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1984-1987 1 - 공산 폴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실뱅 사부아 그림, 마르제나 소바 글, 김지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총 4권으로 구성된 이 책 중 전반부에 해당하는 1, 2권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폴란드 소녀 마르지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귀엽고도 소소한 일상이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공산 폴란드의 ‘그 무엇’을 기대했을 텐데, <페르세폴리스>만큼의 극적인 사건들은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부모님이나 친척이 고위층이나 투사도 아니고, 마르지는 그것들을 인지할 만큼의 나이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책에서 드러나는 것들만으로 당시의 폴란드 정세가 어땠는지 일목요연하게 알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에게 1980년대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88올림픽을 떠올릴지도 모르고 한창 호황을 누리던 시절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1980년 광주의 선홍빛 피와 그것을 덮으려는 정부의 3S 정책, 쥐도 새도 모르게 주검이 되곤 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것도 우린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나는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내가 ‘체험’한 1980년에 광주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남 울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까 당연한 일일 것이다. 87년의 노동자 투쟁도 울산이라는 그 핵심 도시에서조차 직접 느끼기 어려웠다. 우리집은 대규모 공단이 몰려있는 동구 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1980년대를 살아간 또 한 명의 마르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되새기는 1980년대와 내가 체험한 1980년대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까? 그 어느 것이 1980년대의 ‘실상’이라고 칼로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을까? 동네 친구들과 놀고 싸우고, 부모님께 혼나고, 이사를 다니고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내 어린 삶 속에도 몇몇 파편들이 존재했다. 어쨌거나 80년대를 살았던 내가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하고 자랐다면, 그것은 권력이 어떻게 그것을 통제하고 억압했는지,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어떻게 금기가 되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다. 초등학교 때 기호 1번 국회의원이 나눠준 책받침이 기억이 나고, 집에는 반공 글쓰기 대회 상장이 남아있다. 87년 동구 쪽에 살던 친구가 학교에 못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집에서는 동요 테잎만큼이나 노동가 테잎, 그리고 또 함께 있던 ‘사가’ 테잎(쌍용, 쌍용, I love 쌍용~)을 자주 틀어놓고 놀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렇게 기억으로 남겨진 ‘역사’는 순도가 높고 질서정연하지만, 실제 경험하는 역사는 앞뒤가 맞지 않고 남루하기 그지없다. 또 그 사이사이에 포함된 ‘불순물’은 우리가 ‘역사’로 일컫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다. 때문에 역사가라는 직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인이 각기 쏟아놓는 수없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기에 채로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론 이 ‘채’를 곰곰이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이 걸러내는 작업이 얼마나 타당성을 갖는 것인가? 도대체 기준은 뭔가? 하는. 사실은 걸러질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분리해서 순도 높은 금을 캐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그 금이 과연 순수한 금이기나 할까? 1970년대의 강박적인 반공주의를 학생들에게 장황스럽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똘이장군’을 5분 보여주거나 내가 어릴적 반공 글쓰기나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는 말을 해주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이 책 <마르지>에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악화된 동구권의 경제사정, 쌓이는 불만, 노동운동의 시작, 체르노빌의 여파 등을 이런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실감나게 보여주기에는 아이의 시선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아이의 단순한 시선 속에서 드러나는 현실이야말로 낭중지추일지 모른다. 즉 폴란드사 개설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폴란드사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줄을 서서 배급을 받고, 모든 물품이 같은 소련제로 교체되고, 그 와중에도 미국제에 대한 환상이 존재하고, 공산주의 체제임에도 종교적 색채가 강한 집안 분위기가 있으며,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어린 딸이 있는 폴란드.



이 책을 통해 거시적 내러티브를 좋아하는 역사가들은 ‘일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에 대해서는 년도와 날짜까지 따져가며 순차적으로 정리를 해내지만, 정작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일상을 영위했는가에 대해서는 “사료가 없어서”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당시의 역사가들이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들의 선배들이 하찮고 흔해빠진 일상을 지우는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이 책의 폴란드와 위키백과상의 ‘폴란드사’를 한 번 비교해보자.


차관 상환, 무역수지 적자, 1979~1980년의 마이너스 성장 등 불안한 경제상황 아래에서의 지도층의 부패로 인한 국민의 정치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1980년 7월 육류 가격인상을 계기로 발생한 노동자의 파업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띠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2개월 동안 전국을 뒤흔들었다. 정부는 8월 31일 그단스크에서 노동자측과 회담하여 파업권과 자주관리노조, 즉 자유노조의 결성권을 인정하는 합의문서에 조인함으로써 공산권에서는 전례가 없는 대폭적인 권리를 노동자측에 허용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결국 기에레크는 혼란의 책임을 지고 9월 해임되고 스타니스와프 카니아가 뒤를 이었다. 노조결성권 획득 후에 결성된 자유노조의 '연대 노조'는 곧 전국적으로 조직이 확산되어 11월에 정식으로 등록되었으며, 38세의 바웬사가 위원장이 되었다. 악화일로의 경제사정은 다시 전국 규모의 노동자 파업을 불러일으키고 1981년 10월 카니아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였으며, 참모총장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가 서기장 및 총리, 국방장관을 겸하게 되었다.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연대에는 1천여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여 폴란드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야루젤스키 정권은 1981년 12월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지도자, 반체제 지식인 5,000여명을 체포함으로써 노조활동은 지하로 잠적하게 되었다. 1982년 5월과 8월에는 계엄령하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감행되었고, 이 사이 주미, 주일대사를 비롯한 폴란드인의 망명사태가 일어났다. 정부는 1982년 10월 자유노조를 불법화하고 1983년 7월 계엄령을 해제한 후 '위기상태법'( 1985년 12월 말까지 시한)을 제정함으로써 계엄해제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다.

정부의 강경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은 꾸준히 전개되었고, 1987년 11월 정부는 일련의 정치개혁, 경제개혁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부결되어 정부의 위신은 더욱 실추되었다. 1988년 8월 다시 탄광을 중심으로 파업이 연발,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위험에 직면한 정부는 바웬사에게 자유노조 합법화를 등을 토의하기 위한 원탁회의를 제의, 설득하여 파업을 종결시켰다.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또 무엇을 지우고 있을까? 당연한 것들이 현실에서 기록되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사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생뚱맞게도 역사가란 직업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하는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 - 군인에서 상인 그리고 게이샤까지
다카사키 소지 지음, 이규수 옮김 / 역사비평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재조일본인 관련해서 참고가 될까해 봤던 책. 생각보다는 개설서 형식에 가까웠다.

각 시대별로 식민지 내 일본인들의 인구변화와 이동, 그리고 각 개인들의 회고와 기록을 통해 그들의 태도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지만,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라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일본 극우파의 역사관을 생각해보면 고무적인 일이지만, 때론 연구 속에 죄책감과 자책이 너무 드러난다는 느낌도.

그리고 일본 쪽의 연구 및 서술 스타일이 한국과는 꽤 많이 다르단 걸 다시 느끼게 된다.

세밀하다는 점에서는 배워야할 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나열식으로 가는 점은.. 글쎄..;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재조일본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광고인이 인문학 강독회를 한다?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 아닐 수도 있겠다. 저자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이니까.

인문학 계열의 모든 교수들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이 정도 수준의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내 생각은 부정적이다.

전공 강의가 아니라 폭넓은 인문학,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쉽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가령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을 풀어내는 장면들.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 알랭 드 보통

 

  사실 상대에 대한 전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어떤 한 면을 봅니다. 말한 마디의 한 컷, 그 사람이 나에게 얘기했던 한순간만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예쁘다, 멋지다 매력적이고 좋다고 생각한 뒤 나머지 부분은 다 상상으로 채우죠. 그 상상은 나의 욕망으로 채워집니다. 예를 들면 사랑에 빠질 나이에 누군가를 발견했는데 호감이 가면 상상을 하는 겁니다. 상대가 밥을 먹을 때는 이렇게 먹고, 지적 수준은 어느 정도일거라는 등 두세 가지만 확인한 후 상대에게 빠져들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다 나의 욕망으로 채운다는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상대가 내 욕망으로 채워진 부분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요. 내가 상상한 사람은 그러면 안 되거든요. 욕망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정작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되면, 너는 왜 그런 사람이냐고 말하죠. 내가 알던 너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보통 권력이라는 건 '뭔가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게임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것', 그게 권력입니다. 만약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둘 중 영화를 보고 싶거나 여행을 가고 싶거나 뭘 더 하고 싶은 쪽이 상대를 더 사랑한다는 겁니다. 사실 덜 사랑하는 쪽은 상관이 없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해, 뭘 하든 상관 없어"라고 적당히 무관심한 듯 물러서서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아요. 그래서 사랑에서의 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것이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알랭 드 보통

 

저자는 '다독'에 대한 강박증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이 부분에 정말 많이 찔렸다. 빨리 읽어야할 책도 있지만 되씹어야할 책도 있는 법.

많이 읽는게 능사는 아니다. 책을 천천히 되씹는 즐거움을, 그리고 그 효과를 이 책이 잘 알려준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권위가 있어야 하고, 무거워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그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래놓고는 같은 입으로 '인문학의 위기'니 '인문학의 대중화'니 이야기한다.

쉽게 접근한다는 것이 곧바로 경박을 의미하지 않는다. "광고장이가 왠 인문학이냐"라고 하고 싶다면 스스로 써서 증명해야 한다.

증명하지 못한다면 "허풍쟁이가 왠 인문학이냐"라는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거다.

어쨌거나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러나 매우 재미있는 인문학 강독회 강연록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부분을 읽으며 '역사서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봤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들고 들여다보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신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이에 대해 굉장히 시니컬하게 쓴 글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떤 소설을 말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열차 밑으로 몸을 던져 사망.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프랑스 지방 도시에서 비소를 음독하고 사망.

 

  아시겠어요? 첫번째 기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두번째 기사는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세번째는 <보바리 부인>이고요. 정말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신문에는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겨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드라마는 대단한 거죠. 그래서 신문을 읽으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놓치지 않고 봐야한다, 그 안에 무궁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근현대사 연구의 경우 신문기사를 꽤 많이 인용하게 되는데, 신문이라는 매체, 사료의 맹점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닌가?

그리하여 또 다시 신문기사와 똑같은 글을 생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왜 역사서술은 '인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는가?

그리고 다음 부분에선 '사건사'에 접근할 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싶었다. '미시적 우연이지만 거시적 필연'.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저는 이것이 톨스토이의 힘 같았습니다. 우리는 단호한 결정을 잘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쉴까 영화를 볼까, 이 남자를 사귈까 말까, 중국집에 갈까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갈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한단 말이죠. 이런 작은 결정만이 아니에요. 큰 결정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일을 해야 할까,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까, 집을 옮겨야 할까 등이 그렇죠. 책에서처럼 자살의 경우는 더욱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니까. 그래서 더 충동적일 수밖에 없어요. 톨스토이가 아주 정확하게 사람 심리를 따라간 거죠. 안나의 자살은 충동적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음식 메뉴를 두고도 한참을 고민하는 게 인간인데, 하물며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에는 얼마나 갈등이 심하겠어요. 생각은 있지만 실천하기는 힘든 일이죠. 그러니까 하나 둘 셋, 준비해서 가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뛰어내리는 겁니다. 모든 자살은 충동적이에요. 다만 개연성은 있어요. 미시적 우연이지만 거시적 필연인 것이죠. 미시적으로는 충동적인 것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늘 자살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안나도 마찬가지로 이미 자살을 생각했어요. 언젠가 내가 죽어버리면 브론스키가 고통을 받겠지, 하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돌아보니 아이가 있고 사랑하는 연인 브론스키도 있어서 결정을 못 하고 생각만으로 지나가죠. 그런데 기차역에서 충동적으로 결정해버린 거예요.

 

깔끔하게 정리된 현실이란 없다. 결국은 서술자가 재구성하는 것이고, 독자를 설득해 나가는 것이다. 각자의 목적에 맞춰서.

그리고 그 설득에는 이성적 설명도 중요하지만 감성적 서술과 압축도 필요한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척이나 인용이 길고 많아질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최근 몇 년간 내가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중 하나고, 또 아픈 책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르포기자이자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다. 이 책이 가장 좋은 증거다.

1936년, 조지 오웰은 한 진보단체의 의뢰를 받아 영국 북부 탄광지역 노동자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르포를 작성한다.

대부분의 먹물들이 그러하듯, 노동자의 실생활은 매우 낯선 것이다. 또 노동자의 가족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을 최저생계비, 연봉 따위의 숫자로 보는 것과, 그들이 사는 그곳에서 냄새를 맡는 것과는 천지차이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이따금 그런 곳들을 찾아가 냄새를 맡아볼(냄새를 맡는 게 특히 중요하다) 의무 같은 게 있다. 가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 게 낫겠지만 말이다.

나는 태운 기차는 탄광 쓰레기 더미와 굴뚝, 고철 무더기, 지저분한 운하, 그리고 통나무 자국이 가로세로 나 있는 잿빛 진흙탕 길을 지나쳤다. 삼월이지만 날은 끔찍이도 추웠고, 어디나 시커먼 눈 더미가 있었다. 기차가 도시 외곽을 서서히 빠져나갈 때는, 강둑과 직각 방향으로 뻗은 슬럼가의 작은 회색빛 집들이 차례로 줄지어 나타났다. 그중 어느 집 뒤뜰에서는 젊은 여인 하나가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부엌에서 나오는 배수관을 꼬챙이로 찌르고 있었다. 어딘가 막힌 모양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올 굵은 삼베 앞치마, 꼴사나운 나막신, 추위에 빨개진 팔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차가 지나갈 때 그녀가 올려다보는 바람에 나는 지척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둥글고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슬럼가의 젊은 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유산과 고역 때문에 스물다섯인데도 마흔은 돼 보이도록 지쳐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순간 동안, 내가 익히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느끼는 것하고 똑같이 그들이 느끼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리고 슬럼에서 자란 사람들은 슬럼밖에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오산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은, 까닭 모르고 당하는 어느 짐승의 무지한 수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모진 추위 속에, 슬럼가 뒤뜰의 미끌미끌한 돌바닥에 꿇어앉아 더러운 배수관을 꼬챙이로 찌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운명인지를, 내가 알듯 그녀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굉장히 강렬해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학 때 일했던 공장에서의 기억, 어릴 적 말 그대로의 산동네인 부산 감천 지역에서의 생활,

그리고 반딧불 교사회를 통해 경험한 대학교 뒷 산동네의 풍경.

이 모든 경험이 순진한(혹은 순진한척 하는) 먹물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 체험들이 간혹 잘못되면 다음과 같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 경험이 당연하고 그들은 그것을 당연히 감내하는 '인종'이라고.

하지만 위에 인용한 글처럼, 그들 또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광부들은 그런 것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 쉽다. 확실히, 그들이 당신이나 내가 느끼는 것하고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래 왔고, 그만큼 단단한 근육을 갖고 있으며, 너무 놀라워서 섬뜩할 정도로 민첩하게 땅속을 오갈 수 있다. 나는 겨우 비틀비틀 갈 수 있는 곳을 광부는 고개를 숙인 채 크고 활기찬 걸음으로 '달리듯' 간다. 막장에서는 갱도 지주 주변을 개처럼 네 발로 뛰어다니며 일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걸 즐긴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수십 명의 광부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모두 하나같이 '여행'이 고역임을 인정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들이 자기네끼리 갱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여행'이 언제나 중요한 화젯거리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이 중요하니 중요하게 여겨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치워버리는 게 더 쉬운 일이다.



탄광의 여건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젊을 때 땅속에서 허리에 마구(馬具)같은 띠를 차고 두 다리를 사슬로 이은 채, 팔다리로 기고 광고를 끌며 일하던 할머니들이 아직도 더러 살아 있다. 그들은 임신한 상태로도 그런 일을 하곤 했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 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지적 무지함과 정돈되지 않은 삶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까지 한다.

냉정히말해, 이건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죄책감을 죄없는 이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올 여름 폭우 때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감전사한 청소노동자에게 취한, 강남의 '중산층'들의 태도를 보라.

"너는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인간일 뿐이야", "그러게 열심히 좀 살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해"

이제 '누군가는 해야할 일'에서 '무능력한 인간들이 해야할 일'로 심화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심화논리(?)가 당사자에게도 효과적으로 주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노보다는 반성의 탈을 쓴 자책이 권장된다.



그러다 처음으로 가까운 주거지에서 실업자들을 보았을 때, 몹시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중 많은 사람들이 실직한 것을 '수치스러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대단히 무지했으나 해외시장을 잃어 200만 명이 일자리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그 200만 명을 인도 도박판에서 패가망신한 사람들보다 더 잘못됐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는 안핟. 하지만 그 당시에는 누구도 실업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실업이 계속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여전히 "실업수당이나 타먹고 사는 게으름뱅이"란 말을 썼으며 "그런 자들은 원하기만 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노동 계급 자신에게도 스며들었다.



대량해고로 생긴 수많은 실직자들을 보며 되뇌인다. '저런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어', '다들 저래도 먹고 살잖아'

그러나 오웰의 지적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하나의 통계 단위로 보기는 쉽지 않다".



이 모든 문제는 '계급'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오웰은 그 계급이 단순히 경제적인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경제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문화와 교육의 문제가 훨씬 더 뿌리 깊은 것이며, 그것은 종종 유전되기까지 한다는 거다.



내가 보기엔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아무리 지독한 사람일지라도 그 점에 있어서는 같았다. 하인이 많으면 사람이 금세 게을러지기 마련인데, 내 경우엔 이를테면 옷을 입고 벗는 일을 버마인 소년에게 맡기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것은 그가 버마인이고 역겁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국인 하인이었다면 그렇게 친밀한 일을 맡긴다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육체노동을 하고 난 사람에게 당연히 나는 땀냄새와 얼룩이 묻은 옷 따위를 보며 인상을 찡그린다.

이건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의 수입과 노동자의 수입차가 엄청나기 때문이 아니다. 이건 문화의 문제고 교육의 문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회주의자 먹물들은 두 팔 벌려 노동자를 안아야만 한다고 외친다. 동정이 연대의 가장 큰 무기인냥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정은 현실에 마주하자마자 확 겁에 질리게 되고, 결국 정 반대의 길로 치닫게 된다.



우리 모두 계급 차별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그것이 정말 없어지기를 진지하게 바라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모든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은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내가 정말 그것을 원하는가를 물어야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다른 것은 별도로 치더라도, 영국에서 우리가 누리는 높은 생활수준은 우리가 제국을, 그중에서도 인도나 아프리카 같은 열대 지역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영국인이 상대적으로 안락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인도인 500만 명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여야만 한다. 그것은 참으로 못된 일이지만, 우리가 택시에 발을 들여놓거나 딸기 곁들인 크림 한 접시를 먹을 때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쓰곤 한다.

"실은 나도 보수 쪽에 가까운데..." 그리고서는 그 뒤에 (우리 사회에서) 보수가 아닌 말을 덧붙인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자기 변명이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지만 나는 보수니까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아. 내가 욕먹을 이유는 없어."

이건 오웰이 표현한대로 "제국의 단물은 다 빨아들일 테세이면서, 제국을 지키는 사람들을 조롱함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계급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 진전도 있을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랄 '필요'는 있되,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 바람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지 오웰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패배주의? 허무주의? 냉소주의?

그렇지 않다. 그가 사회주의자(사회주의가 아닌)들을 비판하는 바탕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며, 그래야만 한다는 '믿음'이다.

때문에 그는 '정반합'이니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니 '투쟁'이니 하는 말들을 쓰는 것은 되려 좋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운동을 그 신봉자들로만 판단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사회주의에 대한 통념이 사회주의자는 따분하거나 비위에 안 맞는 사람이란 관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그런 것 따위에 영향을 받는 게 유치한 일일까? 아니면 어리석은 일일까? 심지어 경멸할 만한 일일까? 전부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으니, 명심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해고당하는 꿈을 자주 꾸는 모든 은행원은, 파산 직전을 오가는 모든 가게주인은 본질적으로 같은 처지이다. 그들은 침몰하는 중산층이며, 그들 대부분은 세련됨이 그들을 띄워주는 부표인 양 세련됨에 매달린다. 그러니 구명기구를 던져버리라는 말부터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중산층 가운데 상당 부분이 갑자기 우파 쪽으로 대거 몰려갈 위험이 상당히 크다. 지금까지 중산층의 약점은 단결하는 법을 전혀 못 배웠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을 경악하게 하여 우리에게 '맞서' 단결하게 만든다면, 악마를 길러내는 셈이다.



이상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봐야만 하고, 그 현실을 보는 것은 매우 간단한 '사실'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최근 탈당을 앞두고 당게시판에 가서 짜증이 정말 가슴부터 밀려올라오던 것이 왜였는지, 명확한 답을 얻은 것 같다.



사회주의자들은 앞으로 큰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들은 착취자와 피착취자를 가르는 선이 정확히 어디부터인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본질을 고수하는 게 중요한데, 여기서 핵심은 수입이 적고 불안정한 모든 사람은 한 배를 탄 이들이며 한편이 되어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정말 간만에 줄을 벅벅 그어가며 본 책.

현장감 넘치는 묘사, 뼈아픈 자기성찰, 거기에 오지 오웰 특유의 유머감각과 필력이 더해진 이 책은 '필독서'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MI 클래식 세기의 레코딩[31CD][Special Limited Edition]
말러 (Gustav Mahler) 외 작곡, 클렘페러 (Otto Klemperer) 외 지 / 워너뮤직(팔로폰)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쏟아져나오는 박스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