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구나?
와타야 리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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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마음때문에 머리 아픈 책은 읽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고른 책이랍니다.
보통 제가 읽은 일본 소설들은 내용도 복잡하지 않고 문체도 간결해서 금방금방 읽기 좋았었거든요.
이 책 또한 여자들의 눈길을 끄는 감각적인 표지와 제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불쌍하구나', 그리고 '아미는 미인'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의 2/3 가량은 '불쌍하구나' 인데요, 저는 '아미는 미인' 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분량은 짧지만 여성의 숨기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한 단편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미인 아미와 그녀 옆의 평범한 단짝친구 사카키의 이야기 입니다.
사카키 역시 매력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빛나는 아미 옆에선 범인이 되고 말지요.
심지어 사카키가 가진 개성적인 매력은 전부 결점이 되어 버립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아름다운 아미 덕분에 그녀의 단짝인 사카키 또한 예외가 되어 나름 순탄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오자 외면하고 있던 문제들에 봉착하게 됩니다.
아미가 진짜고 자신은 아미를 흉내낸 조악한 가짜로 보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새롭게 만나게 된 남자들은 아미와 사카키를 만나는 순간 그녀들을 공주와 하인, 스타와 매니저로 구분지어 버립니다. 아미와 끊임없이 비교 당하고 당연한 여성성마저 거부 당하면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게 되지요. 아미와 거리를 두고 싶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그녀때문에 괴로움과 곤란함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반전의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아미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 나가노 선배의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면서 말입니다.

스스로가 충족되면 아미에 대한 질투도 사라지는구나.

​그 날 이후 아미와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됩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는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카키가 느끼게 되는 절망감과 모멸감, ​그리고 자긍심을 되찾는 과정이 모두 섬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질투심에 사로잡혀 힘겨워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사카키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지요.
그녀의 감정적 변화를 따라가는 과정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과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되살리고 상처받았던 내 자신을 어루만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훈훈한 결말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미가 대학 졸업 후 갑자기 누구나 반대하는 날라리 같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주변 지인들의 걱정과 불만은 극에 달하게 되지요.
그 남자와의 만남을 막아야 한다는 지인들과 달리 진정 행복해 하는 아미의 얼굴을 보고 난 사카키는 그러한 의견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사카키에 대한 비난을 늘어 놓습니다.
원래 사카키가 아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질투심때문에 힘들어했던 사카키이므로 아미의 불행은 복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지 않느냐며 그녀를 몰아 부칩니다.
하지만 질투에 눈이 멀어 우정이 산산조각 난 비극적인 결맏도 아니고, 사랑을 통해 질투심을 극복하고 행복이라는 복수를 날리는 여자의 통쾌한 결말도 아닙니다. ​
바로 이 부분이 아미와 달리 현실적인 감각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그녀의 매력과 진면모가 빛나는 대목입니다. 사카키 본인은 잘 몰랐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했던 바로 그 이유 말입니다. ​
사카키가 아미를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미는 사카키를 좋아하고 단짝이 되려고 애를 썼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보이지 않는 감옥에 살고 있던 아미의 절대적인 고독과 힘겨움, 갑갑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녀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녀가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궁극의 고독을 메우기 위해 무의식 중에 자신에게 매정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던거죠.
그래서 사카키는 그녀의 결혼을 말리는 대신 응원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줍니다.
비록 그녀의 앞날이 힘들어진다 하더라도, 그녀의 곁을 끝까지 지킬 것을 맹세하면서 말이죠.
드디어 아미가 찾아 낸 그녀의 행복과 자유를 존중하면서.. 사카키와 아미는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말합니다.

여자의 질투란 무서운 감정이죠.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을 좀먹습니다.

물론 질투에 눈이 멀어 누군가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저 역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오죽하면 여자는 질투의 화신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질투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극복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나 자신이 스스로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지 못 했던 결핍의 요소가 타자를 통해 부각될 때 그 감정이 질투로 발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자긍심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결점마저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면 이러한 감정은 사그라들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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