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너무 큰 화두를 던진 게 아닌가 싶다. 제목에서 시사하듯, 그래, 우리의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런데 이 짤막한 인생의 이치를 나란히 두고 보자니 팔짱을 낀 자세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오히려 나는 상투적이기 짝이 없는 이 문구에 호감을 느껴서(이건 내 병이다) 이 책을 읽게 됐다. 예상한 대로 내용은 빤했다. 내가 아는 한 프랑스 소설은 - 편견이라 해도 좋겠다 - 불륜 소설이 많았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저 사람을 사랑하고 쟁취하고 싶다는 열망. 내 곁에 애인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끌리는 현상. 과거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 유효할 문제 아닌가. 그런 것이 욕망이라면,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걸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됐다. 그러니까 이번이 네 번째인가. 이 책을 다시 펼쳐든 횟수 말이다. 이런 빤하디 빤한 이야기를 네 차례씩이나 읽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용은 빤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빤하지 않고 미묘해서. 예전에는 그 느낌이 어떤 충만한 만족감을 준다고 스스로 여겼지만 그게 무어냐 물어보면 잘 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좋아하는 음악을 남들에게 추천할 때 최선의 방법이 그냥 들어보라 하는 것처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 이번에 나는 그 어려움을 파헤치고자 이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그 결과 썩 시원치 않은 결론이 나올까 봐 걱정됐지만 그래도 뭔 말이라도 지껄일 순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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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벨 소리가 울리는 휴대폰을 확인한다. 화면에 찍힌 이름은 노라. 노라는 자신이 파리에 찾아온 경위를 짤막하게 밝히고는 남자가 몇 마디 꺼내보기도 전에 통화를 끊는다. 남자는 허탈해 한다. 그는 이 전화를 이 년 동안 기다려 왔다.

또 다른 남자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짐을 푼다. 불현듯 나쁜 직감에 휩쓸린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 동거하고 있던 여인이 급히 짐을 싸서 떠난 흔적만이 역력하다. 이 일이 한두 번도 아니긴 하나, 남자의 허망한 심정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는다.


소설의 일부

맨 처음 소개한 남자는 블레리오, 그다음으로 소개한 남자가 머피다. 두 남자는 사는 곳도 다르고 각기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볼품없는 남자이기도 하다.

블레리오는 부모님께서 큰 뜻을 이루라는 의미로 프랑스의 전설적인 비행사 루이 블레리오와 똑같은 이름을 지어주셨(더랬)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는 의약품이나 전자 기기 따위에 붙은 설명서, 과학 기사에 쓰인 자잘한 영 문장을 프랑스어로 옮기는 번역가다. 그의 아내 사빈은 예술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말하자면 인텔리다. 모든 면에서 그녀가 블레리오를 앞섰다. 그녀는 그보다 나이도 많았고, 이혼 전적도 있었고, 지적인 데다 성적 매력도 있(었?)고, 사교적인 성격 덕에 사람들과 두루 친했다. 언제나 아내를 볼 때마다 그는 알게 모르게 부채감을 느꼈다. 그 부채감은,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금전적인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머피는? 미국인 머피는 하버드 출신의 인텔리이자 런던의 증권중개인으로 일하는, 다소 고지식한 남자다. 사교적인 편도 못 돼서 직장 동료들과 원활히 지내지도 않고 금융인답게(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만) 낭만보다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갖췄다. 따라서 노라가 간혹 그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 다름 아닌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금전적으로 그녀를 돕는다. 하지만 자꾸만 그녀는 떠나는데. 정말 머피는 돈이 궁해서 그녀가 이곳저곳 손 벌려야 했다고 생각한 걸까? 마찬가지로 그의 이름에서도 얄팍한 운명의 장난기가 느껴진다. <머피의 법칙>: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경우에 쓰이는 용어.


작가의 얼굴

욕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소설 속 인물을 무어라 상징하는 짓을 내가 제일 싫어하긴 하지만,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구도다. 블레리오는 욕망의 주체고 머피는 책임의 주체다. 가정에서 누가 봐도 가장 자격을 상실한 블레리오는 아내를 어려워하고, 그렇다고 아내에게서 벗어날 자신도 없다. 암울한 부부 관계는 온통 그의 책임 같아서 괴롭다(하지만 해결은 어떻게?). 그런데 한때 그와 정반대로 건장했던 아버지조차 다 늙어서 어머니한테 맞고 사는 처지 아닌가. 그에게 필요한 것은 긴 하루를 잊게 해주는 찰나의 쾌락이다. 그 쾌락은 아내가 아닌 노라가 충족해 준다.

하지만 욕망을 절제하는 삶 또한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머피는 블레리오와 정확히 대척점에 선 이다. 여전히 블레리오가 부모님과 배우자(이 경우에는 거의 이들을 묶어 '보호자'라고 해야 낫겠다)에게 손 벌리는 것과 다르게 머피는 꽤 많은 재산을 축적했고 근면 성실한 일상을 유지하고자 힘쓴다. 그라고 욕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노라가 떠났다고 해서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까지 훌쩍 떠날 만큼 낭만적이지는 못하다. 그게 낭만이라 한다면 말이지만.

두 남자 사이에서 노라는 자유롭게 사랑을 갈구한다. 노라는 그렇다면 자유의 상징이다. 그녀는 제 마음이 가는 대로 블레리오를, 머피를 - 그리고 소설에서 잠깐 등장하거나 그러지도 못하는 숱한 남자들을 - 선택하고 취한다. 어쩌면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블레리오와 머피가 그녀, 노라라는 한 사람에게 단단히 매인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노라와 같은 자유가 없었으니까. 아내에게, 깨뜨릴 수 없는 일상에, 탈출구 없는 제 자신의 욕망에, 안정적인 삶의 추구에 얽매어 있었으니까. 연극에 비유하자면, 되고 싶은 배역을 받지 못할 때 블레리오는 질투하고, 머피는 다른 대역에 안주하고, 노라는 어떻게든 그 배역을 따낸다. 그러니 두 사람 다 노라를 멍청히 바라볼 수밖에.


내가 만든 등장인물 관계도

왜 노라는 그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했을까? 소설 속에서 머피 곁으로 돌아간 노라는 그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노라, 왜 떠났던 거야? 그녀가 식사를 마쳤을 때, 그는 나지막이 묻지 않을 수 없다.

돌아와 자기를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나는 그런 여자야. 나는 내가 자유롭다는 걸 느껴야만 하지. 그를 빨아들이기라도 할 듯 갈색 눈을 아주 크게 뜨면서 그녀가 속삭인다.

파트리크 라페르,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p.165

자유로운 노라답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대답은 그저 형식적인 말뿐일지도 모른다. 노라에게 머피는 블레리오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주지 못한다. 동시에 블레리오는 머피만큼 안정적인 헌신을 보이지 못한다. 노라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아무하고나 사랑했다고? 천만에. 사실 두 남자 모두 노라에게 어느 하나 확신할 만한 답을 해주지 못했다. 노라가 정식적인 교재를 제안했을 때 블레리오는 아내 핑계를 대며 둘러댔고 머피는 평소 그녀의 행실을 떠올리며 못 들은 척했다 - 내가 앞서 두 남자 모두 볼품없는 남자라고 폄하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갈팡질팡한다. 자유로웠던 노라는 사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외로운 사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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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실컷 떠들었지만 나는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여전히 설명하지 못했다(적어도 이 같은 줄거리가 좋아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심지어 글쓰기에 돌입할 당시 목표했던 욕망의 의미조차 못 밝힌 것 아닌가. 원체 개인적인 선호는 그런 건가 보다. 설명해보라 하면 그냥 느껴보라 답하고 싶은. 그래도 설명하려 하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다. 이 책은 플롯으로 보면 누구나 알 만한 얘기지만, 이를 문장으로 구체화하는 작가의 시선과 통찰력은 놀랍다. 아니, 놀랍지 않을지도 몰라도 그런 시도들이 내 취향에 부합한다. 허투루 읽히는 문장이 없고, 장면 장면이 생생하다. 이것도 사실 내 눈에만 그래 보일지도 모른다.

대신 이렇게 말해 보자. 모든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단 한 문장이 내게로 꽂혔다고. 나는 욕망을 설명하는, 이보다 정확한 문장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하나는 시어도어 드라이저 소설에서 봤고 다른 하나는 이거다.

그건 아주 강렬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게다가 놀라운 건 그게 그토록 강렬하다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파트리크 라페르,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p.27

원래 좋아하는 이유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이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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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여명』,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외 다수. 이에 관해 프랑스 문학의 시초가 배우자 몰래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고해성사한 고백록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듣긴 했으나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질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

: 소설가 정지돈 씨는 한 에세이(『영화와 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들에게 설명하려 들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외려 좋았단 것조차 싫어지게 되므로 짜증이 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 실존 인물이다. "프랑스의 항공기술자. 1970년 처음으로 단엽기를 제작하였고, 1909년 11호기(25마력)을 조종하여 37분의 비행 끝에 최초의 영국 해협 횡단이 성공하였다"(두산백과 인용)

: 두산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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