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거짓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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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이의 이름이 여러 사람에게 친숙히 들릴 것 같진 않다. 대신 그가 쓴 대표작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화한,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더 리더> 얘기를 꺼내면 '아하' 소리가 절로 나올지도. 영화에 문외한인 나도 <더 리더>는 본 적 있고, 이후 원작 소설까지 찾아 읽으며 저자의 탁월한 문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의 책에 내가 제대로 관심 갖기 시작한 계기는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2014년 제4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다.

  정작 잘 알려지지 못해 아쉬운 감도 드는데, 이 박경리문학상은 한국판 노벨문학상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빼어난 작가들을 소개한다.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상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희소하고 매력적인 해외 작가들을 폭넓게 조망하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이를 역대 수상작가 목록이 증명한다). 나도 훌륭한 외국 작가를 만날 목적으로 해당 목록을 참고하는 편이다. 베른하트트 슐링크는 네 번째로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로, 소설을 쓰기 전에 법대 교수를 재직한 특이한 약력의 소유자다.

  법대 교수 출신 소설가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답게, 그는 초창기 범죄 추리 소설을 몇 편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 이후 슐링크는 다양한 소재를 아우르며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발돋움했다. 이번에 내가 소개할 단편집 『여름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제목의 어감이 다소 낯설다.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명사를 나란히 배치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물음은 소설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될 텐데, 여기 실린 일곱 가지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저자가 뜨거우면서도(여름) 서늘한(거짓말) 우리네 삶의 폐부를 들춰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사람이 한 번쯤 겪기 마련인 사랑의 유혹, 질투심, 호기심...... 그 모든 걸 충족시키려 저지른 거짓말들.


  이렇게 보니 『여름 거짓말』은 심리 소설로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을 하는 행위 자체가 어떤 저의를 감추고 남을 속이는 거니까. 왜 그런 거짓을 고하게 됐는지를 (속인 사람이) 밝히거나 (속은 사람이) 밝혀내는 것도 이 소설집을 읽는 묘미겠다. 이중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단편 「바덴바덴에서 보낸 밤」은 바람 피우는 남자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 옹호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이야기의 주인공 남자는 희곡작가로서 자신이 쓴 각본의 초연을 보러 바덴바덴으로 향했다. 테레제와 함께. 그녀는 훌륭한 동행자였고, 그를 즐겁게 해줬다. 하지만 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다음 약혼녀 안네를 마주하자 남자는 양심에 찔렸다. 그녀는 자세한 사정이야 몰랐으나 그가 여행 중에 혼자 있지 않았음을 의심하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외도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던 안네. 그녀에게 지난 바덴바덴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해야 할까?

  그는 말하지 않기를 택한다. 그녀를 배신하려 거짓말한 것은 아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고, 다만 그러는 편이 그녀를 충분히 안심시킬 수 있고 둘 사이 관계에 있어도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 잠시 그는 안네에게 브렌너스 파크 호텔에서 보냈던 밤의 진실을 말해줄까 생각해보았다. 그래봤자 괜한 야단법석만 빚어낼 것이다! 그깟 진실이 한 시간 내내, 아니, 두 시간 동안이나 안네에게 둘러댔던 말들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뒤늦게 테레제와 보냈던 밤에 대해 고백하는 것은 괜히 그 일을 원래보다 더 부풀리는 것 아닌가? 앞으로 언젠가, 그래, 앞으로 언젠가 안네에게 진실을 말하리라. 미래를 위해 그는 약속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아무 문제도 없어, 안네. 약속할게. 울 필요 없어. 진실을 말해 주겠다고 약속할게."

p.79


  이런 거짓말은 당장의 평화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 다음은? 아시다시피 허술한 거짓말은, 그리고 끈임없이 의심하는 사람 앞에서 한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나게 마련이다. 실제로 그날의 진실을 안네가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둘은 대판 싸웠다. 사실 일방적으로 남자가 욕을 먹긴 했지만. 남자가 잘 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안네가 그의 잘못을 심하게 부풀리고 있다는 것도 얼마간 사실이다. 그는 테레제와 함께 있었지만 그 이상의 관계를 갖지 않았다. 안네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남녀가 호텔에서 며칠 밤을 함께 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이성을 잃은 안네는 그의 면전에 침을 뱉고 손찌검을 했다. 그가 손 쓸 새 없이 안네는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다.

  이 순간에 그는 안네의 이해를 바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도 과거 여자친구의 외도에 좌절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느끼는 이 착잡함은, 안네를 어떤 말로도 설득시킬 수 없을 거라는 실상에 있었다. 아무리 그가 테레제와 아무 일도 없었음을 설명해도 그녀는 듣지도, 들을 생각도 갖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녀는 남자의 말을 믿지 않기로 작정했으며 안네가 듣게 될, 들어야 할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사건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하는 게 의미 없었다.



  - 그 역시 안네가 주도하는 비판과 자아비판의 의식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저 즐겨야 하나? 마음속으로 웃으면서 그녀가 시인을 하라고 하는 것은 그냥 다 시인해야 하나?

  그러나 시인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으면 전부 규명될 때까지 그녀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이렇게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해명을 요구할 것이고, 또 그에 따른 비판이 이어질 것이다.

p.96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의미 없는 진실을 붙잡으며 그녀와 맞서야 하나, 또 다른 비난을 부를 줄 알면서도 더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을 시인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그가 테레제와 잤다고 거짓말하는 편이 (적어도 그녀와 둘의 관계에 있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면,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해야 맞을 테다. 그런데 왜 그는 주저하나?

  앞선 상황, 바덴바덴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할지 말지의 문제는 새 얼굴로 찾아 든다. 이제 상황은 그가 바덴바덴에서 테레제와 잤는지 안 잤는지의 문제로 넘어 왔다. 두 문제는 같은 듯 다르다. 아무래도 후자의 상황에서 문제가 구체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분명해졌기도 하나...... 내 생각에 그가 주저하는 진짜 이유는, 전자가 도덕적 결함을 회피하는 거짓이라면 후자는 인정하는 거짓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런 얘기다. 위 상황처럼 자기 잘못이지만 거짓으로 감출 수 있는 일에 우리는 주저 없이 거짓말을 한다. 거기에는 평화라는 꼬리표가 붙고 너와 나(즉 개인이 아닌 다수)를 위한 선의의 거짓으로 위장된다. 한편 자기 잘못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인정하는 일에 우리는 열불을 낸다. 아무리 공리를 위한 일이래도 내가 처한 억울함은 지워낼 수 없다. 이 둘의 차이는 당사자성에 있어 보인다. 그 거짓을 통해 다수가 이익을 보는 한이 있어도 내게 득이 못되거나 해가 되면 쓸모없다. 내 이익을 먼저 챙긴 다음, 이를 합리화할 명분으로 다수의 이익을 돌아보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거짓이 정말 안네에게 이익이 될지 소설 속 남자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진실보다 합리적인 거짓의 쓸모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지 않을까? 내 이익보다 앞서는 공리는 말 뿐인 허상에 가깝지 않을까?


  이런 당사자성을 지적하는 또 다른 단편이 『마지막 여름』이다. 여기서 주인공 할아버지는 앓고 있는 지병을 숨긴 채 가족들과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아내도, 자식도, 손주도 모르게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방법이야 간단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방안에서 약을 투약한 다음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거실로 돌아간다. 그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위안 삼아 눈을 감을 것이다. 그가 피곤해 잠든 줄 아는 가족들은 다음날이 돼서야 사실을 알아차리겠지. 하지만 계획을 실천하기도 전에 아내에게 약을 들킨 그는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 아내는 그에게 크나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며, 그의 거짓이 만든 세상에서 자신은 "단역배우(본문, p.262)"일 뿐이냐고 지적했다.

  그밖의 다른 단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야기마다 제각기 다른 거짓말을 품고 있고, 그 거짓을 바라보는 입장 차이도 생각해볼 문제를 던진다. 여담이지만 소설 속에 물음표가 정말 자주 등장한다. 슐링크 소설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번역가 분은 "작중인물들은 자신이 설정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자신이 행복이라고 느꼈던 것이 나중에 가서 보면 행복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중략) 자신이 생각했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주인공은 인생의 다른 가정을 해본다. 슐링크의 작품에 수많은 의문문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이런 의문문들은 독자에게 생각의 갈림길에서 나름의 결정을 해야 하는 여운을 남긴다.(365)"라고 말한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소설 속 주인공들도 스스로를 향해 물음표를 남발하듯, 우리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이를 명쾌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정답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 물음표 속을 헤짚다보면 말이다. 나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지금 끄집어냈다. 다시 읽게 되는 날에 또 다른 생각이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지 않을까? '여름'과 '거짓말'이라는 두 키워드의 간극 속에서, 이토록 매혹적이고도 거짓된 이야기들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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