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도서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철학자들의 사유가 현재의 사회 문제에까지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의 제도와 기술이 오히려 인간성을 앗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일리치는 제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의존적으로 만들며 자율성을 잃게 만든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느린 저항’은 오늘날 기술에 의해 통제되는 삶을 다시 인간적인 감각으로 회복하자는 제안처럼 다가온다. 이는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실천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픈 이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행위, 아이와 함께 걷는 시간,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본 그의 사유는 따뜻하고도 단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인상적이다. 헤겔은 진정한 자유는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필연성 속에서 자유를 찾는 이 사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그저 선택할 수 있음이 자유가 아니라, 조건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생긴다는 통찰이다. 또 루소와 롤스를 통해 불평등과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루소는 불평등을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로 바라보며, 정의는 모든 사람의 기회를 보장하는 공정함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반면 롤스는 누구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은 ‘무지의 상태’에서 사회의 원칙을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두 철학자의 시선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불공정한 구조를 성찰하게 하며, 어떻게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도서는 단순히 철학자의 명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오늘의 삶에 연결시키는 방식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말은 고전 속 문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 된다. 기억이 자아를 구성하고, 신념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리쾨르와 키케로의 통찰도 결국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말미의 필사 코너는 철학자의 말을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써보며 자기 삶에 새겨보도록 유도한다. 손으로 따라 쓰는 행위는 곧 마음을 따라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철학자의 문장을 넘어, 그 말의 의미를 삶 속에 녹여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