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아기 - 세계적 심리학자 폴 블룸의 인간 본성 탐구 아포리아 8
폴 블룸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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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는 인간다움의 기원을 아기의 눈에서 찾고 있다. 저자인 폴 블룸은 발달심리학, 진화심리학, 인지과학, 철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인간이 어떻게 신체와 정신, 물질과 마음을 구분하는 이원적 사고를 타고났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그는 갓 태어난 영아가 이미 ‘선과 악’, ‘진짜와 가짜’, ‘물질과 영혼’을 가르는 본질 추구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직관은 문화적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오랜 진화 과정에서 각인된 인지 구조에 가깝다.



블룸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아기가 돌도 되기 전에 사물의 물리적 속성과 의도를 분리해 인식하며, 사진 속 사과와 실제 사과를 구별하고, 살아 있는 움직임과 기계 작동을 구분한다고 보여준다. 이 초기의 본질주의적 사고가 성장하면서 도덕성, 종교적 신념, 예술적 감수성 같은 고유한 인간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침팬지나 다른 동물도 자기 새끼를 보호하고 약자를 돕지만,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마음’을 읽고 ‘본질’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저자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현대 아기 연구로 재해석한다. 아기는 중력이나 고체성 같은 물리 법칙을 이해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의도에도 반응한다. 이처럼 물리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를 병행 처리하는 능력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분짓는다. 동물이나 인공지능이 쉽게 넘지 못하는 경계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는 이 이원적 사고 틀이 선과 악, 삶과 죽음, 물질과 영혼 같은 형이상학적 범주를 자연스럽게 불러오며, 인간만의 ‘메타 사고’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책은 도덕·종교·예술의 기원도 이 틀 안에서 조망한다. 쓰레기 더미의 소변기가 예술로 평가받거나, 위작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현상 뒤에는 ‘본질을 추구하는 심리’가 숨어 있다. 타인을 마음 가진 존재로 보는 직관이 공감과 연대의 바탕이 되며, 이는 가까운 혈육에서 시작해 낯선 타인에게까지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예술, 종교, 윤리 의식이 싹트고, 사회의 도덕 범위가 넓어진다.

블룸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실험 데이터와 진화론적 해석을 교차해 제시한다. 피아제식 구성주의나 행동주의처럼 환경이 전부를 결정한다는 견해를 비판하며, 인간 인지의 선천적 기반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틀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인간다움은 본능과 문화, 직관과 이성의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책의 매력은 학문적 논의를 대중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풀어낸 데 있다. 실험 장면과 일상적인 사례가 철학적 논제와 자연스럽게 맞물려, 무겁지만 지루하지 않다. 블룸은 독자에게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도, 그 끝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까지 암시한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과 본질 추구 본능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도서는 AI 시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다움의 핵심은 이성과 감정의 균형,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에 있다는 것이다. 아기의 순수한 인지 구조를 들여다보며, 인간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묻는 이 책은 심리학과 철학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생생한 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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