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화가를 단순히 위대한 천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에 상처 입은 개인이며,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고독에 시달리는 인간이다. 예를 들어, 키르히너는 나치의 ‘퇴폐미술전’에 의해 작품 수백 점이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절망조차도 그림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어 우리에게 시대의 폭력을 증언해주고 있다. 티소는 연인 캐슬린을 잃은 후에도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며 사랑과 상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고갱은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방랑의 길을 택하며, 원시적인 자연에서 순수한 색채와 형태를 찾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히 미술사적 지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책은 또한 미술 감상이 곧 사람을 이해하는 일임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곰브리치가 말했듯 미술 자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길은 곧 화가를 이해하는 길이며,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느낄 때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피카소가 그림을 ‘또 다른 형태의 일기’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주헌 평론가의 글은 학술적 분석보다 따뜻한 공감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미술 평론가이면서 동시에 화가 출신이기에, 작품을 기술적인 분석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그리는 사람의 시선’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미술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나며, 독자는 그림을 본다는 느낌보다는 화가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듯한 경험을 한다. 30년 넘게 이어온 그의 활동이 단순히 미술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삶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림이 멀리 있는 세계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호들러가 죽음을 응시했다면 우리 역시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앙소르가 가면 뒤에 불안을 숨겼듯 우리 또한 일상 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실레가 외로움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욕망을 표현했다면, 우리 역시 관계의 갈등과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결국 화가들의 삶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할 뿐, 우리의 삶과 깊이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