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편지
이머전 클락 지음, 배효진 옮김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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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낯선 편지』는 한 뭉치의 엽서에서 시작된다. 먼지 쌓인 다락방,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편지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한 인물의 인생 전체를 다시 쓰게 만드는 촉매가 된다.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여 있던 침묵과 폭력, 그리고 그 침묵이 남긴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동시에 기억과 망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고 또 어떻게 구원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문체 또한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이머전 클락의 문장은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을 과잉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작은 장면과 사소한 기억들을 통해 독자의 감정을 서서히 흔든다. 오래된 엽서의 종이 질감, 다락방의 공기, 말끝을 흐리는 인물들의 태도 같은 세부 묘사는 이야기의 신뢰도를 높이며, 독자로 하여금 카라의 내면에 깊이 침잠하게 만든다. 이 느린 호흡은 오히려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의 무게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소설은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기억되지 못했던 이야기들, 말해지지 않았던 감정들, 그리고 망각마저도 인간을 구성하는 일부임을 『낯선 편지』는 조용히 인정한다. 앞선 세대와 이별하는 법을 배우는 일, 그리고 그 이별 이후에도 삶을 지속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작품은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낯선 편지』는 충격적인 비밀을 쫓는 미스터리이자,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성장 서사다.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수많은 침묵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아직 열지 못한 문, 혹은 열기를 두려워했던 기억들에 대해. 그리고 그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시작될지도 모를,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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