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사를 공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좌절을 겪는다. 사건과 인물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각각이 왜 중요한지,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시험이 끝나면 기억은 빠르게 사라지고, 남는 것은 ‘세계사는 외워도 남지 않는 과목’이라는 인상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기억력이 아니라, 세계사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책은 다른 역사 관련 도서와 그접든 방법을 달리하여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 대신 저자는 세계사를 관통하는 사고의 틀을 제시한다. 개별 사건을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반복되는 흐름과 구조 속에서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 사건이 시험에 나왔는가”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세계사를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책이 모든 세부 사건을 다루지는 않고, 방대한 내용을 압축하다 보니,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 대한 깊이는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점이라기보다 의도된 선택에 가깝다. 책은 사전이나 연표가 아니라, 세계사를 바라보는 지도에 해당한다. 방향을 잡아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후의 학습을 훨씬 수월하게 만든다.

저자는 세계사가 외워야 할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반복해 온 선택의 기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 선택에는 일정한 경향이 있으며, 이를 이해하면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눈도 함께 넓어진다. 세계사가 어렵게 느껴졌던 독자, 혹은 다시 한 번 제대로 정리하고 싶은 독자라면, 책은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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