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장의 유령
아야사카 미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앤프리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피안장의 유령』은 일본 전통 미스터리의 정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아야사카 미쓰키는 이번 작품에서 ‘저주받은 저택’이라는 오래된 소재를 통해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죄의식,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집단적 상징을 섬세하게 엮어내고 있다. 단순한 공포물이라기보다, 이 소설은 인간이 끝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가해한 세계와 그 속에서의 심리적 붕괴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이야기는 젊은 사업가 렌이 증조부의 유산으로 남은 저택 ‘피안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곳은 수십 년 동안 기묘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죽음을 부르는 집’으로 불린다. 렌은 이 저택에 얽힌 비극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초능력자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초대된 열 명은 저택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차례로 목숨을 잃기 시작한다. 문이 잠기고, 전화는 통하지 않으며,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끊긴 그곳은 완벽한 밀실로 변한다. 저자는 고전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초자연적 공포와 심리적 긴장을 교차시켜 독자에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피안장’이라는 이름 자체가 상징적이다. 피안(彼岸)은 불교에서 죽음의 세계, 혹은 이승을 넘어선 저편을 의미한다. 저택을 둘러싼 붉은 피안화는 그 경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생과 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맞이하는 죽음은 단순한 살인의 결과가 아니라, 과거의 원한과 죄의식이 만들어낸 집단적 숙명처럼 묘사된다. 아야사카는 이 공간을 단순한 사건의 배경으로 두지 않고,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한다. 저택이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고, 그들의 불안을 증폭시키며, 결국은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작품은 전형적인 미스터리 구조를 따르면서도, 심리적 묘사에 큰 비중을 둔다. 등장인물들은 저택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공포 속에서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된다. 아야사카는 인물의 두려움을 구체적인 사건보다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천장에 매달린 형체의 그림자, 방 안을 울리는 기이한 소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감’은 공포를 시각이 아닌 청각과 촉각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셜리 잭슨이나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공포’의 계보를 잇는 방식이다. 주인공 사라의 존재는 이 소설의 정서를 관통한다. 그녀는 초능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동시에 그 능력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저택이 그녀를 ‘찾는다’는 설정은 단순한 초자연적 위협이 아니라, 그녀가 짊어진 과거의 상처와 죄의식이 물리적 형태로 나타나는 과정처럼 읽힌다. 즉, 피안장은 외부의 악이 아니라 인물 내면의 어둠이 구현된 공간이다. 이 점에서 아야사카는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인간 심리의 심층을 탐색하는 작가적 시선을 보여준다. 소설의 전개는 느리지만 촘촘하게 짜여 있다. 각 장마다 등장인물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저택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특히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장면 구성은 사건의 진실을 단번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독자를 끝까지 긴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드러나는 진상은 잔혹하지만 동시에 슬프다. 피안장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저주받은 공간이 아니라, 잊히지 못한 사랑과 죄의식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나는 장소였던 것이다. 죽음과 공포가 이야기의 표면을 이루지만, 그 이면에는 구원과 회한의 정서가 흐른다. 렌이 저택의 비극을 파헤치는 이유는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가문이 남긴 죄를 끝내 속죄하고자 하는 의지다. 그리고 사라의 존재는 그 속죄의 상징처럼 자리한다. 그녀는 저택의 저주를 끊어내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로, 작품은 그 결말을 통해 ‘공포의 완성은 구원의 순간’이라는 역설적 메시지를 전한다.



『피안장의 유령』은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과 현대 심리 스릴러의 감각을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폐쇄된 공간, 제한된 인물, 반복되는 죽음이라는 익숙한 설정 속에서도 아야사카는 인간의 내면을 향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저주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수 있으며, 진정한 공포는 저택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통찰을 남긴다. 소설은 ‘죽음’이라는 불길한 주제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피안화가 피고 지는 순간처럼, 생과 사는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작가는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아야사카 미쓰키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일본 미스터리의 전통적 문법 위에 정서적 깊이를 더하며,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문학적 미스터리를 완성해냈다. 『피안장의 유령』은 독자를 서늘한 긴장 속으로 끌어들이며,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