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굿바이 E. H. 카
데이비드 캐너다인 엮음, 문화사학회 옮김 / 푸른역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 말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독한 뒤에 곧바로 읽기 시작했던 책.
2001년 '역사란 무엇인가' 출간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심포지엄의 글들을 정리하고 모은 책이다.
책의 원제는 'What is history now?'이기 때문에 책 제목이 좀 뜬금 없을 수도 있는데, 읽다보니 출판사의 의도를 알 것 같다.
(하긴 원제를 그대로 번역해서 옮겼다면 임팩트가 아주 떨어졌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 심포지엄이지만, 여기 모인 9편의 글이 모두 카에게 집중하고 있진 않다(그래서 일면 다행).
그보다는 오히려 역사학의 각 분과별로 소위 '회고와 전망'을 서술하고 있다. 사회사, 정치사, 종교사, 문화사, 젠더사, 지성사, 제국사.
때문에 책이 굉장히 지루하고 고리타분해보일 수 있는데,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각 분야별 현황이 어떠한지 점검도 가능하고, 또 내 논문의 방향을 잡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문화사를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요컨대 죽은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어 우리와 전혀 다른 믿음과 문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가능하면 인간의 경험과 이해를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하고,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와 믿음 체계에 대한 관용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는 확신이다.
민족지학의 위기는 역사가에게도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 민족지학자와 마찬가지로 역사가도 어떤 사람들이라도 소박한 자료 제공자가 될 수 있다고 지나칠 정도로 쉽게 믿어왔다.
저자와 제작자, 화가는 제아무리 감추려고 노력해도 자신이 만든 텍스트를 통해 자신이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다. 폴 스트롬이 주장하듯, 우리는 '초서가 결코 자신에 대해서 몰랐다'는 사실을 초서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초서는 텍스트 속에 자신의 무의식이 떠오르는 것을 통제할 수 없었고, 자기 텍스트가 태어나는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없었으며, 그 작품을 읽는 독자가 자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는 시대를 초월해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지 충분히 알지 못했다. 초서는 기회만 생기면 자기 작품에 대해 더 알고자 했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런던대학 교수 펠리페 페르난데즈-아메스토가 썼는데, 글이 맛깔난데다 이름도 익숙해서 찾아보니 역시 '밀레니엄'의 저자.
그 책을 읽지는 못했고 선배가 권해서 서문만을 읽었었는데, 역시 글을 잘쓰는 사람인듯.
어쨌거나 그의 글이 한 역사가의 비관적인 고백이라는 점에서 꽤나 마음에 든다. 비관 없이는 희망도 없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역사가가 된 이유는 내 관심사가 모든 분야게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리하게 망각한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역사를 할 수 있지만, 언제나 직업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며 보수를 받는 특수한 사람들, 즉 사료에 특권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종의 안내자 혹은 지도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현재 우리는 최소한 기회를 상실하고 있으며, 어쩌면 최악의 경우에는 의무를 준수하는 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사실 종교학 분야가 제일 지루하고 따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내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지성사 부분이 역시.... -_-....)
내가 선택한 세 번째 연구물은 프랑스의 방대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실제 읽히기보다는 주로 인용되는 미셸 보벨의 <바로크적 신앙심과 탈기독교화>이다. (마르크스주의 동조자이자 일급 학자인) 보벨은 프로방스 지방의 유언장 수천 개를 분석하여 (이것은 또 다른 계열사적 연구이다) 탈 기독교화의 시작과 세속화의 징후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그는 한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지를 기준으로 가톨릭 신자를 정의하였다. 그의 연구는 의외로 풍부한 죽음의 예술 연구였다. 이 연구는 무덤이나 장례기념물의 도상을 다루었고, 수천 장에 달하는 유언장의 공식 서문을 분석하고 계량화하였다. 이 유언장들은 도시와 시골, 젠더 등에 따라 분류되었다. 유언장 서문에는 고인의 장례행렬(흔히 관을 뒤따르는 빈민들의 수가 기록된다)과 장례식 당일 내놓을 자선 기부금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연옥에 있는 영혼의 안식을 위해 상당 기간 동안 올려진 미사들에 관한 기록도 있다. 그는 자신이 사용한 자료들의 샘플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철저함을 추구하였다.
나는 보벨의 연구를 다시 읽으면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대단한 역사 지식을 제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첫 번째로 18세기 바로크 무덤 양식의 붕괴와 장례행렬의 간소화, 1770년대 무렵 도시 남성 엘리트층에서 영혼의 안식을 위한 미사 횟수가 감소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러한 경향을 탈기독교화/세속화의 전조로, 그리고 연옥에 대한 믿음이 쇠퇴하기 시작한 증거로 보았다. 그는 또한 유언장 서문에서 자선 기부금 액수가 다소 줄어들었음을 발견했다.
보벨은 죽음을 중심에 놓고 '탈세속화'라는 주제를 다룬 셈인데... 만약 내가 죽음을 중심에 놓는다면 어떤 주제에 접근할 수 있을까?
국가권력과 죽음의 양식 간의 관계를 논해볼 수 있을까? 망딸리떼를 살피겠다는 거창한 욕심보다는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는게 나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