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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가사 크리스티가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6권의 소설 중 두 번째로 출간된 책입니다.
첫 번째 책 '봄에 나는 없었다'를 정말 재밌게, 충격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예약 주문했었네요.
역시나 아가사 크리스티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이었어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머니 앤과 그녀의 딸 세라입니다.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세라를 키워 온 앤은 리처드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둘은 짧은 시간 내에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가 되죠.
하지만 3주간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던 세라가 돌아오고, 그녀에게 이 사실을 전하면서 세 사람 사이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세라와 앤 모두 당시에는 몰랐지만 세라는 엄마를 리처드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리처드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그에게 싸움을 겁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쟁은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가운데에서 힘들어 하던 앤은 사랑하는 리처드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 세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쪽을 택한거죠.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드라마 내용입니다만, 바로 이 시점부터 아가사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엄마의 심리 상태를 아주 절묘하게, 사실적으로 포작해 냈습니다.
여자로서의 삶을 박탈당한 앤의 상실감과 무력감, 그러한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 딸에 대한 분노와 증오, 질투심 등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앤의 스타일이나 행동 변화, 거실 인테리어의 변화, 세라와 주고 받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긴장감과 무심함 등에서 여실히 드러나지요.
비록 앤과 세라는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망가뜨릴 때까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만약 리처드와 앤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혹은 헤어진 뒤 세라와 앤 두 사람이 속 시원하게 싸우기라도 했다면 감정이 골이 그렇게까지 깊어지진 않았을텐데..
앤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 하고 묻어두려고 한 결과, 은연 중에 딸의 불행한 선택을 방관하고 조장했으며, 미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거죠.
미움으로 얼룩져 서로에 대한 애정 자체를 의심하고 위태로워진 모녀의 모습을 통해 가족 간의 갈등이 어떻게 심화될 수 있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해답까지도요.
깊은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그 시점에 서로가 솔직하게 마음을 끄집어 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해답입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또한 이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 간의 희생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가 부모님 때문에 이러이러한 길을 갔는데, 내가 너 때문에 이러이러한 것을 포기 했는데..
이 말 속에는 너를 위한 희생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하고 종국에는 가족 간의 불화와 불신을 불러오게 되지요.
책 속의 심리학자 데임 로라는 이를 굉장히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답니다.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 앞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런 건 거기서, 자기의 본모습보다 훌륭해지는 그 순간에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 하지. - p.252

정말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는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본인에게 분명하게 불어봐야 할 것 같아요.
회피하고픈 마음 혹은 불안감 때문에 포기한 것을 희생이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비참함이나 가족에 대한 원망 같은 마음은 아예 생겨나지 않을테니까요.

우리들이 곧 잘 잊어버리고 마는 사실이 있지요.
엄마도 여자라는 것..
굉장히 당연한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자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엄마의 행동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곤 하잖아요.
엄마라는 멍에를 씌우고 너무나 당연히 그녀들의 희생을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누군가의 엄마 또는 아내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한 여성일 뿐이었는데 말이죠.
저 역시 엄마와 보냈던 전쟁같았던 시기를 떠올려보게 되네요.
엄마가 여자라는 사실을 간단하게 제쳐놓고 저를 위한 희생을 요구하면서 상처만 준건 아닌지 부끄럽고 후회가 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엄마와 어떻게 보낼지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같은 여성이기에 엄마와 딸이 경험할 밖에 없는 공감과 연대, 시기와 질투 등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적확하게 그려낸 이 작품을 많은 엄마와 딸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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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여자 공감 만화 3종 세트의 작가 마스다 미리가 신작 '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책은 만화 에세이로서 그녀가 카도가와 학예 WEB 매거진에 연재한 글들과 그와 관련된 카툰을 엮은 것입니다. 그녀가 글들을 연재할 당시가 39세였던 만큼 40대를 받아들여야 하는 미혼 여성의 불안감, 씁쓸함, 두려움 등이 잘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여자들은 20세를 지나는 그 시점부터 나이라는 것에 대해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어린 것이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인식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하기도 하고요. 어린 여자들이 남성들의 배려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모임의 주인공이 되는 바로 그 상황!! 안 겪어본 사람 없잖아요. 어느 연령대의 여성이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점점 감퇴한다고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꽤 우울해 하기도 하고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요. 그래서 40대를 바라보는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가 30대를 바라보는 20대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40대 아줌마의 고민이 아닌, 아직도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때문에 서글픔을 느끼는 40대 여자의 고민이니까요.


"한동안 못 본 사이 예뻐지셨네요?"
서른아홉 살이다. 이제 그런 말을 들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흔합 립 서비스. 그런데 나 자신도 깜짝 놀랄만큼 가슴이 떨렸다. - p. 34


그녀는 여자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멋진 말이나 드라마틱한 상황들로 포장된 이야기가 아닌 슈퍼마켓에서,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공원에서 벌어지는 일상 생활의 작은 일들로부터 빚어지는 감정들을 포착해 내서 이야기 합니다. 어쩌면 '오늘 따라 왠지 모르게 꿀꿀하다' 라는 생각으로 영문도 모른 채 지나쳐 버린 그런 일들 말입니다. 소박하고 세심한 그녀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소박한 소재로 부터 출발하여 여성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써 내려간 진정성이 많은 여성 독자들로 하여금 나의 이야기와 같다라는 반가움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몸에 걸칠 것을 고를 때, "좋다, 싫다",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 로 충분했던 청춘 시절.
"젊다, 젊지 않다" 라는 판단에 큰 비중을 두게 된 지금은 머리에 다는 작은 악세서리 조차,
'이 디자인 나이 제한 넘는거 아냐?'
자문하게 되는 쇼핑이다.
조금씩 몸에 걸치는 것들의 선택 범위가 좁아져 간다. - p. 44


그녀는 고교 시절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고교 시절 언제나 연애를 하고 싶었지만 수줍은(?) 성격 탓, 혹은 또래 친구들 보다 커서 남학생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지 못했던 탓, 시끌벅적한 소녀 친구들 틈에 끼어 있었던 탓.. 등 여러가지 이유로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는 군요. 그래서 40대가 되어 버린 현재에도 고교 시절 청춘들의 연애에 대한 동경과 질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여전히 관람차 안에서의 귀여운 첫키스를 동경하는 소녀같은 그녀. 그녀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반감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투덜대고 있지만 누구보다 어리고 풋풋한 감성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온 인생의 무게만큼 그녀에게 더해진 연륜과 성숙한 느낌이 어우려져 유치한 동심이 아닌 정말 순수하고 매력적인 동심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요. 여전히 사랑스럽고 싱그러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게 되네요.

젊은 시절에는 집에 있을 때의 나, 친구와 있을 때의 나 두 개의 세께만 존재했지만 어른이 되면서 작은 세계를 여러개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물론 진짜 나이에 마음이 쫓아갈 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이지만 말입니다. 10년 후의 나 자신을 좀 더 자연스럽게,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문득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궁금해지네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나이를 믿을 수 없다.
마흔 살인 주제에 서른다섯 살 정도의 감각으로 지내니, 서른다섯 살인 사람과 얘기를 하다 보면, 멋대로 동급생 같이 느껴진다. 정말 뻔뻔스러운 이야기다.
다들 그런걸까?
언젠가 진짜 나이에 마음이 쫓아갈 날이 오긴 할까? 왠지 모르게, 평생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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