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장점은 특정 화가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동서양을 아우른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거장들뿐 아니라, 겸재 정선, 조희룡, 추사 김정희 같은 조선 화가들의 작품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 이로써 독자는 향기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미술사의 흐름을 훑으며 감각적 이해를 쌓을 수 있다. 특히 조희룡의 〈홍백매화도〉 같은 작품에서는 실제로 매화 향이 풍겨오는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도판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가 그림과 신체적으로 교감하는 길을 열어준다.
또한 책은 향수와 미술을 각각 별개의 세계로 다루지 않고, 두 예술의 구조적 유사성을 짚어낸다. 그림이 색채와 명암, 구도와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듯, 향수도 탑 노트·미들 노트·베이스 노트가 어우러진 층위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명화와 향수의 만남은 단순한 ‘콜라보레이션’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감각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견되는 본질적 친연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사례들이 이어진다. 반 고흐가 정신적 위기의 순간 붓꽃을 통해 마음을 다잡았던 이야기는 아이리스 향과 연결되며, 독자로 하여금 그의 고독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호퍼의 작품에서는 도시의 고독을 타바코 향으로 풀어내며, 정선의 산수화에서는 소나무 숲의 청량한 내음을 환기한다. 이처럼 각각의 작품은 향기를 매개로 한층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명화와 향수》는 오늘날 콘텐츠 소비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추구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 책은 가치가 있다.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무르기 어려운 독자에게 향기는 새로운 단서를 제공해 시간을 붙잡게 하고, 이미 익숙한 그림을 보아온 이들에게는 새로운 감각적 통로를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