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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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엄마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내가 했던 다른 수많은 말처럼 빈말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산송장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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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죽음을 다룬 소설을 여럿 읽어봤다. 특별히 찾아보려 했던 건 아니고, 소설을 읽다 보면 죽음이 어디선가 툭하고 튀어나왔다. 마치 그 정도의 그늘은 필요하다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묘사되는 작품 속 죽음은 어딘가 소모적이거나 인위적이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다. 물론 나는 죽음을 모른다. 가까운 친족이 세상을 떠난 일은 내가 아주 어릴 적 친가 쪽과 외가 쪽의 할아버지 두 분이 돌아가신 경험뿐인데, 엄마 말로는 내가 외할아버지가 태워주신 목마를 타고 시골 바닷길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하지만,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로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고 죽을 뻔한 경험도 크게 없었다. 그러나 이 근래, 내가 아직 군대에 있었을 때,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친구의 통화로 듣게 됐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했는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확히 기억나질 않지만(나도 적잖이 충격받았으니까) 괜찮지 않겠지만 힘내라고 내가 곁에 있어주질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소식 전해줘고 고맙다고 말했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렇게 가까운 사람에게서 듣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맽어야 했을 친구의 심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였으면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새 달력이 펼쳐졌고 전역한 뒤로 만난 친구의 모습도 걱정한 것보다 괜찮아 보였다. 그것으로 친구의 입장에선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제 죽음과 가까워졌는가. 안타깝게도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소설 속 보부아르가 죽어가는 어머니의 침상을 지키며 "엄마는 완전히 혼자였다! 엄마를 어루만지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 줄 수는 있었지만, 지금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란 불가능했다(p.115)"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이자 그녀가 일평생 천착했던 실존 윤리를 탐구한 소설이라고 소개된다. 실제 이 소설은 보부아르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쓰였으며 문장 곳곳에서 어머니의 흔적이 묻어난다. 시작은 단순한 사고였다.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골 경부가 부러졌다는 전화를 받은 보부아르는 엄마가 계신 병원을 찾아간다. 이후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엄마의 몸에서 암이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보부아르와 동생 푸페트는 절망한다.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무엇일까. 엄마를 간호하는 것. 그리고 "우리는 엄마가 깨어났을 때 무슨 말을 할지 의논했다. 간단했다. 방사선 검사 결과 복막염으로 밝혀졌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고 하면 됐다.(p.40)"

죽음에 한에선 우리는 한없이 솔직해지거나 그 반대다. 시간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무너져가는 엄마의 육체와 그 속에 담긴 비밀을 감추려 드는 가족들이 그 예시다. 보부아르는 과거 활발하고 많은 것을 욕망했던 늙은 여인의 낡은 육체를 바라보며 어머니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여인을 읽어낸다. 남편에게 헌신했던 아내, 그러면서 뜨거운 육체를 품었던 여인, 지나치게 자식을 옭아매면서도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했던 한없이 여린 사람. 동시에 그녀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늘이 자신의 생활 속 일부까지 덮는 모습을 본다. 한 번도 '엄마'라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보부아르는 비로소 그녀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서야 그녀의 의미를 깨닫는다. 왜 엄마와 자주 갈등을 빚었는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빠가 엄마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녀에게 삶은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보부아르가 바라본 죽음은 자연스러운 산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죽음이 자연스러운 줄 알았다. 하지만 서서히 죽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간호했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p.152)" 그랬다. 이 문장, 소설이 끝나가는 마지막 대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 대목은 한 여인의 삶과 병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봐온 보부아르 그리고 독자들에게 더 큰 의미로 와닿는다. 이 작품은 죽음을 감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슬픔의 비애에 휩쓸려 무너지지 않고 어머니를 치켜세우거나 신격화하지 않는다. 다만 어미니의,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애도한다. 그리고 유대한다. 소설에 들어가며 쓰인 헌사 "나의 동생에게"는 그래서 더 뜻깊다. 어머니를 함께 간호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이 어쩌면 두 사람의 유대를 더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러니 살아 있는 우리는 죽기 전에 서로 유대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나의 친구도. 이 책에서 보부아르가 알려주는 것은 죽음뿐만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편안한 죽음』은 더욱 가치 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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