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 열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모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의 내밀한 진동을 따라가는 한 편의 길고 깊은 숨 같은 도서는 울프가 생전 바라보았던 정원과 자연, 그리고 그에 얽힌 감정의 결을 따라 우리를 데려간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풍경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어느새 우리 안에 조용히 스며들어 지나간 시간과 마음속 그림자까지 환기시키는 마법 같은 글이다. 저자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풀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는 불연속적으로 오가고, 기억은 감정과 함께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녀가 어린 시절 콘월 해변에서 느꼈던 기이한 환희, 바람이 커튼을 밀어 올리는 순간의 미묘한 기척, 사과나무 아래에서 까마귀 울음을 들으며 느낀 정적의 깊이—이 모든 것이 한데 얽혀 흐릿하면서도 선명한 어떤 분위기를 만든다. 그녀의 문장은 종종 감각과 감정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겹쳐져 있는데, 그것은 마치 귀로 듣는 풍경이거나 손으로 만지는 기억처럼 다가온다.



『모두의 행복』은 행복이라는 말이 본래 얼마나 복잡하고도 미세한 감정의 조합인지 일깨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은 어떤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울프가 말하듯 사소한 기쁨의 파편들이 모여 이루는 미완의 조각보에 가깝다. 그녀는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감정을 포착해낸다. 예를 들면, 여름날 연못 위로 떨어지는 비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느낀 생의 강렬함, 전쟁 중에도 계속되던 햇살과 식물의 생명력에 대한 감동. 이러한 순간들은 울프의 글 안에서 정적과 떨림을 동시에 지니며, 독자에게 자신만의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울프의 삶을 따라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서는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해, 몽크스 하우스 정원의 고요한 시간들, 도심 속에서 발견한 삶의 역설, 문학 작품 속의 상상 풍경, 그리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마주한 감각의 순간들까지. 이 여정은 물리적 장소의 나열이 아니라, 감정의 등고선을 따라 그려진 내면의 지도이다. 울프는 자연을 통해 자기를 직시하고, 기억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세계는 투명하거나 반짝이며 때론 몽환적이지만, 그 속에는 삶에 대한 절실한 애정과 애틋함이 담겨 있다.



전쟁과 불안이라는 배경 위에서도 ‘살아 있는 감각’을 끊임없이 붙잡으려는 시도로 울프는 폭격의 공포 속에서도 정원에 내리쬐는 햇빛에 마음을 두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자연의 순환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녀는 슬픔과 절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한가운데서 피어나는 연약하지만 강인한 생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정하고, 깊고, 무엇보다 인간적이다. 『모두의 행복』은 단순히 울프의 자연 예찬이나 회고록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종종 잊고 지내는 감정의 깊이를 다시 꺼내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풍경과 기억을 불러오게 만들며, 삶이란 이토록 미묘하고 조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 안에도 하나의 작은 정원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진실한, 그런 정원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모두의 행복'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누구도 완전히 붙잡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의 무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을 다시 더듬어보는 행위이자, 잊고 있던 감각에 다시 손을 얹는 일이다. 도서는 그 작은 손짓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조용하지만 위대한 문학적 초대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