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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 마농 레스코 동서문화사 월드북 213
아베 프레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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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편의 작품을 한 권 속에 편집한 이유는 아마도 두 작품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뒤마 피스는 24살 되던 해(1848)<마농 레스코(1731)>를 몇 번이나 읽더니 불과 한 달 만에 <춘희>를 발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 두 작품은 매우 흡사하다. 특히 창녀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청년의 회고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과 사랑했던 여인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춘희>를 소개해 보자. 화자인 는 어느 날 파리의 뒷골목에서 경매를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죽은 창녀 마르그리트라는 여인의 집에서 그녀가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을 경매에 부친다는 포스터였다. 나는 거기에 들러서 <마농 레스코>라는 책을 한 권 사들고 온다. 그렇다고 내가 그 책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르그리트라는 창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 집으로 아르망 뒤발이라는 청년이 찾아온다. <마농 레스크>의 책 속에 자기 이름과 사인을 해 놓은 사람이다. 그는 그 책을 자신에게 넘겨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 온다. 나는 기꺼이 그냥 주겠다고 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선물한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자기의 옛 애인 마르그리트의 마지막 편지를 건네준다. 읽어보니 죽음을 앞둔 마르그리트가 구구절절 아르망 뒤발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편지에는 뒤발의 눈물자국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이장을 하는 장소에도 함께 간다. 아르망 뒤발은 그녀가 얼마나 그리웠기에 묘지에서 다시 그녀를 파내어 이장을 하며 그녀의 썩은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했을까?

 

    아르망 뒤발은 어느 날 친구로부터 마르그리트를 소개받는다. 그녀는 아직 채 스물 살도 되지 않은 꽃다운 나이에 파리의 사교계를 뒤흔드는 미인이다. 그는 첫눈에 마르그리트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동백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마르그리트는 처음에는 장난삼아 아르망을 가까이 했지만 점차 그의 진정성에 감동한다. 둘은 파리 근교의 부지발이라는 조그마한 동네로 이사 가서 여섯 달을 깨가 쏟아지게 사랑하며 산다. 그러나 아르망에게는 근엄하신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이야기만 듣는 것도 힘든데, 노인은 한술 더 떠서 마르그리트와 동갑내기 딸의 장래까지도 들먹인다. 그러자 마르그리트는 입술을 깨물며 아르망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시골에 사는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와서 그녀에게 아들과의 관계를 끝내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이다.

    “제가 아드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믿어주시는 거죠?”

   “믿고 있소.”

   “그 사랑이 순수하다는 것도요?”

   “물론이지요.”

   “그럼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따님께 하듯 저에게 입맞춤해주실 수 없을까요? 제가 1주일 안에 아드님을 당신 곁으로 돌려보낼게요. 그분은 한동안 불행에 빠져 괴로워하실지 몰라도 본디대로 기운을 차리실 겁니다.”

   “아가씨, 당신은 정말 고귀한 여자군요.”(p216)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을 멀리하기 위하여 일부러 후원자이자 옛 애인이었던 백작과 공작을 만난다. 그런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아르망은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다시 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놀아난다는 생각에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의 면전에서 다른 창녀와 가까운 체하기도 하며 일부러 그녀를 못 본 체하며 냉대하기도 한다. 그러자 그녀의 원래 병약했던 몸은 더욱 급속히 나빠진다. 그녀가 죽기 직전에 아르망에게 보낸 편지는 마치 유서를 읽는 것만 같아 마음이 울적하다.

  “아아, 아르망, 돌아와 주세요. 나 정말 힘들어요. (...) 열이 심해서 몸이 불덩어리 같았지만 나는 옷을 갈아입혀 보드빌 극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녀가 립스틱을 발라주었어요. 그거라도 안 발랐으며 꼭 송장처럼 보였겠죠. 나는 당신과 처음 만났던 그 특별석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날 계셨던 그 자리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요.”(pp216 ~ 217)

    ‘몸은 더럽혀져도 마음만은 깨끗한 창녀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 작품, 매년 <라트라비아타>라는 이름으로 계속 공연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 수차례 영화화 되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하여 새로 영화로 만들어질 작품, 동백꽃을 보면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생각나는 작품, 사랑이야기의 완성 <춘희>...

 

    자기 자식이 5백 명은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희대의 바람둥이 아버지 알렉상드로 뒤마(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들 뒤마 역시도 바람둥이였다. 이 소설은 작가인 뒤마 피스가 자신이 사랑하였던 고급 창녀 뒤플레시스를 추억하며 쓴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원전이 되는 작품은 <마농 레스코>이다. <춘희><마농 레스코>는 그 형식이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설정 자체도 판박이라고 할 만큼 유사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들이 표절이라는 말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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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결단의 시간들
반기문 지음, 박상은 옮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재단 감수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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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훌륭한 책. 충북 음성 시골 한 소년의 꿈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덯게 전 세계 200여개 국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유엔의 수장이 되어 10여 년 이상 세계를 누비고 다녔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묘사한 책. 이런 지도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옹졸함이 참으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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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결단의 시간들
반기문 지음, 박상은 옮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재단 감수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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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자서전이다. 원래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문으로 나온 책인데, 거기에 아주 짧게 5부를 추가하여 자신의 정계 진출 과정에서의 회한을 고백하며 한국어판으로 냈다.

    1전란 속에 자란 아이, 평화를 꿈꾸다: 외교관 인생의 토대에서는 자신이 1944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유엔군을 만났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사용했던 교과서에 이 책은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유네스코의 원조로 인쇄되었슴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이것이 그가 유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하게 된 계기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 환상은 점차 현실로 변한다. 충주고등학교 시절에 전국의 각 도에서 한 명씩 영어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 미국에 연수를 보내주는 적십자사의 프로그램 덕분에 미국을 갔고, 생전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여행은 반기문에게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만나는 동기가 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 미국에 간다는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시기였는데, 이 때 충주여고 학생회장 유순택으로부터 잘 다녀오라며 복주머니를 선물로 받는 것이다. 반기문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한 후 ROTC 도중 현역병으로 입대하여 복무를 마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부 여권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사회 초년병 때 국회의원 한 분이 자기 동료의원의 딸과 결혼하면 출세가 보장된다면서 선을 보라고 하였지만, 그는 교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그 청을 거절한다. 이 일화 하나만으로도 그가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외무부에서는 최규하(전 대통령), 노신영(전 국무총리) , 쟁쟁한 선배들로부터 업무를 배우며 1991년의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등, 굵직한 외교 현안을 직접 맞닥뜨리게 된다.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부 차관으로 일했고, 2003년에 노무현 대통령 때는 외교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그 후 한승수 유엔의장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다가 드디어 200612월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2평화와 안보: 갈등, 재난, 그리고 국제 정치’ 3인권과 개발: 인류의 지구에 대한 지원’, 그리고 4우리의 미래: 유엔과 세계의 전진이 이 책의 본론이며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는 전 세계의 재난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그가 펼친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 정치권에서 반기문은 뱀장어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데 명수다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었는데, 이 책 특히 2~ 4부를 읽어본 독자라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재난현장에 과감히 몸을 던지는지가 아주 자세히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경호팀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분쟁지역을 방문하였을 때는 바로 옆에서 로켓포탄 4발이 터져서 입 안 가득 흙먼지가 들어 온 적도 있었고, 이 때 포탄의 백린가스를 마신 일로 인하여 그 후 5년 동안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2009116일에는 단 하루 만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을 방문하면서 4개국의 정상들과 연쇄회담을 가진 일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테러집단의 저격 위협에도 두려움 없이 현장을 방문하여 지도자들과 회담을 하기도 하였다.

    20101월 아이티에서 진도 7.0의 지진으로 전 국민의 30%가 죽거나 다치고 그곳에 파견 나가 있던 유엔 직원 102명이 죽은 현장을 방문하여 망연자실한 채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풍겨나기도 한다.

    이와 같이 10년 이상을 지구촌 곳곳의 재난 현장을 몸을 사리지 않고 누빈 덕분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반기문을 가장 존경스러운 인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20086월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오바마 대통령, 사르코지 대통령, 캐머런 총리, 메르켈 총리,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아베 총리 등, 전 세계 지도자 10인을 대상으로 최고의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2만 여명이 참가한 이 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이 당당히 35%의 지지율로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다음은 그가 2016년 유엔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가졌던 각오의 한 단면이다.

      남북이 분단된 것만 해도 서러운데 국내에서 벌어지는 사분오열의 남남갈등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지역, 이념, 세대로 분열된 한국정치를 혁신시키는 데 앞장서고 하나로 통합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뭉쳐서 전진하면 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국력을 기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 경험을 대한민국 발전에 접목시켜야 하고, 그것이 나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요, 시대가 요청하는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p642)

    하긴 필요한 사람이 적재적소에 그리고 적기에 투입된다면 전 세계에서 1등을 하지 못할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제대로 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치는 것도 다 대한민국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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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1 대산세계문학총서 21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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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도교를 사상적 배경으로 깔고 권선징악적 요소를 가미한 본격적인 신마(神魔)소설이다. 신마소설이란 신화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온갖 마귀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을 하나하나 퇴치해나가는 형식의 소설, 오늘날 판타지 소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서유기(西遊記)라는 책은 저자가 명나라 시대의 오승은(1500 ~ 1582)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그의 시대에 와서 집대성한 것이라고 하여야 맞다. 서유기의 내용은 크게 삼장법사의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고 거기에 중국과 인도의 설화와 민담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가미된 것이다.

이 책은 총 100개의 이야기를 한 권당 10편씩 넣어 10권짜리로 만든 대하소설이다. 무려 4000쪽에 달하는 원체 방대한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짧게 요약해서 책을 소개할 방법이 없어 서울대 중문과 성민엽 교수님께서 아주 간략하게 평한 내용을 소개하여 본다.

“<서유기>는 동양적 판타지와 동양적 상상력의 집대성이자 새로운 원천이다. ..3교와 그 이전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모두 이 소설에 녹아들었고, 훗날의 수많은 문학적 상상력이 이 소설로부터 흘러나왔다. 이 소설의 놀라운 환상과 상상은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조소와 맞물려 있고, 인간의 마음과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이 책에는 한 명의 주인공과 세 명의 조연이 나온다. 주인공은 손오공이라는 원숭이인데 그는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의 신임을 받던 중 지나친 장난질로 인하여 지상세계로 쫓겨 온 인물이다. 1권의 제4필마온의 벼슬이 어찌 그 욕심에 흡족하랴, 이름은 제천대성에 올랐어도 마음은 편치 못하다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 손오공은 옥황상제가 자신에게 부여한 필마온이라는 말을 돌보는 직책이 영 성에 차지 않아 하늘나라에서 난장판을 벌이고 그 벌로 지상 세계로 쫓겨 내려온다. 9진광예는 부임 도중에 횡액을 당하고, 그 아들 강류승은 아비의 원수를 갚고 근본을 되찾다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는 삼장법사의 탄생설화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실존 인물인 삼장법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세상에는 사악한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석가여래는 사람들에게 착한 성품을 되찾아 주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깨달음의 책인 불경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관음보살에게 명하여 천축국으로 불경을 구하러 올 사람을 찾아보라고 명한다. 관음보살이 점찍어 두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승려 진현장이었다. 이 책은 결국 삼장법사라는 진현장이 당태종의 명을 받들어 그를 수행하는 세 명의 종자,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를 데리고 17년 간 27개국을 통과하여 마침내 불경 657부를 구해 온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주유한 나라들을 현대의 지명으로 살펴보자면 둔황 - 키르키르스탄 -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 인도로 이어진다. 그들이 넘어야 했던 험지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비롯하여 힌두쿠시 산맥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무려 100회에 걸쳐 이런 저런 요괴들을 만나고 수난을 당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중 6권의 제54회에 서쪽으로 들어선 삼장 법사는 여인국에 봉착하고, 손오공은 계략을 세워 여난(女難)에서 벗어나다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마치 그리스신화에서 여인국인 아마조네스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여자들뿐이니 오랜 기간 여행에 지친 일행에게는 얼마나 기쁜 일인가. 기어이 저팔계가 스승에게 청혼하러 온 여인국 여왕을 자신이 차지하겠다고 나서다 퇴짜 맞는 장면이다. 그러자 저팔계는 그럴듯한 속담을 내세워 자신이 적임자임을 주장한다.

당신 아주 벽창호로군. 굵다란 버들가지로는 키를 만들고, 가느다란 버들가지로는 됫박을 만든어 쓰니, 도구의 쓰임새는 저마다 달라도 똑같은 버드나무요, 이 세상에 제아무리 추접하게 생겼어도 사내는 사내가 아닌가.”

이처럼 이 책에는 이런 저런 속담이나 고상성어가 수백 개도 더 나온다. 마치 <돈키호테>에서 산초 빤사의 유식함을 보는 것만 같다.

저팔계도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동물, 인간, 신령의 세 가지 형상이 교묘하게 융합된 인물이다. 비곗살이 찐 장대한 모습, 커다란 두 뒤에 비죽 나온 주둥이, 굼뜨고 우둔한 동작은 돼지를 형상화하였지만, 그 역시도 찬상에서 은하수를 다스리는 수군 제독인 천봉원수였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사오정은 손오공이나 저팔계처럼 그렇게 뚜렷한 형상은 없지만 두 사형 사이에서 적절하게 의견조율을 해주고 충돌을 막아주는 해결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손오공이다. 제천대성, 미후왕 또는 필마온이라고도 불리고 스스로를 손선생이라고 칭하는 손오공은 고비 고비마다 그 위기를 둔갑술과 온갖 도술을 부리고 여의봉을 자유자재로 휘둘러가며 온갖 마귀들을 물리친다. 손오공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천국과 지옥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다 자기의 친구들이거나 부하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용궁의 대장들도 손오공에게는 다 머리를 조아린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마왕들과 잡귀들이 삼장법사 일행을 잡아먹으려고 하나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이 책에 수없이 많은 마귀와 귀신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상과도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다. 온갖 종류의 마귀들이 유린과 수탈을 하며 잔혹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은 당시 관에서 백성들을 못살게 굴던 시대상을 반영하였다는 평가이다. 책에서 통천하의 영감대왕이 동남동녀들을 제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 청룡산의 코뿔소 요정들이 지방 관민을 핍박하고 막대한 재물을 수탈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한 원시인들은 만물에는 영혼이 있다라는 사상을 가졌는데, 그 결과 천둥과 벼락에서는 뇌신을, 밤과 낮, 여름과 겨울의 교체에서는 촉룡(燭龍)이라는 괴물을, 그리고 모래바람에서는 황풍괴라는 마귀를, 살구나무 선녀는 나무숲의 화신으로, 불이나 물로 인한 재난은 화덕장군과 수덕장군이라는 요괴로 둔갑시켜 일반 백성들의 환상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주인공의 성격 설정이 재미있다. 삼장법사는 전체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나약하다. 그래서 손오공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핀잔을 듣는다. 그의 인생철학은 착한 일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고, 악한 일은 한 번만 저질로도 차고 넘친다라는 유교적 관념으로 설명된다. 그런 사부님을 손오공은 흑백을 가리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정도로 평가하며 시시때때로 그를 조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장법사는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온갖 난관에도 물러서지 않는 굳센 의지, 불경을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귀국하지 않겠다는 집념, 불교의 계율을 엄격히 지키려고 하는 승려로서의 자세로 손오공을 비롯한 세 명의 부하들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할 것만 같은 삼장법사에게도 말썽꾸러기 손오공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긴고주라는 주문이다. 삼장법사가 그 주문만 외우면 손오공의 머리통 위에 씌어져 있는 금테가 바짝 조여져서 손오공은 그 고통으로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러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묘미는 단연 주인공 손오공의 통쾌한 활약상에 있다고 하겠다. 단순에 108천리를 날아가는 근두운, 말 한마디에 귀 쑤시개 정도 크기에서 천하장사라도 들기 힘들 정도의 육중한 철봉으로 바뀌는 여의봉, 꿀벌로도 바뀌고 파리로도 변신할 수 있는 만능변신의 재주, 이런 것들을 무기 삼아 그 머나먼 서역 길의 온갖 마귀들을 물리치는 손오공의 활약상은 천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이 책이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근본 요소이다.

번역도 최고다. 무려 4천 쪽이나 되는 대하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군데도 오자를 찾을 수가 없다. 2백만부가 팔렸다는 이문열 삼국지에서도 틀린 곳이 서너 군데 있는데, 이 책은 아주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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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 번역개정 2판 나남신서 1857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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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신체형, 처벌, 규율, 감옥의 4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설명의 대부분을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옵티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1748 ~ 1832)은 소수의 감독자가 자신은 노출시키지 않은 채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말의 opticon을 합성하여 1791년 처음 이 말을 창안했다. 중앙에 높은 하나의 감시탑과 그 주변 둘레에 여러 방을 둔 건물구조로, 건물 안에서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이 감옥의 장점을 묘사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중앙 높은 곳에 위치한 감시탑은 조명을 어둡게 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변 수용자의 방은 밝게 만든다. 그러면 이러한 구조를 통해 감독자는 수용된 다수의 모든 사람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으며, 수용자는 감독자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독자가 없는 경우에도 똑같은 감시효과를 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가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자기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인 벤담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 및 감시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판옵티콘을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으로 인식했다고 보이는데, 그런 면에서는 미셸 푸코도 같은 생각을 갖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그의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판옵티콘이라는 용어가 계속 등장하며, 책을 읽다 보면 그 단어에 따라 책이 전개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책은 제1신체형에서지난 200여 년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신체형(단두대 처형, 사지 절단, 낙인, 채찍질 등)이 소멸되었으며 대신 정신적 형벌이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살핀다.

유럽에서는 1769년 러시아를 시작으로 하여 1810년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신체형이 점차 자취를 감춘 것으로 기록되었다. 과거 범죄자들의 육체를 재판하던 재판관들은 이제는 범죄자들의 정신을 재판하기 시작하였다. , 폭력이나 살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환각인가? 우발적 사건인가? 착란인가? 본능인가? 무의식인가? 환경인가? 유전인가? 그것을 교정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pp53 ~ 55)

 

2처벌에서는 수많은 감옥의 교정제도를 미국의 글로스터 감화원, 필라델피아 감옥, 월넛스트리트 감옥 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779년 미국의 독립으로 죄수 유배가 어려워지자 형벌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일반원칙으로 정신과 품행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 징역이 시민법의 구조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법안의 서두는 일벌백계의 정신, 개심의 수단, 직업훈련의 필요성 등, 3가지 기능으로 개인의 수감을 설명하고 있다. , 고립된 감금과 규칙적인 노동, 종교 교육의 강화를 감수하게 된 범죄자들의 존재는 그들을 모방하려는 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노동의 습관을 붙이도록 할 것이다.(pp233 ~ 234)

 

3규율에서는 판옵티콘의 유용성을 여러 번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판옵티콘의 건축양식이 많은 그림과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이 교도소뿐만이 아니라 병원, 수도원, 군대 막사, 학교 등등의 건축물이 오늘날에도 광범위하게 차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33판옵티콘 권력에는 판옵티콘의 장점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밴덤의 판옵티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주위는 원형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는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원형건물의 안쪽으로 향해 있는 여러 개의 큰 창문들이 뚫려 있다. 주위의 건물은 개체들로 나뉘어져 있고, 개체 하나하나는 앞면에서부터 뒷면까지 내부의 공간을 모두 차지한다. 독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을 향하여 탑의 정면에 대응하는 위치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면해 있어서 이를 통하여 빛이 독방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중앙의 탑 속에는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모든 독방 안에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 등 누구든지 한 사람씩 감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역광선의 효과를 이용하여 주위 건물의 독방 안에 있는 수감자의 윤곽이 정확하게 빛 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탑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pp366 ~ 367)

 

4감옥에서 저자는 구금이 재범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감자들의 가족을 극빈층으로 몰아넣음으로 해서 간접적으로 범죄자를 길러낸다고 주장하면서, 감옥형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면서 여러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의 결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구금은 개인의 태도 변화를 본질적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수감자들은 그들이 범한 행위에 합당한 형벌에 따라 그들의 나이, 기질, 교정기술, 변화 단계에 따라 격리되거나 분류되어야 한다.

수감자들이 개선되건 다시 타락하건, 그들의 수감생활 결과에 따라 형벌의 형기가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은 수감자들의 변화와 점진적 사회화를 낳는 근본적 부분들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

공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수감자 교육은 사회의 이익에 꼭 필요한 예방조치이면서 동시에 수감자에 대한 의무이다.

감옥의 체제는 수감자의 인간교육에 유념하고, 정신적, 기술적 역량을 지닌 전문요원이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수감자가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그를 감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에게 지원과 도움을 주어야 한다.

 

큰 판형에 550쪽에 달하는 책으로 결코 쉽지 않지만, 끈기를 갖고 읽으면 지식함양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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