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시티 1 - 하드 굿바이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Frank Miller 지음,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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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영화로 잘 알려졌지만, 난 영화는 보지 못했다.
다 읽고 나니, 아 왜 타란티노가 이 만화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을까 라는 게 명확해졌다.(꼬이고 중첩되는 스토리, 장면과 함께)

 

내용은 둘째치고, 명과 암으로 처리하는 극단의 장면처리만으로도 이 만화는 '역작'이라고 부를만 하다.

특히 1권의 마브가 비맞는 장면은 압권. (http://blog.naver.com/sega32x?Redirect=Log&logNo=150027243042)

마치 세모칼로 도려낸듯한 표현은 전권을 뒤엎는 판화적 기법 중 최고로 꼽고 싶다.

 

그냥 그 장면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만화. 음. 영화는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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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죽음 동문선 현대신서 302
에마뉘엘 위스망 페랭 지음, 김미정 옮김 / 동문선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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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던가. 꿈 속에서 아버지의 상여 행렬을 체험하고 밤새 울었던 것이.

그 이후 나는 거의 10년을 울지 못했다. 메마른 눈물만큼이나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겁이 많은 인간이라 무서운 것이 생기면 회피하거나 혹은 그런 것들과 맞설 생각은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그 무서움과 당당히 맞섰던 몇 안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죽음'의 이미지다.

내가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꿈 속에서 마주했던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죽음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어서 사회학과로 가고 싶었고, 사회학 전공을 선택해 공부를 하다가 아리에스와 엘리아스를 만났다.

그들의 저서와 당시 나를 가르치시던 분들의 영향으로 결국 사회학보다는 사학을 선택해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별로 없는 그런 행보지만, 나는 왠지 당연한 수순을 밟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금도 너무나도 더디게 걸어가고 있지만, '죽음'을 그리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거라 또 서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은 없다.

내 평생의 연구과제랄까. 아마도 내가 죽기 전까지 '안다'라고 말하지 못할 주제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겐 그것이 매력이라면 매력.

 

용기도 없는 한 아이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무조건 피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많은 아이들은 죽음을 무서워 한다. 아니 무서워 한다기 보다는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어른들의 은폐 때문에.

하지만 어른들의 은폐 따위로 죽음을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은 어른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러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내가 죽음에 관심을 가지면서 계속 스스로 던져왔던 질문이다.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감추려고만 든다면, 내 삶에 대해서는 어떤 진솔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설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어머니도 죽음을 완전히 알지 못하므로 설명보다는 '대화'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나는 그녀가 설명하는 죽음과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도 꽤 있었지만, 이 책의 저술 동기는 참 마음에 들었다.

 

아주 나어린 아이들은 죽음을 자주 입에 담는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어른들의 고통과 침묵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침묵과 싸우고 싶다.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불가사의한 일이나 금기로 여기는 것만은 피할 수 있다......

깊은 슬픔에 빠져있거나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이런 식의 대화가 의미 없고 너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의미를 잃지 않고 고찰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생각해 보는 것. 즉 죽음을 분석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히 언급하는 것은, 결코 죽음을 이해한다거나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대신 죽음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죽음에 대해 듣고, 그것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죽음이 주는 고통과 침묵으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삶의 가장 가까이에 다가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또 대화 상대가 아이가 아니어도 좋다. 옆의 살아있는 사람과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라.

생각만큼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내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이야기가 매우 구체적이고 진솔하다는 가정 하에.

 

p.s. 동문선... 아무리 안나가는 책들을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 얇은 책이 8천원이라는 건 좀 오버 같다.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시리즈가 몇 개 더 있어서 챙겨볼까 고민 중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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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독 - 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
조엘 안드레아스 지음, 평화네트워크 엮음 / 창해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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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나쁘다, 제국주의 혹은 미국의 전쟁 사업은 여러 모로 나쁘다.

 

이제 이런 말들은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그 상식이 실천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식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비판 논리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거다.

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이 책의 부제)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반전주의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질문들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매우 얇긴 하지만(90쪽 안팎) 큰 판형 때문에 굉장히 애매하게 느껴졌다.

또 만화라고는 하지만 글자가 굉장히 많아서 처음엔 적응이 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애매한(?)' 책에는 운동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구체적 사실들, 역사적 사실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미국 땅을 밟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왜 중요한지 그 이유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얼마전 마이클 무어의 'sicko'도 봤지만, 미국내의 의료시설, 교육시설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폐기되거나 사기업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무기를 사고 만들 돈은 넘쳐 난다는 사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만화로서는 흔치 않게 미주가 빼곡히 달려 있고 인용된 말들의 출처가 꼬박꼬박 기록되어 있다는 것.

저항과 연대를 위해서는 구체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 적절한 타이밍에 읽게 된 책.

 

가격도 싸니(정가 6,500원) 한 번 사서 읽어보심도.. ^^;

 

p.s. 표지에 '이 반전 만화를 부시 대통령에게'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이 책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낼 필요는 없다.

읽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다. 그가 어디 이런 사실을 몰라서 전쟁을 일으키고 다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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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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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아둔 지는 꽤 된 책인데, 이제서야 꺼내어 읽었다.

사실 이렇게 술술 읽어버릴지는 몰랐는데 정말 피서하는 기분으로 여유있게, 그러면서도 속도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던 책.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역시 '대중적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국문과 출신으로 여러 문인들의 문집을 굉장히 많이 섭렵한 것 같다.

그 바탕에 글쓰는 솜씨까지 더해지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뭔가 가볍지만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많은 자료들의 출처를 밝혀가며 글을 쓰고, 그 꼭지들을 적절하게 묶어내는 기술(물론 이것은 '편집'의 힘이 크겠지만).

옛사람들과 함께하는 에세이랄까. 여튼 '운치'를 느끼며 하루 정도 피서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

문장을 잘게 썰어 쉽게 쓰자는 연습을 계속하는데도 잘 안되는 나로서는, 이 책의 문장이 꽤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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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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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면, 개인적으로 3개 정도의 경험이 생각난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한 번은 산림청 관련, 또 한 번은 중국 쪽 관광지 개발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번역한 적이 있다.

둘 다 초벌 번역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부담이 덜하기는 했는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인지라 꽤나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 미천한 영어실력 때문인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또 한 번은 모 출판사에서 출간될 책을 교정을 본 거였는데, 필자가 재중교포인 까닭에 책을 거의 다시 쓰는 정도의 교정을 봤었다.

물론 마지막 것은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도 안되는 문장을 그야말로 '번역'해야만 했기에 생각이 나는 것이다.

(몇몇 문장은 정말 일하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_-... 지금 생각할 때 참 어이 없는 것은 내가 받아든 원고가 초고가 아니라 책의 형식으로 인쇄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 출판사의 편집자는 뭐하는 사람일까? --;;)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러가지 뉘앙스를 가지고 있겠으나, 이 말은 대부분 '원전'을 강조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역설한다. 번역은 결코 반역이 아니며, 반역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번역이 왕성해야 우리말도 풍부해지고, 우리말이 풍부해져야 세상의 지식이 우리의 지식으로 육화되는 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적 역량은 향상되고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암울한 수준인 우리 번역문화를 진단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좀 오버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 학계의 문제, 사회적 인식의 문제를 자꾸만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읽어나갈 수록,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게 될 수록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가의 수입 대리석이나 외제 욕조, 세면기, 홈시어터 따위로 집안에 '돈'을 바르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책으로 집안 장식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읽지도 않는 책을 꽂아놓기만 하는 건 위선 아니겠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위선도 그립다'고 한 김교신의 말을 떠올린다. 김교신은 성경에서 위선자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비록 자신들이 선을 행하지는 못 할지라도 선을 마땅히 행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고, 그 선에서 어그러지는 일을 두렵게 여길 줄은 알았는데 반해, 20세기의 현대인은 '위선을 꺼린 나머지' 공공연하게 불의를 말하고 비례非禮를 행하면 도리어 솔직하고 철저하다는 사회적 칭찬을 받는다고 지적하면서, "오호라, 이제는 위선도 그리운 세대로다"하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정부 차원의 번역 지원은 1999년부터 본격 시행되기 시작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동서양명저번역 지원사업'이 전부이다. 2002, 2003, 2004년에는 예산이 15억 원씩 책정되다가 2005년에는 2억이 늘어 17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선저된 과제수는 각각 42건(2002년), 52건(2003년), 52건(2004년)이었다. 2002년부터 3년간 146개 과제가 선정되었으니 해마다 평균 50개 과제 정도가 예산을 지원받는 셈이다. 여기에는 서양 고전 뿐만 아니라 동양 고전까지 포함되어 있다.

  4천 5백만 국민을 위한 지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투입되는 정부 1년 예산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이다.

 

번역서를 읽다보면, 정말 짜증나는 일이 있다. 분명 한글로 되어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거다.

그 긴 문장에 주어는 없고, 조사는 멋대로 쓰이고, 접속사는 문맥을 부숴버린다.

원문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럴 경우 거의 100% 번역에 문제가 있는 거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의 한 문장을 보자.

 

노엄 촘스키는 공공연한 반란의 동기들 중에서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했던 '선한 독일인'의 편을 드는 것"에 대한 거부를 올바르게 지적한다.

 

한 번만 읽고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난 문장력이 떨어져서 이 문장을 한 번, 두 번, 세 번 읽고도 원 저자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노엄 촘스키가 올바르게 지적한 것(사실 이 표현도 어색하기 그지 없다)이 ~에 대한 거부라? 뭐.. 이건 그렇다 치자.

(공공연한 반란... 도 일단 그냥 넘어가자.)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했던 '선한 독일인'의 편을 드는 것" 이 문장이 지칭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한 것 -> '선한 독일인'의 편을 드는 것 인가, 아니면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했던 '선한 독일인' ->의 편을 드는 것 인가?

(뒤에 이어지는 '에 대한 거부'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카오스다. -_-)

이렇게 되면 노엄 촘스키가 올바르게 지적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원전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원문의 문장 구조를 따르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번역'이라면 한글을 읽는 독자들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건 문학작품의 번역도 아니지 않은가.

 

번역이 정말 어려운 일인 반면에,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턱없이 부족한 일인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책을 산 독자의 입장에서는, 울컥하는 짜증을 가라앉히며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할 의무까진 없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직접 번역을 하고 있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학자의 입장에서,

또 인터넷 서점의 회원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리스트에 담긴 책을 구매하는 애서가의 입장에서. (아.. 동료애가 느껴진다. ㅎㅎ)

이 책은 읽기 쉽고 깔끔하게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책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번역에 대한 문제를 종종 느꼈다면. 분명 읽어볼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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