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요구하는 회사 측에서 주인공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일감을 줄 테니 시키는 일을 하라고. 그는 그렇게 회사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농가의 판매 부서로 발령받게 된다. 그곳이 차로 한 시간 거리든 두 시간 거리든 그로서 상관없었다. 그나저나 영업일은 본래 그의 담당이 아니었다. 그는 엔지니어였다. 26년 동안이나, 이곳 통신회사에서. 사실 그가 이 불합리한 조건을 받아들였을 적부터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해야 했다. 하지만 일찍 직감했더라도 뭔가 달라졌을까. 그는 실제로 영업을 시작하는 첫날부터 그 낌새를 눈치챘지만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건 단지 돈 때문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부심이 있었다. 어쩌면 지독한 옹고집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는 노동의 가치, 땀으로 번 돈, 직무를 통한 성취감을 믿었다. 오랫동안 몸담은 회사를 믿었고, 그토록 회사가 매몰차게 자기를 내칠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새 업무를 받을 때에도 그가 희망을 잃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사실상 그에게 부여된 영업 일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비닐하우스만 즐비하고, 인터넷에 관심 없는 어르신들을 상대로 통신 기기를 팔라니. 그래도 그가 최선을 다 한 이유는, 그 일 또한 회사에서 다 이유가 있으니까 시킨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