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5
D.H. 로렌스 지음, 김정매 옮김 / 민음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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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긴 소설이 주는 충만감이랄 게 있다. 이야기가 길면 길수록 그 안에 담긴 등장인물과 사건사고와 생각할 거리의 수가 늘어날 테고 시공간적으로 폭넓은 배경을 종횡무진하는 체험이 가능해지는 덕분이다. 무엇보다도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오는 보람도 무시할 수 없겠다. 로렌스의 『무지개』는 도합 900페이지 분량의 두툼한 2권짜리 소설이다. 소설은 브랑원 가의 톰과 이방인 렌스키의 만남으로 시작해서 그들의 딸, 손녀로까지 발을 넓힌다. 그리하여 방대한 분량의 소설은 또 방대한 가문의 서사로 뻗친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도 보람을 느끼지 않기란 쉽지 않을 테다.

1.

브랑윈 가문은 본래 농장의 대지주다. 그들보다 훨씬 앞선 세대부터 농사일을 시작했기에 브랑원 가는 넓은 밭과 하늘, 그리고 교회 첨탑이 우뚝 솟은 시골 풍경에 아주 익숙하게 자랐다. 그런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노동, 활기, 번창, 상속이었다. 남자들은 몸통을 낮추고 땅이나 말의 등판에 딱 붙여 일했다. 여자들은 몸통을 들춰서 시골 바깥의 상류사회를 바라보고 동경했다. 때마침 영국 사회는 한창 산업화의 바람이 불어 교육, 공장, 도시, 새로운 직업과 자아실현 문제가 새로 꿈틀대는 중이었다.

작가의 얼굴

그래도 브랑윈 식구들은 농사일에 전념했다. 오래된 습관이 바로 깨지는 법은 없고, 변화는 서서히 찾아들기 마련이다. 이때 어릴 적부터 시와 자연을 사랑했던 브랑윈의 막내아들 톰은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여인은 폴란드 출신으로, 남편과 사별한 뒤 어린 딸을 데리고 이곳 시골에 찾아왔다고 한다. 톰은 갈수록 그녀를 향한 마음이 커져간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결혼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 사이가 원활하지는 못했다. 톰의 아내가 된 리디아 렌스키에게는 과거가 있었다. 그녀의 전남편은 폴란드의 독립운동가였는데, 애국주의라는 강력한 신념 하에 항상 무언가를 하느라 바빴다. 그녀에게 전남편은 사실 없는 사람과 같았다. 전남편은 항상 정의를 운운하며 사회로 나가 싸웠지만 가정 일은 매번 뒷전에 뒀으니 말이다. 그래도 렌스키 남편의 비위에 맞춰 알아서 행동해야만 했다. 남편이 곧 정의였으므로. 그 일이 결국 남편을 죽음으로 내몰았더래도.

그러니 렌스키가 조용하고 수동적인 여인이라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폴란드에서 꽤 지체 높은 집안 출신이었던 그녀로서는 브랑윈 가문을 높게 칠 수 없었을 테다. 반면 톰은 그녀가 여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딴에는 아내란 남편에게 말도 건넬 줄 알고 살갑게 대해줘야 한다고 여긴 것 같다. 그 둘은 서로를 사랑하긴 하는데 어느 하나 내색하고 표현하는 일에 서툴렀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지레짐작하며, 상대방을 두려워하고, 속으로 울분을 터뜨렸다. 그들은 싸우고 사랑하기를 반복한다.

렌스키와 브랑원의 첨예한 대립

2.

이들을 지켜본 어린 딸 애나는 다른 길을 걷는다. 애나는 어머니를 닮아 고고한 혈통을 알게 모르게 중시했고 새아버지를 닮아 풍요로운 재산을 누릴 줄 알았다. 이 같은 성장 배경으로 그녀는 완만하고 밝은 성격을 갖추되 종종 남에게 불만을 품으면 모멸차게 공격할 줄도 알았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신앙을 배울 때도 그녀의 마음에 피어난 생각은 다소 반항적이다. 그녀 딴에는 신앙심이란 마음속에 있는 동안은 격렬하게 감동적이지만 목사의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천박해진다고 봤다.

이 같은 생각은 나중에 남편 될 사람, 윌리엄을 만나면서 더 날 서게 된다. 두 사람은 사촌 관계로 교회에서 처음 만나게 됐다. 당시 애나는 윌을 어딘가 서툴고 모자란 녀석이라 보고 무시할 생각이었지만 찬송가를 우렁차게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역시 그는 어딘가 모자라고 우스꽝스러웠던 것이다! 그 일로 애나는 윌을 자꾸 떠올렸고, 그와 친해졌으며, 마침내 결혼했다.

이 첫 만남에 주목하자면, 윌리엄과 애나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찬송가를 부를 때 그는 한껏 진지했을 것이다. 그런 진지한 태도, 어찌 보면 지나치게 과장된 경건함이 애나를 웃기게 하지 않았을까? 애나는 종교의 의미를 고찰하지도 않고 무작정 믿는 사람들을 깔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바로 그 중 하나였고. 결혼 후 윌리엄이 한창 아담과 하와 조각상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하자 애나는 성경 속 내용을 두고 그와 언쟁하기도 한다.

"왜 목각을 계속하지 않아요? 아담과 하와 상을 왜 끝내지 않아요?"

이렇게 묻긴 했어도 아내는 아담과 하와 상에 관심이 없었고, 남편은 그 조각에도 또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아내는 하와의 모습을 보고는 "꼭 작은 꼭두각시 같네요."라고 빈정댔다.

"왜 저렇게 몸집이 작지요? 아담은 하느님만큼이나 몸집이 큰데 하와는 꼭 인형같이 만들었군요.

아내는 계속해서 말했다.

"여자가 남자 몸에서 생겨났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모든 남자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남자들이란 얼마나 무례하고 건방진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무지개 1』,

민음사, p.318-319

애나가 종교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애나는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얘기를 믿을 수 없었고 상처 난 예수의 몸을 전시하는 피에타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것의 의미를 물어봐도 누군가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바로 옆의 남편 윌리엄 또한 그렇지 않은가.

"그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야."

남편은 격렬한 어투로 냉혹하게 맞섰다.

"당신은 알고 있는 것만 조롱하고 모르는 것은 못하지."

"제가 무얼 몰라요?"

"사물의 의미지."

"그럼, 그 의미가 뭐예요?"

그는 대답하기를 꺼렸다.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도대체 그 뜻이 뭐란 말이에요?"

아내가 다그쳤다.

"부활의 승리지."

아내는 주저하며 낭패감을 느꼈다. 공포가 엄습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다 무언가? 어떤 강력하고 어두운 존재가 그녀 앞에서 뻗어나가는 것 같았다. 결국 그건 놀라운 것인가?

그렇지만 그건 아니야, 그녀는 이를 부인했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무지개 1』,

민음사, p.295

"물이 포도주로 변했든 안 변했든 그건 나에게 별 상관없어. 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니까."

그가 말했다.

"그래, 있는 그대로가 뭐지요?"

아내는 기대에 차서 다그쳐 물었다.

"그건 성경 말씀 그대로지."

그런 식의 대답에 아내는 격분해서 남편을 멸시했다. 성경에 대해서는 나서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로 하여금 그를 멸시하게끔 만들었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무지개 1』,

민음사, p.315

성경을 존중하면서 그것을 무작정 수용하려 들지 않는 애나는 상당히 현대적인 인물이다. 이 말은 그녀가 세상의 이치,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살피고 탐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나의 자아실현 욕구는 아쉽지만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출산을 하면서 어머니로서 역할에 보다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편에게 종속되려 하지 않은 애나였지만, 그녀 생활에서 어린 자식의 비중이 그녀 자신보다 훨씬 커져버린 셈이다.

비교적 구체적 내용을 담은 책의 차례들. 위에서 인용한 구절들은 제6장 '승리자 애나'에서 따왔다

3.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다음 세대인 어슐라가 곱게 받아들일 리 없다. 어슐라는 애나와 윌리엄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딸이다. 그녀를 낳을 적에 부부는 당연히 기뻐하고 감사했으나 둘째와 셋째가 연달아 태어나면서 아무래도 어슐라를 소홀히 대하게 됐는데, 그 때문인지 천성적으로 모계로부터 이어받은 자아실현 욕구 때문인지, 그녀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심을 쏟았다. 어떻게 하면 진정 어슐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세상은 무엇으로 이뤄지고 돌아가는지 등을.

어슐라도 어머니 애나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의미를 먼저 고찰했다. 그녀는 성경에 쓰인 모든 이야기가 우리 삶에 모두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나중 가서 사제 관계로 만난 잉거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더 단단해졌다.

어슐라는 자기가 알고 있던 모든 종교가 결국은 인간의 열망에다가 특별한 옷을 입힌 것이란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열망은 진실한 것이었다. 그런데 입힌 옷은 거의 국가적인 취향이나 필요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발가벗은 아폴론 신을 섬겼고 기독교인들은 흰옷 입은 그리스도를, 불교도들은 싯다르타 왕자를, 이집트 사람들은 오시리스 신을 섬겼다. 갖가지 종교는 지역적인 것이나 종교 자체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기독교는 지엽적인 분파였다. 아직은 지엽적인 여러 종교들이 하나의 종교로 동화되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무지개 1』,

민음사, p.167

지적이고 자주적인 스승에게 한껏 경도된 어슐라는 몰래 잉거를 흠모했다. 단순히 그녀를 선생님으로서 동경하는 게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서 말이다. 실제로 이들 사이에 로맨틱한 기류가 흐르는 순간도 찾아오지만 그것도 잠시뿐, 어슐라는 그 뒤로도 수많은 사람과 만나 어울리게 됐다. 장차 사람과 사랑을 알아가며 어슐라는 자기도 남성의 세계, 소위 말해 직업 여성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됐다.

어슐라의 동성애 성향이 드러나는 구절

이 점이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어슐라가 한 발짝 앞선 특징이기도 하다. 1대 렌스키와 2대 애나는 자아에 대한 고민을 끌어당기긴 하나 어디까지나 가정에서의 역할로 한정됐다. 아무래도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굳이 직업을 갖지 않고도 생계가 어렵지 않던 시절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슐라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브랑윈 가에 머물며 편히 살 수 있음에도 어슐라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경제력을 갖춰야지 독립적인 주체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직업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어슐라가 남성의 세계라 일컬은 직장은 예상대로 남성의 논리로 돌아갔기에 그녀로서는 오히려 제 자아를 직업의 틀 속에 욱여넣어야 했다. 어슐라가 첫 직장으로 삼은 초등학교에서 얼마나 부푼 꿈을 꿨던가. 그러나 교사 노릇이란 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깡그리 무시했고, 교장은 실적 없는 교사들을 내쫓는 궁리나 했으며, 동료 교사들은 매사에 부정적이었다. 그녀도 가르침을 받는 학생보다 그 학생이 제출한 숙제에 더 눈길을 돌렸다. 자아실현을 꿈꾸며 시작한 일이 그녀를 점차 잠식해 가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여러 동료 교사들은 그런 현실을 하등 문제 삼지 않았다. 대체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교육 체제와 관료제를 받아들이는 식이었다. 어슐라도 차마 이 현실을 고치려 들지 못하지만, 무언가 잘못됐음을 분명히 인식했다. 이는 어슐라와 다른 동료의 차이점이자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직업의 세계는 남성의 무대, 즉 이미 남자들에게 익숙한 세계였다. 그래서 기존의 불합리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일에 남자들은 길들여져 있었다. 처음 직장에 발을 디딘 어슐라에게 보이는 것들이 외려 그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관료제를 그대로 따르는 교사의 초상

그런 면에서 소설의 도입부는 남녀의 관점 차이를 더없이 적절하게 요약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내가 처음 『무지개』의 첫 장을 펼친 당시만 해도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가늠되지 않았다. 남자들은 소의 젖을 짜고, 말을 타고, 자연과 하나 됨을 느끼는 데 반해 여자들은 고개를 돌려 먼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이. 로렌스는 어쩌면 사회 진출을 막 시작한 여성들만이 바라볼 수 있는, 관성적이고 딱딱한 남성 세계를 묘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는 일에 익숙해져 땅바닥에 고개를 박은 남성들과 달리 허리를 바로 세워 현실을 볼 줄 아는 여성상을 제시하려 한 것 아닐까?

5.

아무튼 이 야심차고 장대한 서사는 내가 쓴 글처럼 두부 자르듯 선명히 나뉘지 않는다. 어슐라 또한 여러 면에서 자기모순적인 인물이고 좌절과 실패를 반복하며 무너질 때도 있다.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을 것처럼 말하면서 사실 꽤 많은 영향을 받고, 자신의 실수에 관대하게 굴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성장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침울해지는 대신 밝은 면을 바라보며 더 나은 장래를 꿈꿀 준비를 한다. 그녀가 어머니와 할머니보다 더 현대적인 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 있다.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찬 긍정. 그런 그녀에게 하늘은 무지개를 띄어준다.

무지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너뿐 아니라 너와 함께 지내며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계약의 표는 이것이다.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나는 너뿐 아니라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리라.

구약 성경 창세기 9장 12~15절

(『무지개 2』, p.127 참고)

종교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듯한 이 작품은 또 한편으로 더없이 종교적이다. 그래서인지 어슐라를 비롯한 브랑원 가의 서사는 쾌활하고 복작하면서도 경건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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