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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의 과제
요한 호이징하 지음, 김원수 옮김 / 아모르문디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중세의 가을', '호모 루덴스'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대가 요한 호이징하의 소품. '문화사의 과제'라는 짧은 논문과 '역사개념의 미적 요소에 대하여'라는 대학교수 취임 연설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대가의 글답게, 후학들에게 잊기 쉬운 원칙을 상기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문화사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믿음'을 차분히 설명한다.
역사적 통찰력의 발전은 원사료의 비판 검토한 후에 행해지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자료를 발굴해내는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32쪽)
질문이 명료하게 제기되지 못하는 한, 어떤 명료한 대답도 나올 수 없다. 질문이 모호하다면 그 대답은 기껏해야 질문만큼이나 모호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학의 결함은 연구대상의 과도한 전문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모호성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34~35쪽)
역사적 관계(문맥)의 개념 속에 덧붙여지는 다양한 가치적 특성을 지닌 새로운 이해 요소들은 꽃다발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꽃들과 같다. 그리고 그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꽃다발 전체의 외관을 바꿔놓는 것이다. (61쪽)
요컨데, 역사학에서 체계적 원리들이 갖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할지라도, 역사연구의 1차적 임무는 개별 사건들을 그 자체로서 탐구하는 것이지 어떤 일반적 범주의 유형이나 특별한 사례로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52쪽)
100년도 더 전에 씌여진 글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호이징하 특유의 성찰, 통찰이 100년을 넘어서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문화사를 위협하는 어떤 위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역사가 자신이 전지전능한 조물주처럼 되어야 한다고 믿는 그러한 유혹적인 생각에 도사리고 있다. …(중략)… 역사의 확고한 존재근거는 그 애매모호한 성격, 즉 역사는 규범적인 학문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고 하는 바로 그 사실 속에 놓여 있다. (120~121쪽)
진지한 역사가들이 그 무엇보다 두려워한 것이 바로 그들의 작업이 예술로 치부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람프레히트가 그것에 반대한 최초의 인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가 모든 점에서 과학의 규준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또 예술과의 연관성이 뚜렷하다고 해서, 역사를 예술의 하나로 취급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수차례 제기되고 수차례 답변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의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간과되어온 제3의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과학과 예술에 대한 정의가 오히려 자의적일 수 있으며, 그 둘이 겉보기처럼 그렇게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 그것입니다. (153쪽)
여기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대중화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 고민은 요즘도 어딜가나 제기되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대가의 글을 읽으며 좌절도 하게 되지만, 왠지 위로를 받는 느낌이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고민을 모자란 우리들만 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역사와 과학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물론 호이징하는 아무리 과학의 시대라할지라도 역사가 과학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것은 분명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그보다 후배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루이스 개디스보다도 더 현대적인 관점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http://bloody_wings.blog.me/70114328126?Redirect=Log&from=postView) 객관과 과학이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역사학에 있어 '직관', '통찰'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성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곧장 강력한 지적 작업을 생각하고, 가장 단순한 역사적 구성에조차 이성적 기능과 직관이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오직 피상적으로 보았을 때만 역사적 해석을 순수하게 이성적인 '설명'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 해석은 오히려 "우리의 감성적 힘을 그 주제에 완전히 집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프랑어가 썼듯이, "실제 과정은 분석될 수 없"으며, "역사가의 예상과 해석과 육감은 신비로운 직관에 필적할 만한 것"입니다. (160쪽)
어떤 역사적 인물을 되살려내기 위해 얼마만큼의 사실을 필요로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역사가의 직관력뿐입니다. (175쪽)
인상 깊었던 것은, 한 교수의 취임연설(은퇴연설이 아니다!)이 이렇게 깊은 통찰과 적절한 표현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33살-_- 때 쓴 글이란 점이 또 나를 좌절하게 만들지만, 어쨌거나 대가의 글은 곱씹어 읽을 수록 맛이 난다.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것이 역사가의 일상적 임무는 아닙니다. 우리는 곧 이론의 파노라마에서 머리를 들어 비판적 연구라는 비천한 작업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광대하고 또한 아름다운지를 항상 기억합시다. 때대로 우리는 힘겨운 작업의 압박에서 벗어나 쉬면서, 우리의 힘은 한계가 있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음을 새삼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가의 책임이 막중함을 다시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빛에 의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객관적 진리라는 이상에 자기 마음의 눈을 보다 단단하게 붙들어 맬 수 있는 존재, 역사가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182~183쪽)
동료나 후배 역사가들에게 이만큼이나 가슴을 뛰게하는 선동문이 있을까? 역사는 과학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어찌보면 기득권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이보다 더 이상 설득력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혹시나 오랜 후에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연설문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학문적 필요 때문에 차가운 머리로 이 책을 집어들었지만, 결국 뜨거운 가슴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던 나의 체험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