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증언
나경원 지음 / 백년동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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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올바른 정치인의 올바른 생각을 읽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판사 생활을 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4선 의원으로 자유한국당(현재 국민의힘) 원내총무를 역임했던 나경원 전 의원의 에세이이다.

나의 서재에는 많은 정치인들의 회고록 또는 자서전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노무현, 김영삼, 전두환, 김대중, 이인제, 이명박, 박근혜 등등, 그 여러 책들 중에서도 이 책은 비록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한 정치인의 생각을 가장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기나 자서전은 본인이 자신의 양심을 걸고 집필하는 책이다. 비록 그것이 본인 스스로가 썼던 아니면 다른 대필 작가의 손을 빌렸던 간에 솔직하게 쓴다라는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어떤 책들은 읽으면서 무언가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여서 썼다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닌데, 분명 자서전에는 그렇게 써 놓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상당히 사실적이고 솔직하다. 본인이 시종일관하게 견지하여 온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옹호하면서 일반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정치를 해 보려는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몇 군데를 살펴보겠다.

나는 대법원의 강제징용판결이 옳은가 그른가를 가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대법원 판결이 수년간 미루어져 온 것을 사법자제리는 법리로 옹호할 생각도 없다. (...) 나는 바로 이러한 점에 비추어 문재인 정권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정치적으로 필요로 했다고 하는 것이다.(pp68 ~ 69)

위 글은 강제징용판결을 사법농단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저자의 생각을 밝힌 부분이다. 내가 알기로도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우리는 무상으로 3억 달러를 받았다. 그해의 우리나라 무역액이 30억 달러 정도였다니까, 일 년 무역액의 10%를 배상금 형식으로 무상으로 준 셈이다. 그 금액을 올해 우리나라의 무역액으로 환산해 보자. 2020년 무역액 1조 달러의 10%1천 억 달러, , 환화로 치면 12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거금이다. 가령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우리가 과거에 일본에게 몹쓸 짓을 하였다고 치고 지금 120조 원을 배상금으로 주었는데, 50, 70년이 지난 다음에 그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더 내놓으라고 하면 그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가? 그 돈으로 우리가 고속도로도 닦고 포항제철도 세우고 해서 산업을 일으킨 것 아닌가?

한번 서울을 보십시오. 저 높은 빌딩,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 가난과 절망의 늪 위에 풍요와 긍정의 땅을 일군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뭐라고 했습니까? ‘독재의 후예라고 했습니다. 3대 세습 독재에 나 몰라라 하고, 북한 인권 나 몰라라 하는 문재인 대통령, 그런 말 할 자격 있습니까? 오히려 지금 좌파 독재를 곳곳에서 펼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야말로 좌파 독재의 화신이 아닙니까?(p147)

위 글은 201910월 광화문집회 때에 나경원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내가 1979~ 1980년에 현대차 포니를 수출한다고 돌아다닐 때에 중동과 아프리카를 다녀보면, 한국은 대사관조차도 변변히 없었다. 어떤 나라에는 그저 영사관이라고 해서 호텔에 방 하나 빌려서 태극기 걸어 놓고 거기서 영사 혼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나라도 있었다. 반면에 북한은 대사관 건물의 담장이 무려 100m가 넘었다. 그것도 번화가의 쉐라톤 호텔 바로 옆에 그렇게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북한에 한참 뒤져 있다고 했고 또 우리들도 그런 말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냈다. 그런 대한민국을 불과 반세기 만에 이렇게 눈부시게 발전시켜 놓은 것이다. 다 시장경제의 힘이요,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 꿈 깨!”

나는 이 말이, 딸이 엄마인 나경원 의원에게 한 말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경원 의원의 딸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이 한 말이란다. 저자의 딸이 다운증후군이 있다는데 받아주려고 하는 학교가 없어서 동부서주 하던 중, 어렵사리 어느 사립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면담이 잡혔단다. 아이를 입학시키려고 원서를 써서 들고 간 김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확인을 받고 싶었단다.

그날 교장실에서 겪은 일은 나를 180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뒤로 교장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이 분야 교육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인터넷 검색 창에 넣으면 주루륵 뜨는 이름이다. 그 교장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장애 아이를 교육시킨다고 해서 보통 아이처럼 되는 줄 알아? 꿈 깨!”

나는 꿈이 깨졌고 꿈에서 깨어났다. 장애를 가진 딸을 반듯하게 교육시켜서 꼭 결실을 맺겠다는 꿈이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교육자라면 모름지기 보듬어주지 않을까 하는 꿈이 깨졌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났다.(p196)

그때까지만 해도 꼼짝도 않고 오히려 장애아를 가진 학부모라고 무시하던 교육청과 학교 측에서, 저자가 자신이 판사라는 신분을 밝히자, 그 때서야 겨우 태도가 바뀌더라는 현실을 고발한 대목이다.

다음은 책에 부록으로 삽입한 무너지는 헌법가치 국민과 함께 지켜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20193월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 중 일부이다.

(...) 이 위대한 대한민국이 좌파 정권에 의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편 가르는 정치, 당장의 인기에만 집착하는 정치, 정의의 논리를 독점하며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정치, 동맹의 소중함과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는 정치...... 바로 그런 정치가 이 나라를 뿌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나경원 전 의원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또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풀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낙선의원 변호사로서의 인생을 살게 될지, 또는 다시 정계로 돌아와서 서울시장이 될지, 아니면 더 큰 일까지도 할지는 오직 신만이 일고 계시리라.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실제로 우리나라의 변화를 체험하고 목격한 사람으로서, 이런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앞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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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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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에 따른 죄인가? 자발적으로 저지른 죄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심리학 또는 사회학 용어를 탄생시킨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 ~ 1975)는 유대인으로, 독일의 유대인 학살로부터 탈출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저자를 자세히 아는 것이 필수이다.

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칸트가 평생을 보냈던 도시다. 그녀는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성장하였다. 16세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만큼 조숙하고 명석한 소녀였다.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마르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신진 철학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마르틴 하이데거 교수를 만난다. 18세의 한나와 이미 기혼자였던 35세의 마르틴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이후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스승이자 연인이 된다.

하이데거가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는 과제를 기본적으로 개인 차원에서 모색하였다면, 아렌트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란 곧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며, 그런 자유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의 생각을 하나의 의지에 통합하려 하는 파시즘은 정치가 아닌 폭력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1929, 23세가 된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의 개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때까지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자기 인식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히틀러가 떠오르면서 그에 저항하기 위해 유대인 조직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19331, 히틀러는 마침내 권력을 잡자, 아렌트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일주일 동안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다음 프랑스로 망명한다. 같은 해에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에 취임하는 한편 나치당에 가입하는데, 이때부터 연인이자 사제의 관계였던 둘운 갈라서게 된다.

이후 아렌트는 1941년까지 프랑스에 머물며 반 나치 운동 등에 참여하고, 남편과의 이혼, 재혼을 겪다가 프랑스가 독일에 유린되자, 가까스로 독일을 벗어나서 미국으로 간다. 생활이 비로소 안정되면서 그녀는 본격적으로 학술 연구에 몰두하는데, 1951년에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내놓아 일약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이 책에서 그녀는 서로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듯한 파시즘과 스탈린 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전체주의라는 틀로 묶고, 이들은 어느 것이나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광기와 공포로 지배하는 정치형태라고 주장한다.

1958년에 낸 <인간의 조건>은 그녀를 현대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그녀는 교양잡지 뉴요커의 지원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1960,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부에 붙잡히고 이스라엘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렌트는 잡지사 뉴요커의 특별 취재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과정을 취재한다.

196112월에 열린 아이히만 재판을 직접 재판정에서 지켜본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는 1963년에 출판되어 큰 논쟁을 일으킨다. 아렌트는 피고석의 아이히만에게서,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또 그녀가 보기에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도, 냉혹한 악당도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냥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재판과정 내내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고 한다.

 

이제는 실제로 책 속에서 아이히만의 행적을 살펴보자

아이히만은 1906년 칼과 가위로 유명한 독일 마을 솔링겐(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다녀올 때면 쌍둥이 칼세트를 사서 친척들에게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업학교를 그럭저럭 다녔고 전기설비회사 등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그의 평범한 삶은 1932년에 그가 나치당에 가입하고 친위대에 들어가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악명 높은 친위대장 힘러의 지휘 아래 들어간 그는 전쟁이 시작되는 19399월이 되면 베를린으로 진출하게 되고(그 전까지는 여기저기 변경 부대에 하급지휘관으로 있었다) 유대인 이주를 책임지는 제국본부의 수장이 된다. ‘유대인 이주라고 함은 유대인들을 여기저기서 잡아들여서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말한다. 다음은 책의 152쪽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 해 가을에 그는 직속상관인 뮐러의 지시에 따라 폴란드 서부지역의 학살센터를 조사하러 갔다. 이 죽음의 수용소는 쿨름에 있었는데 이곳은 유럽 전역에서 이송되어 온 3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1944년에 살해된 곳이다. 여기서 일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그 방법이 달랐다. 가스실 대신 이동용 가스차량이 사용된 것이었다. 이이히만이 본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유대인들은 큰 방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옷을 벗고 트럭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 그 트럭은 넓게 파인 구덩이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고 그리로 시신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민간인이 치과용 집게를 가지고 이빨을 뽑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보고서를 작성한 후, 아이히만은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라고 기술하여 놓았다. 그런 것으로 보면 이 사람이 이런 일을 즐겨서 하거나 기꺼이 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나의 전체적인 소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뜨이는 대목은,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 공동체라는 이런 저런 유대인 위원회들이 나치스와 협력하여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리나라 6.25한국전쟁 당시에 인민위원회라는 조직이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한 것과도 같다.

모든 국가 당국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위원회도 아주 빠르게 나치스의 도구가 되어버린 네덜란드에서는 103000명의 유대인이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대략 5000명은 테레지엔슈타트로 통상적인 방법을 통해 이송되었는데, 이는 물론 유대인 위원회의 협력을 받아서였다.” p197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번역이 형편없다고 서평을 달아 놓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편집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출판사 사장이라는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볼 때, 보통 책들이 23~ 24줄인데, 이 책은 무려 28줄이나 된다. 그래서 읽기가 굉장히 힘들다. 책을 420페이지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좀 더 읽기 편안하게 해서 500페이지 분량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더라면 독자들로부터 꽤 좋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텐데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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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청소년 현대 문학선 7
한승원 지음, 정현주 그림 / 문이당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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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아버지로 유명한 한승원(1939 ~ 서라벌 예술대학 졸업)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 불교소설 분야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김성동의 만다라와 이 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은 상당한 공통점이 있으며 또한 차이점도 있다. 둘 다 영화화하여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다. 만다라가 젊은 수도승(法雲)과 파계승(知山)의 구도여행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두 젊은 비구니 청화(순녀)와 진성(수남) 스님의 구도행각과 청화의 파계, 그리고 도화살(桃花煞)이 박혔다고 하는 중생 순녀로서의 세상적인 삶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단연 주인공은 잠시 청화라는 법명을 가졌던 순녀인데, 이야기의 초점은 특히 그녀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30대 초반 정도까지의 젊은 시절의 파란만장한 삶에 맞추어져 전개된다.

순녀의 어머니는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없다. 순녀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에 현종이라는 이름의 국어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온다. 그녀는 첫눈에 그 선생님에게 빠져서 여름방학에 그와 함께 백제 유적지 답사를 간다. 현종 선생은 죽은 아내를 위하여 백제에 관한 연구를 계속 하며 시를 쓰는 사람이다.

이 여행도 둘이 함께 가기로 미리 약속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기차역에서 서로 만나면서 시작된 것이다. 순녀는 학교에서 보충수업 기간 중에 특별히 학생들에게 내 준 6일간의 방학을 서울의 고모집에 다녀오겠다면서 역으로 간 것이었고, 현종 선생은 자기가 평소 연구하던 백제문화 유적지 답사를 위하여 막 광주를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하여 둘은 대전으로, 부여로, 공주로 해서 고란사의 옛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거기서 방이 없어 한 방에서 자게 된다. 현종 선생은 부인과 사별한 젊은 선생이었으나 그는 자기의 제자에게 음심을 품은 것도 아니었고, 순녀가 끈질기게 따라 오겠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동행을 허락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고 문제가 되어 현종 선생은 학교를 그만두고 순녀 역시도 학교에서 떠나게 된다. 지도 여선생에게 현종 선생이 사정하는 장면이다.

지금 사표를 내고 오는 길입니다. 저 아이한테 모든 것을 다 들어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만, 정말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저 아이의 앞날을 위하여 이 선에서 좀 덮어 주십시오. 모든 것은 선생님읨 말 한마디에 달려 있습니다.”

산으로 들어 온 순녀에게 청화라는 법명이 주어지는데 그곳에서도 청화는 제대로 수행을 할 수 없었다. 현우라는 사람이 죽자 살자 달려들어 결국은 파계를 하게 되고 그때부터 순녀의 방황, 또는 온몸으로 하는 보시의 행각이 시작된다.

맨 처음에는 자신을 절에서 끌어내린 박현우와 살았고, 둘 사이에 난 사내아이는 박현우가 어디엔가 갖다 버리고 돌아온다. 그리고 박현우는 순녀와 이별을 선언한다. 두 번째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을 만나 반 년 정도 함께 살다가 헤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낙도의 병원에 보건간호사로 취직하여 거기서 만난 송 기사라는 사람이다.

섬에 콜레라가 돌고 병원의 직원들이 몇 날 밤을 새워가며 헌신하는 모습, 만삭의 여자 제왕절개를 위하여 순녀와 송 기사가 헌혈을 해 주는 모습은 가히 자기희생의 표본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리하여 순녀는 송 기사의 헌신적인 희생정생에 감화하여 마침내는 그와 결혼한다. 결혼식은 낙도의 병원에서 원장이 주례하고 병원의 직원들이 박수를 쳐주는 아주 간단한 행사로 끝났다. 그러나 잠시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만다. 송 기사가 과로로 어느 날 밤에 그냥 급사해 버리는 것이다.

이 작품에 거의 주인공 비슷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은선이라는 노 스님이다. 은선 스님은 청화(순녀)가 일찍이 절에서 수행할 사람이 아님을 알아보고 파계를 결정한 분이고, 또 어느 겨울날 새벽에 포대기에 싼 채로 절 앞에 놓고 간 어린 아기가 순녀의 아기임을 간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순녀가 자기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예견하고 그녀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순녀가 절을 찾아오고, 스님은 순녀의 손을 잡고는 열반한다. 은선 스님의 다비식 장에서 순녀는 절을 찾아 온 윤 보살을 만난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은선 스님으로부터 어린 핏덩이, , 순녀의 아기를 받아간 여인이다. 그녀는 순녀에게 그 아이가 얼마 전에 죽었음을 알리고 통곡을 한다.

순녀는 다비식 장의 잿더미에서 한 주먹의 재를 끌어 모아 가지고 절을 떠난다. 그리고 낙도로 향하는 쾌속선을 타고 낙도로 떠난다. 아마도 30대 초반이나 되었을 순녀는 이후로도 몸으로 하는 보시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책은 맨 마지막을 순녀가 <반야바라밀다경>의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끝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더 높은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자).”

국어 선생님과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 선생님이 지은 시를 암송하는 순녀의 순수한 사랑, 대학에서 불교를 공부한 엘리트 수행자라고 자처하는 진성 스님(순녀와 같은 또래)의 정통적인 믿음보다 순녀와 같이 세상에 봉사하는 것도 또 다른 믿음의 세계라는 암시를 하고 떠난 은선 스님의 가르침, 그리고 자기의 뜻대로 세상이 되지 않는 순녀의 기구한 인생, 이 모든 것이 220여 페이지의 작품에 밀도 있게 함축되어 있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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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2
채만식 지음,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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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란에 왜 친일반민족행위자란 표기가 있나요? 이 사람을 누가 그런 식으로 평가했나요? 국민의 평가인가요? 공산주의 운동하던 사람들이 만든 친일인명사전이란 곳의 정통성을 누가 인정했나요? 그 문구는 삭제함이 마땅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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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9mhb4gwn 2023-02-10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인이 친일행위한걸 반성한다는 소설을 쓰셨는데요?

Leberte 2023-02-13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정희도 공산주의자였죠. 그런식의 논리라면.

자신의 철학에 의해 공산주의(사회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소신이라도 있지만
현대나 해방직후 공산주의자를 욕하는 사람들은
대개 친일행적을 세탁하며 목숨을 부지하려던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었죠.

20세기말에 이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심판은 끝났고,
자본을 독점하여 빈부격차를 늘리는 자본주의에 심물이난 인류의 일부가
공산주의를 채택한것은 인류변천사중 있을법한 이야기이고
한국현대사에서 빨갱이 타령으로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과 가족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수명다한 공산주의 타령을 꺼내는것은 인간사회를 매우 단순하게 보는 것이자
지극히 납작하고 협소하며 편협한 의견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비갠롱 2023-04-29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인이 인정했습니다..

원졍 2024-04-09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인이 친일행위 했다고 했어요 ㅠ,,
 
스케일 :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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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도시, 기업의 생성, 발전, 소멸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 이 책은 모든 것의 성장, 발전 또는 쇠퇴에는 일정한 법칙(스케일)에 따라 규모가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연구진들의 25년 연구 결과물이다. 복잡계 과학의 대부 제프리 웨스트 박사(스탠퍼드 대학)와 샌터페이 연구진이 밝혀낸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 찬, 그야말로 경이로운 책이다.

이 책에는 많은 그래프가 등장하는데 내가 가장 놀랍게 읽은 부분은 어떤 포유동물이든 심장이 평생 뛰는 평균 횟수는 거의 같다.’는 대목이다. 겨우 몇 년을 사는 생쥐나 100년을 사는 고래나 그것들의 심장이 평생 동안 뛰는 횟수는 동일하게 약 15억 번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수많은 질문들이 등장한다.

   생쥐는 15시간을 자고 코끼리는 4시간을 자는데, 인간은 왜 약 8시간을 잘까?

큰 나무는 왜 1킬로미터 넘게 자라지 못하고 수십 미터를 자랄 뿐일까?

대 기업은 왜 자산이 500억 달러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는 것일까?

도시나 기업이 2배로 커지면 범죄 건수, 특허 건수도 2배로 늘어날까?

동물의 몸무게가 반으로 줄면 먹이를 먹는 양도 반으로 줄어들까?

기업의 매출이 2배로 늘면 이익도 2배로 늘어날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하여 저자는 수많은 통계를 인용하며 사람들(과학자도 있고 성직자도 있고 정치인도 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만물의 척도를보면 2002BBC에서 발표한 위대한 영국인 100가 나온다. 1위는 윈스턴 처칠, 3위는 다이애나 왕세비, 4위는 찰스 다윈, 5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 그렇다면 2위는? 놀랍게도 2위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점바드 브루넬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템스터널을 설계하고 그레이트 브리튼 호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배를 건조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배가 더 클수록 에너지 효율적이 되고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는 원리를 확립하여 세계 무역과 상업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아는 고질라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어느 날, 어떤 기자가 자신에게 스케일링이론을 흥미 있게 읽었다면서 일본판 고질라(50m)보다 두 배는 큰 미국판 고질라(108m)가 곧 나올 예정인데 그것이 가능한지 의견을 묻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답을 들려주면서 이미 400년 전에 나온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논의와 수사학적 논증>을 설명한다. 갈릴레오의 책 속에는 세 사람의 논객(심플리치오, 사그레도, 살비아티)이 나와서 치열한 과학적 논쟁을 한다.

이미 밝혀진 것들로부터 기술에서든 자연에서든 구조물의 크기를 방대한 차원으로 늘린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 활대, 들보, 쇠못, , 모든 부위가 하나로 결합되는 방식으로 엄청난 크기의 배, 궁전, 사원을 짓기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나뭇가지들이 자신의 무게로 부러질 테니 자연도 아주 거대한 크기의 나무를 만들지 못합니다. 또 사람이나 말 같은 동물들이 엄청나게 커진다면, 형태를 유지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빼대 구조를 구축하기가 불가능할 겁니다. 키가 터무니없이 커지면 그 자신의 무게로 무너지고 짓눌릴 테니까요.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어떤 동물이든 혈액공급이 제일 중요하므로, 모세혈관 사이의 거리를 감안하여 계산해보면 지구상에서 가능한 가장 큰 동물은 약 200톤 정도로 추정되며 이는 대왕고래의 몸무게와 같다. 100m라는 키를 고려하면 고질라가 하루 필요한 대사량이 인구 1만 명의 소도시에서 필요한 양인 2,000만 칼로리이다. 고질라의 심장 무게만도 100톤인데 이것은 대왕고래 한 마리의 무게와 맞먹는다. 대동맥은 지름이 3m에 달하고 하루에 싸는 오줌의 양은 2만 리터에 달하는데 이는 웬만한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4장 일부 요약)

7장에서 우리들이 잘 아는 ‘150명 이론에 대한 설명도 다시 읽어 볼만하다.

진회심리학자 로빈 던바와 연구진이 밝혀낸 개인의 사회관계망 이론에 따르면, 어느 사람이나 가장 핵심적인 가족의 수는 5명이라고 한다. 조금 더 나가면 15명의 절친이 있다. 더 확장하면 50명의 직장 동료, 이웃 주민, 자주 못 보는 친척 들이 있다. 여기서 최대한으로 확장하면 가끔씩 접촉을 유지하는 사람들 150명이 된다. 150명을 던바 수라고 한다. 이 숫자들은 5 - 15 - 50 -1503의 배수라는 일정한 스케일링의 법칙을 따른다.

그는 이렇게 150명이 되는 이유를 뇌의 인지구조 진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 우리에게 이 크기를 넘어서면 더 이상 효율적으로 관리할 계산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숫자를 넘어서면 사회적 안정성, 일관성, 연결성이 줄어들면서, 궁극적으로 관계가 붕괴되는 악영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나는 시간 관계상, 또는 능력상 일부분 밖에 설명을 못 했지만, 과연 올해의 책, 베스트셀러,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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