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선생님은 K의 수호천사 역을 자초한 거다. 그에 더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꺼림직한 반응을 보인 미망인을 두고 도덕적 잣대를 들먹이며 속으로 지탄했다 - 그 집 주인이 정작 하숙생 신세인 선생님이 아니라 미망인이었음에도.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처음에 입을 꾹 닫고만 지냈던 K도 미망인 식구와 친해졌고 그들도 K를 어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생님은 아무하고도 친해지지 않으려 한 K의 폐쇄적인 성격이 그를 좀먹는다고 생각하곤 했다.
문제는 이제 선생님 쪽에서 발생했다. 어느 날 대학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미망인의 딸과 K가 한 방에서 나란히 떠드는 소리를 선생님이 들은 것이다. 선생님이 나타나자 여인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고 K는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그때 선생님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K가 미망인의 딸을, 혹은 미망인의 딸이 K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게다가 K의 성격이 밝아진 이유가 자신 덕분이 아니라 미망인의 딸 덕분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선생님을 옭아맸다. 왜인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마음속에 K는 자기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하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생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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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 줄거리를 늘여 쓰면 이야기도 길어지고 정작 내가 하고픈 말도 못 할까 봐 이만 줄인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여기까지만 듣고도 뒷내용이 어찌 될지 짐작할 수 있을 테다. 더군다나 1부의 선생님이 보인 행적까지 종합하면 그들의 삼각관계가 비극으로 치달았다는 것도.
나 또한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은근히 강조했는데, 선생님은 남에게 호의를 자처하면서 진짜 상대방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생각지 못한 치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행동이 무조건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고 본 도덕적 강박도 있었다(이는 어린 시절 작은 아버지께 배신당한 트라우마로 생긴 의식일지도 모른다).
이런 도덕적 강박이 생각대로 먹히지 않자 되려 선생님은 K에게 반발심을 가지고 말았다. 분명한 악의를 갖고서 해코지할 속셈까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언제든 K를 져버릴 준비가 돼 있던 셈이다. 그 결정타가 향후 있을 K의 고백 사건이다. K가 미망인의 딸을 좋아한다고 밝혔을 때, 물론 선생님은 그를 축해해줄 입장이 못 됐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정당당히 그의 연적을 자처했어야 했는데. 선생님은 몰래 미망인을 찾아가 딸을 사랑한다고 고백해버렸다. 여인을 K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온 행동이었지만, 그 일은 여러 모로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