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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ㅣ 청소년 현대 문학선 7
한승원 지음, 정현주 그림 / 문이당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로 유명한 한승원(1939 ~ 서라벌 예술대학 졸업)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 불교소설 분야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김성동의 만다라와 이 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은 상당한 공통점이 있으며 또한 차이점도 있다. 둘 다 영화화하여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다. 만다라가 젊은 수도승(法雲)과 파계승(知山)의 구도여행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두 젊은 비구니 청화(순녀)와 진성(수남) 스님의 구도행각과 청화의 파계, 그리고 도화살(桃花煞)이 박혔다고 하는 중생 순녀로서의 세상적인 삶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단연 주인공은 잠시 청화라는 법명을 가졌던 순녀인데, 이야기의 초점은 특히 그녀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30대 초반 정도까지의 젊은 시절의 파란만장한 삶에 맞추어져 전개된다.
순녀의 어머니는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없다. 순녀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에 현종이라는 이름의 국어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온다. 그녀는 첫눈에 그 선생님에게 빠져서 여름방학에 그와 함께 백제 유적지 답사를 간다. 현종 선생은 죽은 아내를 위하여 백제에 관한 연구를 계속 하며 시를 쓰는 사람이다.
이 여행도 둘이 함께 가기로 미리 약속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기차역에서 서로 만나면서 시작된 것이다. 순녀는 학교에서 보충수업 기간 중에 특별히 학생들에게 내 준 6일간의 방학을 서울의 고모집에 다녀오겠다면서 역으로 간 것이었고, 현종 선생은 자기가 평소 연구하던 백제문화 유적지 답사를 위하여 막 광주를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하여 둘은 대전으로, 부여로, 공주로 해서 고란사의 옛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거기서 방이 없어 한 방에서 자게 된다. 현종 선생은 부인과 사별한 젊은 선생이었으나 그는 자기의 제자에게 음심을 품은 것도 아니었고, 순녀가 끈질기게 따라 오겠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동행을 허락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고 문제가 되어 현종 선생은 학교를 그만두고 순녀 역시도 학교에서 떠나게 된다. 지도 여선생에게 현종 선생이 사정하는 장면이다.
“지금 사표를 내고 오는 길입니다. 저 아이한테 모든 것을 다 들어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만, 정말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저 아이의 앞날을 위하여 이 선에서 좀 덮어 주십시오. 모든 것은 선생님읨 말 한마디에 달려 있습니다.”
산으로 들어 온 순녀에게 청화라는 법명이 주어지는데 그곳에서도 청화는 제대로 수행을 할 수 없었다. 현우라는 사람이 죽자 살자 달려들어 결국은 파계를 하게 되고 그때부터 순녀의 방황, 또는 온몸으로 하는 보시의 행각이 시작된다.
맨 처음에는 자신을 절에서 끌어내린 박현우와 살았고, 둘 사이에 난 사내아이는 박현우가 어디엔가 갖다 버리고 돌아온다. 그리고 박현우는 순녀와 이별을 선언한다. 두 번째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을 만나 반 년 정도 함께 살다가 헤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낙도의 병원에 보건간호사로 취직하여 거기서 만난 송 기사라는 사람이다.
섬에 콜레라가 돌고 병원의 직원들이 몇 날 밤을 새워가며 헌신하는 모습, 만삭의 여자 제왕절개를 위하여 순녀와 송 기사가 헌혈을 해 주는 모습은 가히 자기희생의 표본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리하여 순녀는 송 기사의 헌신적인 희생정생에 감화하여 마침내는 그와 결혼한다. 결혼식은 낙도의 병원에서 원장이 주례하고 병원의 직원들이 박수를 쳐주는 아주 간단한 행사로 끝났다. 그러나 잠시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만다. 송 기사가 과로로 어느 날 밤에 그냥 급사해 버리는 것이다.
이 작품에 거의 주인공 비슷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은선이라는 노 스님이다. 은선 스님은 청화(순녀)가 일찍이 절에서 수행할 사람이 아님을 알아보고 파계를 결정한 분이고, 또 어느 겨울날 새벽에 포대기에 싼 채로 절 앞에 놓고 간 어린 아기가 순녀의 아기임을 간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순녀가 자기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예견하고 그녀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순녀가 절을 찾아오고, 스님은 순녀의 손을 잡고는 열반한다. 은선 스님의 다비식 장에서 순녀는 절을 찾아 온 윤 보살을 만난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은선 스님으로부터 어린 핏덩이, 즉, 순녀의 아기를 받아간 여인이다. 그녀는 순녀에게 그 아이가 얼마 전에 죽었음을 알리고 통곡을 한다.
순녀는 다비식 장의 잿더미에서 한 주먹의 재를 끌어 모아 가지고 절을 떠난다. 그리고 낙도로 향하는 쾌속선을 타고 낙도로 떠난다. 아마도 30대 초반이나 되었을 순녀는 이후로도 몸으로 하는 보시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책은 맨 마지막을 순녀가 <반야바라밀다경>의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끝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더 높은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자).”
국어 선생님과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 선생님이 지은 시를 암송하는 순녀의 순수한 사랑, 대학에서 불교를 공부한 엘리트 수행자라고 자처하는 진성 스님(순녀와 같은 또래)의 정통적인 믿음보다 순녀와 같이 세상에 봉사하는 것도 또 다른 믿음의 세계라는 암시를 하고 떠난 은선 스님의 가르침, 그리고 자기의 뜻대로 세상이 되지 않는 순녀의 기구한 인생, 이 모든 것이 220여 페이지의 작품에 밀도 있게 함축되어 있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