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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김성균 옮김 / 이레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소규모의 콘서트 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가수가 몇 곡을 끝내고 잠시 이야기를 해야할 무렵, "잘생겼어요", "너무 이뻐요" 등의 말이 한 마디 툭 튀어나오고 다들 하하하 웃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콘서트장의 관객'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면 이런 장난기도 쉽게 발휘하진 못할 것이다. 그만큼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이 되면, 혼자일 때의 '나', 그리고 몇몇 지인들 속의 '나'와는 또 다른 '나'가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평소에 차분하던 사람도 축구장이나 야구장에서 극도의 흥분상태에 도달하듯이. 이런 알듯 모를듯한 상태를 '군중심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귀스타브 르 봉은 1841년 생으로서, 이미 100년도 전에 이런 군중심리로 인한 현상을 분석해냈다.
귀스타브 르 봉은 '대중'의 등장이 당시 사회의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하고, 이 대중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현상의 분석을 시도한다. 얼핏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 같은 작업을 상당히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군중이 어떤 부분에 민감하고 또 어떤 부분에는 무감각한지 꽤 정확히 분석해내고 있으며, 대중을 향한 프로파간다에 대한 언급 또한 현재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게끔 만든다. 다음 인용한 부분만을 읽어봐도 전혀 낯설지 않은 얘기들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선거를 앞둔 시절이라면.
정치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 가운데 하나는 국민에 세례명을 부여하거나, 군중이 싫증을 느낀 사건사물의 명칭을 조금이라도 참신한 명칭으로 바꾸어주는 것이었다. 단어들은 잘 선정되기만 하면 가장 불쾌한 사건사물에 부여되어도 군중이 수용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 (92쪽)
그러나 확언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최다한 동일한 용어로 반복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효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나는 나폴레옹이라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유일한 수사법은 오직 반복이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언된 것은 반복됨으로써 끝내 증명된 진실로 인지되어 군중의 정신에 각인될 수 있다. (107쪽)
그런 흑색선전을 실증할 증거 같은 것을 제시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만약 경쟁후보자가 군중심리학을 전혀 몰라서 또다른 확언과 반복을로 흑색선전에 대응하지 않고 논증으로 반론하려 든다면 결코 당선되지 못할 것이다.
후보자가 전단지에 명시한 공약은 경쟁자로부터 반격당할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거창한 과장은 금물이지만, 연설로 하는 공약은 과장하고 남발해도 무방하다. 가장 거창한 개혁을 서슴없이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거창한 공약은 대단한 효과를 발휘할 뿐 아니라 실현 가능여부와도 무관하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지시하고 환호한 선거공약 덕분에 당선된 후보자가 공약을 실현시킬지 여부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150쪽)
뿐만 아니라 '이미지 시대'에 대한 예고도 꽤 놀랍다. 지금에 비하면 당시를 '이미지의 범람'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텐데도, 저자는 마치 2012년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서술하고 있다.
군중의 상상력에 충격을 주는 것은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그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경우와 군중에게 알려지는 방식이다. 요컨대 그것들이 군중의 마음을 완전하고 확실하게 사로잡으려면 반드시 경악할 이미지를 생산해야 한다. 군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기술을 아는 것이 곧 그들을 지배하는 기술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61쪽)
현상의 파악이나 문제의식은 분명 날카롭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했던 고민은, 당대인으로서 저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책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그마저도 모두 비판의 핵심에 두어야 하나라는 것이었다. 동시대의 인물이 쓴 책이 아니라면 이런 고민은 언제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겠지만, 유독 이 책은 이런 고민이 더 심했다. 저자의 비판과 분석이 매우 날카로운 반면에, 또 그만의 선입견과 위험함도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일단 다음과 같은 시선들은 당대 서구인들의 일반적인 한계라고 치고 넘어가자.
군중의 추론방식은 에스키모나 식인종이나 노동자의 추론방식과 닮아 있다. (57쪽)
주목할만한 것은 군중의 고유한 특성들 가운데는 열등한 진화유형에 속하는-여성, 미개인, 어린이 같은-인간들을 관찰하면 거의 언제나 발견할 수 있는 여러 특성들-충동성, 과잉반응성, 추론력 결핍, 판단력과 비판정신 부재, 과장된 감정표현을 포함하는 특성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32쪽)
하지만 '군중'이라는 핵심 논제를 가지고 접근을 하더라도, 저자의 서술이나 관점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대중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때문에 대중에 대한 분석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예를 들어 대중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해져서 정부의 의원들이 대변인 정도로 '전락'했다는 평을 내리는 한 편,
정치생활에 민중계급이 진출했다는 사실-그러니까 현실적으로도 민중계급이 지배계급으로 차츰 변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도기인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인상적인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중략).... 군중은 이권단체들을 속속 설립하면서 기존의 권력기관들을 차례로 항복시키는 중이고, 모든 경제적 법률을 무릅쓰고라도 노동조건과 임금을 자체적으로 규제하려는 노동조합들도 조직하는 중이다. 그런 단체나 조합들은 창의력과 독립성을 완전히 결여한 자들을 대의원으로 선출하여 정부가 귀속된 의회에 진출시켰는데, 그런 대의원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선출한 위원들의 대변인 노릇밖에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16쪽)
그러면서도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의 지능이 엄청나게 낮으며 판단능력이 전혀 없다고 비난을 서슴치 않는다. 다음의 인용 문구처럼, 인류의 문명을 창조하고 지도한 자들이 오직 소수의 엘리트였다면, 그들이 지금은 왜 그렇게 멍청하고 판단능력도 없으며 기억력조차 없는 대중에게 밀릴대로 밀려 전락하고 말았는가? 그리고 앞서 언급한 프로파간다 등으로 대중을 조종할 줄 아는 지도자들의 존재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럴지라도 지금까지 문명들을 창조하고 지도한 자들은 오직 소수의 지식귀족들이었지 결코 군중은 아니었다. 군중은 오직 파괴력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군중의 규칙은 언제나 야만적인 수준에 머문다. 하나의 문명은 정립된 법규와 규율, 본능적 상태를 이성적 상태로 전환시키는 절차, 미래에 대한 예상, 고도화된 문명을 조건으로 삼는다. 스스로를 방치하는 군중들은 이 모든 조건을 실현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실로 입증했다. (18쪽)
여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성을 상대로 줄기차게 투쟁해온 감정은 결코 이성에 굴복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65쪽)"라는 서술조차 대중에 대한 저자의 공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의 이 '대중'은 시대 정황상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저자가 공포에 떨고 있다는 의심은 확신에 가까워진다. 공포가 개입하는 순간, 저자 특유의 명철한 분석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억측과 '감정적'인 대응만이 남게 된다. 각종 교육이 보편화되면서 범죄발생률도 증가했다는 억지 주장이나(80쪽), 교육제도가 사람들에게 "삶의 여건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심어주고 그런 여건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자극"(81쪽)한다는 주장이 '우려'로 읽힌다는 점이 그 증거가 될 수 있겠다. 그래서 교육에 대해 한다는 주장이, 왠지 몇 년 전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과 꼭 닮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경험만이 우리의 가증스러운 교과서들과 가련한 시험절차들을 대신하여 산업교육을 도입할 필요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산업교육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그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피하려고 드는 농촌이나 공장이나 식민지의 사업장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82쪽)
오늘날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발견되는 곳도 교실이고 라틴족들이 쉽사리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곳도 교실이다. (87쪽)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비판도 충분히 가능하다. 저자는 '군중'에 대해 여러가지 특성을 분석해내고 있지만, 군중이 어디 하나의 '생명체'던가? 군중이 일개 엘리트보다 훨씬 낮은 '지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군중이라는 집단이 가진 특성이라고 볼 수 없다. 여러 '개인'이 모였을 때, 하나의 결론이나 행동방침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지극히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설사 군중이 됨으로서 여러가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특성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또한 각 개인들이 '군중'의 일원이 될 때 나타나는 '인간' 개체의 문제인 것이지, 그것이 '군중'의 특징이자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저자는 군중들이 현혹되는 '이미지'의 위험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저자가 말하고 있는 군중 또한 군중의 '이미지'에 불과한 것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사람들이 여럿 모였기 '때문에'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들을 모이게 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환경 또한 군중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저자는 군중심리가 촉발되는 이유를 군중에서만 찾고 있다. 그들이 '왜' 모이게 되었고 그들의 낮은 지능으로 하는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지독한 엘리트주의가 거슬리지만, 대중(여론) 정치를 한 번 고찰해본다는 측면에서 읽어볼만한 책. 하지만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책은 아니라 책장 넘기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처음으로 완독한 전자책. 이 또한 완독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다 읽는데 꽤 힘들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