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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중요하다 - 문화적 가치와 인류 발전 프로젝트
새뮤얼 헌팅턴.로렌스 해리슨 엮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문명의 충돌>로 너무나 유명한 하버드대 종신교수인 새뮤얼 헌팅턴과 세계 석학 23인이 함께 저술한 책이다. 정확하게는, 2000년대 초반 하버드대학교에서 주최한 ‘문화적 가치와 인류발전 프로젝트’에 참가한 인사들이 자신의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인데, 그 발표문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당시 세미나의 공통 주제는 문화적인 논쟁이었다. 즉, 왜 어떤 나라는 높은 경제 성장을 일구어내고 어떤 나라는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극한의 가난에 시달리는가? 왜 어떤 민족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부를 일구어내고 어떤 민족은 빈곤을 대물림하여야 하는가? 도대체 이런 부와 가난의 격차, 발전과 정체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등등의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문화적 차이’라는 요소로 풀어낸 학술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출간 당시 (특히 한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책의 서문에 헌팅턴 교수가 아프리카의 가나와 아시아의 한국을 비교한 대목 때문이었다. 그 구절이 유명세를 타면서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1990년대 초 나는 한국과 가나의 60년대 초반 경제적인 자료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19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상황이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양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 수준이 아주 비슷했으며, 1차 제품(농산품), 2차 제품(공산품), 그리고 서비스의 분포도 비슷했다. 특히 농산품의 경제 점유율이 아주 비슷했다. 당시 한국은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2차 제품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양국은 상당한 경제 원조를 받고 있었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유수한 다국적기업들을 거느리고 자동차, 전자 장비, 고도로 기술집약적인 2차 제품 등을 수출하는 나라로 부상했다. 국민총생산은 5천억 달러대에 육박했다. 더욱이 한국은 민주제도를 착실히 실천하며 다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 가나에서는 이런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나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한국의 1/15이다. 이런 엄청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내가 볼 때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국가정신 등을 하나의 가치로 생각한다. 가나 국민들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문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pp8 ~9)
여기에 등장하는 소논문의 발표자 하나하나는 가히 경제학, 인류학, 국제법, 사회학, 군사학, 정치학, 여성학, 언론학 등등, 각 분야의 학문을 이끌고 있는 세계 최고의 리더들이다. 그들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도 많다. 예를 들면 마이클 포터, 제프리 삭스,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등이다. 여기 이들이 발표한 소논문의 주제를 목차를 이용하여 나열하여 본다.
01 문화가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다(데이비드 랑드)
02 태도, 가치, 신념, 그리고 번영의 미시경제학(마이클 포터)
03 경제 발전의 새로운 사회학을 위한 소고(제프리 삭스)
04 경제 발전의 문화적 유형(마리아노 그론도나)
05 문화와 라틴아메리카 엘리트의 행태(카를로스 알베르토 몬타네르)
06 아프리카는 문화적 조정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가(대니얼 에퉁가망겔)
07 문화와 민주주의(로널드 잉글하트)
08 사회자본(프랜시스 후쿠야마)
09 부패, 문화, 그리고 시장(시무어 마틴 립셋 / 게이브리얼 샐먼 렌즈)
10 전통적인 믿음과 관습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나은가(로버트 에저턴)
11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의 문화와 유년기의 진보(토머스 와이스너)
12 도덕적 지도, ‘제1세계’의 자부심, 새로운 복음전도자(리처드 슈웨더)
13 문화, 젠더, 그리고 인권(바바라 크로세트)
14 라틴아메리카의 문화, 제도, 그리고 젠더 불평등(말라 흐툰)
15 문화의 구조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실례(올란도 패터슨)
16 문화의 분석(네이선 글레이저)
17 법률, 가족 연대, 동아시아의 상거래 관행(드와이트 H. 퍼킨스)
18 ‘아시아적 가치’, 발전기에서 도미노로?(루시안 파이)
19 다중 모더니티: 동아시아 모더니티에 대한 예비적 고찰(투 웨이밍 )
20 국가의 ‘마음’을 바꾸기: 번영을 창조하는 제반 요소(마이클 페어뱅크스)
21 문화, 마음의 모델, 국가의 번영(스테이스 린지)
22 문화적 변화의 추진(로렌스 해리슨)
총 22개의 주제이지만 한 연구주제는 두 명의 학자들이 공동 발표한 것이고 또 서론 부분은 새뮤얼 헌팅턴이 썼기 때문에 모두 24명이다. 국가발달사나 문화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필독서이다. 단 하나 조심스러운 점은, 헌팅턴의 지적이 고맙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의 가나가 비록 가난하기는 할망정,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헌팅턴의 한국에 대한 찬사는 행복지수와 연결시켜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단지 한국인들의 문화(나는 그것을 국민성이라 부르겠다.)가 가나 국민들의 문화보다는 더 경제발전에 적합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2019년 현재 한국과 가나의 경제지표는 30배로 더 많이 벌어졌지만(대략 한국 $30,000 : 가나 $1,000) 행복지수 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