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려던 스무 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2011년 일이다. 그 뒤 1인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 P8
나 혼자만 유별난 상황인 듯해서 점점 이 세상의 분류법에 들어가지 않는 내 고통을 외면하려 했다. 사회 문제로 호명되는 ‘청년‘을 보면서 한동안 내가 ‘일반 청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청년은 학자금 대출로 힘들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버지의 부모처럼 살고 있어서 내게 청년이라는 말은 좀 어색했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청년이다. 어떤 직업적 성숙기에 들지도 않았고, 심지어 진로를 찾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벌기에는 아버지가 큰 짐처럼 느껴졌다. 내게 ‘청년‘은 나를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제였다. 가족 돌봄과 가장 구실까지 맞물려서 청년이라는 과제는 충돌하거나 가중됐다. 지난 9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간신히 샛길을 찾아 뭔가 해보려고 노력한 시간이었다. 9년의 기록을 써 내려갈수록 여전히 대답은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질문은 뚜렷해졌다. 아버지를 버리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아버지의 삶을 관리하는 수준에만 머물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희생이나 배제 없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 P9
돌봄 문제를 ‘사회가 해결‘하려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들의 나쁜 노동 여건과 낮은 임금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희생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자원인 셈이다. "과거 가부장제가 공고하던 시절 노인에 대한 돌봄은 가족 간 권력 위계에서 가장 취약한 며느리의 몫이었다. 2019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 P18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 삶이 위태로워지고, 돌봄 관련 공적 제도는 50대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돌봄은 누군가를 보호하며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돌봄과 ‘위기‘는 동의어다. 이런 악순환을 ‘돌봄 위기 사회‘로 부를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자와 돌봄을 수행하는 자, 돌봄 노동자가 모두 누군가의 공백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메운다. - P19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을 재정의해야 한다. 장수, 건강, 웰빙 같은 말에 가려 잘 안 보이던 아픔, 질병, 돌봄, 죽음을 문제로 받아들이고 응시해야 한다. - P26
사연을 말해달라는 말을 들으니 긴급 복지 지원과 기초 생활 수급자 신청 앞에서 간절하던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몇몇 서류로 증명되지 않는 사실을 사연으로ㅍ풀어내는 방식이 어쩌면 합리적인데도 내키지 않았다. 나를 사연이라는 온정적인 틀 안에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존재가 돼야 하고, 불쌍한데 착해야 하고, 그래서 지원이 더 의미 있어야 한다. 내 삶 전체를 가난으로 설명하고, 그 삶을 심사받아야 한다. 탁자에 앉아서 내 사연을 심사하는 사람은 나 같은 상황을 겪어봤을까. 차라리 서류 뒤에 숨어서 가난을 증명하는 - P41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절차들속에서 길을 헤매는 모욕은 마땅히 감수해야 했다. - P42
공장에서 일하는 내 모습, 병원에서 간병하는 내 모습, 선거 운동을 하는 내 모습이 대조됐다. 아무것도 뜻대로 하지 못하는 노예였다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보호자였다가,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내비치는 시민이 되기도 했다. 선거는 1.4퍼센트 득표로 끝났지만 좀더 해보고 싶은 의지를 얻었다. 공장 문을 나서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들을 바꾸는 시민으로 살고 싶다. 대조되는 세 모습 사이에서 가장 되고싶은 내 모습은 시민이다. - P83
공장은 나를 짓밟지 못해 안달이었고, 병원은 나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공장과 병원 사이에서 동아줄처럼 진보 정당을 잡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나를 더 하찮게 만들었다. 아주 미세하게 느끼고 있던 권리 감각이 내게 먼지 한 톨만큼의 존엄도 없는지 확인해주는 일들 앞에서 더 처참하게 뭉개졌다. 자유니 권리니 정치니 사회니 복지니, 세상이 너무 쉽게 씹어 먹어버릴 소리에 나는 심장이 뛰었다. 현실로 오면 나는 시민보다는 노예였다. 보호자는 환자 대신 제때 돈을 내야 하는 채무자였고, 치료 도중에 발생하는 법적 문제를 떠맡는 책임자였다.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듯했다. - P85
두 번이나 살려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괘씸함과 두 번이나 살려줬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한다는 서운함이 내 마음 - P90
에 가득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협력할 수 없었고, 나는 혼자 모든 일을 해내야 했다. 하루에 열댓 번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평생 돈을 벌어 병원비로 다 바쳐야 하는 걸까.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거대한 폭탄을 얻어맞았다. 나도 할 만큼 했다.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아빠 개인의 책임이다. 아빠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선택이 내 유일한 출구다. 꼬리 자르기 같았다. 내 경제 능력이나 조건으로 아빠까지 책임지는 일은 생존에 맞먹는 부담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께름칙했다. ‘정말 아빠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었다. 아빠를 타박하면서도 아빠를 이렇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도 못 다닌 사람, 어느 자리에 있는 조금만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기가 죽는 사람, 자기표현을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노동 현장에서 일을 빠르고 잘하는 게 유일한 인정이었던 사람, 그런데 이제 일을 못 하는 사람, 다시 말해 무엇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빠였다. - P91
큰마음 먹고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근로 능력 ‘있음‘이었다. 건강하다는 결과에 암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가 정말 회복이 돼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됐다. 증명되지 않는 ‘고통‘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사이를 오가며 진단명을 붙잡고 싸움을 벌였다. - P118
면회실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저 눈빛에 익숙해져야 하는 곳이었다. 저 사람들은 수급자가 됐을까? 1촌 직계 가족 두 명이 동의했을까? 어떤 박탈감을 느꼈을까? 술 마신다고 이곳에 오지는 않았겠지? 술 마시고, 돈 없고, 가족 사이 신뢰도 없는 사람들이겠지? 가족에게 짐짝이 될 때 들어오는 곳이겠지? 그 가족들은 의사를 만나 4개월짜리 신비로운 완치 과정을 듣겠지? 여기는 짐짝들을 모아두고서 완치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 곳이라고 서슴없이 생각하려다가 포기했다. 비관하기보다는 한번 믿어 - P121
보는 편이 나았다.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좀더 잘살자는 의지를 품게 될 수도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아빠가 면회실로 들어왔다. - P122
아빠가 아무 일이라도 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면회 날만 되면 그 일하고 싶은 마음을 묻고 또 물었다.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게 호호 불 듯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쉬지 않고 물었다. 6개월 뒤 - P127
폐쇄 병동을 나가면 바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 아빠의 마음속에서 일하겠다는 불씨가 꺼지지 않게 호호 불면서, 그 불을 쓸모 있게 쓸 곳을 찾으려했다. 6개월은 금방 갔다. 아무런 대안을 찾지 못했다. 아빠는 사람들하고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면서 폐쇄 병동을 나섰다. - P128
기억이 뒤죽박죽되는 사이에도 내 말을 듣기 싫다는 아빠의 의지는 뚜렷했다. 그럴 때 나는 ‘나라‘ 탓을 했다. 나라가 요청해서 해야 한다고 하면 곧잘 따랐다. ‘나라에서 시켜서‘, ‘나라에서 감시해 - P129
서‘, ‘나라에서 안 된다고 해서‘처럼 나라를 빌미로 삼아 아빠에게 작은 책무를 부과했다. ‘나라‘와 아빠가 서로 의지하게 하고, 그런 관계를 핑계로 조금씩 좀더 나은 삶의 방향을 잡아가려 했다. - P130
기어코 문제를 다 맞히려는 아빠를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의지를 갖고 뭔가 해보려는 태도야말로 내가 바라던 회복된 아빠의 모습이었다. 타들어가는 아들 속도 모르고 문제를 다 맞히는 아빠가 밉고, 다 맞히려는 아빠가 안쓰럽고, 다 맞히는 아빠가 기특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는 의지가 치매 검사지 위에서 리허설을 했다면, 이제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시연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런 아빠에게 문제를 틀리라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영 내키지 않았다. 한번쯤은 아빠라는 약자가 아니라 의사라는 강자에게 먼저 말하자 싶었다. 초조하게 의사가 할 진단을 기다렸다. "제 말 잘 들으세요. 아버지는 지금 거짓말하는 게 아니에요. 중간중간 기억이 편집돼서 없어졌다고 보면 돼요. 거짓말처럼 들리는 말은 앞에 있는 아들이랑 얘기해야 하니까 중간중간 없어진 부분을 생각나는 기억으로 채우는 겁니다. 소통하려고요. 지금 아버지는 치매 진단 받고 요양 등급 받기에는 너무 일러요. 다음번에 약 타러 올 때는 아버지 혼자 오게 하세요. 전화로 잘 가고 있는지 체크하시고요. 생활 속에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쓰면 좋습니다." - P133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기짓말과 허상이 잘려 나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이으려는 노력이었다니. 아빠는 지금, 바로, 여기에 가장 충실하게 살아온 셈이었다. 현재에서 살아가는 나하고 소통하느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주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아빠하고 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몰랐다. "아야, 구두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밖에서는 손님들 발 사이즈 재고, 바로 뒤에서 구두를 만들어." "그래요? 그럼 결과는 언제 연락 준대요? 일은 할 만할 거 같아요? 구두 만드는 일이 재미있으면 좋겠네." "재미는 무슨. 다 돈 벌라고 하는 거지." 언제 겪은 기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아빠의 말 속에 흐르는 아빠라는 의지를 나도 느끼게 됐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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