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NFF (New Face of Fiction)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지음, 손화수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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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자연스레 집고 나면 일본 작가의 책인 탓에 조금은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얇은 두께감과 고운 색깔의 표지를 가진 책이 시선을 끌었다. 전체를 다 외우기 힘들 정도로 길고 색다른 노르웨이 작가의 이름- 세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도 독특하다. 미모의 노르웨이 작가인데다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유머러스한 책이라니 끌렸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연애의 과정을 철학, 역사, 정치 등 다양한 학문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었다. 거기에 유머러스함까지 갖추다니 정말 푹 빠져들었었다.- 이 정도의 위트가 넘치는 책이라면 좋겠다!!! 제목도 무언가 마음에 쏙 드는 느낌.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바쁘게 살아가며 자신을 소모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인걸까? 정말 기대감에 차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책을 읽기 시작했건만, 이건 대반전이다. 나는 이 책이 전혀 재밌지 않다. 이 책의 가독성이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느 부분에서 빵터져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언어 영역 문제 풀이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해학의 요소를 찾아내고자 했지만 불가능 했다. 나의 경우 첫 장을 넘기는 그 순간부터 슬프기 시작해서 끝까지 우울하고 먹먹했다. 그렇다고 눈물이 막 쏟아질 정도로 슬픈 것도 아니고 서글픔, 연민과 답답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 불쌍한 마테아! 



마테아는 번개에 두 번 연속 맞을 정도로 선택받은 녀성이지만 존재감이 없다. 학창 시절에는 출석부에서 제대로 호명된 적도 없고, 어딜 가든 그녀는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 한다. 마치 투명 인간처럼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존재를 인지하는 사람도 없다. 그녀에게는 평생 남편인 엡실론뿐이다. 친구도 없고, 장보기를 제외하고는 바깥 출입도 거의 하지 않는다. 신문을 가지러 나가는 순간에도 복도를 살피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누군가와 마주쳐 대화를 나누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인사 조차도 편하게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이 집 안이고 가끔 그녀가 들르는 슈퍼나 두 사람이 찾아가던 호수가 등장한다. 98%가 엡실론과 나눈 대화이고, 나머지는 필요에 의해 나눈 대화들, 혹은 혼잣말이다. 대화문과 일반문의 구분도 없이 문장들이 이어져 있어 더욱 답답한 느낌이 든다. 이 마저도 작가의 의도인가 싶을 정도로 글의 구조가 폐쇄적인 마테아의 생활과 너무 닮아 있다. 심지어 마테아가 이야기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고! 


엡실론은 종이 위에 그려놓은 두 개의 원을 차례차례 가리켰다. 커다란 원 속에 자리한 작은 동그라미. "이 커다란 원을 E라고 한다면, 이 작은 원은 M이 되겠지. 이 M은 항상 E를 동반해." "M은 E의 바깥쪽에 있는거 아니예요?" 엡실론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종이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건 아니야. 난 그렇게 할 수 없어." -p. 152-153


그러면서도 마테아는 본인을 매우 유쾌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도 생각한다. 평생 세상과 타인과 접촉하지 않고 살아왔으면서 다른 이들이 본인처럼 유머러스한 사람을 몰라보는 것에 대해 억울해 한다니. 평생 자신의 고립된 상황을 외면하다가 죽음의 순간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자신이 존재했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할까봐 두려워 한다. 매일 신문의 부고란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신을 남길 것인가를 궁리한다. 타임캡슐을 만들어 집 근처 마당에 묻기도 하고 화성에서도 보일만큼 튀는 색깔의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다른 독자들이 느낀 우울과 재미의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 하고 엡실론의 노력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그녀가 너무나 가여웠지만. 단지 소통이 서투른 사람일 뿐인데 어릴 때부터 쌓여온 경험때문에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자신의 틀을 벗어나지 못 하는게 끝끝내 안타까웠다. 


나는 내 인생을 바나나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바나나처럼 구부정할 뿐만 아니라, 암술과 수술이 없는 꽃의 소유자이며, 씨 없는 열매 아닌가. 따라서 붓다의 의견에 의하면 나라는 인간 자체는 바로 무의미함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p. 155


가끔은 무의미한 것들에게도 의미를 부여해야할 때가 있다. 그건 살다보면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습기로 축축한 모래를 토닥토닥 두드려 평평하게 만든 후, 그 위에 이들을 나란히 늘어놓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작은 돌멩이 다섯 개와 잔디풀 몇 개를 추가로 가져와 빈자리를 메웠다. 손을 털고 일어난 나는 모래 위에 새겨진 나의 마지막 말을 내려다보았다. "마테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p. 179


역시 책 표지에 쓰여진 서평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인가?! 나는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대체 어디가 유쾌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는 말일까?? 마테아의 언어와 사고, 행동 모두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심하게 사랑스럽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녀는 사랑스러운게 아니라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캐릭터다. 주변의 분위기나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그녀의 엉뚱함이 혹자에게는 재밌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일면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녀에게 크게 감정이입을 하고 동조해서 재미를 전혀 못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이 그렇게 외롭고 존재감이 없다면 슬프지 않을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도 마테아와 나 사이에 큰 차이점이 있다면 마지막 순간을 제외하고 그녀는 늘 당당하고 자신의 삶- 엡실론과 함께 살아가는 결혼생활- 에 만족해 왔다는 점이다. 주변에 무심할 정도의 긍정적인 자기애와 확신마저 없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막장드라마 보다도 못 한 찌질한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비록 나에게는 서글픈 책이 되었지만 고립으로 인한 인간의 고독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세밀하게 표현한 작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젊은 여작가가 할머니의 마음을 이토록 잘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다.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해봤길래, 혹은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지 신기하다. 특히 죽음에 대해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특별한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한정된 장소에서 인물의 대화와 혼잣말로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은 내 심리 상태와 처지때문에 너무 마테아를 불행한 여자로만 봤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엡실론과 함께 했던 세월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했을텐데. 슬프게만 보였던 이 이야기가 언젠가는 나에게도 익살스럽게 다가올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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