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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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주헌 평론가의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는 그림을 감상하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을 이해하려 하지만, 저자는 화가의 삶을 알 때 그림이 비로소 살아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림 이전에는 늘 화가가 있었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이 붓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책은 다섯 가지 키워드, 즉 내면·행복·사랑·시대·순수로 화가 스물다섯 명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고 있다. 이 구분은 단순한 주제별 분류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마주치는 근원적 물음을 예술가의 여정을 통해 탐색하는 틀로 작동하고 있다. 엘 그레코의 불안한 영혼, 호들러가 죽음을 응시하며 남긴 이미지, 앙소르가 가면에 담은 실존의 불안은 ‘내면’의 장에서 다뤄지고 있다. 티소의 화려한 무도회 장면 뒤에 숨은 상실과 고독, 할스의 웃음 속에 스며든 인생의 환희는 ‘행복’의 장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와토와 부셰, 프라고나르의 사랑 이야기는 낭만과 환상의 빛을 띠고 있지만, 실레의 경우처럼 사랑과 죽음이 교차하는 비극도 담기고 있다. 카라바조, 다비드, 키르히너 등은 시대의 폭풍 속에서 치열하게 흔들렸고, 고갱이나 마티스 같은 이들은 순수와 원시를 향한 끝없는 갈망으로 삶을 밀고 나갔다.



저자는 화가를 단순히 위대한 천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에 상처 입은 개인이며,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고독에 시달리는 인간이다. 예를 들어, 키르히너는 나치의 ‘퇴폐미술전’에 의해 작품 수백 점이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절망조차도 그림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어 우리에게 시대의 폭력을 증언해주고 있다. 티소는 연인 캐슬린을 잃은 후에도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며 사랑과 상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고갱은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방랑의 길을 택하며, 원시적인 자연에서 순수한 색채와 형태를 찾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히 미술사적 지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책은 또한 미술 감상이 곧 사람을 이해하는 일임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곰브리치가 말했듯 미술 자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길은 곧 화가를 이해하는 길이며,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느낄 때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피카소가 그림을 ‘또 다른 형태의 일기’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주헌 평론가의 글은 학술적 분석보다 따뜻한 공감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미술 평론가이면서 동시에 화가 출신이기에, 작품을 기술적인 분석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그리는 사람의 시선’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미술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나며, 독자는 그림을 본다는 느낌보다는 화가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듯한 경험을 한다. 30년 넘게 이어온 그의 활동이 단순히 미술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삶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림이 멀리 있는 세계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호들러가 죽음을 응시했다면 우리 역시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앙소르가 가면 뒤에 불안을 숨겼듯 우리 또한 일상 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실레가 외로움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욕망을 표현했다면, 우리 역시 관계의 갈등과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결국 화가들의 삶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할 뿐, 우리의 삶과 깊이 이어져 있다.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는 제목처럼,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불행과 상처로 가득한 삶도 결국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메시지는 그림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고통과 혼란, 상실과 두려움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위로를 전하고 있다. 단순히 미술을 소개하는 교양서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성찰하게 하는 인문학적 텍스트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삶의 의미와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깊은 사유와 공감을 건네고 있다. 캔버스 너머로 화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선사하는 진정한 미술 감상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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