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 여씨와 유씨 - 건설과 숙청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3권이 나왔다!

 

저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3권이 빨리 나오다니.. !!! -_-... ㅋㅋ

'십자군 이야기'를 생각하자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그닥 미안하진 않은데, 여튼 3권을 들고 빨리 왔으니 반가울 수 밖에.

1, 2권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번 3권은 고증에 대한 지나치게 장황한 설명을 줄이고 사건에 대한 배경 설명을 더 많이 곁들여서 더 좋다.

그리고 이제야 본격적인 책의 썰을 풀 거라니 더 기대가 된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1-02-0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3권 먼저 보고 1권 2권은 아직 못 보았는데 부럽네요 ㅎㅎ

낮에뜬별 2011-02-10 10:38   좋아요 0 | URL
1, 2권도 좋습니다. 앞으로 기대가 되네요. ^^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 표지가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책이지만(ㅋㅋ), 굳이 광고계이 있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을 책이다.

실은 이 분이 같이 사는 분의 직장 상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연찮게 이 책을 볼 수 있었는데.

음.. 뭐랄까, 제목에서 느낀 이상한 반감이 책을 읽고 나니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렇다.

(이 '반감'은 아마도 인문학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사람의 이상한 열패감이란 걸 나도 안다.)

 

수많은 광고를 만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강조하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이며, 그것이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

 

  "아리스토톨레스는 틀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통은 '발신자→메시지→수진사'라는 경로를 거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신자→메시지→발신자'라는 경로가 옳습니다.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발신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되질 않습니다. 수신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소통이 쉬워집니다."

  그렇다. 소통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귀가 열리는 법이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수신자에게 다녀와야 한다.

 

뭐, 학자들은 수신자를 감안해서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또 그렇게만 무시하고 넘어갈 부분만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인문학 전문서적은 책이 안나간다고 투덜대지나 말던가.

 

여튼 인용 부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책에서 놀라운 점은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이 그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인터뷰' 시리즈로 나와있는데, 형식은 전혀 인터뷰 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두 저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된 소통을 통해 녹아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어떤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도 아닌, 그런.

인터뷰 대상자인 박웅현도 대단하지만, 그를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성실히 준비한 것 같은 강창래도 대단하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시쳇말이 실감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 반성의 의미에서도.

 

광고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약간은 '아전인수'인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 '아전인수'를 포장하는 것도 능력.

어쨌거나 재미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분법은 단순명료하기에 매력적이고 때로는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가벼움과 무거움, 영혼과 육체, 슬픔과 기쁨, 남성과 여성.

어쩌면 우리는 이 이분법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걸지도 모른다. 그 이분법 속에서 고통 받는 와중에도.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메타포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의 어깨에 짐이 부과되었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메타포로 시작'되듯이, 이분법의 '경계'는 다시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가.

세상이 규정한 경계는 굉장히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 경계가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심지어 고통까지도.

 

  그는 이보다 더 처절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테레사를 품 안에 꼭 껴안았고 그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더 이상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폭탄을 맞아 뒤흔들릴 수도 있고, 조국이 매일 새로운 침략자에게 약탈을 당하고, 그가 사는 거리의 모든 주민이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해도 이 상황을 차마 고백할 순 없겠지만 이보다는 훨씬 쉽게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테레사의 단 하나의 꿈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견딜 수 없었다.

 

영혼의 사랑과 육체의 사랑은 별개의 것일까, 아니면 함께인 것일까? 아니, 영혼, 육체, 사랑을 서로 엮는 것 자체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혹자는 '유일한 사랑'을 위해 육체를 저주하고,

 

  그녀는 불쑥 이 육체를 하녀를 내쫓듯 파면하고 싶어졌다. 오직 영혼만이 토마스와 함께 있고, 육체는 다른 여자의 육체가 수컷의 육체와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도록 멀리 추방하고 싶어졌다! 그녀의 육체가 토마스에게 유일한 육체가 될 수 없었고, 테레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쟁에서 패배한 육체이기에, 그렇다면 멀리 꺼질지어다, 육체여!

 

혹자는 초라해진 육체를 가진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육체를 저주한다.

 

그녀는 수줍음을 자신의 육체의 가치를 재는 척도로 삼았다. 그녀가 지금 뻔뻔스러워진 것은 한때 그녀가 과대평가했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그 뻔뻔스러움을 통해 지나간 삶과 엄숙하게 결별하고 철저하게 뻔뻔해지고자 한 것이다.

 

이런 모호한 경계 위에서, 우리는 '소통의 불가능'에 직면하고 그로 인해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통의 불가능에 좌절하는 인간이야말로 소통의 가능성을 광신하는 철저한 이상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삶의 부재에 좌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해보면, 소통의 불가능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소통일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터라, 책을 꽤 오래 잡고 있었다.

특히 앞부분에 등장하는 꿈의 해석 부분은, 그 해석이 너무 단순하면서도 장황스러워 살짝 유치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연애사와 거시적인 역사를 넘나들고, 시점마저 제멋대로 넘나드는 형식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읽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세상에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 '역사적'인 것이 어디 그렇게 명확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가?

왜 나는 이 소설이 '연애소설'인가 '역사소설'인가를 두고 고민하는가?

(연애 속엔 역사가 없는가? 역사 속엔 연애가 없는가? 아니, 그 무엇의 속에 다른 무엇이 포함되어야만 하는가?)

인간의 삶을 다룬다는 '역사'를 '경제사', '문화사', '정치사' 등으로 엄격히 나누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 수 있는가?

 

한 개인의 삶, 한 사회의 역사는 중층적이기도 하지만 또 수많은 부분이 중첩되기도 한다는 사실.

이 뻔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꽤 오래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결국 이상하게 책을 읽어버린 셈이 되었는데, 어쨌거나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접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2/3를 넘어서는 부분부터는 책을 읽는 속도도 붙었고, 왠지 등장인물들도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뭐 막 그려러던 참에 끝나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ㅎㅎ)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환상이니 하지만, 실은 모더니즘이야말로 환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입] DG 111주년 기념반 2 [56CD]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외 작곡, 번스타인 (Leonard / DG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시리즈 1도 구입을 했었다. 이번 시리즈 2는 총알의 부족으로 고민의 고민을 반복했지만... 

결국 구입. 하루에 2장 정도씩 꾸준히 듣고 있는데 만족한다. 이 정도 수준의 음반들을 이 가격에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음반시장 끝물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여튼 제품 자체에는 100% 만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전두환 2 - 인간에 대한 예의
백무현 글.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묻자. 일해공원에 찬성하는 합천 주민들이 이상한가?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과 합천이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총선 때마다 '전두환 당'은 압도적인 표를 얻지 않았던가.

  그래서 '전사모'가 나온다. 공공연하게 '전두환 찬양'을 노골적으로 밝힌다. 그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적인 박해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일리 없는 말이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은 사법적 단죄를 농단했다. 그들은 순수하지 않았다. 하기야 정치인이 순수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장난질은 도를 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략으로 전두환을 구속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당략으로 그를 석방했다. '전사모'가 '박해를 받았다'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이 책은 ''전두환의 역사'와 맞짱을 뜨기'위해 쓰여진 책이다.

아마도 비교적 대중적인 만화라는 장르에서 전두환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80년대의 역사를 쉽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책이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숨을 돌리고 차근차근 짚어가는 것이 '홍보'에는 더 도움이 된다.

어차피 누가 옳은가에 대한 믿음과 신념은 그 흥분만큼이나 확고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좀 더 독자를 믿어볼 필요가 있다.

너무 많은 사건들을 다루다보니 휙휙 지나간다는 느낌만 있다. 사건의 배경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분량이 문제라면 조금 아쉽더라도 다루는 사건을 조금 줄이고 그 내용을 소상히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특히 광주민주화혁명 이후를 다루는 2권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KAL기 폭파 사건이 단 3장으로 마무리된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솔직히 그 부분은 이 책만 읽고는 무엇을 다룬 것인지, 뭐가 문제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러하기 때문에 타겟이 되는 독자층도 애매해질 수 밖에 없다.

정말 이 시대를 까맣게 모르는 세대들을 위해서라면 너무 설명이 부족하고, 조금이나마 아는 세대들에게는 수박 겉핥기 같기 때문이다.

 

분명 알아야할 시대이며 인간이지만, 방법이 참 아쉬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