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Castilla) 왕국과 아라곤(Aragon) 왕국으로 양분되어 있던 스페인은 15세기 후반 두 왕국의 국혼으로 통일을 이루고, 15세기 말 이슬람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를 점령하며 국토회복운동이 종료되어 스페인은 절대군주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카스티야 여왕이었던 이사벨(Isabel)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꿔 놓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으로 남북 아메리카의 정복과 식민지를 독점하게 된다. 식민지의 노동력으로 귀중한 광물을 생산하고 제품을 수출하는 시장으로 착취하였다. 16세기 초,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이, 16세기 중반에 ‘황금시대’를, 16세기 후반에는 영국 ‘무적함대'와의 충돌에서 패배함으로써 스페인 왕국의 번영과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수백 년간의 식민 지배는 '교화'라는 명분과 상징적인 이유와 '무역'이라는 야만적인 착취로 라틴아메리카의 종교와 문화를 스페인식으로 변화시켰고 그 영향의 일부로 약 5억 명의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의 시대인 스페인의 근대로 접근하면 전 세계를 이념전쟁으로 발 딛게 하며 살인과 전쟁을 합리화 시켰던 이념의 3대 장인 민주주의, 파시즘, 그리고 공산주의 영향을 스페인 역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결과로 겪게 되는 역사에서 탄생한 ‘스페인 내전’과 민족주의자요 반공주의자인 독재자 '프랑코'가 36 연간 휘두른 절대 권력에 의한 만행은 고통의 역사인 동시에 예술가들의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2009년 '역사적 기억법'을 통해 마지막 동상이 철거된 독재 정치가는 사망 시 소원으로 스페인을 부르봉 왕가로 계승토록 하여 스페인은 다시 군주제 국가가 되었지만 국왕 카를로스 1세는 나라를 의회 민주주의 체제로 개혁시키고 상징적인 존재로 남았다.
20세기 말 스페인은 한때 유럽의 빅 3국가로 불리며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1세기 초, 취약한 경제구조와 맞물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가부도 직전의 경제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면서 결국 유럽연합에게 1,0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2013년 12월 구제금융 관리 체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불안정한 미래이지만 스페인 정부는 천혜의 자원인 관광산업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서 투자가 늘어나고 신재생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밝은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