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의 트럼펫 비룡소의 그림동화 174
레이첼 이사도라 글.그림,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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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꽤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After life>라는 일본 영화가 떠 오른다. 그 영화에서 망자는 천국을 가기 위하여 림보역이라는 곳을 거쳐야하는데, 그 곳에서 망자는 면접관에게 당신의 생애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의 기억을 가지고  천국을 갈 수 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만약 사는 동안 단 한순간이라도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망자는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통털어 행복했던 단 하나의 기억이라고? 설마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그렇게 없을려고..하지만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인지 등장인물들은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이라고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감독이 영화에 던져 준 아이디어를 지금 현재 우리 자신에게(림보역을 갈 필요도 없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무엇이었냐고 질문을 던져본다면,  망설임없이 단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머리속에서 주마등처럼 몇 개의 기억의 편린들이 스쳐지나겠지만 갑자기 실타래처럼 모든 기억이 복잡하게 엉키며 우왕자왕 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엄마손을 꼭 잡고 학교 가던 때,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 주던 때, 친구들과 재잘되며 웃던 학창시절, 가슴 설레이던 연애시절, 결혼식 날, 사법고시가 패스되던 날, 첫 애가 태어난 날, 구하기 힘든 디비디나 절판 책을 구했던 날 등등 힘겹고 나락의 시절만큼이나 가슴 설레이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의외로 많을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천국을 가야한다면? 그나마 위안인 것은 불평등한 세상에 태어나 오발탄처럼 척박한 삶을 산자와 태어나자 마자 모든 것을 가진 자의 행복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고 상대적이다라는 것일 것이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을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어르신들은 힘겨운 때를 지내고 나중에 회상하면서 힘들어도 그 시절이 그래도 행복했었어라고 말하곤 한다. 행복이란 어떤 순간의 정점일 수도 있지만 무엇인가 움켜잡은 그 순간이 아니고 그 무엇을 위해 통과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벤의 트럼펫>이라는 그림책을 보면서, 그 영화을 떠올린 것은 벤의 음악에 대한 열정,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갈망과 들뜬 마음이 웬지 모르게 그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어서이다. 지그지그재즈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기 위하여 밤에건물 뒷계단의 난간에 기대에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트럼펫 부는 흉내를 내거나 있거나 집으로 가는 길에 음악의 리듬을 느끼거나 학교에서 아이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펫 부는 흉내를 내던 그 때가 벤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후에 그가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 되어 무대에서 수 많은 청충들에게 많은 갈채가 받을 때, 벤의 인생에서 그 때가 가장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르지만 벤의 어린 시절,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갈망으로 가득 차 음악을 하기 위하여 돌아다녔던 그 시절이정점을 오르기 위하여 애쓰던 그 불완전한 시기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는 열정과 갈망의 과정에서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그 무엇인가가 정점에 오르지 못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그가 불행한, 처량한 일생을 보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무기력한 삶을 사느니 정점에 오르지 못하더라고 인생의 들뜬 기분, 설렘, 열정, 순간순간 살아있다는 기쁨으로 충족되는 일상을 사는 것은 어쩜 행복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나머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고.     


이 책은 바로 이 장면때문에 추천하고 싶다. 이 단순한 흑백의 실루엣에서 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하지만 음악에 대한 굴뚝같은 마음 뿐 악기도 없는 자신이 무엇을 할 줄 몰라  지그재그 재즈클럽에 앉아 음악만을 듣는 것만으로 자신의 열정을 표출하고 싶어하고 위안을 삼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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