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이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어슐라가 한 발짝 앞선 특징이기도 하다. 1대 렌스키와 2대 애나는 자아에 대한 고민을 끌어당기긴 하나 어디까지나 가정에서의 역할로 한정됐다. 아무래도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굳이 직업을 갖지 않고도 생계가 어렵지 않던 시절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슐라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브랑윈 가에 머물며 편히 살 수 있음에도 어슐라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경제력을 갖춰야지 독립적인 주체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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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직업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어슐라가 남성의 세계라 일컬은 직장은 예상대로 남성의 논리로 돌아갔기에 그녀로서는 오히려 제 자아를 직업의 틀 속에 욱여넣어야 했다. 어슐라가 첫 직장으로 삼은 초등학교에서 얼마나 부푼 꿈을 꿨던가. 그러나 교사 노릇이란 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깡그리 무시했고, 교장은 실적 없는 교사들을 내쫓는 궁리나 했으며, 동료 교사들은 매사에 부정적이었다. 그녀도 가르침을 받는 학생보다 그 학생이 제출한 숙제에 더 눈길을 돌렸다. 자아실현을 꿈꾸며 시작한 일이 그녀를 점차 잠식해 가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여러 동료 교사들은 그런 현실을 하등 문제 삼지 않았다. 대체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교육 체제와 관료제를 받아들이는 식이었다. 어슐라도 차마 이 현실을 고치려 들지 못하지만, 무언가 잘못됐음을 분명히 인식했다. 이는 어슐라와 다른 동료의 차이점이자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직업의 세계는 남성의 무대, 즉 이미 남자들에게 익숙한 세계였다. 그래서 기존의 불합리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일에 남자들은 길들여져 있었다. 처음 직장에 발을 디딘 어슐라에게 보이는 것들이 외려 그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