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스이 류이치로의 『커피 이야기』는 한 잔의 음료가 어떻게 세계사의 흐름을 뒤흔드는 동력이 될 수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책이다. 저자는 커피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정치, 식민, 경제, 군사 전략과 긴밀히 얽힌 역사적 행위자로 바라본다. 이 접근은 커피를 둘러싼 사건을 단편적 일화로 소비하는 기존 서술과 달리, 각각의 시대와 권력이 커피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통제했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커피가 처음부터 서구 문명의 상징이 아니었고, 이슬람 수피 전통에서 커피가 수행의 도구였음을 강조하고, 이 음료가 ‘욕망 억제’라는 역할을 하다가 어떻게 유럽 상업자본가와 정치 엘리트의 욕망을 자극하는 소재로 전환되었는지를 촘촘하게 설명한다. 이러한 전환은 자연스러운 확산이라기보다 의도된 이미지 조작과 금지, 논쟁, 혁신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임을 책은 반복적으로 환기한다.

저자가 택한 서술 방식은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커피가 ‘필요한 존재’로 자리 잡기까지 정치적·사회적 조건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조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영국에서 커피하우스가 성장하다 쇠락한 이유, 프랑스혁명과 카페의 관계, 나폴레옹이 커피를 군사 전략에 적극적으로 편입한 배경 등은 커피가 시대적 욕망의 매개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커피가 때로는 ‘이성’을 상징하고, 때로는 식민지의 고통을 은폐하는 장치로 기능했다는 분석 역시 인상적이다.

커피 생산지역이 겪은 착취와 폭력의 역사를 드러내는 서술은 책의 무게를 더한다. 브라질의 커피 대량 폐기 사건, 동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벌어진 비인간적 플랜테이션 운영 등은 커피의 향 뒤에 숨은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단순히 경제사적 현상이 아니라 ‘근대 문명의 그림자’로 바라보며, 소비자가 인식하지 못한 세계적 연결망을 꿰뚫는다. 책은 방대한 지식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 독서의 피로감을 줄여준다. 학술적 깊이와 대중적 서술이 균형을 이루며, 커피를 둘러싼 세계사의 겹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커피라는 일상적 음료를 통해 권력, 욕망, 제국주의, 산업화의 역학을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충분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