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 오심과 권력, 그리고 인간을 심판한 법의 역사
김웅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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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는 법에 대한 도서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도서이다. 단순히 형사사법제도의 역사나 법조문 해석을 다루기보다, 정의와 권력, 그리고 공동체의 심리를 해부하며 우리가 법이라는 제도에 왜 그렇게 많은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품는지를 묻고 있다. 저자는 약 4000년에 걸친 재판과 사법제도의 흐름을 따라가며, '무엇이 옳은가'보다 앞서 '우리는 왜 그것을 옳다고 믿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늘 간단하지 않다.



도서는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열린 한 재판으로 독자를 이끈다.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재판을 단지 철학자 한 사람의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 불안, 전쟁의 패배, 정치적 격변, 대중의 분노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모여 터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철학자는 당시 공동체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존재였고, 사람들은 그 균열이 더 이상 커지기 전에 누군가를 처벌함으로써 안정을 되찾고자 했다. 그렇게 법은 공포에 대한 해답이자, 심리적 안정을 위한 도구가 된다. 도서의 초반은 고대 법전의 탄생 과정을 다룬다. 우르남무와 함무라비의 법전, 로마 12표법 등은 흔히 신의 명령처럼 여겨졌지만, 사실은 사회를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통치자의 전략이었다. 법이 신의 이름을 빌렸던 이유는 그것이 반박 불가능한 권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적 장치는 결과적으로 약자를 보호하고자 했다기보다, 통치 권력을 정당화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즉, 법은 정의의 이름을 빌렸지만 본질은 정치적 타협과 권력의 표현이었다.



중세의 마녀재판은 이러한 구조의 전형적인 연장이었다. 감정에 휩쓸린 재판은 증거보다는 의심, 사실보다는 두려움에 의존했다. 사람들은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법이 본래 지향해야 할 이성과 절차, 그리고 객관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도서의 백미는 사법제도의 구조적 차이에 대한 설명이다. 유럽 대륙의 직권주의와 영미권의 당사자주의가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과 철학 위에서 탄생했음을 분석하며, 이 두 체계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지 짚어낸다. 직권주의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진실을 구성하려는 반면, 당사자주의는 검찰과 변호인의 대결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 두 시스템은 단지 절차의 차이를 넘어, 개인과 국가, 자유와 통제 사이의 균형을 다루는 철학적 선택임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현대 형사사법제도의 비효율성에 주목한다. 많은 사람들이 형사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이 비효율성이야말로 억울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문명화된 장치’임을 강조한다. 절차가 까다로운 이유는 바로 감정과 권력, 그리고 대중의 심리로부터 피고인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히려 너무 효율적인 재판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런 재판은 마녀재판이나 소크라테스의 경우처럼 감정이 판단을 대신하는 상황으로 쉽게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는 결코 법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은 인간 본성과 끊임없이 충돌해온 제도이며, 그 충돌 속에서 조금씩 진화해왔음을 이야기한다. 법이 완벽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수하고, 오해하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그 감정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원칙과 절차를 고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억울한 희생을 막고, 정의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끊임없이 틀리면서도 법을 만들고 고치고 지키려 하는지, 그 오래된 이유를 되묻는 성찰로, 법을 공부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정함’과 ‘정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질문이 담겨 있다. 저자는 과거의 재판을 통해 현재를 비추고, 과거의 비극을 통해 미래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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