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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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리앤프리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은 정신의 고통을 단순히 ‘치유해야 할 병’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언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정신병동 장기 입원 경험을 바탕으로,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의미화할 수 있었는지를 문학과의 대화 속에서 천천히 풀어낸다. 이 책은 회고록이자 비평서이며 동시에 하나의 문학적 실험이다. 그녀는 실비아 플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재닛 프레임 등 ‘광기’와 ‘여성’의 경계에서 글을 썼던 작가들의 목소리를 불러내 자신의 이야기에 겹쳐 쓴다. 그렇게 탄생한 문장은 단순한 고백을 넘어, 개인의 상처를 언어로 전환하는 치유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책의 형식 또한 독특하다. 회고록의 감정적 진술과 문학비평의 분석이 교차하고, 인용과 기록이 하나의 콜라주처럼 엮인다. 이러한 구성은 스캔런이 자신의 삶을 단선적인 회복의 이야기로 만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도가 실패하는 틈을 메우고 인간 경험의 핵심에 자리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고자 한다.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그것이 스캔런이 말하는 ‘회복’이다.



『의미들』은 독자에게도 도전적인 책이다. 작가의 문장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몽환적이며, 종종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정신질환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마음의 균열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스캔런의 글을 읽는 일은 누군가의 고통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직시하는 경험이 된다.

『의미들』은 고통 속에서도 언어를 포기하지 않은 한 작가의 증언이자, 문학이 인간에게 여전히 필요한 이유에 대한 대답이다. 스캔런은 말한다. “글쓰기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 실패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방식이다.” 그 문장은 절망의 고백이 아니라, 의미를 잃은 시대에 다시금 말하고자 하는 이들의 선언처럼 울린다. 이 책은 그 선언의 기록이며, 읽는다는 행위가 어떻게 한 인간을 다시 세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문학적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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