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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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대한 책들을 읽고서 혁명을 일으키지도 못했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처럼 평범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독서란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P8

좋은 작가는 아첨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처럼 우리에게 진실의 차가운 냉기를 깊이 들이마시라고 무심한 얼굴로 짧게 말한다. 카프카, 울프, 카뮈, 베유, 톨스토이, 플라스, 니체, 아렌트・・・・・・ 여기서 다룬 저자들은 다 그렇다. 그들에게 삶은 계속되는 소송이거나 400년 내내 분투한 뒤에야 겨우 이룰 수 있는 소망,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윗돌, 보상 없이 행하는 사랑, 끝없이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겨울 숲 같은 것이다. 또는 내 속에 울음이 사는 시간, 경멸을 통해서 극복되는 운명의 시간, 사회가 찍어내는 자동인형 같은 삶에 맞서는 시간이다.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 - P9

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그리고, 희망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책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 읽는다. - P10

그러나 카프카는 이 중 어느 버전도 택하지 않는다. 당혹감은, 거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쾌감을 제공하기 위해 소설가가 의도한 문학적 효과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그는 삶 자체를 식초에 절여진 오이피클처럼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독자는 읽는 내내 난처함에 푹푹 절여지는 기분이 든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는데도 주인공의 죄목조차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K가 체포되었으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점이다. K는 직 - P21

접 변론을 시도하지만 무죄 입증을 위해 크게 애쓰는 것 같지도 않다. 그가 도움을 받으러 찾아간 화가 티토렐리는 세 가지 해결책을 알려준다. 완전한 무죄방면, 표면상의 무죄방면, 판결의 무한한 연기. 이 중 K에게 가장 유리한 건 세 번째라는 조언도 덧붙인다.
사실 삶은 기나긴 소송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성별, 인종, 계급 등의 사회문화적 규정들 속에 던져진다. 사회는 그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며 늘 우리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려고 대기 중이다. 규정 하나를 잘 지켜도 다른 규정들로 인한 소송들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사는 동안 사회적 ‘정상상태‘에 있을 것을 명하는 법 앞에서 계속 무죄를 입증하거나 유죄를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완전한 무죄방면은 불가능하다. - P22

400년이 흐르도록 올랜도는 사샤를 떠올리고, 여성의 육체에 더 끌리고 여성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늘 사랑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올랜도 역시 자기만의 인생을 찾아 여러 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소중하지만 자신이 짜 넣을 인생의 무늬들이 모두 관계로만 환원된다고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랜도는 고독을 사랑하는 실존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전기작가는 그가 굼뜬 것이 그가 종종 고독을 사랑하는 성향과 짝을 이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서랍 상자 따위에 걸려 넘어지는 올랜도는 당연히 고독한 장소나 광활한 전망들을 좋아했고, 자기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혼자라고 느끼기를 좋아했다." - P34

400년 내내 시인을 꿈꿀 것 같은 이들은 시인이 되면 되고, 400년 내내 남성이 되기를 꿈꾸거나 혹은 여성이 되기를 꿈 - P37

꿀 만큼 열망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이 되면 된다. 아무도 혐오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수술보다 힘들다는 성확정 수술도 올랜도의 7일 밤 마술처럼 신비롭고 고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이가 400년 내내 원했을 법한 소망을 방해하는가? 아무에게도 그럴 권리는 없다. 올랜도에게서 여성이 되고 싶었고 또 좋은 군인이 되고 싶었던 한 청년의 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 P38

세계가 불확실하고 미결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우리는 이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특정 대상을 위험한 것으로 지정해서 모호한 고통을 확실한 고통으로 바꿔버린다. 명확한 경계의 대상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제거하면 세계는 다시 확실하고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저 동양인은 걸어 다니는 바이러스야.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하고 이들만 사라지면 사회가 안전하고 건강해질 거라는 감정 - P52

적 방어책을 만들어내면서 타인에 대한 잔혹한 반응을 정당화하게 된다.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각종 학살은 대부분 불안 회피용 방어책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심오한 통찰은 정작 통찰을 제공했던 철학자에게서는 망각된 것 같다. 하이데거는 유대인들을 기술 진보에 앞장서며 현대인의 자기소외를 만들어내는 범죄행위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기술문명이 주는 막연한 불안을 유대인이라는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함으로써 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는 고향과 같은 대지를 만들기 위해 나치즘에 동조했고 유대인 학살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하이데거의 출석부에 적힌 이름의 주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의 입을 통해 세상에서 추방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이데거 이후의 현대철학은 이 젊은이들이 깊은 고통과 환멸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절망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P53

우리는 자기의 죽음을 상상하면서도 죽음 자체가 아니라 타자들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더 고통스러워한다. 때로 어떤 이들은 다른 이를 구하려고 죽음을 불사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살린 사람이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인간은 타자를 ‘위해서‘, 즉 ‘대신해서‘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력함을 넘어서, 인간은 타자를 ‘향해서‘ 죽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의 죽음이 내가 아닌 것이 되는 비인칭의 죽음이라면 타자의 죽음은 내게 가장 격렬하게 닥쳐오는 비인칭의 경험이다. 타자의 죽음과 마주한 순간 우리는 근원적 전복에 처하게 된다. 고통을 통과하며 지금까지의 나와 달라지고, 다른 존재로 바뀐다. 블랑쇼는 ‘문학의 공간‘이 이런 비인칭성의 경험들로 붐비는 곳이라고 여겼다. - P60

카프카가 ‘문학적 전복‘에 관해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읽어보자.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읽는단 말인가? (...)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문학의 공간이란 그런 곳이다.
종종 사는 데 지쳐 힘이 빠질 때 바닥에서 나를 다시끌어 올리는 것은 언젠가 죽을 존재라는 유한성의 자각이 아니라 오래된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다. 학생 시위가 연일 계속되던 1991년 5월의 어느 토요일,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한 학생이 시위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성균관대 불문과 3학년 김귀정. 나와 내 친구들이 있던 데서 가까운 윗골목이었다. 영정 사진으로 처음 봤던 여학생의 말간 얼굴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나는 그 불문과 여학생의 영원히 앳된 얼굴을 떠올리며, 그 애와 함께 블랑쇼를 읽고 문학의 공간을 힘내서 서성거린다. - P61

1970년 첼란이 추격 망상에 시달리다 센강에 몸을 던져 죽은 1년 뒤, 그녀는 소설 『말리나』에서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썼다. "내 삶은 끝났다. 압송 도중 그가 그만 강에 빠져 죽었으니까. 그가 내 삶이었으니까. 나는 그를 - P67

내 삶보다 더 사랑했다." 이것은 개인적 고백인 동시에 문학적 고백이다.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위로할 길 없는 슬픔을 한 사람에게서 감지하고 그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바로 문학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안간힘이 사라질 때 문학은 끝난다. 그래서 문학은 한없이 다정한 일이지만, 또 비명이 나올 만큼 끔찍한 일이다. "달이 터진 쓸개를 담은 항아리를 들고서 찾아온다 그러나그대의 몫을 마시어라. 쓰디쓴 밤이 내린다."(「진실한 것은」) - P68

사람을 멀리하는 외로운 사람, 괴짜라는 일부 설명과 달리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다정하고 심오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찾아다니는 이의 모습은 "음악을 다 연주할 때까지/ 건반을 더듬는 연주가"(「그이는 그대의 영혼을 찾아다닌다」)를 닮았다고 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녀의 여러 건반을 하나하나 눌러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녀를 알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에밀리는 친구들에게 천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고 특히 여자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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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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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요즘은 부모 돌봄의 책임이 며느리에서 딸에게로 이전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며느리는 딸이든 여성이 전담한다는 게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께한 추억이나 애정이 없는 시부모를 며느리가 의무적으로 돌봐야 했던 나쁜 관습이 사라져 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2000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은숙 박사의 학위 논문을 보면 2003년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고령자가 희망하는 바람직한 돌봄자 1위는 배우자, 2위는 딸, 3위는 아들이었다. 며느리는 이 순위에 없었다.
한국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보 - P216

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 결과 독립생활이 어려운 부모(또는 배우자)를 돌보는 가족 중 큰며느리의 비율이 2011년 12.3%에서 2020년 10.7%로, 작은며느리는 3.8%에서 1.8%로 줄었다. 같은 기간 딸은 10.3%에서 18.8%로 크게 늘었다. 10여 년 전에는 주 수발자가 배우자·며느리·아들·딸 순이었는데, 2020년에는 배우자·딸·아들·며느리 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비혼 딸들
특히 자녀 가운데 비혼인 딸이 있으면 그가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비혼 딸에 대해 "결혼 적령기가 지나면 개호(돌봄) 적령기가 온다"라는 속설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일본에서 독신인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실상을 다룬 르포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의 저자 야마무라 모토키는 이를 "초고령 사회에서 만혼화와 비혼화가 진행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초고령자인 부모의 자녀가 결혼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꾸리지 않았을 경우 부모의 돌봄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강요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진해서 부모 돌봄 - P217

사실 비혼이 원가족의 남아도는 노동력처럼 인식되고, 결혼한 형제자매가 떠난 자리에서 온갖 집안일과 부모 간병을 도맡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유구하다. 리베카 트레이스터Rebecca Traister의 『싱글 레이디스』에 따르면 19세기 미국 목사 조지 버냅은 "부부가 세상에 나가 인생의 쾌락을 즐길 때 독신 여성들은 즐거움과 무지에 빠진 구성원들이 잊어버린 집안일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고, 고통과 질병과 죽음의 침상 곁을 지켜야 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저자가 이 구절 인용 끝에 적어둔 것처럼, 정말 ‘으악!‘이다. - P218

부모와 함께 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부모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점점 커진다는 걸 느낀다. 어머니가 아프지만 상대적으로 건강한 아버지는 돌봄에 무심하다. 이주원은 "나이 들면 서로 돌봐줄 사람이 필 - P221

요하니 결혼하라는 말은 철저히 남성 입장에 선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보면 남편이 있다고 해서 내가 아플 때 돌봐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 돌봄을 분담할 필요성을 가족에게 제기했고, 논의 끝에 다른 형제들과 어머니 돌봄을 나눠서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1번 보호자로는 비혼인 그가 호명된다. 그는 "자기 가족을 이룬 사람은 그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비혼은 계속 원가족에 묶인 사람 취급을 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했다. - P222

비혼 딸의 부모 돌봄을 연구한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석재은 교수는 논문"에서 "가족 중 누군가는 돌봄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비교적 홀가분하게 개인의 선택과 결정으로 돌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비혼 딸" - P225

이라 자타에 의해 비혼 여성이 돌봄 역할을 받아들이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박 돌봄이 되고,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스러운 돌봄의 늪이 된다"라고 진단했다. 그의 연구에서 비혼 여성들은 수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독박 돌봄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돌봄과 병행할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돌봄 제공자의 경제생활은 어려워지고, 그들 자신의 노후는 방치된다.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에서도 저자는 부모 돌봄을 떠맡은 솔로들의 가장 큰 문제로 고립감을 꼽았다. ‘패러사이트 싱글‘, 즉 부모에게 기생충처럼 얹혀살면서 살림을 축낸다는 부정적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것과 부모를 돌보면서 겪는 갈등이 중첩되는데, 여기에 사회생활이 단절되면서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고통까지 더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돌봄 부담으로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고, 한번 그만둔 일에는 좀처럼 복귀하기 어렵다. - P226

돌봄을 정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의 사회화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돌봄의 사적인 영역이 있다. 아무리 외부의 도움을 받아도 가족의 누군가가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남는다. 몸과 정신의 상태 변화를 관찰하고 의사, 간병인과 소통하는 일에서부터 병원을 고르고 옮기고 시설을 알아보는 사무적인 일까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상당한 시간을 쓰고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나는 아무리 미화해도 돌봄은 진이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부모 돌봄은 아이 돌봄과 달리 끝나는 기한을 알 수 없고, 생명의 성장 대신 소멸을 향해 가는 긴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라 심리적으로도 버겁다. 좋고 나쁨으로 양분되지 않는 복잡한 마음을 납덩이처럼 안고 사는 게 일상이 된다. 딸이든 아들이든 비혼이든 기혼이든 누가 되었든 그 책임을 한 사람이 혼자 짊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P227

돌봄을 마치 여성의 일인 듯 여기는 통념은 오랜 세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성별 분업화의 결과다. 설령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더 돌봄 친화적이라는 기상천외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여성이 돌봄을 전담해서는 안 된다. 돌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기본 조건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당면해야 하는 일을 특정 성별이 전담하고 다른 성별은 ‘무임승차‘해 온 오래된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연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김현미는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에서 북유럽 등에서 논의되는 1인 ‘일-돌봄 시민worker-carer 모델‘을 소개했다. 이 모델에서는 일 패러다임과 돌봄 패러다임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 - P228

다. 누구나 일하다가 1~3년간 돌봄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 기간을 보내고 돌아와도 절대 엉뚱한 데 배치하거나 해고하지 않는다. 당연히 돌봄은 남자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규정도 강화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생활을 일에 온통 헌납하지 않고,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필요할 때 돌볼 수 있도록 일과 시간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취약하고 서로에게 기대어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 P229

선배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상태를 존엄이 훼손된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이 생리 현상과 위생에 좌우되는, 그렇게 하찮은 가치인가?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중증환자, 노인, 장애인들이 배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에서는 존엄이 다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두가 중도 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그 중도 장애 안에는 불편한 몸뿐만 아니라 불편한 머리와 마음,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존재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매에 대한 공포의 대안으로 안락사를 제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그런 생각의 배후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없는 - P233

생명을 구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고" 이것이야말로 "우생 사상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우생 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발병이후 ‘기-승-전-스위스‘를 들먹여 오던 것에 대해 살짝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안락사를 원한다고 거침없이 말해온 내 마음속에는 인지증이나 다른 질병 등으로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린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보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았나, 하는 자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인지능력의 상실은 자아의 상실, 곧 삶을 잃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버지를 보니 그렇지 않았다. 영구적 뇌 손상이 확정되고 가족들도 아버지의 의식을 현실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포기할 무렵, 아버지의 두서없는 말과 행동에 깃든 희미한 질서가 눈에 띄었다. 자기 삶의 역사에 대한 일관된 서술은 잃어버렸을지언정 몸에 밴 습관과 특징들은 그대로였다. 아버지답게 끊임없이 사람들의 밥을 챙겼고, 일방적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 했다. 때로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병실 밖에 호랑이가 있다고 안절부절못하는 황당한 걱정에도 자식들에 대한 염려가 묻어났다. 내가 좋아했던 유머 감각, 참기 힘들었던 고집불통은 아버지의 고장 난 - P234

뇌가 만들어 낸 기묘한 세계 안에서도 여전했다.
책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 공동 저자 이지은은 오랫동안 치매 돌봄의 현장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발견을 소개하며 "자아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어떤 것들은 치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전의 삶의 흔적들을 가진 몸의 사소한 행동들이 사실은 그 사람의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몸은 그저 손상된 뇌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는 미국의 인류학자 저넬 테일러Janelle Taylor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겪으며 깨달은 통찰이 실려 있다. 딸을 알아보지 못해도 친근한 방문객으로 맞이하고 체화된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어머니를 대하며 테일러는 "앞뒤가 맞지 않지만 어떻게든 이어지는 어머니와의 대화 속에서 대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아니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제스처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갖게 하는 관계와 - P235

돌봄의 제스처"라고 말한다.
존엄은 그렇게 이어지는 삶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이전과 같은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졌지만 서로 어긋나는 문답으로라도, 끄덕이는 고갯짓이나 눈빛, 손을 잡고 살짝 힘을 주는 것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 아버지의 혼란에 맞추어 반응하고 뜬금없는 ‘아무 말‘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아버지와 함께 웃거나 슬퍼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런 상호작용이 아버지의 현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 - P236

그런데 호스피스병동을 미리 알아두려고 검색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에게는 생애 말기에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환을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만성호흡부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도 법 제정 이후 6년이 지나도록 호스피스 이용 가능 질환이 이렇게 제한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학회에 따르면 그마저도 인프라가 부족해, 대상이 되는 환자 중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다고 한다.
2022년 6월에는 말기 환자의 의사 조력 자살을 가능하게 하자는 내용이 포함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도 의사 조력 자살 또는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하지만, 호스피스에 대한 접근성이 현재와 같은 수준인 상태에서 의사 조력 자살을 도입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호 - P237

스피스의 인프라 부족과 이용 가능한 질병의 제한을 그대로 둔 채 의사 조력 자살을 도입한다면, 죽음의 부익부 빈익빈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접근성이 지금처럼 협소한 상태로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 P238

지은숙 박사는 나이 들어 죽음을 앞둔 솔로인 나를 누가 대리해 줄 것인가의 문제는 "계급 문제"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개인이 이 문제의 대책을 세울 때 경제적·사회적 계급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재산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솔로는 양녀를 들이거나 도와주는 사람을 구해요. 공식적인 양녀의 지위가 있어서, 자원이 많은 솔로는 대부분 양녀를 두고 업적과 재산을 관리하게 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의탁하죠. 한국은 그런 게 활발하지 않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있는 솔로는 어떤 식으로든 대책 마련이 가능해요." - P240

죽음을 앞둔 삶의 마지막 시기에 누가 나를 대리하 - P241

며 뒷정리를 해줄지 하는 문제가 지 박사의 말대로 계급 문제인 건 맞지만, 나는 한국 사회의 완고한 가족 중심적 제도의 문제도 크다고 본다. 앞에서 살펴봤듯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어떤 치료, 입원, 수술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 대상으로 거의 늘 가족을 요구한다. 아무리 환자와 친밀하고 환자에게 중요한 사람이어도 그가 가족이 아니면 배제되기 쉽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는 어떤가. 몇 년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위한 필수교육을 받다가 씁쓸해졌던 대목이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가 연명 의료를 결정할 의사능력이 없을 때 환자를 대신해 의사결정을 하려면 배우자와 1촌 이내의 직계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없으면 2촌 이내의 직계가족, 형제자매 등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만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정해두었다. 같이 교육을 받던 이는 "가족이 없으면 죽기도 어렵구나" 하고 한탄했다.
또 현재의 후견인제도나 신탁은 인정받기 까다롭고, 권리가 제한되어 있거나 자산이 없는 사람에게는 접근 불가능해서 별 효용이 없다. 뒤에서 더 살펴보겠지만, 1인 가구가 의지할 수 있는 인생 마지막의 대리인 또는 - P242

후견인의 문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입법과 정책적 개입이 절실한 사안이다. - P243

우에노 지즈코는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서 죽는 게 뭐가 나쁘냐면서 고독사 대신 "재택사"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에서 "자기 집에서 살면서 방문 간병, 방문 간호, 방문 의료 3종 세 - P246

트를 추가하면 충분히 혼자 살고 혼자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간병보험(개호보험)은 전담 케어 매니저가 돌봄 플랜을 짜고, 요양보호사·간호사·의사의 가정 방문 서비스를 포함한 통원 서비스를 포괄 제공하고 있어서 이 제도에 기대어 자기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한국에서보다 수월해 보인다. 한국에도 장기요양보험이 있지만 재택 간병에 활용하기에 턱없이 불충분하다. 요양보호사 서비스와 요양용품 대여·구매, 주간보호시설과 요양원 이용이 전부다. 전담 케어 매니저가 없어서 각각의 서비스를 교차해 이용하려면 각자 알아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의사의 가정 방문 서비스도 현재 일부 시범지역을 제외하고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현재 상황에서는 집에서 죽으면 의사의 사망 선고를 받을 수 없어서 경찰에 변사 사건 신고를 해야 한다. 어떨 때는 국내의 장기요양보험은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을 시설에 보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보험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재택근무‘처럼 ‘재택사‘라고 부르면 고독사의 불길하고 처연한 기운은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가능하면 살던 집에서 죽기를 바라지만, 그렇 - P247

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꼭 나에게 불행한 일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도 어쩌다 혼자 죽는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지내도 누가 지켜보지 않을 때 혼자 죽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을 때 고립되지 않고 생의 마지막까지 인간적 돌봄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는 "누구는 집에서(시설에서도) 빈틈없는 돌봄을 받으며 임종하고, 다른 누구는 집에(시설에서도) 고립되어 사망한다. 생애 말기 돌봄이 환자와 돌봄 제공자의 ‘삶의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집안에서 여성이 도맡아 온 생애 말기 돌봄은, 이제 주로 여성인 간병인과 요양보호사에게 이전되고 여전히 전문성이 필요 없는 허드렛일로 간주된다. 국내의 생애 말기 돌봄 시장은 거의 조선족 중노년 여성 간병인이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돌봄이 이렇게 ‘젠더화, 시장화‘되고, 장기요양제도가 있어도 여전히 미흡한 상황에서 존엄한 돌봄과 인생의 마무리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와 어떤 간병인을 만나는가 하는 운에 좌우된다. 송병기는 이를 각자도생에 빗대어 "각자도사各自圖死"라 불렀다.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 - P248

능력껏 알아서 잘 죽을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비참을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는 단지 1인 가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죽음의 풍경이다. - P249

"공간비비가 마을회관 같은 역할을 하면서 가까이에 모여 살고 함께 활동하는 현재의 방식이 중년 때까지는 가능하겠죠. 그런데 우리가 더 나이 들어 공간비비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비혼으로 늙는 것이 어떤 경험일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노년에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노인 공동체주택을 떠올렸지요. 가족 같은 개념으로 같이 살면서 병구완해 주는 걸 상상한 게 아니라, 노인이 되어서도 내가 나로서 잘 살 수 - P251

있는 물리적인 공간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뭔가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인 거죠." - P252

그는 거주를 함께하는 공동체, 그것도 노년의 공동체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느슨한 공동체인 비비를 해오면서 알게 된 "견디는 힘"에 대한 신뢰 덕택이라고 했다.

"서로서로 견디는 힘만 있으면 다른 건 헤쳐나갈 수 있어요. 누군가를 견디지 않고 가능한,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관계가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그런데 좋으니까 견디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좋으니까 그만큼 어떤 부분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거죠. 누군가가 나를 감당해 주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이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 P257

이혜옥은 "내 인생에 크게 지장이 없다면 거슬리는 것을 봐도 못 본 척 그냥 넘어가 주는 게 나이 들면서 생긴 기술"이라고 거들었다.

"거슬린다고 말해봤자 싸움밖에 안 되잖아요. 남을 어떻게 이겨먹어요. 참는 것과 포기하는 것이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나이에 혼자 살아서 뭐 하겠나, 그래도 혼자보다 셋이 나으니 지나가자, 하는 거죠. 저 친구가 나와 다르다는 거를 무심히 보면 되거든요. 그걸 무심히 보면 다툼이 안 일어나요." - P262

"우리가 이제 70이에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계획이에요. 직장 다닐 때 쓰는 보고서 100% 실행하는 거 없잖아요. 마찬가지죠. 이 마당도 처음엔 텃밭이었는데 지금은 잔디밭이 되어 여기서 놀고 있잖아요.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정말로 계획이 없어요. 그냥 뭐 ‘한번 해보자‘ 같은 당장의 희망 사항만 있는 거죠. 여기서 노는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그냥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옛날에 시골 동네 세 할머니가 우리에게 잘해줬는데 우리도 남한테 잘하자, 뭐 그런 작은 기억만 남으면 되는 거죠.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고, 뭐든 닥치면 하고,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뿐이에요." (심재식) - P266

‘싱글리즘 Singlism‘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루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사전적 정의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뜻한다.
벨라 드파울루는 결혼한 부부에게 우위를 두고 혼자 사는 사람을 낮추어 보는 싱글리즘이 단지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법률·제도 등 모든 구조에 스며들어 있어서 일상에서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싱글들도 피해 갈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열거한 구조적 싱글리즘의 리스트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이를테면 결혼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고 그들만 보호하는 모든 법률은 싱글리즘에 해당한다. 결혼한 사람들만 보험, 통신 서비스, 패키지 여행, 멤버십, 대여 서비스, 문화예술시설 등에서 할인을 받고 싱글은 정가를 내야 한다면? 싱글리즘이다.
결혼한 사람만 배우자나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터에서 휴가를 쓸 수 있고, 싱글은 가까운 친구나 형제자매를 돌보기 위한 휴가를 쓸 수 없다면? 싱글리즘이다. - P271

병원에서 싱글에게 보호자로서 법적 가족의 동행을 요구한다면? 건강보험이 커플보다 싱글에게 더 비싸다면? 싱글리즘이다.
전·월세를 구할 때 집주인이 결혼한 사람만 선호한다면? 싱글이 살 만한 충분한 주거공간이 없다면? 싱글리즘이다.
대학 강의나 교과서가 결혼이나 가족을 다루면서 싱글은 다루지 않는다면? 학자들이 결혼과 전통적 가족, 낭만적 애정 관계는 연구하면서 싱글의 우정이나 싱글이 선택한 가족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싱글리즘이다.
벨라 드파울루는 "이 모든 구조화된 싱글리즘은 싱글의 삶이 커플의 삶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메시지를 주입한다"라고 지적했다. "싱글은 커플과 같은 정도로 법과 제도에 의해 보호받고 시장에서 대우받을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법률로 보호되는 배우자만큼 중요하지 않기에 돌보고 애도할 시간을 허락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 커플들이 누리는 할인이나 혜택 없이 싱글은 모든 비용을 다 내야 마땅하다는 메시지" 말이다.
오랜 세월 사회구조에 스며들어 관행이 되어버린 구조적 싱글리즘은 한국 사회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이 - P272

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일들이다. 구조적 싱글리즘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사회적 표준이고, 인간의 행복은 이 표준 경로를 통해서만 구현된다는 오래되고 낡은 믿음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는 골조다.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들도 여러 유형의 싱글리즘을 이야기했는데, 가장 많이 거론한 것은 앞에서 다뤘던 주거 문제, 그리고 병원에서의 보호자와 돌봄 문제였다. - P273

1인 가구와 다인 가구의 세율 격차보다 되레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인 가구의 각종 공제 항목이 법적 가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 살면서 혈연가족보다 더 긴밀하게 서로를 부양하며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비혼 동거 가구나 생활공동체는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지금은 소득세의 인 - P280

적공제 대상도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에 한정되어 있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도 가입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 법적 가족으로 제한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주택청약에서 부양가족 수 가점을 계산할 때도 같은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등재된 직계존비속만을 대상으로 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 김순남의 책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따르면 호주의 경우 국세청이 세금공제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경제적인 상호협조 관계의 범위가 넓어서 실질적 돌봄의 관계망도 포함된다고 한다. 즉, "배우자를 정의하는 데도 제도적 결혼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자녀의 경우에도 생물학적인 자녀, 입양한 자녀, 의붓자녀, 실질적으로 자녀 관계인 대상까지 폭넓게 포함"하며 "실제 삶에서의 다양한 상호의존 관계망이 주거 비용이나 생활비 지출 증빙 등을 통해 제도적 관계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 P281

사실 내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 주로 떠올리는 요소들은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며 삶의 지향은 어떠한지 같은 조각들이다. 혼자 사는 문제를 나 자신의 정체성에 포함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떤 특질에 대한 자의식이 약한 상태로 살아오다가도 다른 사람들과 제도가 나를 그 특질로 정의하면, 내가 원치 않아도 그 특질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큰 조각이 되어버리는 듯하다. 내가 여성이라는 점이 그러했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 뒤를 이었다. - P284

현행법에는 유언과 관계없이 유족이 일정한 유산을 상속할 권리를 정해둔 유류분제도가 있다. 부모를 여의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솔로가 함께 살던 친구에게 재산을 주겠다고 유언을 남겨도 형제자매가 권리를 주장하면 유류분제도에 따라 3분의 1을 줘야 한다.
정부는 이 조항이 1인 가구가 늘고 형제자매가 각자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보고, 유류분 조항에서 형제자매를 삭제하는 민법개정안을 2022년 4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 민법개정안에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도 친양자를 입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되었다. 이 글을 쓰는 2023년 1월 현재 해당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 개정안이 확정되리라 장담할 수 없지만, 변화의 필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루어진 셈이다. - P289

박인주의 말마따나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순서를 정해두었는데, 배우자·자녀·부모·형제자매 등 법적 가족에 집중되어 있어서 혈연관계와 법적 관계를 서류로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방법이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연고 장례를 지원해 온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등이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 보건복지부는 2020년 지침을 수정했다. 사실혼 관계, 친구, 지역공동체 등 삶의 동반자였던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2022년에는 제삼자가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려 할 때 지방자치단체의 심의를 거치게 했던 규정도 삭제했다. 이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조카·며느리 같은 친족, 장기간 혹은 지속적으로 동거·부양·돌봄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개선된 방침이 법 개정이 아니라 행정부 지침 변경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 P290

앞서 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족관계증명서에 나오는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해서만 연명의료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규정을 알게 된 경험을 소개했다. 국내법은 혈족만이 그런 권리를 갖는게 마땅하다고 정해놓았지만, 미국·영국·일본 등의 경우 환자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대리인의 범위를 혈연관계에 놓인 법적 가족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김순남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미국 ‘연명의 - P293

료결정법‘에 대한 연구를 소개했다. 책에 따르면 미국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대리인은 법적 혈연가족이 아니어도 친구, 가까운 친척, 존경하는 지인 등 환자가 지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서면 신청으로 대리인 변경도 가능하다. 대리인은 환자의 의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담당 의사와 의료에 관한 사항을 의논할 수 있으며, 검사·시술·치료 등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뉴욕주의 대리인 지정 서식에는 대리인에게 위임하고 싶지 않은 결정의 상세 내용, 결정을 위임하는 기간 또는 요건, 대리인이 결정할 때 따라주기를 원하는 사항을 명시할 수있다고 한다. - P294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위해 일하는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생활동반자법 제정뿐 아니라 ‘내가 지정한 1인‘이 가족으로 인정되도록 하는 제도적 변화를 촉구해 왔다. 생활동반자와 동성결혼 등 법적으로 관계를 등록하는 제도가 필요한 사람들만큼이나 혼자서 살아가고 있고 계속 그렇게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순남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따르면 ‘내가 지정한 1인‘이란 의료결정권과 연명의료결정권은 물론이고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 강제입원 등의 상황에서 법원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규정된 해외재난 시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 등에서 법적 가족이나 동거인뿐 아니라 ‘내가 지정한 1인‘을 포함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 P299

통계청의 「2021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가족이 아닌 친구나 애인과 함께 사는 비非친족 가구원이 2021년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통계청은 일반 가구 가운데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가구를 비친족 가구로 정의하는데, 2016년까지만 해도 26만여 가구에 그쳤던 비친족 가구가 5년 만인 2021년에는 2배 가까이 늘어 47만여 가구가 되었다. 결혼하지 않았고 법적인 가족을 구성하지 않았어도 생계와 돌봄을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가장 긴밀한 사이인 사람들이 이미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제도는 여전히 법적 가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현실에 뒤처져 있다. 병원에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생기거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해도 함께 사는 이가 혈연가족이 아니면 무연고자가 되고, 서로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는 남이 된다. 소득세의 인적공제도 법적 가족에게만 적용되고, 주택 공급도 부부와 법적 가족을 상정해 이루어진다.
가족에 대한 현행법 규정을 살펴보면 협소하기 짝이 없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을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 직계혈족의 배우자, - P302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정의한다.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정의한다.
두 법 모두 가족을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2세대의 핵가족으로 협소하게 바라보는데, 현실에서 이런 가족은 전체 가구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그 나머지는 현행법의 기준을 엄격히 들이대면 가족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예컨대 위탁 가정에서 위탁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도 민법에 따르면 가족이 아니다. 부양이나 상속처럼 가족 관계의 다른 양상을 정의하는 조문들이 민법 각각의 조항에 다 있어서 사실 이 가족 조항은 없어도 무방하다. 되레 가족을 협소하게 정의해 놓은 이 조항은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난 다양한 가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의 토대가 된다.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1,400여 개의 한국현행법 조항 중 ‘가족‘을 언급하는 조항 240개가 민법 제779조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 조항을 중심으로 주거·의료·돌봄·연금·상속·재난 시 보호 등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 P303

생활동반자법은 일부 기독교계의 ‘동성혼 합법화‘ 반대 주장에 밀려 법안 발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에이징 솔로를 인터뷰하면서 성적 지향을 묻지 않았는데,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밝힌 에이징 솔로도 생활동반자법이 있으면 이용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일부 기독교계의 주장과 달리 이 법이 성 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든 아니든, 성애적 관계에 기반하든 아니든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돌보는 관계라면 생활동반자가 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을 소개한 책 『외롭지 않을 권리』의 저자 황두영은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 해체‘ 운운하면서 반대하는데 생활동반자법은 "보수적인 법"이라고 썼다. "기존의 경직된 가족제도를 떠난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이고 "가족을 이루라고 장려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성애적 관계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생활·돌봄을 함께하는 관계를 이미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해외 사례들이 있다. - P306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현재의 결혼은 전적으로 배타적인 성행위를 한다고 간주하는 합의에 기반한 제도인데, 성행위보다는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돌봄이 가족을 이루는 결합의 요건으로 더합리적인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이 제 - P307

도의 틀 안팎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든 상관없이 서로 돌보는 사이라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개념이 가족의 기능에 비추어 볼 때 더 타당하지 않은가.
생활동반자처럼 2인 관계뿐만 아니라 다수가 돌봄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경우도 제도적 지원을 받을수 있어야 한다. - P308

"생활동반자법뿐만 아니라 생활공동체 지원법까지 포함해서 새로운 가족 구성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해요. 생활동반자는 결혼과 유사하니까 입법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안 되는 걸 보면, 그보다 확장된 생활공동체가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건 더 어려울 것 같기는 해요. 그렇지만 돌봄의 측면에서 본다면 1명이 다른 1명을 오롯이 책임지는 것보다 생활공동체에서 여럿이 함께 책임질 수 있다면 돌봄이 더 가벼워지지 않겠어요? 가족 같은 정도의 결속력과 의무를 가져야만 서로의 보호자가 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가족의 방임도 꽤 많고 법적으로 복잡해서 그렇지 가족이 깨지기도 하잖아요. 그보다는 오히려 개인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제도가 생긴다면 돌봄의 관계가 훨씬 더 유연하고 개인이 짊어지는 짐이나 죄책감의 무게도 덜하지 않을까요?" - P309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중요도는 왜 이렇게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까. 가족의 어깨 위에 놓인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막중할수록 결혼과 출산의 비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협소하게 정의된 가족의 중요도가 커질수록, 가족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가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꺾이기 마련이다. 원가족의 풍부한 지원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족이 사회보장과 복지의 기본 단위인 한, 이미 부유한 가족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가족은 점점 더 가난해질 것이다. 그렇게 가족 계급사회가 가속화할수록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질 것이다.
가족이 짊어진 짐을 덜어내고 사회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사회복지학자 김진석은 - P311

책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에서 현재의 ‘국가-가족-개인‘ 복지국가에서 중간의 ‘가족‘을 뺀 ‘국가-개인‘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국가-가족-개인 모델은 가족-개인 사이에 부양과 돌봄이라는 가족 기능을 전제하고, 그 기능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에만 국가가 보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반면, 국가-개인 모델은 개인의 사회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개입이 가족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에게 직접 작용하는 방식이다.
김진석은 "가족이 있어야만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구현할 기회와 수단을 보장받는다면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개인의 실현이라 볼 수 없다"라고 짚었다. - P312

각자 독특한 에이징 솔로와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 때마다 나는 종종 ‘홀로이면서 함께Alone Together‘라는 말을 떠올렸다.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는 모두 자신의 가족을 구성하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혼자 나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삶이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홀로이면서 함께‘인 조건을 만들었다.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만 - P315

들기도 하고, 친구랑 같이 살거나 공동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원가족이나 친밀한 파트너, 때로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내가 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연결망을 만들었다. 혼자 나이 들면 비참해지고 외로워진다는 예언은 혼자 사는 사람의 증가를 막으려는 사회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에게서 그런 면모는 보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홀로이면서 함께‘는 내가 오래 붙들고 있는 인생의 화두다. 온전히 ‘홀로‘도 아니고 늘 ‘함께‘도 아닌, ‘홀로이면서 함께‘하기. 단독자로서의 영역을 지키면서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기. 이는 삶을 꾸리고 관계를 맺을 때 늘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방향키와도 같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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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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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두 시간이면 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봉우리였는데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어처구니없게도 낯선 마을로 떨어진 적도 있다.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대피소였는데 낮 시간을 다 보내고 석양이 지기까지 능선 위를 헤맨 적도 있다. ‘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할 수 없다‘는 결말로 이어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산은 나를 낮췄다.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지만 내 예측보다 더 놀 - P58

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성취와 성공보다 더 멋지고 감동적인 좌절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 P59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산을 달릴까. 사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산 앞에서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싶다. 그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동틀 무렵 태양의 붉은 빛을 받으며 달아오르는 대지 위를 달리던 새벽, 가쁜 숨을 고르며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치고 올라 이윽고 당도한 능선 위를 바람처럼 달리던 아침,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잔뜩 뜨거워진 아스팔트길을 헉헉거리며 걷고 뛰던 정오, 그렇게 맞닥뜨린 서늘한 골짜기로 새어 들어오는 석양 사이를 쏜살같이 내리꽂던 오후.
달과 별이 빛나는 밤의 황홀은 또 어떤가. 세상의 모든 것이 까맣게 지워지고 산속에 오직 어둠과 나만이 존재하는 순간. 그 고요함 속을 달리다가 헤드램프 빛에 반사된 야생동물의 번득이는 눈동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줄행랑친 순간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밤의 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오직 어둠과 나만이 존재하는 데서 느껴지는 정제된 기분 때문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아스라한 야경은 내가 돌아갈 삶을 다시 한번 긍정하게 한다. - P79

경사가 거셀수록, 노면이 험할수록, 고도가 높을수록 심장은 빠른 속도로 뛰고 다리는 추를 단 것처럼 무거워진다. 그에 따라 얼굴은 달아오르고 호 - P82

흡은 거칠어진다. 산을 달릴 때 중요한 건 속도만이 아니다. 시작한 곳에서 끝까지 얼마나 지치지 않고 달렸는지도 중요하다. 당장이라도 이 질주를 멈추고 싶다. 중력을 거슬러 산을 달리는 건 아무래도 힘든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쉽지 않아서 좋았다는 걸. 힘들어도, 쉽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조금씩 오르고 오르다 보면 산등성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모든 것을 용서할 멋진 풍경도 펼쳐질 것이고,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면서 뿌듯해할 것이고, 그러다 길게 잘 뻗은 내리막이라도 만난다면 다시 모든 걸 잊고 달려볼 거란 걸. 힘들고 지겹고 그만하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한테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걸. - P83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라고 말한 앨버트 머메리.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는 - P91

머메리즘이란 등정주의를 가리키는 알피니즘이 아니라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오르는 것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를 뜻한다. 그는 산행의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했다. - P92

정상을 향한 마음만으로는 산에 오를 수 없다. 그렇게 절박하게 오른 산에서 내려와야만 우리는 다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경험한 산의 시간을 세상에 전하며 무채색의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또렷한 희망과 용기를 건넬 수 있다. 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삶을 말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산행은 ‘From Home To Home (집에서 집으로)‘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늘 산과 함께할 수 있는 삶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이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삶이 아닐까.
그런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산에 올라가고 내려오며 서로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전 처음 본 사람, 곧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도 마치 서로를 알아보는 것처럼.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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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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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나의 글씨를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내가 이미 오래전에 유나에 대한 분노와 유나에게 받은 상처를 버렸다는 걸 - P30

알았다. 나는 그 시절 유나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유나의 말을 단 한 번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었다. 유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유나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러워질 수가 없었다. 나는 유나가 나를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보니 먼저 다가온 쪽은 언제나 유나였다. 친구가 되자고 했던 것도, 도서관에 가자고 했던 것도, 좋아한다고, 더 가깝게 지내고 싶다고 표현한 것도 언제나 유나였다.
유나가 무슨 마음으로 내 비밀을 퍼뜨렸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유나가 겉과 속이 달라서, 교활해서,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유나가 내게 악감정을 지녔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P31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P32

윤이는 정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써 웃어 보였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꿈에서 윤이를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도, 금덕이도 꿈에서 만났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정민은 이해했다. 의식적으로는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더 깊은 마음속에서는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위로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는 것을. - P68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가고 우리 가족이 쫓겨나듯 한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나는 차마 너에게 할 수가 없었어. 핀란드어가 기적적으로 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언어의 장벽은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느껴지고, 내 삶의 뿌리를 영구적으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도 말할 수 없었지. 너에게 그런 말을 하기가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아. 그 대신 나는 한국에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어.
너는 상기된 얼굴로 그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되는 대로 있지도 않은 친구들을 만들어내서 너에게 말했지. 마치 네가 그 많은 친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깔고 말이야. 그게 너에게 상처가 될 걸 알아서 그렇게 말했어. 20년이 지나서야 너에게 나의 진실을 말한다면, 너는 영원히 - P81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호 너는 북반구부터 남반구까지, 이 세상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통틀어서 유일한 나의 친구였어. 한국에서 내가 얼마나 겉돌았는지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았지.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지호야, 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친구야. 너는 나를 판단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온전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나도 너와 함께 헬싱키로 가고 싶지만 우리 식구들은 곧 쫓겨나듯 한국으로 가야 할 거고 나는 홀로 이 나라에 남아서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자신이 없어. 이곳은 2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도 내게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너를 잃는 것이 아파. 나의 무능력과 약함 때문에 이곳에 홀로 설 수 없는 내가 밉고 부끄러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마치 한국이 이곳보다 내게 훨씬 더 좋은 곳이고, 너 정도는 대체할 친구들이 많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렸어. 그리고 다시 겨울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 - P82

가족의 한국행이 정해졌지.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그때는 그게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변화를 거부하며 사는 것이 겁이 많고 불안이 많은 나에게는 안전한 선택지였으니까.
지호야, 나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었어.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덜 상처받고, 덜 위험한 길만을 골라서 갔지. 그리고 그건 언제나 내 마음속 욕구와는 다른 길이었던 것 같아. 계속 그런 식으로만 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 - P83

한참을 헤맸어, 지호야.
어디선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 소리에 기대어 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그곳에 숲의 끝이 있었지.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아이들 틈에서 너의 얼굴을 봤어. 나를 발견해서 안심하는 아이들의 모습과는 달리 너는 화가 나 보였어. 너는 볼일을 보고 내가 기다리는 자리에 갔지만 그곳에 내가 없었다고 했지. 내가, 너와의 약속을 어기고 먼저 숲을 떠나려 한 거 아니냐고 했어. 그래도 넌 내가 걱정되어 오두막으로 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나를 같이 찾아 나서자고 말했다고 했지.
"난 그 자리에 있었어." - P86

넌 고개를 저으며 옅게 웃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 너의 얼굴은 나의 그런 거짓말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었어. 나는 네가 상처받았다는 걸 알았지.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너를 기다렸어." 그 말만 되풀이하는 나를 너는 믿어주지 않았어.
나는 너를 끝까지 믿었어. 네가 나를 그 자리에 버려두고 먼저 떠났다고 믿지 않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는 그날의 일에 대한 의문이 싹텄지. 어째서 그때의 나는 네가 나를 버리고 갔으리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네가 나를 바로 의심한 것과는 다르게.
어쩌면 모든 건 숲의 일이었는지도 모르지. 해가 지기 시작한 숲은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우니까 우리는 그저 서로 어긋났던 것뿐일 거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해. 그날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 P87

그 어두운 곳에 앉아 유진은 자기가 마지막으로 울어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어림해봤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유진의 친구들은 종종 유진을 감정이 없는 인간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남들처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끔은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고, 가끔은 머릿속이 따끔거리기도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마음이란 건 하도 걸어 물집투성이가 된 발바닥 같았다. 예쁜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이 아니라. - P104

해주의 가족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배울 만큼 배운 애가 왜 종교를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고,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그런 곳에 다닐 시간이 있으면 운동을 하든지 책을 읽든지 뭔가 자기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 P106

활동을 하라고 충고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해주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믿음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해주는 자기 뜻대로 중요한 결정을 해본 일이 별로 없었다. 부모가 다니라는 학원을 다녔고 읽으라는 책을 읽었고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바람대로 교대에 갔다. 앞으로의 일들도 뻔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는 둘 정도를 낳을 것이었다. 그 또한 부모가 세운 계획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내면만큼은 그분들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다는 걸 해주는 믿음을 얻으며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도 내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해주는 조용한 성전에 앉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채반 같은 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인정하게 된 것도. 아무리 바가지로 물을 떠서 담으려고 해도 채반 같은 마음에는 조금의 물도 머무를 수 없었다. 신을 받아들였다는 건・・・・・・ 무려 신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건 채반에 더는 물을 붓지 않고 깊은 물속에 채반을 던지는 일 - P107

같았다. 그건 입을 열어서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해주에게 믿음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었다. - P108

코너를 돌자 눈앞에 지하철 출입구가 보였다. 연희는 문득 문동이 자신의 뜻을 끝까지 오해하리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문동이 한국에서 중국인을 혐오하는 교사를 만났다는 기억을 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너의 노력을 돕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고, 사실 너는 그 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학생이었다는 진심을 말하고 싶었다. 왜 - P131

좋은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가 될 수 없는지 연희는 초조한 슬픔을 느꼈다.
"있잖아. 나도 조사 틀려. 은는이랑 이가는 나도 헷갈려서......."
"다 왔네요."
"잠시 커피라도 할래? 저기서?"
"이제 가봐야 해요."
"주소라도 줄래? 책 보내줄게."
"아니에요. 집에 있어요. 오늘 까먹고 안 들고 와서."
"읽었구나."
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동은 연희가 다른 말을 할 새도 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뒤를 돌아 걸어갔다. 연희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문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동의 이름을 부르고, 전화번호라도 묻고 싶었지만 문동에게는 모두 변명조의 제스처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코너를 돌아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동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문동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연희는 누군가를 기다리 - P134

는 사람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 P135

내가 대답하는 동안 서경 언니는 민성이 아주머니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이 무시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야, 내려와.
언니는 내게 소리쳤고 나는 아주머니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인사를 하고 언니를 따라갔다.
그런 일이 그 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언니는 민성 아주머니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왜 그래?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언니에게 묻자 언니가 답했다.
엄마 아빠가 조심하라고 했어.
뭘.
전라도 사람 조심하라고 했다고. 저 아줌마도 전라도 사람이래.
언니는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하고서 화제를 돌렸다. 나는 엄마 아빠와 서경 언니의 부모님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전라도가, 전라도가, 그렇게 시작하는 말들을. 나는 전라도가 우 - P142

리나라의 어느 부분인지도 몰랐고 세상 사람들이 태어난 지역에 의해서 구별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내게는 작은 우리 동네가 내 세계의 전부였기에 어른들의 그런 말들은 기본적인 수준에서부터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어른들이 조심하라고 하는 사람은 조심하고 봐야 했다. 나는 그다음부터 민성 아주머니를 마주치면 피하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보게 되면 얼굴을 보지 않고 작게 묵례만 했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나는 작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어른들이 민성이 아주머니를 꺼리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아파트에서 그 이후로도 10년을 더 살았다. 민성이 아주머니네가 언제 그곳을 떠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파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나를 보며 애써 웃어주는 민성이 아주머니를 멀뚱히 바라보며 지나갈 때, 나는 힘이 있는 어른들의 세계에 속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까지 했다. - P143

아저씨는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분이었다. 그 사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러 번 사업을 부도낸 아버지에게 돈을 꿔주기도 했고, 열두 살의 내가 빙판길에 미끄러져서 깁스를 하고 입원했을 때 선뜻 병원비를 내주기도 했다. 엄마는 이번 통화에서도 내가 입원했을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에게는 감동이었을 그때가 내게는 지우고 싶은 순간이었다는 걸 엄마는 끝내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상기되어 이야기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입원해 있을 때 서경 언니 가족이 문병을 왔다. 아저씨는 자기가 보약을 가지고 왔다고 보온병을 내밀었고 아주머니는 스테인리스 대접에 보온병에 담긴 음식을 쏟아냈다.
우리 한별이, 이거 먹고 금방 낫자.
아저씨는 재미있는 일이라는 듯이 크게 웃으며 내게 대접을 - P150

건넸다. 그 대접에는 붉은 기름이 둥둥 뜬 고깃국이 담겨 있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아주머니가 그 고깃국에 도시락에 담아온 밥을 말고 숟가락을 내게 건넸다.
개장국이야. 약 된다 생각하고 먹어.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저씨가 너 생각해서 사 오신 거야.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야지.
엄마가 숟가락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내 등을 두드렸다. 꼭 아저씨가 보는 앞에서 먹어야 한다는 무언의 재촉이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개장국을 숟가락으로 떠먹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소리 내어 웃던 아저씨,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던 서경 언니와 혹여나 내가 이 일에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그 한 그릇을 다 먹으면서도 울지 않았다.

그때 참 살기 좋지 않았니?
엄마의 질문에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151

점장님, 기억나세요? 처음 제가 당신에게 모나게 대했던 날. 제가 아르바이트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아요. 어떤 중년 남자가 저에게 야, 너, 하며 저를 부르고 반말로 주문을 했었죠. 저는 입술을 깨물고 난감하게 서서 그 상황을 견디고 있었어요. 대답 큰 소리로 못 하나,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당신이 제 뒤에서 나타나서 웃는 얼굴로 말했어요.
손님, 제가 주문 받겠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당신은 저를 보고 자리를 피하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저는 시뻘게진 얼굴로 자리를 떠났고 당신은 내내 상냥한 표정으로 남자의 말에 응대했어요. 마감할 시간이 되어서, 당신이 제게 다가와 말했죠. 미나 씨, 아까 당황했죠. 우리 아르바이트생들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고 아들인데. 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인데 손님이 그러면 안 되지. 그런 사람 많지 않고 간혹 있는데 오늘 운이 없었어. 어딜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저 귀한 자식 아닌데요.
저는 퉁명스럽게 당신의 말에 대꾸했어요.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말이 나와버렸어요. 처음부터 저는 당 - P155

신의 그 상냥함이, 저를 향한 친절함이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그냥 제가 견디고 지나가면 될 일을 굳이 와서 도와주는 것도 고맙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절 도와준 일에 대해 생색이라도 내듯이 와서 제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던 거죠. 귀한 자식이니 귀하게 대해야 한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할 근거가 가정에서 받는 대우에 있다면, 그럼 저는 누구보다도 함부로 대해져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점장님, 저는 그 말이 싫었어요. 귀한 딸, 귀한 아들.

우리는 일을 마치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어요. 언제였는지…… 3호선과 환승 구간이 짧아서 우리가 자주 타곤 하던 3-4번 플랫폼 앞에 그런 공익광고가 붙었잖아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얼굴에 상처가 난 아이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어요.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고요. 그 아이의 얼굴 아래로 ‘지금 맞는 아이가 자라서 폭력 어른이 됩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쓰여 있었지요. 저는 그 광고를 보면 기분이 가라앉아 당신에게 다른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자고 이야기하 - P156

곤 했어요.
어느 날인가 1-1 쪽으로 가자고 이야기하는 저에게 당신이 물었어요. 미나 씨, 피곤해요. 거기로 가면 환승할 때 더 걸어야 하는데. 왜 자꾸 그쪽으로 가자고 해요. 저는 손가락으로 광고를 가리키며 그 광고를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다른 쪽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수긍했고, 그 광고가 없어질 때까지 제가 요구하지 않아도 1-1 쪽으로 걸어갔어요.
우리는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었어요. 하루 종일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일이 끝나고 나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같이 지하철을 타는 날도 많았어요. 그 광고판을 가리키며 보기가 힘들어 더 걷자고 했던 건 무리한 요구였죠. 우리는 그 광고에 대해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사실 어떤 이야기를 나눈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 광고를 만든 사람의 순진한 마음에 대해 저는 생각했어요. 그런 광고로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의 마음요. 그 불성실하고 게으른 아이디어요. 아동학대 가해자들에게 그런 식의 말로 어떤 성찰이나 반성을 불러올 수 있 - P157

으리라고 믿는 안일함을요. 저는 그 광고를 보면서 학대받는 아이들 중 대체 몇 명이나 그 광고를 보았을까 싶어 마음이 내려앉았어요.
학대하는 어른들은 학대의 이유를 아이에게 돌리죠. 너 때문이라고, 네가 이렇게 폭언을 듣고 매 맞는 이유는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해요. 자신이 비열한 인간이어서 아이를 때린다고 말하는 학대자는 없을 테죠. 자기 잘못 때문에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 광고를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일지, 광고 문구를 만들고 게시한 사람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그 광고를 보며 너의 미래는 지옥의 연장일 거라고 장담하는 어떤 목소리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울리는 것 같았어요. 너는 어른들에게 학대당하고 있어. 그런 너의 미래야 뻔하지. 넌나중에 그 어른들 같은 사람이 될 거야. 그런 메시지를 공익광고라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세상. 가해자들에게 온전한 벌을 내릴 수도, 아이를 보호할 수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천하에 광고하는 세상. - P158

맞고 자란 애들이 나중에 자기 자식 때린다더라.
그 말은 내가 오래도록 느낀 두려움이었죠.
나는 사는 게 무서웠어요. - P159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계피 사탕 같은 것을 건네는 모습을 떠올려봤어요. 그 무리에 끼기 위해서 틈을 찾으려 노력하는 할머니의 모습을요. 그게 잘되지 않아 낙담하고, 낙담한 채로도 멀어지지 못한 채 그 무리를 곁눈질했을 할머니의 모습을요. 할머니 왜 그래. 왜 그러고 살아.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 짜증이 나서 소리치는 저를 할머니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봤어요.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오늘 마감을 하고, 레스토랑의 셔터를 내리면서 당신 생각을 했어요. 쫓겨나듯 서울을 빠져나가야 했던 당신의 사정에 대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을 때,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너무 쉽게 당신 탓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이에요. 나도 그랬어요. 맞아도 웃고, 오히려 나를 때린 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걱정해주기도 했었어요. 심지어 그로부터 위로를 받기를 원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저는 입을 열 수 없 - P163

었어요. 저는 제가 겪은 일들을 증언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내 고통은 사람들의 눈에 명백하고 순수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덜 아프고 싶어 몸부림친 일들이 내 고통이 타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증거가 될 테니까. - P164

부모는 꾸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유난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꾸꾸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닭에게 이름을 붙이고 항상 쓰다듬어줬다고, 그런 이유로 이제 닭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대체 어떤 부분이 그렇게 웃긴 것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상처를 받느니 꾸꾸에대한 이야기를 비밀에 부치는 편이 나으리라고 판단했다. - P184

현주는 비밀스럽게 작업했지만 남자 친구에게는 자기 작품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주는 미리에게 남자 친구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언을 해준다고 했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그림을 많이 봐온 사람이어서 믿을 만하다고 했다. 그 믿을 만한 비평이라는 것이 현주가 지닌 장점을 깎아내리고비틀어 모멸감을 주는 것인지 그때의 미리는 알지 못했다.
미리는 애초에 그 남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주와 만나고 있으면 쉴 새 없이 현주에게 전화를 해서 누구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도 싫었고 미리 앞에서 농담조로 현주를 깎 - P204

아내리듯이 말할 때는 표정 관리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농담인 것처럼, 가벼운 이야기인 것처럼 현주의 그림을 보며 말한다고 했다. 이런 그림을 너만 그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이 정도 수준의 작품들이야 찾아보려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당장에 팔리기야 하겠지. 근데 그 이상이 있어?
현주가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을 때 그는 미소 지으며 자주 이렇게 말했다. 현주 너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
현주는 그게 별일이 아닌 것처럼 미리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는 현주에게 의부증 기질이 있다고, 현주가 자신에게 집착하고 자신을 통제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리는 왜 그가 현주에 대한 거짓 소문을 지어 퍼뜨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주 너는 복잡하고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고, 넌 그저 그런 여자라고, 아니, 그저 그런 여자여야 한다고. 현주의 모든 역사를 지우고, 개성을 지우고, 그녀만의 특별함을 지우려는 말. 그 - P205

는 ‘남자 하나에 목매는 여자‘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현주의 특별함을 가리려 한 것이었다. 그가 퍼트린 가십으로 덧칠된 현주는 더 이상 고유한 한 인간도, 작가도 아니었다. - P206

현주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현주라는 사람이 보였다. 현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으로 그런 마음이 들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미리는 빈 캔버스 앞에 초조하게 앉아 있던 시간을 떠올렸다. 미리는 그 초조함과 막막함을 극복할 수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미리는 그림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기말 작품 준비를 하던 날 중 하루였다. 한참을 그림 그리는 데 집중하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고 - P209

고가도로에 차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라디에이터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왔고 복도에서 웃으면서 신발을 끌고 걸어가는 남자애들의 소리가 들렸다. 미리는 그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더는 그 상태를 견딜 수 없었고 억지로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관두기로 마음먹자 오랜 시간 자기 가슴을 단단하게 죄어오던 사슬에서 풀려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미리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학교를 졸업해야 했으므로 그렸고,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므로 그렸다. 심심할 때 드로잉북에 크로키를 하기도 했다. 승무원이 되고 난 다음에도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미리는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일을 소중하게 남겨둘 수 있었다. - P210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미리는 장례식에만 잠시 들렀다 두바이로 돌아왔다. 그 일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 말로 자기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미리는 어머니의 죽음을 한동안 현주에게 전하지 않았었다. 두 달쯤 지나서 지나가듯이 어머니의 부고를 전하자 현주는 미리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어떻게 그 시간 동안 자신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별일 아닌 것처럼 그 일을 말할 수 있는지 자기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주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미리가 요양원에 있던 미리의 어머니를 고작 1년에 한 번 방문했던 것도 잔인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래도 너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이야. 받은 건 생각하지 않고 나쁜 기억만 골라서 어머니를 판단하는 거, 어른 - P211

스럽지 않은 일이야. 냉정하게 말하는 현주를 보면서 미리는 현주를 공격하고 싶어졌고 현주의 남자 친구에 대해, 현주의 자신감 없는 작업 태도에 대해 빈정거렸다. 미리가 그렇듯이 현주 역시 누구보다도 미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더 번질 수도 있었지만 현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P212

미리는 늘 자신의 문제로부터 도망쳤고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자신의 분노로부터, 불안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도망쳤고 최대한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 대신 미리는 일에 몰두했다. 동료들은 그녀가 일중독자에 가깝다고 말했는데 그건 일견 사실이었다. 일이 좋기도 했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면 공허함을 느꼈고 불안해졌으니까. 하지만 현주와 그렇게 싸운 이후에는 일에 몰입할 수가 없었고 자주 악몽을 꿨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누가 차가운 칼을 꽂은 것처럼 머리와 눈이 자주 아팠다. 실컷 도망쳤는데 그 끝에 다다라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 P213

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그건 마법의 문장이었다.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마음속에 서러움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너처럼 유복한 생활을 하는 애는 절대 알 수 없다. 어머니 - P214

에게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미리가 밥을 먹을 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잠에서 깨어날 때 미리를 골똘히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빛이 있었다. 어쩌면 다정하게까지 들릴 수 있는 말투로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누가 너 같은 애를 좋아하겠어. - P215

아프지 않았을 때의 어머니는 미리에 대한 적의를 세련되게 가공하여 보여줬다. 집요한 괴롭힘이었지만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미리에게 다정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잃어버리고, 의식을 놓아버리자 어머니는 더는 그 감정을 미리에게 숨기지 않을 수 있었다. 미리에 대한 어머니의 염오는 그토록 순수한 것이었다. 그 모습이 미리의 눈에는 차라리 자유로워 보였다. - P216

대학교 2학년 때, 미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서 현주에게 말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지만 현주에게 마음이 열려서 그랬다.
어떤 엄마가 자기 자식을 싫어하겠니.
현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미리는 말문이 막혀서, 웃으면서 자기가 애초에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듯이 자기 말을 수습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현주가 말을 이었다.
네가 어머니 진심을 어떻게 알겠어. 성격이 안 맞을 수도 있고, 어머니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 수는 있지. 그래도 미리야,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어.
그래. - P219

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현주처럼 말했고 그 말들의 합창은 미리를 예민한 사람이 되게 했다. 미리는 어머니의 말투, 표정, 몸짓에서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그 당연한 진실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주인의 식탁 밑에서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개처럼 노력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작은 증거라도 찾으면 그 자그마한 것을 잡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라도 그런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고 싶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습관이 되어서 그녀는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에 민감한 어른이 됐다.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려준 건 현주 - P220

였다. 현주와 함께 있을 때면 미리는 안전함을 느꼈다. 현주는 미리에게 미리의 존재 이외의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현주가 미리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현주는 미리가 조건 없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기에 미리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 불쾌함까지 느끼는 것 같았다.
현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미리는 벽에 부딪힌 기분을 느꼈다. 왜 자신의 마음을 현주가 정확히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왜 그토록 현주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도 미리는 한 번씩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고 현주는 그런 미리의 이야기를 어린애의 투정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미리는 어느 순간현주로부터 자신의 한 부분을 이해받는 것을 포기했다. 최악의 인정 욕구는 자기 아픔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일지도 몰랐다. - P221

어머니를 보러 마지막으로 요양원에 갔던 날, 미리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그린 그림 세 장을 가져갔다. 평소에 어머니는 미리의 그림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미리는 그것이 어머니가 자신을 인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 - P226

도 어머니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미리는 요양보호사에게 그림을 건네고 병실 앞 복도에서 어머니가 자기 그림을 보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침대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그 그림을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찢어 구겨버리고 바닥에 던져서 발로 밟았다. 자신의 모습을 찢고 구기고 발로 밟는 어머니. 그것이 미리가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미리를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어머니의 자유의지였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미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미리는 어머니를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때로는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면서도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삶은 선택할 수 없었다. 이런 삶이 자신의 것이었을까. 미리는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미리는 자기 의지로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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