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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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의 러시아 소설. 그러고보니 연속으로 러시아 소설을 읽은 셈이 되는데.. ㅎㅎ

SF, 환상문학을 주로 집필했던 스뜨루가츠끼 형제의 대표작이다.

매우 딱딱한 문체로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던 자먀찐과는 달리, 이 형제들의 묘사는 매우 자세하고도 적절하다.

그래서 '소설'읽는 재미가 느껴진다. 솔직히 '환상문학'류를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라 기대는 안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런 설정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상상력에도 박수.

 

하지만 이 가벼울 것만 같은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를 턱하니 던져 놓고 끝나버린다.

간단하게 말하면 '너의 행복은 어느 쪽이냐'는 너무나 회피하고 싶은 질문.

 

  "그러면 너는 스네고보이도 비난하겠구나?" 내가 물었다.

  "나는 아무도 비난 안 해."

  "그렇지만 너는 글루호프에게 화내고 있잖아."

  "아직도 못 알아듣는구나." 그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글루호프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니까. 내가 무슨 권리로 아무 도움도 없이 아무 희망도 없이 혼자 남겨진 인간이 선택한 길에 화를 내겠니. 나는 다만 결정 후의 그의 태도에 짜증이 나는 것뿐이야. 다시 말하자면, 그자는 자신의 선택에 수치스러워 하고 있어. 그래서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이 되기를 원해. 알아들어? 그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는 거야."

 

당신이 하고 있는 연구가 10억년 뒤 인류에게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이유로 중단할 것을 강요 받는다면, 당신의 선택은?

재앙을 핑게 삼아 위협 앞에서 양심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소소한 행복을 과장하며 '나'를 포기할 것인가.

(물론 그 재앙이 실제로 올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은 다름이 아니고 이 항상성 우주가 인류의 4차원화되려는 이성을 저지하기 위해 반응을 보인거라 할 수 있어. 우주가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거지.

  나한테 어째서 너나 글루호프가 다가올 대혼돈의 제1차 희생물로 선택되었는지 묻지 마. 너와 글루호프의 연구의 어떤 점이 우주의 항상성을 위협하는 거냐고 묻지 마. 그리고 항상성 우주의 그 어떤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묻지 마. 나는 아무것도 몰라. 에너지 보존 법칙이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우리가 모르듯이. 모든 일은 에너지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발생될 뿐인 거지. 그리고 모든 일은 너와 글루호프의 연구가 10억년쯤 후에 수백만의 다른 연구와 결합되어 마침내 지구의 종말을 유도해 내는 일이 없도록 진행될 거야. 물론 이건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지구의 종말이 아니고, 우리가 오늘날 관찰하고 있는 이 세상, 10억 년 동안 존재해 온 이 세상, 그리고 너와 글루호프가 엔트로피의 정복을 위해 미시적인 안목으로 너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위협하고 있는 이 세상에 관한 문제야."

 

결국 누군가는 '나'를 버리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안고 간다.

이건 마치 컵에 물이 반이 비었는가 반이 찼는가라는 말장난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10억 년이 남은 것을 '아직'이라고 할 수도 있고, 10억년 뒤에는 결국 '끝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테니.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10억 년 따위의 숫자가 아니다. '세상이 끝나는 것' 따위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결코 수긍하지 못할 위협에 내가 복종할 것인가 아닌가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두꺼운 렌즈의 이면에는 긴장감도, 위대한 대담함도, 가짜 순교자의 표정도 더 이상 안 보였다. 차분하고 불그스름한, 확신, 모든 것은 순리대로 되어야만한다는, 그리고 그 밖에는 아무 다른 해결책도 없다는 확신.

  그는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계속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서둘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의 세월이 있다고 그가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10억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수많은 풍자와 알레고리로 범벅이 된 환상소설.

 

이런 디스토피아적 환상소설이 러시아 문학의 일맥을 이루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싶다.

혹자는 그것을 사회주의의 실패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후쿠야마 식의 '역사의 종말'과 같은 대책 없는 낙관주의보단 낫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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