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매우매우 나쁜

밤이 늦도록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를 하고,

새벽 2시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어느 초등학생이

아침에 안경을 쓰며 생각했습니다.

'내 눈은 벌써부터 이렇게 안 좋아졌어.
 
앞으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아도 틀림없이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할 거야.

나보다 시력이 좋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더 선명한 풍경을 보겠지.

숲에 들어가도 더 선명한 녹색을 만나겠지.

해님을 봐도 아주 맑고 깨끗한 색을 볼 수 있겠지.'

아이는 자신이 안경을 쓴다는 사실을 무척 후회했습니다.





아이의 생각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누군가에게로 전해졌고

법원에 다니는 어느 변호사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 변호사는 양쪽 눈의 시력이 모두 2.0이었어요.

아이의 생각을 들은 변호사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시력이 너무 좋은 탓에,
 
보이지 않는 더러운 것들도

봐야하지. 시력이 좋은 건 싫지 않지만

때론 그것 때문에 세상이 싫어질 때가 더 많아.
'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것마저

누군가에게는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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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는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당신은 도시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내게 있어 도시라는 공간은 무척 편리한 곳입니다.


도시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편리함이 모입니다. 그것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때로는 자기들끼리 경쟁이 붙고는 합니다.


치고박고헐뜯고찢어발기고차고할퀴고울고악지르며 싸우다가 한 쪽이 승리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승리자에게 쏠립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시 사람들은 편리함의 승리를 금세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편리함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것은 어느 사이에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몇몇 사람들은 일부러 그것의 단점만을 꼽아서 험담을 늘어놓기도 한답니다. 그러다가― 승리자는 패배자처럼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무관심의 늪으로 빠져 버렸나봅니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우리는 또 그것이 가진 편리함에 열광하겠지요.



나는 두렵습니다.



그 관심 너머로 보이는, 반드시 다가오는 차가운 웃음의 무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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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 잠깐 음악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타루 씨의 1집 정규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물론 모두 좋은 노래들만 들어있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특히 7번 트랙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곡 제목은 쥐色 귀, 녹色 눈 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말이죠,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종이로 만들어지는
위태로운 왕국과
명예롭지 않은 왕관
행복을 강요하는 Tv
모두가 병들었어도
아프지 않을 능력과
눈과 귀를 가리고서
입을 틀어먹을 권리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자, 그 느낌을 기억하십시오. 방금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였던 힘이 느껴지셨을 겁니다.

누가 살펴봐도 이 노래의 주제는 사랑이 아닙니다. 가요계의 노래 90%가 사랑에 대한 것을 노래하지만, 이 노래는 나머지 10%에 해당하고 있죠. 대다수가 걷는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분명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인문학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인문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학문입니다. 비록 돈에게 빌붙어 사는 세상이지만 인간과 인간의 정신에 대한 탐구가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절대 없어져서도, 무시되어서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학문입니다.

그러니 좌절하지 마십시오.

길은 분명 어디론가 연결되어있습니다.


- 가면대공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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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보관소」

♀ 그녀의 경우

당신이 살아있다면, 그리고 상상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사실 이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일이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사후 세계란 존재하는 것일까. 나에게 영혼이라는 게 정말로 있다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만약 없다면 어떻게 하지?



그 답을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쪽빛 치맛자락의 한쪽을 석양에 살짝 담근 하늘의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겠다. 그래도 당신이 제발 알려주라고 간절히 청한다면 여러 의미가 담긴 한숨을 토해내겠다. 거기에는 당신뿐만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동정도 담겨있다.

나는 당신이 알고 싶다고 말한 사후세계에 대해서 모른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나는 분명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세계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있는 세계의 풍경은 한 마디로 휑하다. 잡초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량한 대지는 언제나 황혼이 찾아오기 전의 햇살이 녹아들어있다. 이곳에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거라고는 앉을 만한 크기의 평평한 바위와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한 조각뿐이다. 그나마 바람이라는 것도 내게 손님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터라 시원하다는 느낌조차 없다.

아, 그래. 죽으면 공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다. 이곳에서 지낸 것도 6개월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입으로 들어간 음식물의 목록을 제출하라고 말한다면 백지를 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나는 공기조차 마시지 않았다. 생각해봐라. 죽은 사람이 숨을 쉴 필요가 있겠는가. 침조차 만들어지지 않는 가짜 육체는 손가락을 강제로 꺾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겹다. 한 번 더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루하다.

인형에 깃든 영혼처럼 무미건조한 삶.

아침은 물론 밤조차 찾아오지 않는 영원한 석양이 계속 되는 풍경.

제대로 된 형체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칙칙한 갈색의 평평한 바위 하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가. 고독을 사랑하는 자는 야수 아니면 신이라고.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야수가 아닐 뿐더러 신은 더더욱 아니다. 고독은 사람을 말려버린다. 육체가 아니다. 정신이 가진 풍요로움을 수분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시켜버린다. 홀로 있는 이 공간에서는 상상하는 힘마저도 탐미적인 고문으로 변해버린다. 혼자 있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헛된 망상을 마음껏 퍼트리는 일이지만 그것을 토해낼 대상이 없으니 미쳐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미쳐버리지도 못한다.

미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저 막연한 외로움이 코트처럼 몸을 두르고 있다. 그 아래에서 마음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얼어간다. 한없이 냉소적으로 변할 뿐. 더더욱 이성적으로 물들 뿐이다. 결코 미치지는 않는다. 아니, 미치지 않는 게 아닌, 미치지 못하는 게 맞겠지.

이 삭막한 공간에게 조롱당하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비웃고 있겠지. 내 고독, 내 슬픔, 내 분노, 내 망상, 내 갈망, 내 헛된 희망까지도. 박수를 치면서 깔깔 거리고 있겠지.

이쯤 되면 하나 나와야하는 질문이 있다. 죽음 다음의 삶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쳤겠느냐고.

육체적으로 아무런 감각, 심지어 땅을 밟고 있다는 느낌도 없는 세상에서 얼마인지 모르는 억겁의 세월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물론 살고자 했을 것이다. 적어도 삶은 행복 다음에 고통이 오기도 하고, 행복 다음에 불행이 오기도 하니까.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면 언젠가는 반드시 웃을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으니까. 그게 설령 이뤄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마냥 그것이 좋았다는 걸, 이제야 알아버린다.

늦었어. 늦었어. 너무 늦었어.

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되뇐다. 그러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속이 후련해지고 만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한다. 하지만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리운 감촉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달도 없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면 나는 바위 위에 앉아있다. 방금 전까지 분명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니. 내가 초능력이라도 익혔다는 건가.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을까. 아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철저한 무(無)에 풍덩 빠져도 괜찮은데. 나는 웃고 만다.

이런 현상을 리셋(Reset)이라고 부른다. 정신이 붕괴되려하면 어떠한 시스템에 의해서 모든 게 원위치로 돌아온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지배했던 공허함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있고 끊임없는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연결된 번뇌의 첫걸음을 다시 시작한다.

문득 세상을 잡아먹은 고요함 속에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머리카락이 스르륵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되면 드디어 왔다는 생각이 먼저 머리에 들어온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오는 막대한 그리움은 도저히 냉정하게 대처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성을 헤집어놓는다. 그것은 해일과도 같아서 몸으로 막아보려고 애를 써도 아주 당연한 일인 것처럼 거침없이 밀려버린다.

그가 오고 있다.

눈을 감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감촉을 느끼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주변의 공간은 변해있다.

초목이 우거진 언덕을 따라 바람이 타고 올라온다. 시원하다. 아까 만났던 바람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잔디가 깔린 언덕 위에 앉아있었다. 손으로 잔디를 만지면 생생한 풀잎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 아래로는 보드라운 흙도 깔려있다. 사각거리며 움직이는 풀잎들이 손가락에 감겨온다. 간지러워서 피식 웃고 만다.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나는 감정이라는 것에 엄청난 갈증을 느끼고 있었나보다.

후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몇 번이나 경험해봤지만 여전히 새롭고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다는 실감을 할 수 있는 장소. 무엇인가를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이리도 행복한 일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를 만나는 건 대체로 1주일에 1번이다. 살아있는 그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는 2주일이 지나서야 만날 때도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가 찾아오는 일이 달갑지만은 않다. 이곳을 찾아올 때면 눈에 띄게 그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에게는 1주일에 한 번이지만 그에게 적용되는 시간은 1주일이 아닌 거 같다. 어째서인지 그는 내게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 언덕에는 거울이 없으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겠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내 모습은 20대 중반의 여성. 바람과 함께 언덕을 올라오는 그의 모습은 30대 중반.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강을 만들어버렸다.

“왔구나.”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올라온 그는 언덕을 올라오는 동안 가빠진 숨을 고르며 빙긋 웃는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닦아주자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내 동작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다녀왔어.”

마치 여기가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라는 것처럼 말하는 모습에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고맙기 때문이다. 미안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증오하기 때문이다.

내가 죽은 후에도 나를 기억해줘서 고맙다.

살아있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그를 나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혼을 보내주지 못하고 영혼 보관소에 영구 보존을 의뢰한 그의 사고방식을 증오한다. 만약 그가 순순히 나를 잊어줬다면 이런 고통은 경험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제 그만 찾아오라고 했잖아.”

나는 따뜻한 그의 품에 안겨서 흐느끼며 속삭인다.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은 고작 5분.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이 이 세상으로 오는데 허용된 시간이다.

“너를 잊을 수가 없는걸.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어.”

이런 바보 같은 사람. 세상의 절반이 여자라는 데 어째서 나를 잊지 못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있어야할 곳은 당신 옆자리인데.”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 나처럼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려고 한다. 그의 품에서 떨어진 나는 손을 올려 그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오래 사는 게 고통스러워?”

진심이 담긴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한다.

“당신 없이 살아가는 게 고통스러울 뿐이야.”

“그러지 마. 제발.”

목이 멘다. 숨이 막힌다. 가슴이 답답하다. 속상해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어째서 그는 나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

“살아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거야.”

이제 곧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또 홀로 언제 끝나는 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러니 제발 살아가려고 노력해. 더 이상 찾아오지 마.”

찾아오지 말라고 부탁하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버린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슬픔의 강이 역류해버린 것이다. 찾아오지 말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1주일에 한 번 만끽할 수 있는 이 느낌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면 놓아줘야한다. 그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잔인해지자.

몇 번이도 결심했었다. 설령 얼마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억겁의 세월을 홀로 보낸다고 할지라도 독해지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더 이상 찾아오지 마. 당신을 만나는 건 다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 부탁이니 이제 제발 날 놓아줘.”

주저하지 않고 그의 가슴에 있는 힘껏 대못을 박는다. 절대 빠지지 않도록, 이 아픔으로 인해 부디 날 저주하도록 바라면서 그에게 사정한다.

그의 몸이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흐릿해진다. 이제 정말로 이별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내 눈빛을 보고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는 손을 들어 자기의 눈으로 직접 흐릿해지는 몸을 확인한다. 그리고 지옥의 나락까지 닿을 법한 긴 한숨을 내뱉었다. 살짝 고개를 떨어뜨린 그의 얼굴에 나타날 표정을 보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

“괜찮아.”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내 심장은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제발, 그만 말해줘.

“미안해. 나란 녀석은 정말 이기적이야.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겠어. 정말 미안해. 인간이 결국 인간이라서.”

나는 사라지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숨죽여 흐느꼈다. 절대 눈물을 보이지는 않는다. 가슴 속으로는 겨울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낸다. 이 사람이 없다면 나도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난 그를 필사적으로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난 죽었다. 이제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흔적은 이제 지워져야한다.

강하게, 정말로 강하게 마음먹자. 결국 그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말하지 못했다. 다시 고독한 갈색의 대지로 돌아왔을 때서야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인간은 죽어서도 인간이라서.


♂ 그의 경우

‘오래 사는 게 고통스러워?’

새까만 눈동자는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을 모조리 쓸어 담은 것처럼 희망을 노래하며 반짝이고 있다. 아름다운, 이런 수식어로 표현하기조차 아까운 눈동자에 내 추악한 모습이 비춰지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만다. 그러면 그녀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간다.

‘살아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거야.’

살아있다는 건 중요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검은 안개처럼 스멀거리며 밑바닥에서 올라온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머릿속에 글자를 새겨놓는다. 눈을 감으면 곧장 그 글씨가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새빨간 잉크를 바르고 망막에 찍어놓는다.

‘그러니 제발 살아가려고 노력해. 더 이상 찾아오지 마.’

살아있다는 건 정말로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네가 없다면 ‘살아있다는 건 중요하다.’ 라는 공식은 이뤄지지 않아. 이건 전혀 안타깝지 않다. 왜냐면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내 삶은 가뭄을 만난 논바닥처럼 건조했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사막의 많은 모래알갱이들처럼 무의미한 행동들의 연속이었으니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 모든 게 충족된 사람에게 오래 사는 삶이란 천국 직행 티켓을 받은 것처럼 행복할지도 몰라.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옥의 끄트머리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에게 그건 끔찍한 고문보다도 더 잔인한 집행유예에 불과해. 내게 어느 쪽이라고 묻는다면, 내가 어떻게 대답해주기를 원하는지 생각하는 게 더 현명할 거야. 난 이미 정했거든.

잠에서 깨어나면 일단 절대로 눈을 뜨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게 꿈인지 아닌지 손가락으로 허리를 살짝 꼬집어본다. 전통적인 방식은 시대가 아무리 지나도 효력이 있다고 믿기 마련이니까. 그걸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던가.

일단 꿈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되면 나는 손을 뻗어 옆자리를 확인한다. 침대에 있는 베개는 두 개. 하나는 주인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눌린 흔적조차 없다. 그것을 손으로 더듬어 확신하고 나면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차라리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꿨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 여기면서 눈을 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다. 눈을 뜨면, 나보다 먼저 깨어난 그녀가 잠이 덜 깬 얼굴로 빙긋 웃으면서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럴 리가 없다는 걸 확신하면서도 나는 옆자리를 확인하는 찰나의 순간까지도 헛된 희망을 품어본다.

없다.

그래. 그녀는 여기에 없다. 다른 곳에 있다. 육신은 여기서 2킬로미터 떨어진 납골당에서 잠들어있고, 영혼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영혼 연구자 강연수 박사가 설립한 영혼 보관소에 안치되어 있다.

강연수 박사는 인간에게 영혼을 있음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소재를 가지고 논문을 썼다는 것에 대해 잠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미친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박사는 지지 않고 그것을 입증하는데 성공한다. 연구 목적으로 만든 기계가 정말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온 것이다.

그리하여 영혼의 존재가 과학으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몇몇 사실이 밝혀졌다. 한때 유명했던 영화 ‘사랑과 영혼(1900)’에서 나왔던 것처럼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을 떠돌거나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가 영혼을 데려간다는―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끔찍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죽은 다음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닌 그저 잠들 뿐이라는 그의 발표는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어 그는 정부의 지원을 얻어 영혼 보관소를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그곳의 최초 사용자는 국내 경찰이었다. 목적은 미해결로 남은 살인사건을 해결.

영혼 보관소와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법정에 나타난 영혼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죽인 범인들을 지목하는 일에 서슴지 않았고, 그들의 애절한 증언을 들은 유족들의 곡소리 때문에 법정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도 드러났다.

아들의 손에 맞아죽은 노부부, 아내가 음식에 탄 독약을 마시고 죽은 남편, 치정싸움으로 끝나버린 의문의 교통사고,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를 목 졸라 죽인 어머니, 아무런 단서도 잡히지 않았던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모두가 혀를 차면서 신문 기사를 읽어 내릴 때 오직 한 사람만이 괴로워했다. 바로 강연수 박사였다. 자신의 연구가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들춰내는데 계속 사용되자 참지 못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정부의 지원을 거절하면서까지 영혼 보관소의 이용을 제한한다. 경찰의 수사를 위한 건 1년에 단 한 번으로 제한한 그는 다른 방식으로 영혼 보관소를 운용하였다.

‘뜻밖의 사고로 잃은 가족, 친구,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보관합니다. 정부의 지원이 거의 끊긴 관계로 보관료는 상담 후에 결정합니다.’

강연수 박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영혼 보관소를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발표가 난 이후 나는 19번째로 영혼 보관소를 찾은 손님이 되었다.

집에 강도가 침입했었다. 지문을 인식하는 자물쇠를 용케 열고 들어온 그는 아주 조용한 작업을 좋아했다. 필요한 것만 챙기면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장난에 꽤 자신이 있었고, 그러한 점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망상을 갖게 만들었다. 나보다 민감한 그녀는 도둑이 방문을 여는 작은 소리에 깼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 행동은 그의 자부심에 대단한 상처를 안겨줬다. 조용한 작업이 끝났다고 여긴 도둑은 망설이지 않고 권총을 쐈다. 그때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모두 6발. 그 중 5발이 그녀의 장기와 뼈에 박혔고 나머지 한 발은 내 왼팔을 관통했다.

그녀는 강했고 나는 나약했다.

범인은 그녀에게 2발을 발사했고, 4발은 뒤늦게 일어난 나를 없앨 용도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가슴에 총알을 맞고도 그녀는 연약한 몸으로 나를 감쌌다. 그 동안 나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다.

범인은 현재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죗값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평소 그 빌어먹을 개새끼가 조용한 범죄를 선호했던 이유는 자신이 경찰의 손에서 도망칠만한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총성을 들은 이웃집의 빠른 신고 덕분에 제때 출동한 경찰은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범인을 어렵지 않게 붙잡았다.

나는 뒤늦게 집으로 들어온 경찰의 목소리 덕분에 정신을 되찾았다. 떨리는 손으로 끌어안은 그녀는 이불을 새빨갛게 물들인 선혈처럼 붉은 꽃이 되어활짝 피어올랐다.

여기까지.

더 이상은 생각하지 말자.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가리고 있는 살구색 커튼을 걷어내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아침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머리카락에게 입을 맞춘다. 어린아이처럼 깔깔 웃으며 안으로 들어온 바람은 금세 침실에 가득한 탁한 공기들을 내쫓아버린다. 약간 서늘한 아침공기 때문인지 몸을 부르르 떨고 만다.

그녀가 사용하던 화장대 위에는 권총 한 자루가 놓여있다. 그것을 잊지 않고 손에 쥔다. 낯선 금속의 매끄러움이 잠에 취한 신경을 바싹 긴장하게 만든다. 3중 잠금장치를 모조리 해제하고 문을 열고 나간다.

호흡을 멈추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권총을 내려놓는다. 제길. 땀이 나려고 한다.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권총을 내려놓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벌써 4년이나 지났거늘. 가슴의 아픔은 결코 잊지 않으려고 고동을 통해 내게 하소연한다. 그날의 아픔을 절대 잊지 말라고.

비어있는 두 손을 활짝 펴본다. 그리고 공기와 떠도는 먼지들을 움켜쥔다. 그녀가 곁에 있었을 때는 이 손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모든 게 빠져나갈 정도로 엉성한 그물이 되어버렸다.

한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손을 올려 눈을 덮어버린다. 하품 때문에 나오는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말자.

거실에 있는 벽걸이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를 틀어놓는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뉴스를 틀어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이나 오늘의 날씨를 확인했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얼굴을 가진 홀로그램이 진짜 사람인척 연기를 하며 오늘은 고기압의 영향으로 무척 맑을 거라는 얘기를 해준다. 정오에는 1시간 동안 예정된 비가 내릴 예정이니 그 시간에 활동할 사람은 우산을 꼭 챙기라는 친절한 멘트도 잊지 않는다.

날씨 예보가 끝난다. 나는 부엌으로 간다. 아침을 챙겨먹자고 말한 것은 내가 제안한 거였다. 집에서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나와 달리 그녀는 다른 사람의 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하루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으로는 간단한 토스트를 먹자고 말한 것도 나고, 아침거리를 가게에서 사오고 이것저것 토스트기와 같은 기계를 구입한 것도 나였지만 막상 시작하니 늘 아침을 준비하는 건 내가 아닌 그녀가 되고 말았다. 꽤나 미안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일을 즐겼다.

‘에이, 괜찮아. 당신이 부엌에 출입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으니까.’

과거에 국을 데운답시고 부엌의 일부를 홀라당 태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오늘은 내가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오늘 뿐만이 아니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아침에 토스트를 굽는다. 어제 저녁에 장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도 준비하겠지. 딸기잼과 버터는 미리 꺼내서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준비한 아침. 내 접시에 담긴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3조각, 약간의 샐러드. 잘 구운 토스트는 두 개다. 그리고 그녀가 먹을 접시에는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한 조각. 샐러드에는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발사믹 식초를 베이스로 재현한 드레싱을 뿌려놓는다. 마지막으로는 막 구워 내 것보다 따뜻한 토스트 두 개를 올려놓는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녀가 잘 먹겠다고 말하는 걸 기다리다가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올린다. 나는 식사를 천천히 시작한다. 항상 이렇게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다. 되도록 그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오래 볼 수 있도록. 하지만 그녀는 식욕이 없는지 오늘도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아니. 외면하지 말자. 나는 알고 있다. 여기에 없다는 걸. 이 집에 없다는 걸. 그리고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나도 내 앞에 놓인 음식이 사라지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면 정말로 실감이 난다. 그러다가 둥근 테이블의 끄트머리에 있는 파란색 머그컵을 바라본다. 자기 직전에 사용한 그녀가 사용했던 머그컵과 같은 색이다. 4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머그컵을 보며 그녀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식사를 마치면 마지막으로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머그컵을 제외한 설거지 할 접시들은 자동세척기에 넣어둔다. 자동세척기가 접시를 씻고 건조하는 동안 나는 거실로 돌아와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날씨에 비가 올 거라는 말이 나오면 현관문의 손잡이에 우산을 걸어놓는다. 잊지 말고 가져가라는 의미로. 그녀는 우산을 챙기는 걸 싫어하지만 내가 꼭 가져가라고 말하면 투덜거리면서도 챙겨간다.

그녀가 집을 나서면 나는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다음 텔레비전을 끄고 대신 오디오를 켠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이 시작되는 부분을 맞춰놓고 볼륨을 올린다. 밖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발코니로 나가면 작은 분재들 속에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다. 테이블과 의자는 항상 닦기 때문에 먼지가 잘 쌓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깥에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전이면 늘 바닥에 있는 나무상자에 보관된 수건으로 닦아놓는다.

달과 별이 아스라이 빛나는 밤이 찾아오면 그녀는 이곳에서 일기를 쓰곤 했다. 오늘 밤에는 구름하나 없는 맑은 날씨라고 한다. 분명 별도 보이고 달도 보이겠지. 그리고 나는 유리에 비치는 그녀의 환영을 바라보겠지.

이제 그만. 그녀를 그리워하는 건 이제 그만. 그녀가 바라는 건 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다. 추억 속에서 눈동자를 굴리며 괴로워하는 게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거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제발 눈앞에서 사라져.

빌어먹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정리하려고 놔둔 창고에서 10년이나 함께 해온 기타 케이스를 들고 집을 나선다. 뒷마당에 있는 작업실의 문은 땅바닥에 붙어있다. 신고 온 슬리퍼를 벗고 문에 발을 갖다 대면 하얀 불빛이 발바닥 전체를 스캔한다.

찰칵.

잠금장치가 해제되면 강화 불투명 유리로 만들어진 문은 좌우로 펼쳐진다. 작업실은 지하에 있다. 계단을 따라 설치해놓은 작은 전구들이 내 발걸음에 맞춰 불을 밝혀준다. 균형감각을 벌레가 좀먹지 않은 이상 실족할 우려가 없을 정도로 넓고 완만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초록색으로 칠한 문이 있다. 이웃집에 피해가 될 거 같아서 지하실에다 작업실을 만든 것으로 모자라 문에 방음처리까지 했다.

‘이웃집?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것보다 자기가 일을 하다가 방해받으면 내가 화날 거 같아서 그래. 이제 자기의 꿈에 온힘을 쏟아 부을 수 있겠지?’

이것 역시 그녀의 배려. 이쪽 문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진짜 문은 바로 안에 있으니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세 번째 문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작업실로 향하는 진짜 문. 어차피 이곳을 들어오는 첫 번째 문은 나와 그녀의 발만을 인식하게끔 되어 있지만 보다 확실한 안전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문이라고 설비업자가 설명해줬다. 이 문은 로봇이나 사이보그의 파괴력으로도 부술 수 없는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당신을 죽이라고 사주할지도 모르잖아.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엄청난 재능이 두려운 나머지…….’

핫. 나는 실소를 터트리고 만다. 손잡이를 잡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다가 그대로 문 앞에 주저앉아버린다.

내가 가는 모든 곳마다 그녀의 흔적이 있다. 침대 위의 미소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고, 그녀가 즐겨보던 뉴스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방송하고,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2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멍청이도 살아있고, 상쾌한 아침공기에 어울리는 음악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노래하며, 매일같이 일기를 썼던 자리에 남아 연필로 종이를 사각사각 긁어대는 그녀의 환영마저 여전히 존재한다.

그녀가 상상하고, 설계하고,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이곳이야말로 내게는 천국과 다를 게 없다. 죄를 지은 자는 하느님의 성지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녀의 육신을 저 하늘로 보내고도 아직까지 살아있는 나는 죄인이다. 영원히 함께하자는 맹세조차 지키지 못하는 못난 한 남자에 불과하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문 앞에 앉아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고 생전 그녀가 좋아했던 음악들을 하나씩 연주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한 곡들의 악보는 머릿속에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어 절대로 틀릴 일은 없다. 기계처럼,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한 진혼곡들을 연주를 하고나면 손가락 끝이 마비되고 다리는 저려온다. 입은 메마르고 갈증과 함께 깊은 허기가 찾아오지만 나는 그런 일련의 증상을 느끼고서야 웃을 수 있다.

나는 절대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내게 그만 자기를 잊으라고 말한다.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시시할 정도로 간단하다. 그녀는 강하고, 나는 나약하기 때문이다.


∞ 다시, 그녀의 경우

“저기, 난 우리 어머니를 만나러 온 겁니다만?”

나는 알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반반한 얼굴이다. 무엇보다도 젊다. 좋아. 이 정도면 훌륭해. 강연수 박사에게 내 결심을 털어놓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지금 우리는 공간이 아닌 모니터를 통해서 얘기하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을 죽은 사람의 세계로 실체화시키는 일은 꽤 많은 금액의 돈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영혼 보관소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모니터를 통해 죽은 사람과 얘기를 나눈다. 내가 이 남자를 만난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결심은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그를 나처럼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내가 진짜로 그를 사랑한다면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놔야한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던 옛날 그 시절로 말이다.

“강연수 박사님께 들었어요. 당신 심리학자라고요? 죽은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변할 수 있는 지를 연구한다죠. 그것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통해서.”

담담한 내 말투를 들은 남자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냐면 내가 말하는 태도가 마치 자신의 연구를 위해 어머니를 이용한다는 사실에 대한 도덕적 양심을 지적하는 것과 같았기 문이다.

“나를 비난하는 겁니까?”

“아마도요. 하지만 난 당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당신도 날 필요로 하죠.”

“하. 내가 당신을요?”

남자는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남자는 이미 나에게 넘어왔다.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당신 앞에 있어요. 내가 바라는 건 연기력이 가미된 가벼운 거짓말과 당신이 투자하는 시간. 그것만 충족시켜준다면 당신은 새로운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종류의 데이터입니까?”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이던 나는 망설였다. 과연 이 사람이 내 말에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죽은 사람에게는 주도권이라는 게 없다. 갇혀있다는 제한적인 요소만으로도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있는 많은 권리를 포기해야한다. 다시 말해 그가 거절한다면 이 모든 게 헛수고인 셈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어차피 시간은 얼마 없다. 모가 아니면 도다.

“사랑이요.”

“과연.”

그는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

“선배님이 당신을 내게 소개시켜줄만 하군요. 난 어머니의 사랑이 죽은 이후에도 계속 되는 지를 연구하고 있었죠. 당신의 사랑은 연인에 관한 겁니까?”

“네.”

어미가 죽어서도 자식에 대해 헌신적인지를 연구하고 있단 말인가. 정말 인간이란……. 난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그의 사상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해야만 한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니까.

“좋아요. 부족할지도 모르는 내 연기력과 당신의 계획에 투자하는 시간.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군요.”

남자는 내가 비치는 모니터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이미 어머니의 존재는 잊은 모양이다.

나는 방에 거울을 갖다 줄 것을 부탁했다. 이미 강연수 박사에게 말해둔 터라 가져오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내 남자가 오면 의자에서 비켜 거울의 반대편에 있어주라고 말했다.

“대화는?”

“그냥 웃어주면 되요. 실제로 당신이 하는 일은 별로 없을 테니까.”

너무 냉정하게 잘라 말해서인지 남자는 처음으로 당황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감독이 직접 고른 배우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겁니까?”

“세상만사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게 딱 좋은 겁니다. 필요 이상의 의욕을 싹둑 잘라버리는 것도 감독의 의무입니다.”

남자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말을 따라줬다.

30분. 이제 30분이 지나면 그는 강연수 박사의 안내를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된다. 무슨 말을 할지는 다 정했다. 그의 반응도 대충 예상을 한다. 나는 그를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역시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쪽에서 먼저 치고 나가야한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사람들의 환상을 이용하는 거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 틀려. 절대적으로 틀리다고. 여자뿐만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춰 대처하려는 학습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욕망이 첨가되면 뒤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받게 될 상처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욕망이 충족된 다음에야 생각하고 후회한다. 이미 늦었으면서도……. 사람은 그런 동물이다.

30분이 거의 지나자 내가 있는 공간 뒤로 작은 화면이 나오면서 그곳에 한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연수 박사의 조수였다. 그녀는 그가 영혼 보관소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나는 남자에게 내 앞에 앉으라고 얘기했다. 애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남자라는 설정을 말해주면서 최대한 밝게 웃으라고 명령한다. 그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내 남자의 뒤에 있는 문의 옆에 있는 램프의 불빛이 붉은색에서 초록색으로 변하자 우리는 약속한 연기를 시작했다. 남녀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연기하기 시작했고 강연수 박사의 안내를 받아 이곳으로 온 그는 이상한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언짢았는지 조용히 화를 냈다.

“강연수 박사님. 아무래도 잘못 안내하신 거 같습니다.”

“아니. 이곳이 맞네. 섣부른 판단으로 진실을 회피하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게.”

처음 남자만 보고서 다짜고짜 화를 냈던 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그의 다리가 심하게 휘청거린다. 오직 그의 자리에만 강도 높은 지진이 형성된 것 같다.

좋아.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그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기쁜 것이고, 그를 아프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한 번 호흡을 고른 다음 그는 모니터에 나와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의 눈은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묻고 싶어 한다. 그러나 먼저 입으로 꺼내지 않는다. 진실을 알기가 두려운 것이다.

“나 당신이 싫어졌어.”

나는 다짜고짜 본 목적을 꺼냈다. 그에게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줘선 안 된다.

“……저 남자는?”

그가 거울의 반대편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나는 남자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남자는 그에 맞춰 빙긋 웃으며 소심한 동작으로 손을 살짝 들어올린다.

“여기서 알게 된 남자야.”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싫어졌다는 거야?”

“꼭 그것만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거울을 가리켰다. “당신 꼬락서니를 봐. 4년째 같은 옷만 입고, 새로운 곡도 만들어내지 못해서 수입도 끊겼지? 그렇게 가난해서야 날 유지할 수 있겠어? 당신을 믿다가 소멸되느니 차라리 딴 남자를 만나는 게 당연하잖아.”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말에 사고회로가 정지해버렸는지 그는 딱히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나는 그런 당신의 미지근한 태도도 싫어. 도대체가 발전이 없잖아? 후― 언제까지고 당신만 바라봐주기를 원해? 그래서 날 이런 곳에 가둬놓고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한거야? 자기만족을 위해?”

그는 내 시선을 회피한다. 꽉 움켜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분해서가 아니다. 내가 말한 사실들을 납득하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내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의 마음은 뿌리째 흔들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게 자체가 무리다.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만둬. 우리 사랑에는 돈이 드니까.”

흡혈귀 퇴치를 위해 심장에 말뚝을 박아버리는 것처럼 나도 그의 가슴에 커다란 못을 쑤셔 박았다. 몇 번이고 못의 머리를 때려 그의 가슴에 단단히 고정시킨 나는 북극의 얼마 남지 않은 빙하를 담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거울을 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지.”

그래서 거울을 가져다놓았다. 겨우 4년 밖에 지나지 않았으면서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얼굴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이곳에 내 영혼을 보관하는 대신 부담하는 비용이 얼마나 그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드는지 깨닫고 해주려고.

내 예상대로, 그는 거울 앞에 다가가지 않았다. 절망을 쓸어 담은 눈동자로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는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멋진 반응이다.

“그를 만나서 행복해?”

잔잔한 파문으로 요동치면 호수의 표면이 조용해졌다. 그는 침착한 어조로 내게 물었다.

“응. 행복해. 하지만 널 보면 불행해져.”

아니. 전혀 행복하지 않아. 하지만 널 보면 행복해져.

“그만 가버려. 이제 필요 없으니까.”

내일도 올 거야? 당신이 정말 보고 싶은데.

나는 만면에 활짝 핀 장미처럼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미소를 떠올렸다.

나는 마음에 시들어버린 한 송이 국화처럼 침울하고 고독한 눈물을 흘려보냈다.

“안녕.”

안녕, 내 사랑.

강철과도 같은 단단함을 지닌 굳은 결의를 전면에 내세우자 그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이제야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악물고 눈에 잔뜩 힘을 주지만 소용없다. 나는 이미 마음먹었고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생각은 절대 없다.

잠시 후, 그는 결국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말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이별의 짧은 인사도 없이 그렇게 사라졌다.

남자는 벽에 기대서서 나를 쳐다보고는 흠칫 놀란다.

“왜 놀라죠?”

“……임의의 장소로 소환되지 않은 영혼은 울 수 없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그게 뭐 어떻다는 거죠?”

그는 내 물음에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거울을 가져와 모니터 앞에 둔다. 거울에 비친 나는 울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건 불가능하다.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라면 나는 절대 울 수가 없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 볼에 흐르는 투명한 액체는 눈물이 확실했다.

“설마…….”

나는 그를 떠올렸다. 말없이 나간 그는 이것을 보았을까. 내 심리를 읽기라도 했는지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긴 한숨을 내뱉은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안심해요. 보지 못했으니까.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로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는 석연치 않다는 얼굴을 하고서 내게 질문했다.

“당신은 이걸로 만족합니까?”

“아니요.”

내가 바로 답하자 그는 잠시 호흡을 짧게 들이마시더니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었죠?”

남자의 물음에 숨이 멎는다. 절대적으로 내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어느 누구도 감히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다. 애초부터 사랑 같은 비과학적인 것에 논리적인 사고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잖아. 하지만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말을 내뱉는다.

“네. 맞아요. 사랑은 모순덩이죠. 설령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준다고 해도 내가 만족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하죠. 당신은 만족했나요?”

내 물음에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거울을 옆으로 밀어내고 의자에 앉아 나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모니터에 갖다 대며 내 눈물을 닦아주는 시늉을 했다.

“저 남자, 아마도 다시 일어설 겁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에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빙긋 웃었다.

“당신처럼 강하고 멋진 여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분명히 일어서서 자신의 두 발로 나아갈 겁니다. 그게 인간이니까요.”

그것이 바로 인간.

그의 말에― 나도 마지막으로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 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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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구름/ 계단/ 그리고 하늘』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녀석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대낮에 난데없이 집으로 불쑥 찾아온 경찰 때문이었다. 학교가 방학인 탓에 벌써 1주일 전부터 집에 틀어박혀 소설을 써보겠다고 조용히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나를 찾아온 경찰의 존재 때문에 어머니는 불안하셨는지 현관문 근처를 기웃거리신다.



혹여나 아들이 나쁜 일에 휘말렸을까봐 걱정하시는 거다.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은 전혀 하시지 않는다. 그게 우리 어머니들의 사고다. 내 아들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요. 아마 경찰이 나를 잡아가려고 한다면 곧장 그들을 뜯어말리면서 그렇게 외치실 거다. 어머니의 믿음을 배반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 적이 없기에 나는 차분히 그들의 질문에 응했고, 성실히 답변해줬다. 경찰은 내가 알고 있는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그를 아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며칠 전에도 만났다고 얘기해줬다.

“최근에 그를 만난 게 정확히 언제입니까?”

내 기억으로는 사흘 전이었다. 하늘은 칙칙한 게 곧 비가 내릴 것 같았지만 우산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서 괜히 집에 두고 갔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는 바람에 큰 낭패를 봤었던 경험이 있어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만났습니까?”

경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게 ‘이런저런 정치나 경제에 관련된 세상 이야기도 하고, 야구 이야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떠도는 소문들을 정답게 나눠봤어요.’ 같은 잘잘한 것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먼저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두 명의 경찰 중에서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말했다.

“그가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첫 느낌은 무덤덤했다. ‘죽음’이라는 녀석은 제법 똑똑해서 사람이 태어나면 곧장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한 계획을 짜고서 결정적인 순간에 예고장을 날린 후 목숨을 훔쳐가는 게 특기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조물주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다.

때로는 삼류 드라마의 대본처럼 유치한 사랑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신조차 짐작하지 못할 기막힌 우연으로 인생이 역전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이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녀석도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해서인지 예고장을 깜빡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마 친구는 후자 쪽일 것이라.

녀석의 부고 소식을 듣고서 머릿속으로는 그런 내용을 써내려가고 있을 때 경찰이 굳어있는 내 얼굴을 묵묵히 쳐다보다가 한 마디 던진다.

“괜찮으십니까?”

물론 괜찮다. 충격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흘 전에 같이 헌책방에 갔었던 친구가 죽었다는 건 실감이 가지 않는 일이다. 아마도 장례식장을 찾아가면 충격은 정식으로 노트를 하고 뇌를 방문할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난 냉혈한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내가 사인을 묻자 그들은 조금 꺼려하면서도 벽에 박은 못에 올가미를 걸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마치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태도로 질문을 퍼부으며 머릿속에서 연상단어처럼 계속 떠오르는 의문들의 사슬을 끊어버렸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느냐.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느냐. 그때 무슨 대화를 했느냐. 다른 특별한 징조가 없었느냐 등등, 대체로 그들의 질문은 나를 살인용의자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닌 친구의 자살 동기를 찾는 것에 초점이 잡혀있었다.

준비한 질문을 모두 끝냈는지 경찰이 들고 있던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성실히 대답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들이 돌아가기 직전에 나는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서 그의 장례식이 행해지고 있는 병원을 물어봤다. 경찰이 알려준 병원은 그가 다니고 있던 대학의 부속병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자살한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하면서 장례식을 갈 채비를 했다. 옷장 구석에 걸려있는 정장도 꺼냈고 나와 발치수가 같은 아버지의 구두도 꺼내서 먼지를 닦아냈다.

녀석이 죽었다…….

역시 머리에 되놰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대충 준비를 마쳐놓고 헐렁한 하얀 셔츠와 모시 반바지를 벗어서 구석에 던지고서 꺼내놓은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아직 대학교 1학년이던 시절에 유일하게 소설에 대해서 논한 적이 있었던 젊은 교수님의 결혼식 때 처음으로 입고서 이번이 두 번째로 입는 옷이다. 설마 그게 친구의 장례식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왜 자살 따위를 했을까.

구두를 신으면서 나는 녀석이 자살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녀석의 부모님은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길거리 노점상으로 시작한 장사가 우연찮게 성공하여 미국에 안전하게 정착한 그의 부모님은 두 아들을 모두 의사로 키우고 싶었는지 어릴 때부터 의학에 대한 꿈을 심어준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 그의 형은 현재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친구 녀석은 고향땅을 그리워하던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의대를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고, 의대생치고는 이상하게 술을 싫어하던 녀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코 미루지 않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게다가 애인도 있다. 같은 의대생인데 어째서 그 얼굴로 연예인을 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미인이다. 아아, 무엇보다도 내가 실감 할 수 없는 건 녀석이 내게 가장 좋은 말동무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나는 문과로, 녀석은 이과로 갔지만 점심시간이나 하굣길에는 어김없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친한 사이였다. 화제는 자유. 누군가 꺼내면 그것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던 게 우리들의 대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의사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처럼 문과로 진학한 학생보다는 안정적이지 않나싶다.

경제적인 이유는 말할 가치도 없다. 학교 문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장학금을 받고 있었던 녀석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했다는 상상은 펭귄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는 뉴스보도를 보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어이가 없다. 여자친구? 나는 잠시 흐릿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납득하려고 노력했다. 젠장. 망할 커플들은 다 죽어버려라. 그녀는 녀석에게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성품을 가진 여자다. 집안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고운 마음씨와 남모르게 쌓은 덕까지 지니고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두루 좋아하는 미인이다. 게다가 낙천적인 게 장점이었던 친구가 여자문제로 자살했다는 상상 자체가 너무 감정적이었다.

나는 작가를 지망하고 있는 문학도지만 현실은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은 말뿐인 세상에 이성적이지 않은 논리는 사람을 납득 시키는 재주를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화만 돋울 뿐이다. 그래서 멍청한 나에게 조금 화가 나고 말았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는 2만원을 한사코 거절했다. 친구의 장례식이 진행 중인 대학병원은 여기서 2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아르바이트 밖에 없던 내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앞서서 챙겨주는 고마운 어머니의 마음이었지만 결국 받지 않았다. 거기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잠깐 얼굴만 비치고 올 생각이었다.

일단 그쪽에서 미리 도와달라고 전화가 오지도 않았고 의대생들은 자기들끼리의 연대가 꽤 강하다는 얘기를 얼핏 살아있었을 때의 친구에게 들은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분위기 속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런 장소에 오래 있다가 정신이 질식해서 졸도할지도 모른다.

응급실의 정반대편에 있는 영안실의 입구로 가자 생각했던 것보다 찾기가 쉬웠다. 일단 병원 영안실 안쪽부터 바깥 출입구까지 이어진 조화들의 행렬 때문이었다.

OO군의 명복을 빕니다, 모모 회사 임직원 일동.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모 회사 사장 누구누구.

이런 형식적인 문구들이 달려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조화들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좌우로 세워진 조화들의 사이를 지나 친구의 이름이 써진 영안실 앞으로 가니 정장을 입은 젊은 두 사람이 입구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라고 말하자 그들은 “선배님 친우분이시군요. 조의를 표하시려면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이런 역할을 역시 후배의 일이군.

입구까지 연결된 꽃들의 향연에 비해서 안에 있는 사람은 무척 적었다. 그런 풍경이 절로 내 눈살을 찌푸리게끔 만든 건 아무래도 고인의 옆을 지키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게끔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식 상복을 입고 있는 두 여인은 그의 어머니와 애인이었다. 지금도 눈가에서 흘러나오는 진주 하나하나를 손수건으로 닦아내시는 어머니에 반해 애인의 얼굴을 더없이 차분해보였지만 두 사람이 꼭 잡고 있는 손은 충분히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구두를 벗고 올라서서 녀석이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향해 슬그머니 걸어갔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여인의 시선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차곡차곡 제방을 쌓아 막아놓았던 게 터져버리려고 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강가에 서 있다가 어느 순간 범람해버린 슬픔의 강물에 휩쓸려 정신을 휙 놓고 말았다.

아― 이제야 실감이 난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억지로 참아내는 중이었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그의 어머니께 죄를 짓는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상에 놓인 향을 두 개 정도 집었다. 옆에 있는 촛불에 향의 끝을 태우면서 나는 녀석에게 들으려면 들으라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하나는 내가 너에게 바치는 몫.”

향 하나를 먼저 꽂았다. 나머지 하나는 손에 들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어진 향은 가느다란 회색빛 연기를 토해내며 새빨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머지 하나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절을 두 번 해야 했지만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애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목례를 했다.

“가장 친했던 말동무를 잃은 나에게 바치는 몫. 잘 가라. 나중에 다시 보자.”

그렇게 말하고서 손을 흔들었다. 손가락으로 잡고 있던 향을 입술 끝에 물고서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23살.

살아있다는 감각을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청춘의 피가 가슴에 품은 꿈의 밑거름이 되는 나이. 무쇠도 씹어 삼킬 수 있는 젊은 나이에 녀석은― 죽음을 삼키고 내 곁을 떠났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눈물을 흘리고 싶은 까닭은 상실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슬프다는 거야.」

아마 녀석이 있었다면 내가 꺼낸 말을 이런 식으로 반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녀석은 없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녀석은 여전히 쾌활했고 인터넷이나 서점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이상한(오래되거나 시중에서 유통되는 값보다 싸면서 상태가 좋은 책들을 주로 구입했다.)책들을 찾아다니는 수집가의 페로몬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의 습한 공기와 더불어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언제든지 비를 쏟아 부을 것만 같았지만 녀석은 그 특유의 쾌활함으로 자신이 돌아다니는 한은 절대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서 우산을 놓고 나갔던 것이다. 확실히 비가 오지 않으면 귀찮을 존재일 뿐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날에 우산을 놓고 간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았다.

대학교 근처에는 헌책방이 많았다. 구입하고 반도 읽지 못한 전공 서적을 시험만 보고나면 바로 팔아버리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하루의 술값, 혹은 밥값을 위해서 집에 읽지 않는 책들을 가져다가 돈으로 환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빈곤하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게 더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꽤 많다. 게다가 우리 학교의 도서관은 제법 관용적인 편이어서 어떤 종류의 책이더라도 학생이 원한다면 구입하여 배치해준다. 아마도 그것도 헌책방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학교 부근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 옛날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서적부터 시작하여 소설, 만화, 잡지, 전공서적, 교양서, 학습지 등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만나볼 수가 있다. 그런 걸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별로라고 대답하겠다.

일단 오늘처럼 습기가 함유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싫어지기도 한다. 한 장소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새 주인을 기다리며 보관되는 책들은 오묘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며칠만 그곳에 머물렀다면 이내 종이 한 장마다 깊이 스며들고 만다.

나는 그것을 곰팡이가 방귀 뀌는 냄새라고 표현했다. 그러자 친구는 재미있다는 듯 씩 웃고는 코로 최대한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이 냄새가 나쁘지 않은걸.」

녀석은 케케묵은 곰팡이 방귀 냄새를 좋아했다. 헌책방에 발을 내딛는 순간 녀석이 밝게 웃으며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이유와 관련이 적지는 않을 거다. 곰팡이는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피어나는 법이니까.

세 번째로 들어간 헌책방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어딘 가에 있을 네 번째 헌책방을 무작정 찾아 나섰을 때 녀석이 화제를 꺼냈다.

「우리는 하루에 무의미한 대화를 얼마나 나누고 있을까?」

무의미한 대화라. 팔딱팔딱 살아서 날뛰는 활어(活魚)를 도마 위에 막 올려놓은 요리사는 재료에 어울리는 칼을 찾아 주방을 탐색한다.

글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초등학교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니까. 그때는 산다는 걸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때라서 그냥 눈앞에 벌어진 일에만 신경을 써서 이것저것 주절거렸던 거 같아. 중학교 때도 비슷했나. 지금과는 다르게 성적이라는 걸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러자 녀석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너는 지금도 교육에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잖아. 교직 이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학점이면서도 일부러 신청 안한 주제에.」

윽. 이 녀석에게 누가 내 성적을 까발렸지. 단적으로 밝히자면 나는 공부에 취미가 없다. 공부를 취미삼아서 하냐고 화부터 내는 사람도 꽤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공부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닌 누구나 배우는 의무교육을 뜻하는 것이다.

의무교육은 시간이 아깝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지만 중학교 과정까지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서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그에 맞춰 특화된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나중에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혹은 내 지식을 물려줄 상대가 생긴다면 그렇게 키우겠다고 실제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사람은 모나지 않게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키워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불여우 같은 마누라가 생겨서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면 교묘한 방식으로 아이를 내편으로 세뇌시켜야겠지. 그런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이의 성별은 아빠 말을 잘 듣는 딸이 좋겠다.

나는 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었던 (지금은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은) 판타지 소설을 읽고 나서 ‘나도 이런 재미있는 글을 써보자!’ 라고 시작한 게 거의 10년이나 지났다. 성과물이라고 말한다면야 인터넷에서 개최하는 작은 규모의 공모전에 몇 개의 단편으로 입상한 게 고작이다. 10년이라. 길다고 말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그러나 결코 후회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늦게 시작했다며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 TV를 보고 있는데 8살짜리 아이가 나왔다. 꿈이 동화작가인 그 아이는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 영어까지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고 벌써 자기만의 동화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걸 영어로 번역하기까지 한다. 하아. 도저히 그걸 보고 충격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저 아이가 내 나이쯤이 되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지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자니 패배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결단이 섰다. 교직 이수를 포기하고 국어국문학 수업을 듣기 보다는 문예창작의 수업을 들었다. 1년을 죽자 살자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새벽하늘을 바라보자니 이 일이 괴롭기는커녕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노력하게 되었다. 사람이 공기만 먹고도 생존할 수 있다면 괜찮지만 먹고살아야한다는 일반적인 이론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좋아하는 일로 생계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아주 간단명료한 논리다.

나는 녀석에게 오른쪽 골목으로 가자고 말하면서 대답했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수록 무의미한 대화를 할 가능성이 적겠지.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은 보통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테고 그건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가령 의사가 환자의 가족에 관한 가십거리를 떠들어대도 분명 그건 환자의 정신적인 케어(care)까지 신경 쓰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일단 무의미한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찾으려면 직업이 없는 자여야만 해. 물론 그 앞에 정말로 이 대화가 무의미한지가 증명되어야 하겠지만.

「제법 그럴싸하네. 그렇다면 전문적인 직업을 가졌음에도 무의미한 대화를 하는 빈도가 높은 사람은 뭘까?」

쉽군.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겠지.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분명히 필요한 대화겠지만 정작 본인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는 건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난 피식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이 굳이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라. 개인의 만족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적어도 행복하지는 않을 거 같다.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실상은 그것도 아니다. 당장 앞길이 막막할 따름. 글을 쓰는 게 행복해서 이 짓거리를 계속 하고 있지만 정작 내 생활이 조금이나마 윤택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아니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에 반해 녀석은 착실히 자신의 길만 걸어가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다.

부럽다? 아니, 그저 씁쓸할 뿐이다. 녀석에게 한 걸음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네 번째 헌책방을 찾아 들어가자 할머니는 자주 오는 우리들을 힐끗 보시더니 이내 신경을 쓰지도 않으시고 TV를 계속 보셨다. 원래는 10분이면 다 둘러보고 헌책방을 나서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날은 그곳에서 30분을 보내야만 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 것이다.

오호, 네놈의 말을 믿고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내 우둔함을 탓해야겠군.

입구에 서서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놀란 사람들이 저마다 비를 피할 장소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녀석이 어디선가 찾아온 책 한권을 보여줬다. 하늘색 표지에 제목이 적혀있지 않은 얇은 책이었다. 책의 옆면을 바라보니 습기에 변질된 종이의 색깔이 누리끼리한 게 꽤나 오랫동안 곰팡이 방귀 냄새를 품고 있었던 녀석 같았다.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푸른색 표지로 재미있을 거 같다는 추측을 한다면 세상 모든 책들은 파란색으로 나오겠군.

지금의 칙칙한 잿빛 하늘과는 전혀 다른 푸른색 표지의 책을 받아든 나는 책의 다음 장을 넘겼다.

하아, 찢어진 건가.

책 안에는 제목이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가보니 출판사는 물론 저자의 이름, 초판 인쇄의 날짜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비로 바깥 세상에 내놓은 누군가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신기하기는 하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친구는 잽싸게 책을 빼앗으면서 새로운 장난감을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하지? 희귀본이야, 희귀본! 세상에 딱 하나 뿐인 책일 수도 있잖아. 무엇보다 제목이 없는 게 마음에 들어. 제목은 내가 붙여도 되겠지?」

뭐, 저자가 모른다면야 별 상관없지 않을까. 소나기가 그치고 이후에 다른 헌책방을 세 곳이나 더 방문했지만 그것 말고는 소득이 없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싱글벙글 잘도 웃으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한 번 더 소나기가 내렸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서 헤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장례식에서 돌아오자 어머니는 벌써 왔냐면 핀잔을 준다.

“왜 벌써왔어? 그 아이 어머니 만나서 얘기는 했고?”

예예, 했습니다. 가보니까 사람들이 많더라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일찍 돌아왔어요.

능숙하게 입술에 침 한 번 바르지 않고 자연스레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자식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해봤자 소용없는 짓이라는 건 옛날에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깨우친 바가 있지만 그냥 넘어가주신다. 실제로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였어?”

살짝 열려진 방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소리죽여 웃고 말았다. 그리고 대답한다.

좋은 말벗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죠.

좋으나 나쁘나, 먼저 가버린 녀석을 다시 만날 수는 없다.

우우우웅―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문자가 온 모양이다. 정장을 옷걸이에 걸어 다시 옷장에 넣고 나서 나는 휴대폰을 열어봤다. 문자를 보낸 대상이 누군지 알아버린 순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건 신종 장난인가.


모든 것을 이어라. 너라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겠지?

8/5 2:35 PM

○○○

010-xxxx-xxxx


죽어버린 녀석이 문자를 보냈다. 과연 이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일까.


녀석이 죽은 지 사흘이 지났다.

문자는 문자일 뿐이었다. 답문을 보냈지만 대답은 역시나 없었고 누군가의 장난이겠거니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녀석의 마지막 유언이었다고 할지언정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장례식에 가서 웃으며 나와 버린 마당에 어떻게 다시 그 녀석의 어머니를 뵐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무시했다.

특정한 어떤 사람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건 완전히 잊어버렸다거나 아니면 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나는 전자인 듯싶다. 나는 녀석에 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도둑 한 번 들지 않았던 우리 집에 경찰이 찾아온 것도 생각해보면 엄청난 대사건이었는데 이제는 그다지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한때만 피어오르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하고 말았다. 녀석의 애인이었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죽은 친구의 애인에게 걸려온 전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일단 일부러 벨이 끊기기를 기다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받지 않으면 다시는 걸려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벨을 무시하고 다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는 다시 걸려왔다. 당연히 이번에도 무시했다. 연이어 벨이 울렸는데 받지 않은 까닭을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그렇게 세 번의 벨이 더 있고 나서야 핸드폰은 잠잠해졌다. 왠지 모르게 나쁜 짓을 해버린 기분이었지만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우우우웅―

이번엔 문자냐.


○○의 유언입니다. □□씨,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문자를 보거든 이 번호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의 여자친구인 ●●입니다. 시간은 언제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8/8 12:21 PM

○○의 여친 ●●

010-sss-ssss


문자치고는 꽤 긴 장문이었다. 이정도면 확실히 전화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녀석의 유언이라. 나는 사흘 전에 봤었던 문자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이어라.

녀석은 문자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이 정말로 녀석이 보낸 게 확실하다면 가정이 먼저 사실로 확인되어야 하겠지만.

노트북 모니터에 보이는 문장의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마침 글도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마당에 신선한 자극을 받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좋아, 나가보자.

핸드폰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조차 없는 평범한 통화음이 두 번 정도 울리자 “여보세요?” 라는 여성의 고운 목소리가 울렸다.

네, 전화거신 분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인데요. 샤워 중이어서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니까 6통이나 같은 분에게서 왔더군요.

그러자 그녀는 죽은 ○○의 일로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면서 자기와 만나줄 것을 부탁했다. 이미 만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지금 당장 만나자고 말하자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대학교 근처에 있는 오컬트라는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점심을 먹지 않았지만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뭐라고 챙겨먹고 나가라는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냉장고에서 우유 하나를 꺼내 마시고 집을 나섰다.

집에 있어서 몰랐는데 바깥은 꽤 더웠고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고서 태양을 피하고 싶은 욕망을 분출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차분히 버스를 기다렸다.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이런 날씨에 햇빛을 맞으며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교의 쪽문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자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하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일행이 먼저 와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창가가 아닌 안쪽의 자리로 이동했다. 창문 바깥에 차양막이 설치되어 햇빛을 막아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여자는 일찍 나오는 법이 없는 모양이다. 뭘 그리 준비하느라 바쁜지 도착한 지 10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주문도 하지 않고 멍하니 기다리는 게 미안해서 종업원에게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종류는 카페라떼.

멍하니 있는 것도 가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시간을 위해 나는 항상 주머니에 펜과 수첩을 지니고 다닌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그걸 글로 적어내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수첩을 꺼내 빈 페이지를 펴고 입술에 펜을 물고 생각하고 있다가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종업원이 주문한 커피를 들고 온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씨.”

그녀였다. 급히 만나자고 한 사람치고는 깔끔한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고 손에는 두꺼운 전공서적만한 크기를 가진 핸드백을 들고 나온 그녀는 어딘가의 대기업 회사를 다니는 캐리어우먼이란 느낌이 들었다. 인사를 건네면서 먼저 주문했으니 뭐라도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종류는 카페모카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장례식에서 봤던 것처럼 차분한 인상이었다. 예전에 만났을 때는 조금 들뜬 생기발랄한 처녀와도 같은 분위기였었다. 아무래도 그때는 남자친구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나는 별로 흥미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실제로도 나는 이번 만남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녀석의 유언이라고 했던가요.

그러자 그녀는 왠지 슬퍼 보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테이블 쪽으로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시선을 내렸다.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지 않았던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뭐라고 써져 있던가요? 그렇게 물어보기 전에 먼저 문자의 내용에 대해서 말했다.

“그게 전부였나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까만색 핸드백에서 핸드폰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분명 죽어버린 친구의 것이었다.

아직 정지가 되지 않았나요?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문자 기능으로 문자를 보냈어요. 그리고 제게는 이런 문자가 왔었죠.”


책상에 푸른 표지의 책이 있을 거야. 그걸 □□에게 전해줘. 당분간 외롭겠지. 미안하다.

8/8 12:00 PM

위대한 ○○

010-xxxx-xxxx


나는 그녀의 핸드폰 액정에 떠오른 문자를 보고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그 한 마디로 끝내버린 거냐.

그것을 보고 있을 때 커피가 도착했다. 카페라떼 한 잔과 카페모카 한 잔. 그러나 우리 둘은 커피에 손을 대지도 못했다. 이어서 그녀가 가방에서 푸른 표지의 책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놨기 때문이었다.

“이 책― 아시나요?”

나는 테이블 위를 기어가다가 돌연 심장마비로 죽어버린 바퀴벌레의 시체라도 보는 것처럼 그것을 쳐다봤다. 알다마다. 그건 녀석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구입한 책이었다. 책의 이름도, 저자도, 출판사도, 가격은 물론 초판일도 적혀있지 않았던 책. 간신히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든 나는 책의 바깥 표지와 안쪽을 살펴봤다. 여기에 제목을 붙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제목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책의 문장에 노란색 형광펜으로 그어놓은 표시가 새로 생기기는 했지만 어디에도 제목을 뜻하는 녀석의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는 당신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네?

뭔가 넋두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차분해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짙은 상실감이 드러난다. 그래. 저것이 바로 슬픔이다. 상실감이 짙어지면 슬퍼지는 것이다.

“꿈을 좇는 사람이라면서요? 당신 같은 친구를 곁에 둬서 좋다고 얘기하고는 했어요.”

……거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조용히― 그녀가 미처 속에서 토해내지 못한 울분과 슬픔을 들어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늦은 시각. 도시의 불빛이 모두 사라진 새벽.

그녀는 헤어지기 전에 묘한 말을 내게 남겼다.

‘알아요? 한때 ○○도 당신처럼 작가를 꿈꿨다는 거?’

금시초문이었다. 철학, 소설, 만화, 논문, 자기계발서 등등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좋아하는 녀석이었지만 한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긴,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는데 남의 속마음을 알리가 있나. 고독한 인간은 누군가와 같이 있기를 원하지만 같이 있다고 해서 고독감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저 함께 있다는 생각에 가려질 뿐. 함께 있는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서 고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결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의 고독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배웠는데. 녀석은 자신의 고독이 뭔지 말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고독을 달래주지 못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길과 자신이 원하는 길이 서로 달라서 자살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흔해빠진 스토리군. 나는 방에서 나와 베란다로 나갔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한 다음에 푸른 표지의 책을 읽어봤다. 군데군데 노란색 형광펜이 그어져있어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내용은 평범했다.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의 꿈은 미술과 관련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소년이 훌륭한 법률가가 되어서 자신이 어릴 적에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기를 바란 모양이다. 어느 대회에 출품하기 위한 작품을 아버지가 산산이 부숴버리고 더욱 공부에 정진하여 큰사람이 될 것을 강요하자 아들은 참지 못하고 가출을 한다.

근처에 있는 선배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다가 결국 돌아갈 곳이 집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그를 발견한 엄마는 녹색신호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오다가 과속한 트럭에 치여 숨진다. 차가운 영안실에서 아들은 슬피 울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날 저녁, 아들은 새벽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가 누군가의 울음을 듣게 된다. 그건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 남몰래 숨죽여 우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고개를 돌리던 아들은 우연히 달력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달력에는 아버지의 생일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날이기도 했다.

대충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 소설의 어디가 녀석의 마음을 자극했을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녀석은 이 소설을 읽고 극심한 심적 변화를 겪은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런 소설의 어디가 녀석을 자극했는지 모르겠다.

시원한 새벽바람을 몸으로 부딪치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반짝거리는 많은 별들이 보였다. 도시의 불빛이 모조리 꺼지고 나서야 보이는 작은 형광등이다. 북두칠성. 오리온. 내가 아는 별자리라고는 고작 그 정도가 전부다. 도대체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점들을 선으로 이어서 백조나 사자를 볼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별자리라…….

아아. 그런 의미였나.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노트북 옆에 놓여있는 푸른 표지의 책을 펼쳤다. 군데군데 노란색 형광펜으로 그어진 부분들을 찾아서 컴퓨터의 문서프로그램에 입력한다. 그것은 문장의 첫머리에만 노란색 선이 그어진 것도 있었고 중간 중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있었다.

녀석은 내게 ‘모든 것을 이어라.’ 라고 말했다.

첫 번째 문장은 ‘가끔 불러보는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역사[책]에서나 나올법한 영웅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번째 문장은 ‘어두운 방안에 빛이라고는 천장에 붙은 야광[별] 하나뿐이었다.’

세 번째 문장은 ‘[구름]은 저토록 자유로운데 나는 이 좁은 세상에 갇혀 있다.’

네 번째 문장은 ‘그것으로 얼굴 근육을 적당히 풀어주고 [계단]을 내려가려던 찰나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다섯 번째 문장은 ‘생기 없는 인형처럼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마지막 문장은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전부다. 나는 문자를 나열했다.

책, 이름, 별, 구름, 계단, 하늘,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 문장은 아들에게 미술은 집어치우고 계속 공부에 정진하라는 아버지의 대사 전체였다.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책 이름은 별, 구름, 계단, 하늘을 넣어서 지어달라는 거냐.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거냐? 내 머리로는 이 정도 추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유언을 남기는 녀석은 또 뭐냐.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그것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문장을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단어 하나로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는 것. 애초에 이 방식은 내가 문장을 한참 연습할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녀석이 남긴 유언이자 숙제라고 해야 할까.

나는 무의미한 대화에 지쳐서 앞으로 있을 미래를 포기하는 낙오자의 심정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자신의 꿈을 응원 받지 못해서 현재조차 포기하는 패배자의 심정을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결심을 잊고 남에게 멋대로 떠넘기는 바보의 심정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나마 나와 같은 꿈을 꾸며 삶을 살아갔던 무명작가의 넋을 변변찮은 글재주로 위로하고자 한다.


『그는 별을 따기 위해 구름계단을 밟고 하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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