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아제 바라아제 청소년 현대 문학선 7
한승원 지음, 정현주 그림 / 문이당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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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아버지로 유명한 한승원(1939 ~ 서라벌 예술대학 졸업)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 불교소설 분야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김성동의 만다라와 이 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은 상당한 공통점이 있으며 또한 차이점도 있다. 둘 다 영화화하여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다. 만다라가 젊은 수도승(法雲)과 파계승(知山)의 구도여행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두 젊은 비구니 청화(순녀)와 진성(수남) 스님의 구도행각과 청화의 파계, 그리고 도화살(桃花煞)이 박혔다고 하는 중생 순녀로서의 세상적인 삶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단연 주인공은 잠시 청화라는 법명을 가졌던 순녀인데, 이야기의 초점은 특히 그녀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30대 초반 정도까지의 젊은 시절의 파란만장한 삶에 맞추어져 전개된다.

순녀의 어머니는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없다. 순녀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에 현종이라는 이름의 국어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온다. 그녀는 첫눈에 그 선생님에게 빠져서 여름방학에 그와 함께 백제 유적지 답사를 간다. 현종 선생은 죽은 아내를 위하여 백제에 관한 연구를 계속 하며 시를 쓰는 사람이다.

이 여행도 둘이 함께 가기로 미리 약속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기차역에서 서로 만나면서 시작된 것이다. 순녀는 학교에서 보충수업 기간 중에 특별히 학생들에게 내 준 6일간의 방학을 서울의 고모집에 다녀오겠다면서 역으로 간 것이었고, 현종 선생은 자기가 평소 연구하던 백제문화 유적지 답사를 위하여 막 광주를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하여 둘은 대전으로, 부여로, 공주로 해서 고란사의 옛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거기서 방이 없어 한 방에서 자게 된다. 현종 선생은 부인과 사별한 젊은 선생이었으나 그는 자기의 제자에게 음심을 품은 것도 아니었고, 순녀가 끈질기게 따라 오겠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동행을 허락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고 문제가 되어 현종 선생은 학교를 그만두고 순녀 역시도 학교에서 떠나게 된다. 지도 여선생에게 현종 선생이 사정하는 장면이다.

지금 사표를 내고 오는 길입니다. 저 아이한테 모든 것을 다 들어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만, 정말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저 아이의 앞날을 위하여 이 선에서 좀 덮어 주십시오. 모든 것은 선생님읨 말 한마디에 달려 있습니다.”

산으로 들어 온 순녀에게 청화라는 법명이 주어지는데 그곳에서도 청화는 제대로 수행을 할 수 없었다. 현우라는 사람이 죽자 살자 달려들어 결국은 파계를 하게 되고 그때부터 순녀의 방황, 또는 온몸으로 하는 보시의 행각이 시작된다.

맨 처음에는 자신을 절에서 끌어내린 박현우와 살았고, 둘 사이에 난 사내아이는 박현우가 어디엔가 갖다 버리고 돌아온다. 그리고 박현우는 순녀와 이별을 선언한다. 두 번째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을 만나 반 년 정도 함께 살다가 헤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낙도의 병원에 보건간호사로 취직하여 거기서 만난 송 기사라는 사람이다.

섬에 콜레라가 돌고 병원의 직원들이 몇 날 밤을 새워가며 헌신하는 모습, 만삭의 여자 제왕절개를 위하여 순녀와 송 기사가 헌혈을 해 주는 모습은 가히 자기희생의 표본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리하여 순녀는 송 기사의 헌신적인 희생정생에 감화하여 마침내는 그와 결혼한다. 결혼식은 낙도의 병원에서 원장이 주례하고 병원의 직원들이 박수를 쳐주는 아주 간단한 행사로 끝났다. 그러나 잠시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만다. 송 기사가 과로로 어느 날 밤에 그냥 급사해 버리는 것이다.

이 작품에 거의 주인공 비슷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은선이라는 노 스님이다. 은선 스님은 청화(순녀)가 일찍이 절에서 수행할 사람이 아님을 알아보고 파계를 결정한 분이고, 또 어느 겨울날 새벽에 포대기에 싼 채로 절 앞에 놓고 간 어린 아기가 순녀의 아기임을 간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순녀가 자기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예견하고 그녀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순녀가 절을 찾아오고, 스님은 순녀의 손을 잡고는 열반한다. 은선 스님의 다비식 장에서 순녀는 절을 찾아 온 윤 보살을 만난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은선 스님으로부터 어린 핏덩이, , 순녀의 아기를 받아간 여인이다. 그녀는 순녀에게 그 아이가 얼마 전에 죽었음을 알리고 통곡을 한다.

순녀는 다비식 장의 잿더미에서 한 주먹의 재를 끌어 모아 가지고 절을 떠난다. 그리고 낙도로 향하는 쾌속선을 타고 낙도로 떠난다. 아마도 30대 초반이나 되었을 순녀는 이후로도 몸으로 하는 보시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책은 맨 마지막을 순녀가 <반야바라밀다경>의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끝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더 높은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자).”

국어 선생님과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 선생님이 지은 시를 암송하는 순녀의 순수한 사랑, 대학에서 불교를 공부한 엘리트 수행자라고 자처하는 진성 스님(순녀와 같은 또래)의 정통적인 믿음보다 순녀와 같이 세상에 봉사하는 것도 또 다른 믿음의 세계라는 암시를 하고 떠난 은선 스님의 가르침, 그리고 자기의 뜻대로 세상이 되지 않는 순녀의 기구한 인생, 이 모든 것이 220여 페이지의 작품에 밀도 있게 함축되어 있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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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2
채만식 지음,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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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란에 왜 친일반민족행위자란 표기가 있나요? 이 사람을 누가 그런 식으로 평가했나요? 국민의 평가인가요? 공산주의 운동하던 사람들이 만든 친일인명사전이란 곳의 정통성을 누가 인정했나요? 그 문구는 삭제함이 마땅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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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9mhb4gwn 2023-02-1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이 친일행위한걸 반성한다는 소설을 쓰셨는데요?

Leberte 2023-02-13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정희도 공산주의자였죠. 그런식의 논리라면.

자신의 철학에 의해 공산주의(사회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소신이라도 있지만
현대나 해방직후 공산주의자를 욕하는 사람들은
대개 친일행적을 세탁하며 목숨을 부지하려던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었죠.

20세기말에 이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심판은 끝났고,
자본을 독점하여 빈부격차를 늘리는 자본주의에 심물이난 인류의 일부가
공산주의를 채택한것은 인류변천사중 있을법한 이야기이고
한국현대사에서 빨갱이 타령으로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과 가족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수명다한 공산주의 타령을 꺼내는것은 인간사회를 매우 단순하게 보는 것이자
지극히 납작하고 협소하며 편협한 의견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비갠롱 2023-04-2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이 인정했습니다..

원졍 2024-04-0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이 친일행위 했다고 했어요 ㅠ,,
 
스케일 :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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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도시, 기업의 생성, 발전, 소멸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 이 책은 모든 것의 성장, 발전 또는 쇠퇴에는 일정한 법칙(스케일)에 따라 규모가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연구진들의 25년 연구 결과물이다. 복잡계 과학의 대부 제프리 웨스트 박사(스탠퍼드 대학)와 샌터페이 연구진이 밝혀낸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 찬, 그야말로 경이로운 책이다.

이 책에는 많은 그래프가 등장하는데 내가 가장 놀랍게 읽은 부분은 어떤 포유동물이든 심장이 평생 뛰는 평균 횟수는 거의 같다.’는 대목이다. 겨우 몇 년을 사는 생쥐나 100년을 사는 고래나 그것들의 심장이 평생 동안 뛰는 횟수는 동일하게 약 15억 번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수많은 질문들이 등장한다.

   생쥐는 15시간을 자고 코끼리는 4시간을 자는데, 인간은 왜 약 8시간을 잘까?

큰 나무는 왜 1킬로미터 넘게 자라지 못하고 수십 미터를 자랄 뿐일까?

대 기업은 왜 자산이 500억 달러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는 것일까?

도시나 기업이 2배로 커지면 범죄 건수, 특허 건수도 2배로 늘어날까?

동물의 몸무게가 반으로 줄면 먹이를 먹는 양도 반으로 줄어들까?

기업의 매출이 2배로 늘면 이익도 2배로 늘어날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하여 저자는 수많은 통계를 인용하며 사람들(과학자도 있고 성직자도 있고 정치인도 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만물의 척도를보면 2002BBC에서 발표한 위대한 영국인 100가 나온다. 1위는 윈스턴 처칠, 3위는 다이애나 왕세비, 4위는 찰스 다윈, 5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 그렇다면 2위는? 놀랍게도 2위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점바드 브루넬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템스터널을 설계하고 그레이트 브리튼 호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배를 건조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배가 더 클수록 에너지 효율적이 되고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는 원리를 확립하여 세계 무역과 상업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아는 고질라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어느 날, 어떤 기자가 자신에게 스케일링이론을 흥미 있게 읽었다면서 일본판 고질라(50m)보다 두 배는 큰 미국판 고질라(108m)가 곧 나올 예정인데 그것이 가능한지 의견을 묻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답을 들려주면서 이미 400년 전에 나온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논의와 수사학적 논증>을 설명한다. 갈릴레오의 책 속에는 세 사람의 논객(심플리치오, 사그레도, 살비아티)이 나와서 치열한 과학적 논쟁을 한다.

이미 밝혀진 것들로부터 기술에서든 자연에서든 구조물의 크기를 방대한 차원으로 늘린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 활대, 들보, 쇠못, , 모든 부위가 하나로 결합되는 방식으로 엄청난 크기의 배, 궁전, 사원을 짓기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나뭇가지들이 자신의 무게로 부러질 테니 자연도 아주 거대한 크기의 나무를 만들지 못합니다. 또 사람이나 말 같은 동물들이 엄청나게 커진다면, 형태를 유지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빼대 구조를 구축하기가 불가능할 겁니다. 키가 터무니없이 커지면 그 자신의 무게로 무너지고 짓눌릴 테니까요.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어떤 동물이든 혈액공급이 제일 중요하므로, 모세혈관 사이의 거리를 감안하여 계산해보면 지구상에서 가능한 가장 큰 동물은 약 200톤 정도로 추정되며 이는 대왕고래의 몸무게와 같다. 100m라는 키를 고려하면 고질라가 하루 필요한 대사량이 인구 1만 명의 소도시에서 필요한 양인 2,000만 칼로리이다. 고질라의 심장 무게만도 100톤인데 이것은 대왕고래 한 마리의 무게와 맞먹는다. 대동맥은 지름이 3m에 달하고 하루에 싸는 오줌의 양은 2만 리터에 달하는데 이는 웬만한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4장 일부 요약)

7장에서 우리들이 잘 아는 ‘150명 이론에 대한 설명도 다시 읽어 볼만하다.

진회심리학자 로빈 던바와 연구진이 밝혀낸 개인의 사회관계망 이론에 따르면, 어느 사람이나 가장 핵심적인 가족의 수는 5명이라고 한다. 조금 더 나가면 15명의 절친이 있다. 더 확장하면 50명의 직장 동료, 이웃 주민, 자주 못 보는 친척 들이 있다. 여기서 최대한으로 확장하면 가끔씩 접촉을 유지하는 사람들 150명이 된다. 150명을 던바 수라고 한다. 이 숫자들은 5 - 15 - 50 -1503의 배수라는 일정한 스케일링의 법칙을 따른다.

그는 이렇게 150명이 되는 이유를 뇌의 인지구조 진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 우리에게 이 크기를 넘어서면 더 이상 효율적으로 관리할 계산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숫자를 넘어서면 사회적 안정성, 일관성, 연결성이 줄어들면서, 궁극적으로 관계가 붕괴되는 악영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나는 시간 관계상, 또는 능력상 일부분 밖에 설명을 못 했지만, 과연 올해의 책, 베스트셀러,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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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인도사 - 인더스 문명부터 식민통치 시대까지 이야기 역사 7
김형준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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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형준은 델리 대학교(University of Delhi) 철학 박사 출신으로 현재 한국 외국어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도에서 오랜 세월 공부한 사람의 저술답게 책에는 인도에 관한 훌륭한 정보가 넘쳐난다. 이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인도의 역사(종교, 문화 포함)에 관하여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하겠다.

먼저 인도라는 말의 어원을 알아보자. 아래의 설명대로라면 원래의 인도는 카슈미르로부터 발원하여 아라비아 해로 빠지는 인더스 강 유역을 말하는 것이므로 지금의 지리적 개념으로 보면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에 가까운 북인도 지역을 주로 지칭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디아(India)라는 말은 그리스인들이 처음 사용했던 용어로 페르시아인들이 사용했던 힌두(Hindu)라는 말과 일치한다. 힌두 또는 인디아라는 용어는 인도인들에게 원해 신두라고 불리는 인더스 강을 가리킨다. 이처럼 신두라는 단어가 페르시아를 거쳐 그리스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에서 각기 힌두 그리고 인도로 바뀌었다.(p20)

인도의 창조설화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본다.

어느 날 대지의 여신이 인간들이 너무나도 급격히 번성하자 도저히 더 이상 지구를 떠받치고 있기가 힘들다고 창조주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러자 창조주가 고민 끝에 죽음의 여신을 만들고 그녀에게 인간의 절반에게 죽음을 부여하라고 명령한다. 죽음의 여신은 창조주의 명령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로부터 육체라는 옷을 벗겨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죽음이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하늘에서 다시 땅으로 내려와서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

이러한 신화 때문인지 죽음은 지상에서 또 다른 세계로 거처를 옮기는 변화일 뿐 결코 생명의 끝이거나 마지막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서 우주가 생성, 유지, 소멸을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도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이 같은 생각은 후에 윤회와 업이라는 인도의 독특한 사상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p39)

신화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 카스트 제도의 기원에 대한 대목이다.

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자신의 머리에서는 지혜를 가진 브라흐만 사제 계급을, 가슴에서는 용기가 충만한 크샤트리아 계급을, 배에서는 적당한 욕망을 가진 바이샤 계급을, 마지막으로 팔다리에서는 노동력을 가진 수드라 계급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이들 계급은 신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로는 절대로 바꿀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대 이미 각자의 계급이 정해진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좋은 가문에 태어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한가? 인도적인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전생에 자신이 지은 카르마 때문이다. 불교에서 업이라고 부르는 카르마는...(p53)

이야기를 중심으로 써나가는 역사서인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무굴제국(1526~1857)의 창시자인 바부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내의 무덤으로 타지 마할이라는 걸출한 건축물을 남기고 죽은 샤 자한의 4대 조(샤 자한 -> 자항기르 -> 악바르 -> 후마윤 -> 바브르)이기도 하다.

이제 북인도 전역의 지배권을 확보한 바부르는 실질적인 인도의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에게 인도를 무력으로 차지하는 것은 용납하였지만 통치하는 일만큼은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바부르는 인도의 지배를 머릿속에 그리며 부푼 가슴을 안고 카불로 되돌아오던 중 뜻하지 않게 라호르 근처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 그의 죽음에는 당시; 악성 고열병으로 신음하던 사랑하는 맏아들 후마윤이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바부르는 후마윤의 병간호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아들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 그는 아들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아들 대신 자신이 고통을 받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원했다. (...)

“(...) 신이시여,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더 이상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 순간 아들의 고통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저의 귀를 차라리 막아 주십시오. (...) 저의 목숨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시고 제발 저로 하여금 평생 가슴에 못이 박힌 아버지로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자 아버지의 애절한 호소가 정말로 신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는지 후마윤은 얼마 후 기적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바부르 자신이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47세의 나이로 파란 많은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pp378~379)

인도의 영국 통치시대에 벌어진 세포이 항쟁에 대하여도 무려 12쪽을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857년에 일어난 세포이 저항운동은 좁은 의미에서는 벵갈에 있던 인도인 용병(세포이)들의 영국에 대한 무장 투쟁을 의미하지만 넓게 보면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저항 운동이었다. 저자는 그 원인을 크게 다섯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영국의 무자비한 경제적 착취에 대한 반발, 둘째, 영국에 의해 만들어 진 과도한 와 법 체제 및 행정 제도, 셋째, 영국인들의 인종적 우월감에 대한 반발, 넷째,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영국 측의 강압적인 종교 정책, 다섯째, 인도 총독 달하우지의 강압적인 합병 정책 등등이다.(pp457~459)

책은 마지막을 간디의 비폭력운동을 소개하면서 끝맺는다. 1920년 주간지 <영 인디아>에 기고한 간디의 논설 중 일부이다.

비폭력은 우리 모든 인류의 법이며 폭력은 야수들의 법이다. (...) 내가 주장하고 싶은 유일한 덕은 진리와 비폭력이다. 나는 초인간적인 힘을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p496)

이 책을 읽으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의 역사까지도 알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은 과거 북인도와 계속 맞닿아 있었고 파키스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도가 독립할 때 이슬람교 측은 파키스탄으로, 그리고 힌두교 측은 인도로 국명을 달리하여 독립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에서 계속 등장하는 북인도 이야기는 따지고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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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중요하다 - 문화적 가치와 인류 발전 프로젝트
새뮤얼 헌팅턴.로렌스 해리슨 엮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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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명의 충돌>로 너무나 유명한 하버드대 종신교수인 새뮤얼 헌팅턴과 세계 석학 23인이 함께 저술한 책이다. 정확하게는, 2000년대 초반 하버드대학교에서 주최한 문화적 가치와 인류발전 프로젝트에 참가한 인사들이 자신의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인데, 그 발표문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당시 세미나의 공통 주제는 문화적인 논쟁이었다. , 왜 어떤 나라는 높은 경제 성장을 일구어내고 어떤 나라는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극한의 가난에 시달리는가? 왜 어떤 민족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부를 일구어내고 어떤 민족은 빈곤을 대물림하여야 하는가? 도대체 이런 부와 가난의 격차, 발전과 정체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등등의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문화적 차이라는 요소로 풀어낸 학술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출간 당시 (특히 한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책의 서문에 헌팅턴 교수가 아프리카의 가나와 아시아의 한국을 비교한 대목 때문이었다. 그 구절이 유명세를 타면서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1990년대 초 나는 한국과 가나의 60년대 초반 경제적인 자료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19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상황이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양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 수준이 아주 비슷했으며, 1차 제품(농산품), 2차 제품(공산품), 그리고 서비스의 분포도 비슷했다. 특히 농산품의 경제 점유율이 아주 비슷했다. 당시 한국은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2차 제품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양국은 상당한 경제 원조를 받고 있었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유수한 다국적기업들을 거느리고 자동차, 전자 장비, 고도로 기술집약적인 2차 제품 등을 수출하는 나라로 부상했다. 국민총생산은 5천억 달러대에 육박했다. 더욱이 한국은 민주제도를 착실히 실천하며 다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 가나에서는 이런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나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한국의 1/15이다. 이런 엄청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내가 볼 때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국가정신 등을 하나의 가치로 생각한다. 가나 국민들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문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pp8 ~9)

여기에 등장하는 소논문의 발표자 하나하나는 가히 경제학, 인류학, 국제법, 사회학, 군사학, 정치학, 여성학, 언론학 등등, 각 분야의 학문을 이끌고 있는 세계 최고의 리더들이다. 그들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도 많다. 예를 들면 마이클 포터, 제프리 삭스,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등이다. 여기 이들이 발표한 소논문의 주제를 목차를 이용하여 나열하여 본다.

01 문화가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다(데이비드 랑드)

02 태도, 가치, 신념, 그리고 번영의 미시경제학(마이클 포터)

03 경제 발전의 새로운 사회학을 위한 소고(제프리 삭스)

04 경제 발전의 문화적 유형(마리아노 그론도나)

05 문화와 라틴아메리카 엘리트의 행태(카를로스 알베르토 몬타네르)

06 아프리카는 문화적 조정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가(대니얼 에퉁가망겔)

07 문화와 민주주의(로널드 잉글하트)

08 사회자본(프랜시스 후쿠야마)

09 부패, 문화, 그리고 시장(시무어 마틴 립셋 / 게이브리얼 샐먼 렌즈)

10 전통적인 믿음과 관습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나은가(로버트 에저턴)

11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의 문화와 유년기의 진보(토머스 와이스너)

12 도덕적 지도, ‘1세계의 자부심, 새로운 복음전도자(리처드 슈웨더)

13 문화, 젠더, 그리고 인권(바바라 크로세트)

14 라틴아메리카의 문화, 제도, 그리고 젠더 불평등(말라 흐툰)

15 문화의 구조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실례(올란도 패터슨)

16 문화의 분석(네이선 글레이저)

17 법률, 가족 연대, 동아시아의 상거래 관행(드와이트 H. 퍼킨스)

18 ‘아시아적 가치’, 발전기에서 도미노로?(루시안 파이)

19 다중 모더니티: 동아시아 모더니티에 대한 예비적 고찰(투 웨이밍 )

20 국가의 마음을 바꾸기: 번영을 창조하는 제반 요소(마이클 페어뱅크스)

21 문화, 마음의 모델, 국가의 번영(스테이스 린지)

22 문화적 변화의 추진(로렌스 해리슨)

22개의 주제이지만 한 연구주제는 두 명의 학자들이 공동 발표한 것이고 또 서론 부분은 새뮤얼 헌팅턴이 썼기 때문에 모두 24명이다. 국가발달사나 문화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필독서이다. 단 하나 조심스러운 점은, 헌팅턴의 지적이 고맙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의 가나가 비록 가난하기는 할망정,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헌팅턴의 한국에 대한 찬사는 행복지수와 연결시켜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단지 한국인들의 문화(나는 그것을 국민성이라 부르겠다.)가 가나 국민들의 문화보다는 더 경제발전에 적합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2019년 현재 한국과 가나의 경제지표는 30배로 더 많이 벌어졌지만(대략 한국 $30,000 : 가나 $1,000) 행복지수 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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