐짝들을 모아두고서 완치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 곳이라고 서슴없이 생각하려다가 포기했다. 비관하기보다는 한번 믿어 - P121

보는 편이 나았다.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좀더 잘살자는 의지를 품게 될 수도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아빠가 면회실로 들어왔다. - P122

아빠가 아무 일이라도 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면회 날만 되면 그 일하고 싶은 마음을 묻고 또 물었다.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게 호호 불 듯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쉬지 않고 물었다. 6개월 뒤 - P127

폐쇄 병동을 나가면 바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
아빠의 마음속에서 일하겠다는 불씨가 꺼지지 않게 호호 불면서, 그 불을 쓸모 있게 쓸 곳을 찾으려했다. 6개월은 금방 갔다. 아무런 대안을 찾지 못했다. 아빠는 사람들하고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면서 폐쇄 병동을 나섰다. - P128

기억이 뒤죽박죽되는 사이에도 내 말을 듣기 싫다는 아빠의 의지는 뚜렷했다. 그럴 때 나는 ‘나라‘ 탓을 했다. 나라가 요청해서 해야 한다고 하면 곧잘 따랐다. ‘나라에서 시켜서‘, ‘나라에서 감시해 - P129

서‘, ‘나라에서 안 된다고 해서‘처럼 나라를 빌미로 삼아 아빠에게 작은 책무를 부과했다. ‘나라‘와 아빠가 서로 의지하게 하고, 그런 관계를 핑계로 조금씩 좀더 나은 삶의 방향을 잡아가려 했다. - P130

기어코 문제를 다 맞히려는 아빠를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의지를 갖고 뭔가 해보려는 태도야말로 내가 바라던 회복된 아빠의 모습이었다. 타들어가는 아들 속도 모르고 문제를 다 맞히는 아빠가 밉고, 다 맞히려는 아빠가 안쓰럽고, 다 맞히는 아빠가 기특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는 의지가 치매 검사지 위에서 리허설을 했다면, 이제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시연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런 아빠에게 문제를 틀리라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영 내키지 않았다. 한번쯤은 아빠라는 약자가 아니라 의사라는 강자에게 먼저 말하자 싶었다. 초조하게 의사가 할 진단을 기다렸다.
"제 말 잘 들으세요. 아버지는 지금 거짓말하는 게 아니에요. 중간중간 기억이 편집돼서 없어졌다고 보면 돼요. 거짓말처럼 들리는 말은 앞에 있는 아들이랑 얘기해야 하니까 중간중간 없어진 부분을 생각나는 기억으로 채우는 겁니다. 소통하려고요. 지금 아버지는 치매 진단 받고 요양 등급 받기에는 너무 일러요. 다음번에 약 타러 올 때는 아버지 혼자 오게 하세요. 전화로 잘 가고 있는지 체크하시고요. 생활 속에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쓰면 좋습니다." - P133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기짓말과 허상이 잘려 나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이으려는 노력이었다니. 아빠는 지금, 바로, 여기에 가장 충실하게 살아온 셈이었다. 현재에서 살아가는 나하고 소통하느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주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아빠하고 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몰랐다.
"아야, 구두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밖에서는 손님들 발 사이즈 재고, 바로 뒤에서 구두를 만들어."
"그래요? 그럼 결과는 언제 연락 준대요? 일은 할 만할 거 같아요? 구두 만드는 일이 재미있으면 좋겠네."
"재미는 무슨. 다 돈 벌라고 하는 거지."
언제 겪은 기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아빠의 말 속에 흐르는 아빠라는 의지를 나도 느끼게 됐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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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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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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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그것이 그의 모습이었다. 불가해하면서 변덕스러운 존재. 블랙박스면서 기폭장치이며, 거리를 두면서도 영역을 침범하는. - P37

《모터 트렌드》가 《마리끌레르》를 만난 현장. 나는 이 차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걸 보려고 5600마일이나 날아 온 것인가? 우리가 27년 만에, 역사적인 글라스노스트 이후 위험하기 - P50

짝이 없는 재회를 했는데, 그녀는 마치 나파 자동차용품점과 윌리엄스소노마를 들렸다 온 사람처럼 굴었다. - P50

부다 지구의 언덕을 오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유년 시절이 주조된 대장간이었던 도시에 와 있구나. 그의 성격이 주조된 그 모루에. 이제 이곳은 그 - P57

녀가 선보이는 ‘탕아의 귀환‘ 의 무대가 되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선 거리감 덕분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 동안 맥락을 알 수 없는 남자를 만나 왔다. 이제 맥락을 알게 되었지만, 난감했다. 그 남자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 P58

"통제력이 핵심이란다." 그는 이렇게 말하길 좋아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드러나지 않아야 해." 낮 시간을 보내는 수족관의 어둠 속에서, 손은 화학약품 통에 넣고 작업을 위한 붉은 안전광 하나를 켜 놓은 채, 그는 어둡게도 하고 밝게도 만들면서 사진을 조작했으며, 신체의 일부와 건물과 전체 풍광을 없애 버렸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던 그것을 사진술에서 성취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 P68

그는 내 교육이나 직업적인 측면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차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라 - P70

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신문반에 처음으로 합류한 날부터 결점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는 일로 들떠 있었던 딸에게는 좀 이상한 조언이었다. 우리가 이야기 나누지 않았던 몇 년 동안,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 몇 년 동안에는 더욱, 우리 관계의 핵심에 놓여 있었던 것은 삭제와 폭로, 에어브러시와 기자 수첩, 그리고 감추기의 달인과 그것을 드러내려는 수습기자 사이에서 격화된 싸움이었다. - P71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아버지는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거의 40년이나 흘렀고, 아홉 개의 표준 시간대를 지나왔지만, 내가 그녀의 새로운 인격에서 그 폭력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혼 판결이 아버지를 위험에 빠진‘ 피해자로 만들어 줬던 것처럼 간단하게, 새로운 인격이 그 폭력적인 자를 지워 버릴 수 있었다고 믿어야 했을까? 새로운 정체성이 이전의 정체성을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을 삭제해 버릴 수도 있을까? - P91

하지만 ‘당신이 필연적으로 되어야 했던‘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이 이뤄 낸 누구인가, 아니면 당신이 물려받은 것과, 그것의 유전적, 가족적,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의 운명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즉, 정체성이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무엇인가?

***
누군가 나에게 정체성을 밝히라고 한다면, 국적이나 직업과 같은 일반적인 것들과 함께 나는 여자이고 유대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름표 각각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그 바탕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여성성에 따르는 전통적 통과의례 대부분을 용케 피하면서 살아온 여자다. 나는 아이가 없다. 나는 모성을 갈구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생체 시계‘ 때문에 불안해한 적도 없다. 나는 중년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고, 함께한 지 20년이 넘은 남자 친구와의 결혼이란 시청에서 벌어진 충동적인 사건일 뿐이었다. 집안일과도 - P92

거리가 멀었다. 요리에 관심이 없고, 정원을 보살피지도 않으며, 바느질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한동안 뜨개질을 하기는 했지만, 이건 사실 페미니스트 수공예 책인 『스티치 앤 비치 Stitch‘n Bitch』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대 법률, 의식, 기도문 등에 무지한 유대인이다. 유월절에 키두시 초반 몇 구절을 입에 올릴 수는 있지만, 의미도 거의 모르는 채 하가다의 음성 표기를 슬쩍 훔쳐보면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유대인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유대교 성인식을 치른 적도 없고, 우리 가족은 요크타운 하이츠에 있는 유일한 유대교회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는데, 사실 그곳도 어쨌거나 아주 느슨한 개혁파여서 차라리 유니테리언교라고하는 편이 나았다. 사실 나는 엄밀히 말해 유대인도 아니다. 어머니는 부계만 유대계였는데, 가장 자유주의적인 계파를 제외한 대개의 율법학자들에게 모계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나는 비유대인으로 여겨질 터다. 이 정체성들에 대한 나의 충성이 의식과 의례에 결합되어 있지 않다면, 그 정체성의 기원은 무엇인가?
나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사는 마을에서 자란 유대인이다. 그 - P93

리고 60년대 초반 미국의 성차별주의적인 편견에 푹 빠져 있는 소녀 시대를 보낸 여자다. 내가 누구다라는 감각은, 내가 그 좌표를 파악할 수 있는 한, 반골 기질과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만약 그 정체성이 위협당한다면, 나는 그것을 주장했다. 나의 정체성’은 그것이 가장 위협당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더 활발해졌다. - P94

페미니즘이란, 계속되는 만트라에 따르면, ‘선택‘에 대한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역사로부터 이룩해낸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남자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때문에 나는 여성 평등을 위해 움직이는 운동가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
1968년 에릭 에릭슨은 ‘정체성‘이란 말이 거울방의 거울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만큼이나 불가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체성 위기‘라는 말을 고안해 내기 바로 직전에) 이 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무거운 책 『정체성: 청년과 위기Identity: Youth and Crisis』의 첫 페이지에서 그는 정체성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정체성의 ‘감각‘이란 "활성화된 동일성과 연속성에 대한 주관적인 감각"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이 그 자체이고, 다른 어떤 것이 아님"이라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처럼 뒤이은 정의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개인적 정체성의 흐리멍덩한 의미를 보면, 위기는 필수 불가결한 것처럼 보였다. 수년간 ‘정체성 이론‘을 내놓으려는 시도 - P99

들은 실패했다. 1967년에 사회학자 네이선 라이츠는 (UCLA 동료이자 성전환 치료의 선구자인 로버트 스톨러가 말했듯이) "정체성이란 용어는 막연함, 모호함, 비슷한 말의 반복, 임상 자료의 부족, 그리고 설명의 빈곤을 감추기 위한 화려한 의상만큼이나 쓸모가 없다"고 한탄했다.
대중화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체성을 규정하기」라는 1983년 논문에서 역사학자 필립 글리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체성이 점점 더 클리셰가 되어감에 따라, 그것의 의미는 점차 산만해지고, 따라서 갈수록 더 느슨하고 무책임하게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우울하게도 정체성에 대한 토론으로 통하는 많은 논쟁들이 거들먹거리는 지리멸렬한 논의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에릭슨의 시대와 우리 시대를 정의하고 꿰뚫는다.
개념으로서 정체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심리학 이론에 들어가지 못했다. 에릭슨이 그의 전문 영역의 선배들에게서 선행 언급을 찾으려고 했을 때,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26년 빈의 브나이브리스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단 한 번, 그용어를 언급한 적이 있음을 발견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묘사하고 있었다. "믿음도 민족적 자부심도 아니었습니다." 프로이트가 고백했다. "내면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의식만큼이나, 더 강력할수록 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모호한 감정적 힘들"이 그를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유대인이라고 느꼈을 뿐 왜인지 말할 수 없었다.
초기에, 에릭슨은 개인의 정체성을 당신이 획득하고 당신 혼자 스스로 전시하는 어떤 것으로 정의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 - P100

고했다. 그는 "교체할 수 있는 단순한 ‘역할들‘, 혹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단순한 ‘외양‘, 혹은 단순히 강고한 ‘태도들‘은 비록 그것들이 ‘자아 탐구‘의 중요한 요소라고 하더라도 진짜는 아니"라고 썼다. 그리고 견고한 자아는 자기 계발과 집단적 유산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개인적인 성장과 상호적인 변화를 분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위기와 역사적 발전에서 일어나는 당대의 위기를 구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각각이 서로를 정의하고 진정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에릭슨은 당신의 과거를 당신의 현재와 통합하고, 심지어 (또는 특히)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당신의 경험의 모든 부분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원치 않는 역사인 "삶의 다양하고 모순되는 단계와 양상"을 부정하려고 할 때, 그리고 대신 "완벽해야만-하는-범주"를 고집할 때, "그는 우리가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의지를 취함으로써 그 자신과 세계를 개혁하려고" 하며, 그것은 새로운 정체성이 유기적인지 혹은 그 요소들이 일관적인지와 상관없이 그것을 고집하면서 폭군이 "완벽한 경계"를 순찰하는 내면의 독재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에릭슨 본인은 그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에릭슨의 학부 제자였던 철학자 마셜 버먼은 "에릭 에릭슨, 자기 자신을 발명한 남자"라는 1975년 글에서 스승이 쓴 자서전적인 글에 충격적일 정도로 중요한 사실이 누락되어있음을 발견했다. 에릭슨이 자신의 과거를 세탁해 버린 것이다. - P101

나는 유대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호하게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다른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 P104

이 이미지 상영회에서 ‘비포‘와 ‘애프터’라는 주제는 반복되었다. 아버지는 수술 전과 수술 후 자아 사이에 두꺼운 선을 그리려는 듯했다. 마치 지금 성취한 기품 있는 노부인의 훌륭함과 이전의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들을 더 이상 원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야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았다. - P112

현대 트랜스젠더리즘의 지배적인 입장은 성별 정체성과 섹슈얼리티는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성적 지향이나 섹스, 혹은 생식기와는 무관하다." 온라인의 정보 사이트들은 전형적으로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오직 성별 정체성과 관계된 것이다." 하지만, 내 아버지의 서류철 안에는 분명하게 성적인 단어로 표현된 그녀의 젠더 단위 생식을 향한 움직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픽션마니아와 시시 스테이션과 방대한 ‘강요된 여성화물‘에서 나타나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에서 여성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성애화를 의미했다. 여기서 여성성은 신체 결박과 모욕, 오르가즘과 관계된 것이었고, 하나의 젠더에서 다른 젠더로의 변신은 모든 단계에서 에로틱하게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이 두 부분은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 P116

"과거에 살아 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아버지가 말했다.
"헌 친구는 치우고, 새 친구를 사귀라고 하지 않디."
"사는 게 그렇지가 않잖아요." 나는 말했다. 어쨌든 나는 여기에 일종의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왔다. 그러니까, 그녀 말이다. 만약에 그녀가 해묵은 완고함을 철회하고 친구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기만 한다면. 하지만 우리의 상호작용은 고집스레 한 방향이었다. 상호 교환 대신, 온갖 고상한 체하는 패션과 하드디스크 판타지로의 강요된 여행만 있었다. 도대체 그녀는 언제가 되어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이 딸을 안으로 받아들일까? - P118

그렇게도 숨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지퍼를 여는 데 그리 열의가 넘칠까? 만약, 정말로,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이 모든 노출과 공개는 말 그대로 표피적으로 보였다.
이후로 며칠 동안 아버지는 옷장의 드레스와 서랍장의 란제리, 화장대의 화장품, 약 상자 속 에스트로겐 패치와 질 확장기, 그리고 ‘경이의 방‘에 들어 있는 온갖 진기한 물건들에 대한 덧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나는 그녀가 폭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진정한 비밀로부터 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를 봐라, 하지만 나를 보지 말아라. 사진작가의 딸로서 나는 알고 있었다. 암실에 빛을 비추는 것이 증거를 드러내 줄지 그것을 망칠지는 타이밍에 달려 있음을. 아버지와 나는 시간,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스테피의 새로운 진열장에 있는 장식품들을 보고 감탄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잠긴 방에 숨겨진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지하에 잠겨 있는 금고 속 내용물을. - P120

헝가리 방문을 준비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인텔리인 나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출간된 이슈트반 비보의 ‘헝가리다움‘에 대한 가차 없는 탐구가 담긴 에세이를 읽었다. 이 정치과학자는 자기 나라의 정체성을 포템킨, 즉 ‘희망사항’과 ‘허례허식‘에 불과한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기만’ 사회라고 보았다. "오늘날의 헝 - P130

가리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정의 내리기 힘든 집단 중 하나다"라고 비보는 쓰고 있다. 그리고 헝가리다움이란 ‘거대한 환영‘이라고 말이다. 이제 와서 비보를 떠올려 보니, 오후에 둘러본 전시가 환각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우리가 본 모든 것이 이상하고도 치명적이도록 사탕 과자 같았고, 이 나라의 얼굴은 하나의 환상에서 다른 환상으로 이어 붙여져 있었다. (...)
이 벽들에 걸려 있는 환영에 대해 생각했다. 발소리가 울리는 갤러리를 걸어 나가면서, 물방울무늬 옷을 입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문득 내 머리를 스친 것은, 마치 이야기책 속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팅커벨처럼, 가장 어두운 과거를 숨긴 잔뜩 꾸며진 역사로 나를 안내하는 테마파크 코스튬을 입은 여행 가이드의 이미지였다. 그곳에선 장소도 사람도 그들의 실제 모습이 아니었다. - P131

역사학자 야코브 카츠는 "그들의 조국 발전에 대한 기여는 다른 어떤 유럽 유대인 공동체보다 컸다"고 썼다. 그들은 누구보다 유대인들이 헝가리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발명했다. 그와 함께 ‘조국‘을 발명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날이 밝아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새벽은 아즈텍의 일출처럼 희생과 절단을 요구했다. 황금기의 역사학자들이 ‘동화의 사회적 계약‘이라고 불렀던 조건에 따라,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바르게 교정’할 때에야 헝가리인으로 인정받았다. 즉, 그들이 호칭, 충성도, 태도, 버릇, 말투, 혹은 복장에서 유대인이라는 표시를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은 통과해야만 했다. 이것은 기만적인 계약이었다. "다 - P166

른 어떤 중유럽 국가 중에서도, 헝가리에서처럼 동화된 공동체의 내면이 부조화하고, 유대인 동화의 이유가 그토록 거짓과 모수을 짊어지고 있는 곳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P167

세기말의 유대인들이 ‘우리의 조국‘으로 스스로를 마자르인화했던 열정은 종종 비유대인 동포의 열정보다 더 강렬했다. 당시 헝가리인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헝가리 유대인을 능가하거나 압도하거나 더 많이 마시거나 더 세레나데를잘 부를 수 없다!" 유대인 작가였던 팔 이그노투스는 그의 ‘모세‘ 형제들은 "마자르인들 그 자신보다 더 열렬하게 마자르인"인 것 같다고 썼다. - P170

내가 보기에 아버지가 되돌아온 헝가리는 황금기의 유대인-마자르 합작의 헝가리가 아니라, 그 다음에 바로 따라왔던 시대로부터 정체성을 이어받은 것 같았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헝가리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잘 동화된 유대인에서 가장 매도당하는 자들로 전락했다. 그들은 새로운 세기에 가장 반유대적인 법률에 복속되어, 30년대 후반에는 재산과 직업과 자유를 빼앗겼고, 홀로코스트라는 가장 체계적인 몰살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다. "드디어, 오 유대인이여, 당신들의 날이 밝았다." 1868년 키스는 상찬했다. 그리고 75년이 흐른뒤 50만 명에 달하는 헝가리 유대인이, 윈스턴 처칠이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가장 끔찍한 범죄"라고 묘사했던 사건의 끝에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 P173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벽을 잔뜩 쌓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여자가 된 것은 뒤에 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짓된 전선의 바리케이드를 추가한 것일 뿐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는 모든 길은, ‘주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 난 행복한가정주부, 포토샵으로 붙여 넣은 던들 스커트를 입고 춤추는 시골 소녀처럼 화려한 여성성이라는 비현실적인 차단기에 막혀 있었다. 아버지가 〈오즈의 마법사〉를 사랑한 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바로 마법사였다.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남자에게는 관심을주지 말아라." - P187

"나는 중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중성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의 시선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사람들은 구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경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구분이 필요하죠. 그래야 경계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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