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구름/ 계단/ 그리고 하늘』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녀석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대낮에 난데없이 집으로 불쑥 찾아온 경찰 때문이었다. 학교가 방학인 탓에 벌써 1주일 전부터 집에 틀어박혀 소설을 써보겠다고 조용히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나를 찾아온 경찰의 존재 때문에 어머니는 불안하셨는지 현관문 근처를 기웃거리신다.



혹여나 아들이 나쁜 일에 휘말렸을까봐 걱정하시는 거다.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은 전혀 하시지 않는다. 그게 우리 어머니들의 사고다. 내 아들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요. 아마 경찰이 나를 잡아가려고 한다면 곧장 그들을 뜯어말리면서 그렇게 외치실 거다. 어머니의 믿음을 배반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 적이 없기에 나는 차분히 그들의 질문에 응했고, 성실히 답변해줬다. 경찰은 내가 알고 있는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그를 아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며칠 전에도 만났다고 얘기해줬다.

“최근에 그를 만난 게 정확히 언제입니까?”

내 기억으로는 사흘 전이었다. 하늘은 칙칙한 게 곧 비가 내릴 것 같았지만 우산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서 괜히 집에 두고 갔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는 바람에 큰 낭패를 봤었던 경험이 있어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만났습니까?”

경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게 ‘이런저런 정치나 경제에 관련된 세상 이야기도 하고, 야구 이야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떠도는 소문들을 정답게 나눠봤어요.’ 같은 잘잘한 것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먼저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두 명의 경찰 중에서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말했다.

“그가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첫 느낌은 무덤덤했다. ‘죽음’이라는 녀석은 제법 똑똑해서 사람이 태어나면 곧장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한 계획을 짜고서 결정적인 순간에 예고장을 날린 후 목숨을 훔쳐가는 게 특기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조물주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다.

때로는 삼류 드라마의 대본처럼 유치한 사랑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신조차 짐작하지 못할 기막힌 우연으로 인생이 역전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이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녀석도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해서인지 예고장을 깜빡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마 친구는 후자 쪽일 것이라.

녀석의 부고 소식을 듣고서 머릿속으로는 그런 내용을 써내려가고 있을 때 경찰이 굳어있는 내 얼굴을 묵묵히 쳐다보다가 한 마디 던진다.

“괜찮으십니까?”

물론 괜찮다. 충격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흘 전에 같이 헌책방에 갔었던 친구가 죽었다는 건 실감이 가지 않는 일이다. 아마도 장례식장을 찾아가면 충격은 정식으로 노트를 하고 뇌를 방문할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난 냉혈한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내가 사인을 묻자 그들은 조금 꺼려하면서도 벽에 박은 못에 올가미를 걸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마치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태도로 질문을 퍼부으며 머릿속에서 연상단어처럼 계속 떠오르는 의문들의 사슬을 끊어버렸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느냐.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느냐. 그때 무슨 대화를 했느냐. 다른 특별한 징조가 없었느냐 등등, 대체로 그들의 질문은 나를 살인용의자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닌 친구의 자살 동기를 찾는 것에 초점이 잡혀있었다.

준비한 질문을 모두 끝냈는지 경찰이 들고 있던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성실히 대답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들이 돌아가기 직전에 나는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서 그의 장례식이 행해지고 있는 병원을 물어봤다. 경찰이 알려준 병원은 그가 다니고 있던 대학의 부속병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자살한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하면서 장례식을 갈 채비를 했다. 옷장 구석에 걸려있는 정장도 꺼냈고 나와 발치수가 같은 아버지의 구두도 꺼내서 먼지를 닦아냈다.

녀석이 죽었다…….

역시 머리에 되놰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대충 준비를 마쳐놓고 헐렁한 하얀 셔츠와 모시 반바지를 벗어서 구석에 던지고서 꺼내놓은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아직 대학교 1학년이던 시절에 유일하게 소설에 대해서 논한 적이 있었던 젊은 교수님의 결혼식 때 처음으로 입고서 이번이 두 번째로 입는 옷이다. 설마 그게 친구의 장례식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왜 자살 따위를 했을까.

구두를 신으면서 나는 녀석이 자살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녀석의 부모님은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길거리 노점상으로 시작한 장사가 우연찮게 성공하여 미국에 안전하게 정착한 그의 부모님은 두 아들을 모두 의사로 키우고 싶었는지 어릴 때부터 의학에 대한 꿈을 심어준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 그의 형은 현재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친구 녀석은 고향땅을 그리워하던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의대를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고, 의대생치고는 이상하게 술을 싫어하던 녀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코 미루지 않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게다가 애인도 있다. 같은 의대생인데 어째서 그 얼굴로 연예인을 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미인이다. 아아, 무엇보다도 내가 실감 할 수 없는 건 녀석이 내게 가장 좋은 말동무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나는 문과로, 녀석은 이과로 갔지만 점심시간이나 하굣길에는 어김없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친한 사이였다. 화제는 자유. 누군가 꺼내면 그것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던 게 우리들의 대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의사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처럼 문과로 진학한 학생보다는 안정적이지 않나싶다.

경제적인 이유는 말할 가치도 없다. 학교 문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장학금을 받고 있었던 녀석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했다는 상상은 펭귄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는 뉴스보도를 보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어이가 없다. 여자친구? 나는 잠시 흐릿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납득하려고 노력했다. 젠장. 망할 커플들은 다 죽어버려라. 그녀는 녀석에게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성품을 가진 여자다. 집안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고운 마음씨와 남모르게 쌓은 덕까지 지니고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두루 좋아하는 미인이다. 게다가 낙천적인 게 장점이었던 친구가 여자문제로 자살했다는 상상 자체가 너무 감정적이었다.

나는 작가를 지망하고 있는 문학도지만 현실은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은 말뿐인 세상에 이성적이지 않은 논리는 사람을 납득 시키는 재주를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화만 돋울 뿐이다. 그래서 멍청한 나에게 조금 화가 나고 말았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는 2만원을 한사코 거절했다. 친구의 장례식이 진행 중인 대학병원은 여기서 2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아르바이트 밖에 없던 내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앞서서 챙겨주는 고마운 어머니의 마음이었지만 결국 받지 않았다. 거기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잠깐 얼굴만 비치고 올 생각이었다.

일단 그쪽에서 미리 도와달라고 전화가 오지도 않았고 의대생들은 자기들끼리의 연대가 꽤 강하다는 얘기를 얼핏 살아있었을 때의 친구에게 들은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분위기 속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런 장소에 오래 있다가 정신이 질식해서 졸도할지도 모른다.

응급실의 정반대편에 있는 영안실의 입구로 가자 생각했던 것보다 찾기가 쉬웠다. 일단 병원 영안실 안쪽부터 바깥 출입구까지 이어진 조화들의 행렬 때문이었다.

OO군의 명복을 빕니다, 모모 회사 임직원 일동.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모 회사 사장 누구누구.

이런 형식적인 문구들이 달려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조화들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좌우로 세워진 조화들의 사이를 지나 친구의 이름이 써진 영안실 앞으로 가니 정장을 입은 젊은 두 사람이 입구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라고 말하자 그들은 “선배님 친우분이시군요. 조의를 표하시려면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이런 역할을 역시 후배의 일이군.

입구까지 연결된 꽃들의 향연에 비해서 안에 있는 사람은 무척 적었다. 그런 풍경이 절로 내 눈살을 찌푸리게끔 만든 건 아무래도 고인의 옆을 지키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게끔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식 상복을 입고 있는 두 여인은 그의 어머니와 애인이었다. 지금도 눈가에서 흘러나오는 진주 하나하나를 손수건으로 닦아내시는 어머니에 반해 애인의 얼굴을 더없이 차분해보였지만 두 사람이 꼭 잡고 있는 손은 충분히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구두를 벗고 올라서서 녀석이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향해 슬그머니 걸어갔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여인의 시선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차곡차곡 제방을 쌓아 막아놓았던 게 터져버리려고 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강가에 서 있다가 어느 순간 범람해버린 슬픔의 강물에 휩쓸려 정신을 휙 놓고 말았다.

아― 이제야 실감이 난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억지로 참아내는 중이었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그의 어머니께 죄를 짓는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상에 놓인 향을 두 개 정도 집었다. 옆에 있는 촛불에 향의 끝을 태우면서 나는 녀석에게 들으려면 들으라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하나는 내가 너에게 바치는 몫.”

향 하나를 먼저 꽂았다. 나머지 하나는 손에 들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어진 향은 가느다란 회색빛 연기를 토해내며 새빨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머지 하나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절을 두 번 해야 했지만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애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목례를 했다.

“가장 친했던 말동무를 잃은 나에게 바치는 몫. 잘 가라. 나중에 다시 보자.”

그렇게 말하고서 손을 흔들었다. 손가락으로 잡고 있던 향을 입술 끝에 물고서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23살.

살아있다는 감각을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청춘의 피가 가슴에 품은 꿈의 밑거름이 되는 나이. 무쇠도 씹어 삼킬 수 있는 젊은 나이에 녀석은― 죽음을 삼키고 내 곁을 떠났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눈물을 흘리고 싶은 까닭은 상실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슬프다는 거야.」

아마 녀석이 있었다면 내가 꺼낸 말을 이런 식으로 반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녀석은 없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녀석은 여전히 쾌활했고 인터넷이나 서점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이상한(오래되거나 시중에서 유통되는 값보다 싸면서 상태가 좋은 책들을 주로 구입했다.)책들을 찾아다니는 수집가의 페로몬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의 습한 공기와 더불어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언제든지 비를 쏟아 부을 것만 같았지만 녀석은 그 특유의 쾌활함으로 자신이 돌아다니는 한은 절대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서 우산을 놓고 나갔던 것이다. 확실히 비가 오지 않으면 귀찮을 존재일 뿐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날에 우산을 놓고 간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았다.

대학교 근처에는 헌책방이 많았다. 구입하고 반도 읽지 못한 전공 서적을 시험만 보고나면 바로 팔아버리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하루의 술값, 혹은 밥값을 위해서 집에 읽지 않는 책들을 가져다가 돈으로 환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빈곤하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게 더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꽤 많다. 게다가 우리 학교의 도서관은 제법 관용적인 편이어서 어떤 종류의 책이더라도 학생이 원한다면 구입하여 배치해준다. 아마도 그것도 헌책방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학교 부근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 옛날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서적부터 시작하여 소설, 만화, 잡지, 전공서적, 교양서, 학습지 등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만나볼 수가 있다. 그런 걸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별로라고 대답하겠다.

일단 오늘처럼 습기가 함유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싫어지기도 한다. 한 장소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새 주인을 기다리며 보관되는 책들은 오묘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며칠만 그곳에 머물렀다면 이내 종이 한 장마다 깊이 스며들고 만다.

나는 그것을 곰팡이가 방귀 뀌는 냄새라고 표현했다. 그러자 친구는 재미있다는 듯 씩 웃고는 코로 최대한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이 냄새가 나쁘지 않은걸.」

녀석은 케케묵은 곰팡이 방귀 냄새를 좋아했다. 헌책방에 발을 내딛는 순간 녀석이 밝게 웃으며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이유와 관련이 적지는 않을 거다. 곰팡이는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피어나는 법이니까.

세 번째로 들어간 헌책방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어딘 가에 있을 네 번째 헌책방을 무작정 찾아 나섰을 때 녀석이 화제를 꺼냈다.

「우리는 하루에 무의미한 대화를 얼마나 나누고 있을까?」

무의미한 대화라. 팔딱팔딱 살아서 날뛰는 활어(活魚)를 도마 위에 막 올려놓은 요리사는 재료에 어울리는 칼을 찾아 주방을 탐색한다.

글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초등학교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니까. 그때는 산다는 걸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때라서 그냥 눈앞에 벌어진 일에만 신경을 써서 이것저것 주절거렸던 거 같아. 중학교 때도 비슷했나. 지금과는 다르게 성적이라는 걸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러자 녀석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너는 지금도 교육에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잖아. 교직 이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학점이면서도 일부러 신청 안한 주제에.」

윽. 이 녀석에게 누가 내 성적을 까발렸지. 단적으로 밝히자면 나는 공부에 취미가 없다. 공부를 취미삼아서 하냐고 화부터 내는 사람도 꽤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공부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닌 누구나 배우는 의무교육을 뜻하는 것이다.

의무교육은 시간이 아깝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지만 중학교 과정까지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서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그에 맞춰 특화된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나중에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혹은 내 지식을 물려줄 상대가 생긴다면 그렇게 키우겠다고 실제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사람은 모나지 않게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키워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불여우 같은 마누라가 생겨서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면 교묘한 방식으로 아이를 내편으로 세뇌시켜야겠지. 그런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이의 성별은 아빠 말을 잘 듣는 딸이 좋겠다.

나는 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었던 (지금은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은) 판타지 소설을 읽고 나서 ‘나도 이런 재미있는 글을 써보자!’ 라고 시작한 게 거의 10년이나 지났다. 성과물이라고 말한다면야 인터넷에서 개최하는 작은 규모의 공모전에 몇 개의 단편으로 입상한 게 고작이다. 10년이라. 길다고 말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그러나 결코 후회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늦게 시작했다며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 TV를 보고 있는데 8살짜리 아이가 나왔다. 꿈이 동화작가인 그 아이는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 영어까지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고 벌써 자기만의 동화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걸 영어로 번역하기까지 한다. 하아. 도저히 그걸 보고 충격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저 아이가 내 나이쯤이 되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지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자니 패배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결단이 섰다. 교직 이수를 포기하고 국어국문학 수업을 듣기 보다는 문예창작의 수업을 들었다. 1년을 죽자 살자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새벽하늘을 바라보자니 이 일이 괴롭기는커녕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노력하게 되었다. 사람이 공기만 먹고도 생존할 수 있다면 괜찮지만 먹고살아야한다는 일반적인 이론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좋아하는 일로 생계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아주 간단명료한 논리다.

나는 녀석에게 오른쪽 골목으로 가자고 말하면서 대답했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수록 무의미한 대화를 할 가능성이 적겠지.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은 보통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테고 그건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가령 의사가 환자의 가족에 관한 가십거리를 떠들어대도 분명 그건 환자의 정신적인 케어(care)까지 신경 쓰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일단 무의미한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찾으려면 직업이 없는 자여야만 해. 물론 그 앞에 정말로 이 대화가 무의미한지가 증명되어야 하겠지만.

「제법 그럴싸하네. 그렇다면 전문적인 직업을 가졌음에도 무의미한 대화를 하는 빈도가 높은 사람은 뭘까?」

쉽군.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겠지.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분명히 필요한 대화겠지만 정작 본인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는 건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난 피식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이 굳이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라. 개인의 만족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적어도 행복하지는 않을 거 같다.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실상은 그것도 아니다. 당장 앞길이 막막할 따름. 글을 쓰는 게 행복해서 이 짓거리를 계속 하고 있지만 정작 내 생활이 조금이나마 윤택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아니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에 반해 녀석은 착실히 자신의 길만 걸어가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다.

부럽다? 아니, 그저 씁쓸할 뿐이다. 녀석에게 한 걸음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네 번째 헌책방을 찾아 들어가자 할머니는 자주 오는 우리들을 힐끗 보시더니 이내 신경을 쓰지도 않으시고 TV를 계속 보셨다. 원래는 10분이면 다 둘러보고 헌책방을 나서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날은 그곳에서 30분을 보내야만 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 것이다.

오호, 네놈의 말을 믿고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내 우둔함을 탓해야겠군.

입구에 서서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놀란 사람들이 저마다 비를 피할 장소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녀석이 어디선가 찾아온 책 한권을 보여줬다. 하늘색 표지에 제목이 적혀있지 않은 얇은 책이었다. 책의 옆면을 바라보니 습기에 변질된 종이의 색깔이 누리끼리한 게 꽤나 오랫동안 곰팡이 방귀 냄새를 품고 있었던 녀석 같았다.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푸른색 표지로 재미있을 거 같다는 추측을 한다면 세상 모든 책들은 파란색으로 나오겠군.

지금의 칙칙한 잿빛 하늘과는 전혀 다른 푸른색 표지의 책을 받아든 나는 책의 다음 장을 넘겼다.

하아, 찢어진 건가.

책 안에는 제목이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가보니 출판사는 물론 저자의 이름, 초판 인쇄의 날짜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비로 바깥 세상에 내놓은 누군가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신기하기는 하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친구는 잽싸게 책을 빼앗으면서 새로운 장난감을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하지? 희귀본이야, 희귀본! 세상에 딱 하나 뿐인 책일 수도 있잖아. 무엇보다 제목이 없는 게 마음에 들어. 제목은 내가 붙여도 되겠지?」

뭐, 저자가 모른다면야 별 상관없지 않을까. 소나기가 그치고 이후에 다른 헌책방을 세 곳이나 더 방문했지만 그것 말고는 소득이 없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싱글벙글 잘도 웃으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한 번 더 소나기가 내렸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서 헤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장례식에서 돌아오자 어머니는 벌써 왔냐면 핀잔을 준다.

“왜 벌써왔어? 그 아이 어머니 만나서 얘기는 했고?”

예예, 했습니다. 가보니까 사람들이 많더라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일찍 돌아왔어요.

능숙하게 입술에 침 한 번 바르지 않고 자연스레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자식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해봤자 소용없는 짓이라는 건 옛날에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깨우친 바가 있지만 그냥 넘어가주신다. 실제로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였어?”

살짝 열려진 방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소리죽여 웃고 말았다. 그리고 대답한다.

좋은 말벗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죠.

좋으나 나쁘나, 먼저 가버린 녀석을 다시 만날 수는 없다.

우우우웅―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문자가 온 모양이다. 정장을 옷걸이에 걸어 다시 옷장에 넣고 나서 나는 휴대폰을 열어봤다. 문자를 보낸 대상이 누군지 알아버린 순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건 신종 장난인가.


모든 것을 이어라. 너라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겠지?

8/5 2:35 PM

○○○

010-xxxx-xxxx


죽어버린 녀석이 문자를 보냈다. 과연 이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일까.


녀석이 죽은 지 사흘이 지났다.

문자는 문자일 뿐이었다. 답문을 보냈지만 대답은 역시나 없었고 누군가의 장난이겠거니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녀석의 마지막 유언이었다고 할지언정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장례식에 가서 웃으며 나와 버린 마당에 어떻게 다시 그 녀석의 어머니를 뵐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무시했다.

특정한 어떤 사람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건 완전히 잊어버렸다거나 아니면 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나는 전자인 듯싶다. 나는 녀석에 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도둑 한 번 들지 않았던 우리 집에 경찰이 찾아온 것도 생각해보면 엄청난 대사건이었는데 이제는 그다지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한때만 피어오르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하고 말았다. 녀석의 애인이었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죽은 친구의 애인에게 걸려온 전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일단 일부러 벨이 끊기기를 기다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받지 않으면 다시는 걸려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벨을 무시하고 다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는 다시 걸려왔다. 당연히 이번에도 무시했다. 연이어 벨이 울렸는데 받지 않은 까닭을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그렇게 세 번의 벨이 더 있고 나서야 핸드폰은 잠잠해졌다. 왠지 모르게 나쁜 짓을 해버린 기분이었지만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우우우웅―

이번엔 문자냐.


○○의 유언입니다. □□씨,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문자를 보거든 이 번호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의 여자친구인 ●●입니다. 시간은 언제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8/8 12:21 PM

○○의 여친 ●●

010-sss-ssss


문자치고는 꽤 긴 장문이었다. 이정도면 확실히 전화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녀석의 유언이라. 나는 사흘 전에 봤었던 문자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이어라.

녀석은 문자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이 정말로 녀석이 보낸 게 확실하다면 가정이 먼저 사실로 확인되어야 하겠지만.

노트북 모니터에 보이는 문장의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마침 글도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마당에 신선한 자극을 받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좋아, 나가보자.

핸드폰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조차 없는 평범한 통화음이 두 번 정도 울리자 “여보세요?” 라는 여성의 고운 목소리가 울렸다.

네, 전화거신 분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인데요. 샤워 중이어서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니까 6통이나 같은 분에게서 왔더군요.

그러자 그녀는 죽은 ○○의 일로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면서 자기와 만나줄 것을 부탁했다. 이미 만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지금 당장 만나자고 말하자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대학교 근처에 있는 오컬트라는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점심을 먹지 않았지만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뭐라고 챙겨먹고 나가라는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냉장고에서 우유 하나를 꺼내 마시고 집을 나섰다.

집에 있어서 몰랐는데 바깥은 꽤 더웠고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고서 태양을 피하고 싶은 욕망을 분출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차분히 버스를 기다렸다.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이런 날씨에 햇빛을 맞으며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교의 쪽문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자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하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일행이 먼저 와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창가가 아닌 안쪽의 자리로 이동했다. 창문 바깥에 차양막이 설치되어 햇빛을 막아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여자는 일찍 나오는 법이 없는 모양이다. 뭘 그리 준비하느라 바쁜지 도착한 지 10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주문도 하지 않고 멍하니 기다리는 게 미안해서 종업원에게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종류는 카페라떼.

멍하니 있는 것도 가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시간을 위해 나는 항상 주머니에 펜과 수첩을 지니고 다닌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그걸 글로 적어내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수첩을 꺼내 빈 페이지를 펴고 입술에 펜을 물고 생각하고 있다가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종업원이 주문한 커피를 들고 온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씨.”

그녀였다. 급히 만나자고 한 사람치고는 깔끔한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고 손에는 두꺼운 전공서적만한 크기를 가진 핸드백을 들고 나온 그녀는 어딘가의 대기업 회사를 다니는 캐리어우먼이란 느낌이 들었다. 인사를 건네면서 먼저 주문했으니 뭐라도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종류는 카페모카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장례식에서 봤던 것처럼 차분한 인상이었다. 예전에 만났을 때는 조금 들뜬 생기발랄한 처녀와도 같은 분위기였었다. 아무래도 그때는 남자친구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나는 별로 흥미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실제로도 나는 이번 만남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녀석의 유언이라고 했던가요.

그러자 그녀는 왠지 슬퍼 보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테이블 쪽으로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시선을 내렸다.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지 않았던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뭐라고 써져 있던가요? 그렇게 물어보기 전에 먼저 문자의 내용에 대해서 말했다.

“그게 전부였나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까만색 핸드백에서 핸드폰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분명 죽어버린 친구의 것이었다.

아직 정지가 되지 않았나요?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문자 기능으로 문자를 보냈어요. 그리고 제게는 이런 문자가 왔었죠.”


책상에 푸른 표지의 책이 있을 거야. 그걸 □□에게 전해줘. 당분간 외롭겠지. 미안하다.

8/8 12:00 PM

위대한 ○○

010-xxxx-xxxx


나는 그녀의 핸드폰 액정에 떠오른 문자를 보고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그 한 마디로 끝내버린 거냐.

그것을 보고 있을 때 커피가 도착했다. 카페라떼 한 잔과 카페모카 한 잔. 그러나 우리 둘은 커피에 손을 대지도 못했다. 이어서 그녀가 가방에서 푸른 표지의 책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놨기 때문이었다.

“이 책― 아시나요?”

나는 테이블 위를 기어가다가 돌연 심장마비로 죽어버린 바퀴벌레의 시체라도 보는 것처럼 그것을 쳐다봤다. 알다마다. 그건 녀석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구입한 책이었다. 책의 이름도, 저자도, 출판사도, 가격은 물론 초판일도 적혀있지 않았던 책. 간신히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든 나는 책의 바깥 표지와 안쪽을 살펴봤다. 여기에 제목을 붙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제목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책의 문장에 노란색 형광펜으로 그어놓은 표시가 새로 생기기는 했지만 어디에도 제목을 뜻하는 녀석의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는 당신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네?

뭔가 넋두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차분해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짙은 상실감이 드러난다. 그래. 저것이 바로 슬픔이다. 상실감이 짙어지면 슬퍼지는 것이다.

“꿈을 좇는 사람이라면서요? 당신 같은 친구를 곁에 둬서 좋다고 얘기하고는 했어요.”

……거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조용히― 그녀가 미처 속에서 토해내지 못한 울분과 슬픔을 들어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늦은 시각. 도시의 불빛이 모두 사라진 새벽.

그녀는 헤어지기 전에 묘한 말을 내게 남겼다.

‘알아요? 한때 ○○도 당신처럼 작가를 꿈꿨다는 거?’

금시초문이었다. 철학, 소설, 만화, 논문, 자기계발서 등등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좋아하는 녀석이었지만 한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긴,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는데 남의 속마음을 알리가 있나. 고독한 인간은 누군가와 같이 있기를 원하지만 같이 있다고 해서 고독감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저 함께 있다는 생각에 가려질 뿐. 함께 있는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서 고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결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의 고독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배웠는데. 녀석은 자신의 고독이 뭔지 말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고독을 달래주지 못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길과 자신이 원하는 길이 서로 달라서 자살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흔해빠진 스토리군. 나는 방에서 나와 베란다로 나갔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한 다음에 푸른 표지의 책을 읽어봤다. 군데군데 노란색 형광펜이 그어져있어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내용은 평범했다.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의 꿈은 미술과 관련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소년이 훌륭한 법률가가 되어서 자신이 어릴 적에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기를 바란 모양이다. 어느 대회에 출품하기 위한 작품을 아버지가 산산이 부숴버리고 더욱 공부에 정진하여 큰사람이 될 것을 강요하자 아들은 참지 못하고 가출을 한다.

근처에 있는 선배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다가 결국 돌아갈 곳이 집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그를 발견한 엄마는 녹색신호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오다가 과속한 트럭에 치여 숨진다. 차가운 영안실에서 아들은 슬피 울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날 저녁, 아들은 새벽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가 누군가의 울음을 듣게 된다. 그건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 남몰래 숨죽여 우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고개를 돌리던 아들은 우연히 달력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달력에는 아버지의 생일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날이기도 했다.

대충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 소설의 어디가 녀석의 마음을 자극했을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녀석은 이 소설을 읽고 극심한 심적 변화를 겪은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런 소설의 어디가 녀석을 자극했는지 모르겠다.

시원한 새벽바람을 몸으로 부딪치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반짝거리는 많은 별들이 보였다. 도시의 불빛이 모조리 꺼지고 나서야 보이는 작은 형광등이다. 북두칠성. 오리온. 내가 아는 별자리라고는 고작 그 정도가 전부다. 도대체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점들을 선으로 이어서 백조나 사자를 볼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별자리라…….

아아. 그런 의미였나.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노트북 옆에 놓여있는 푸른 표지의 책을 펼쳤다. 군데군데 노란색 형광펜으로 그어진 부분들을 찾아서 컴퓨터의 문서프로그램에 입력한다. 그것은 문장의 첫머리에만 노란색 선이 그어진 것도 있었고 중간 중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있었다.

녀석은 내게 ‘모든 것을 이어라.’ 라고 말했다.

첫 번째 문장은 ‘가끔 불러보는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역사[책]에서나 나올법한 영웅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번째 문장은 ‘어두운 방안에 빛이라고는 천장에 붙은 야광[별] 하나뿐이었다.’

세 번째 문장은 ‘[구름]은 저토록 자유로운데 나는 이 좁은 세상에 갇혀 있다.’

네 번째 문장은 ‘그것으로 얼굴 근육을 적당히 풀어주고 [계단]을 내려가려던 찰나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다섯 번째 문장은 ‘생기 없는 인형처럼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마지막 문장은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전부다. 나는 문자를 나열했다.

책, 이름, 별, 구름, 계단, 하늘,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 문장은 아들에게 미술은 집어치우고 계속 공부에 정진하라는 아버지의 대사 전체였다.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책 이름은 별, 구름, 계단, 하늘을 넣어서 지어달라는 거냐.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거냐? 내 머리로는 이 정도 추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유언을 남기는 녀석은 또 뭐냐.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그것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문장을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단어 하나로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는 것. 애초에 이 방식은 내가 문장을 한참 연습할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녀석이 남긴 유언이자 숙제라고 해야 할까.

나는 무의미한 대화에 지쳐서 앞으로 있을 미래를 포기하는 낙오자의 심정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자신의 꿈을 응원 받지 못해서 현재조차 포기하는 패배자의 심정을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결심을 잊고 남에게 멋대로 떠넘기는 바보의 심정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나마 나와 같은 꿈을 꾸며 삶을 살아갔던 무명작가의 넋을 변변찮은 글재주로 위로하고자 한다.


『그는 별을 따기 위해 구름계단을 밟고 하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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