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해야 하나요? - 똑똑한 아이들 참 좋은 생각
브리기테 라브 지음, 마누엘라 올텐 그림, 엄혜숙 옮김 / 계수나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지난 여름에 코엑스에서 전시된 <일러스트레이션 거장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럽 일러스트레이터의 최근 경향(그래봤자 십년 전후)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그림 그릴 때 선호하는 매체수단이 무엇인지(신세대 답게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전통적인 매체로 표현하는지에 대한), 소재와 주제가 옛날과 얼마나,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등, 유럽의 최신 경향을 여러가지 알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당시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면서 아, 단순히 일러스트레이터라기 보다는 아티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구나, 할 정도로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 방법, 근접하기 어려운 소재와 주제가 시선을 확 잡아 당겼다.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깐 아이들그림책이 막 시작하던 시기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그림책들이 쏟아졌었다.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유럽그림책 대부분이 바로 그 시기의 그림책들인데, 요즘들어 이상하게도 감탄사가 튀어나올만한, 뛰어난 유럽그림책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오프서점을 몇 달에 한 번 가서 그림책을 한번씩 점검하고 오는데, 갈 때마다 와우~ 라는 감탄사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차비만 버렸네,쩝! 미지근한 입맛을 다시며 오는 날이 더 많았다. 물론 영미그림책도 그렇고 일본그림책도 그렇기는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그림책이라면 더 뛰어난 그림책이 나와야하는데, 오히려 요즘 출판되는 그림책을 보면 그림책 시장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대체 일러스트거장전에서 본 유럽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은 다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어!

이 책도 어린이 그림책 번역가이면서 평론가인 엄혜숙 선생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림책을 접한지 어언 10년차, 그 동안 그림책을 접하면서 눈에 뜨는 몇 명의 번역가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한명이 바로 엄혜숙 선생.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인 내가,그림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그녀가 번역한 책과 그림책과 관련하여 쓴 글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인터넷 서점에서 때마다 검색하는 번역가들이 있는데, 그녀도 그 중의 한명. 독일문학이 전공인 그녀가 그림책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지극한지 영어그림책은 물론이요 일본그림책에도 손을 대고 있으니, 그녀가 발굴해내는 그림책이 어떤 것인지 어찌 궁금하지 않으리오.  

그런데 이번 그림책은 약간 실망스럽다. 독문학 전공자답게 최근의 독일에서 나온 그림책을 번역해 나온 것은 너무나 반가웠는데, 소재가 너무 진부하다고나 할까.이런 규칙적인고 규범적인 소재의 그림책은 지금까지 진절머리 날 정도로 많이 접해 보았다. 일단 그림은 아기자기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개그적인 요소가 많아서 재밌다. 딸아이는 이 그림 저 그림 보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특히나 자동차 위에서 쉬를 하는 여자 아이를 보면서 폭소를 터트렸으니깐. 그럴 때마다 큰 아이는 옆에서 현실적인 발언을 하며 딸아이의 웃음을 뭉개었지만.  

여하튼 아이들에게 장단을 맞추면서 그림책을 읽어주지만, 엄마인 난 정작 큰 감동을 받지 못 했다. 아이들도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아니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살면서 끊임없이 조정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에서 지켜야할, 가정에서 지켜야할 할 규범들을 어느 정도 안다. 차라리 이 책을 반대로 이야기했다면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 되지 않았을까. 이는 꼭 안 닦아도 되고 차 타기 전에 쉬는 안 누어도 되고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는. 스타이그식의 카타르시스를 아이들에게 제공했더라면 아이들하고 더 많이 웃고 우리들이 지켜야할 규범에 대해 다시한번 더 생각하고 아이들하고 작게나마 토론하지 않았을까. 규범이나 규칙에 관해서 직선적인 생각을 가진, 아이들에게 처음 알려주어야 하겠다는 엄마라면 강추! 나처럼 스타이그식의 규범을 선호하는 분이라면 이 책에 나온 규칙들을 반대로 읽어주어 아이들하고 재밌는 한때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우린 절대 이 안 닦을 거야, 나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야지. 하루에 백개도 먹을 수 있다~(울딸) 난 늦게 까지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고 놀거야!같은. 반대로 말하기 놀이하면서 엄마인 내가 너희들이 그럴 경우 얼마나 걱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직선적으로 너 그렇게 하지마!라고 하기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내일 되면 분명 잊어버릴 것이다. 아이 키우기 넘 어려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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