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아주기 - 소확혐,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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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된 나영이는 태어날 때 몸무게 2.9 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적은 체중을 염려한 부모는 아이가 잘 안 먹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원인을 찾던 부모는 검색하다 설소대가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여 설소대 절제 수술을 받게 했다.



여전히 잘 안 먹던 나영이는 이유식도 거부하다 생후 9개월이 되면서 구역질과 구토를 시작했다. 병원을 가고 최고급 분유로 바꾸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위 내시경을 했더니 위식도 역류증과 알레르기 위장관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처방으로 12주간 약물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나영이의 증상은 병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입이 짧아서였다. "괜한 수술과 검사 및 투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p.111)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할 것 같은 부모의 불안감 때문에 두려움을 피하고자 아이에게 섭식을 강요하고 트라우마를 안겨줄 뻔 했다.



나쁜 기억 - 소확혐



"소확혐은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혹은 작지만 확실히 싫어하는 것을 의미한다(p.126)"


나쁜 기억들은 어떤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말 그대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그 이유는 "두려움을 기억하는 뇌세포들은 맥락을 기억하는 세포들과 복잡하게 얽혀있"(p.60)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무서웠는지 기억해야 그 상황이 되면 도망치거나 대응을 할 수 있다. 두려움은 맥락 속에 있다.


“맥락 회로만 자극해도 두려움 회로는 자동적으로 발화"(p.60) 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순간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뇌의 기억 능력이 손상되는 반면, 나쁜 기억을 저장하는 편도체는 활성화된다. 뇌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나쁜 기억을 반복해서 겪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 행동이 '행동 편향 '과 '부작위 편향'으로 나타나고, 상황을 미리 '컨트롤'하려고 한다. 개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다행이지만 개인, 조직, 더 나아가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나쁜 기억으로 남게 된다. 손실을 피하려고 하는 인간의 두려움은 '나쁜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행동 편향은 "결과와 상관없이 가만있는 것보다 뭔가 행동"(p.97) 하는 것을 말한다. 부작위 편향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손해보다는 어떤 일을 하지 않으므로써 발생하는 손해를 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향"(p.102)을 말한다.


위에 예에서도 나영이가 안 먹는 것을 걱정한 부모님은 무엇이라도 하려는 행동 편향을 보였고, 그 상황에 개입하여 아이에게 수술, 검사, 투약을 했다.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에게 나쁜 기억을 심어주게 될 뻔 했다.


문득 떠오르는 나쁜 기억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혐오를 보이거나, 남에게 책임 전가를 하기도 하며, 타인의 평가나 거절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도 하고, 집착, 강박, 편집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기억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문득 떠오르는 나쁜 기억은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기억은 왜곡된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가 말한 기억 오염은 당사자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마저 바꾸는 현상을 말한다.(중략) 이렇게 되면 자신의 기억에 대한 확신이 얕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인간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편향을 내세워 자신만의 나쁜 기억을 더욱 강화시킨다.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억의 오류와 망각이 더해진 인간은 현재의 관점에서 기억을 재구성하게 된다."(p.257)


두려움의 시작점에서 내 안의 믿음을 찾는다.


문득 떠오르는 소확혐 기억은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이럴 때 긴장을 풀고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나를 곰곰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두려움을 해결할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이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옥시토신이 편도체를 눌러 이길 수 있다.


"내 안의 어딘가에 있을 '믿음'을 찾아서 가져와야 한다." (p.298)


나를 완성시키는 '나쁜' 기억을 직면해보자.


"아픈 기억은 부딪혀봐야 한다. 회피하는 것은 또 다른 나쁜 기억의 왜곡을 가져다줄 뿐이다."(p.269) "이럴 때 피하지 말고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에 따르는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일으킨 기억과 마주쳐봐야 한다. 이것이 자각이다. (중략) 나쁜 기억이 아무리 아파도, 기억과 마주하는 것이 아무리 두려워도, 자신을 죽일 수도 없고 죽여서도 안된다. 죽일 정도가 아니라면 오히려 그런 경험들이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p.315)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기시미 이치로, 부키, 2020)에서는 철학자는 "지금이 바뀌면 과거의 기억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신의 기억이든 남의 기억이든 지우고 싶다는 건 그것이 '나쁜' 기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일을 제대로 마주한다면 이는 머지않아 '나쁜' 기억이 아니게" 된다. 고통으로부터 우리는 배우고 더 나아진다.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삶의 다양한 교훈을 얻는다.


영화 <<다크 시티>>에서는 외계인이 인간의 모든 기억을 조작한다. 모든 외계인이 하나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고 어떤 이유에서인가 멸종해 가고 있다. 이들은 인간이 번성하는 이유를 각기 개인이 가진 기억에 있다고 생각하고, 기억을 만들어 주입하고, 이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영화에서는 기억이 자신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의미한다. 우리의 나쁜 기억도 나를 완성시키는 기억이 될 수 있다.


좋은 기억으로 덮는다.


"사실 망각의 기술은 있다. 가장 훌륭한 망각의 기술은 좋은 경험하기와 좋은 기억으로 왜곡하기다. (중략) 모든 좋은 경험은 뇌의 영역 곳곳에 기억의 절편으로 남겨진다. 좋은 기억으로 왜곡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면역체계에서 작동한다." (p.266)


두려움을 일으켰던 나쁜 기억의 맥락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 좋은 기억을 남기자. 이 기억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쁜 기억에서 이겨낼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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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기억 안아주기>>(최연호, 글항아리, 2020)에 나오는 사례와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이 책은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소아 소화기 영양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이자 성균관의대 학장인 최연호 의사가 쓴 책이다.


소아과 의사 관점에서 나쁜 기억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기는지, 어떻게 극복할지를 설명한다. 일반적인 뇌과학 책과 다른 점은 소아과나 의사 임상 사례를 통해 나쁜 기억이 형성된 사례를 들려준다는 거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읽으면 그 사례가 남일 같지 않아 확 와 닿는다. 아이를 둔 부모에게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부모의 두려움으로 인한 과한 개입으로 아이에게 나쁜 기억을 심어주지 않게 할 예방주사다.


좀 더 빨리 이 책을 읽었다면, 내 아이가 어린이집을 1년에 네 번이나 옮길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여전히 난 아이가 조금 열이 올랐다고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받아 아이에게 먹이는 행동 편향을 보이는 엄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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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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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 아침 출근하기 싫어 이불속에서 겨울잠을 자면 어떨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겨울잠을 잔다면 지구의 겨울은 조용할까?


상상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작가다. <<부디, 얼지 않게끔>>(강민영, 자음과 모음, 2020)은 그 상상을 써 내려간 소설이다. 이야기는 봄의 끄트러미에서 시작해 겨울 초입에 끝난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주인공이 점점 변해가는 과정이 나온다.


최인경은 평범한 여행사 직원이다. 베트남에 학생들을 가이드하러 가게 된다. 비용처리를 위해 경영지원팀의 송희진도 함께 가게 된다.


희진은 튀는 외모와 복장의 소유자다. '평범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소외된다. 사람들은 "사무실 직원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복장 규정을 어기고 출근한 희진을 희진 만 빼놓고 만든 단톡 방에서 욕한다. 희진이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하다. 사람들의 숙덕거림에 해명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그녀가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진단한다. 그런 희진은 함께 간 베트남 출장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경을 관찰한다.


"내 몸 구석의 어딘가를 강박적으로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일이 잦아졌다."(p.30)


"대리님, 그거 맞죠? 파충류나 양서류 그런 종류요. 땀이 안 나고 온도에  따라 체온도 변하고 하는, 그거 뭐더라, 그거요, 대리님." (p.33)


그녀의 관심 덕분에 인경은 자신이 변온 동물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차별 혹은 외면당했던 희진이 먼저 인경에게 손을 내민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며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고, 함께 자신의 공간을 내어준다.


"희진 씨는 참 신기해요. 어떻게 이런 상황들에  그렇게 유연한 게 대처할 수 있는지 궁금하고, 이렇게 맹목적으로 도와주시는 것도 제 입장에서는 참 신기하고."(p.75)


자신에게 조건 없이 잘해주는 희진이 의아한 인경에게 희진은 "누구나 변할 수 있는 거"(p.80)라고 한다. 희진은 타인의 다름, 혹은 달라져가는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인경은 희진의 모습을 통해 반성한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도 동조한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진은 말한다.


"생각만 한 것과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다르니까요." (p.79)


희진은 변온 동물이 되어가면서 어렸을 때 개구리를 죽이던 학교 친구들을 떠올린다. "한겨울의 추위가 가시고 나 직후 교내 화단 구석의 흙을 뚫고 나와 기지개를 켜던 개구리들을 소위 '개구쟁이'라 불리던 남자아이들이 발로 짓밟아 죽여버리는 행위"를 봐왔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런 개구리가 되는 걸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희진의 받아들임은 인경에게 힘이 된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온다던,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분하게 찾아보자던 희진의 말. 원인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앞으로를 대비하자는 희진의 다독거림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희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p.81)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타적이고, 소외시키고,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세상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두 여성의 연대는 더 따뜻하다.


시간은 흐르고 가을이 되자 인경에게 힘든 시간이 온다. "결국 팀 내에서 '인경 씨 조금 이상하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고, 정 팀장과 곽 부장에게 차례로 불려 가며 '정상'임을 해명"(p.165)하고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키지 못해 사무실에 늦는 일이 잦아졌으나 그 무렵 시작된 유연 근무제로"(p.160) 겨우 눈치를 안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출퇴근의 동선을 미세하게 조정"하면서까지 출근하는 인경. 약을 먹기 위해 젤리를 가져다 주지만 정 팀장은 자신의 젤리만 축낼 뿐 사다 주지도 않는다. "요즘 세상에 밥그릇 맡아주는 곳이 어디 흔한가, 탄식을 하며 고개를 젓는" 인사과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꾸벅 인사를" 한다. "인사과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평범한 사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다급하고 억울하게 그 말들을 속으로 집어삼"킨다.


자신이 이렇게 변했음에도 직장에 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변신>>(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2010)의 그레고르와도 닮아있다. 그레고르도 "어쩌다가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그동안 부모를 생각해서 꾹 참아왔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작 사표를 던지고" 나왔을 텐데라고 한탄하며 "5년간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늦잠 자고 아직 출근하지 않은 자신을 질책할 사장을 걱정한다. "자네 일자리가 무슨 철밥통인 줄 아나 보지."라며 질책하는 그레고르의 지배인과 인경의 인사과장의 못마땅한 얼굴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그레고르에겐 희진이 없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도 출근과 가족을 걱정하지만, 그의 가족은 그레고르를 혐오스러워하며, 사과를 던지고 마침내 방에서 죽게 둔다. 마침내 그가 죽자 안도하며 기뻐한다.


"그러나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았고, 그레고르가 아무리 기다려 봐도 말짱 허사였다." <<변신>>


하지만 인경에겐 희진이 있다.


"정말 이렇게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사라진다면"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최첨단 세상이니 21세기니 뭐니 해도,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p.191)


인경은 죽을지도 살지도 모르지만 동면을 준비한다. 원하지 않는 선택이지만 선택해야 한다. 그녀의 다음 봄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희진은 함께 준비해준다.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인경과 희진을 보며 생각한다. 나와 다름에 대해 틀리지 않다고 그저 다르다고 인정을 했던가? 언제 어디서든 내 모습은 바뀔 수 있다. 병에 걸릴 수 있고,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다른 가족을 꾸릴 수도, 집에서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런 변화에 대해 얼마큼 수용할 마음의 공간이 있을까? 희진이 그 답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부디, 얼지 않게끔>>은 우리 마음을 향한 작가의 바람이 아닐까.



*이 책은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고슴도치 이미지 출처: https://pin.it/6xjrz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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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 손해 보는 조직의 속성
서광원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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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하면?



상사의 마음을 잘 모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알아주겠거니 하면서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다. 상사가 시킨 일을 나름대로 잘 정의하고, 열심히 한다. 다 완성되면 필요하겠다 싶은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한다. 조직에서 정치는 잘 못한다. 상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알아주겠지 하는 자세로 열심히 일한다.


이렇게 일했는데, 항상 성과는 팀장이 가져가고, 진급은 누락되고, 보너스도 못 받는다. 세상이 원래 그렇지, 회사가 원래 그렇지...라고 생각해보지만 짜증 난다.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 두기는 어렵다.




왜 나를 몰라줄까?



 "알아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몰라주는 게 당연하다. 상사 복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래 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히 자신을 알 것이라 생각하는 건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며, 근거 없는 낙관주의적 성향을 가진다. 이런 성향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장점만 보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단점만 보인다.




"우리는 일하는 기술이나 재무제표 보는 법, 코딩 같은 눈에 보이는 기술을 중시하면서도 이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조직에 대한 이해, 그리고 조직 속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의외로 약하다. (중략) 일만 잘하지 조직의 속성과 조직 속 인간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내려있는 자기중심 성향을 '상대 중심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드지 말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듯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하는 듯이 말이다.




1. 관계에 대한 이해를 하자



꽃들의 생존 지혜를 따르자. 아무리 좋은 꿀이 있어도 알리지 않으면 벌이 오지 않는다. 세상은 갈수록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계속 알리자.




거래처 미팅과 팀 회식이 있다면 회식에 가자. 비대면 업무가 많아지면서 관계 지향성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관계'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동료와 상사를 택하라.  




2. 인식을 개선하자.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스스로를 마케팅하라. 성과를 냈다고 다 성공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야 성공이다. 일을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식의 법칙을 잘 기억하라. 어떤 성과를 올렸느냐보다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자연에서 보듯 과시는 필요하다. (중략) 과시는 정도가 문제이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권위는 필요 하지만 권위주의는 배격해야 하듯, 과시도 마찬가지다."




3. 상사를 알자.



상사는 늘 바쁘다. 보고 시 보고 받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궁금해하는 순서로 배치한다. 이런 순서로 배치하되 TV 드라마처럼 다음에 궁금하게 만들어 또 다음 내용을 듣고 싶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상사 앞에서 보디랭귀지에 신경 써라.




"직장 생활에서는 모름지기 몸을 잘 써야 한다. 몸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속마음을 다 드러내기 때문이다. (중략) 몸은 말보다 훨씬 강력하게 전달되고 자신도 모르게 특정 정보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큰 코 다칠 일이 많다. 큰 조직일수록 신체 언어에 관한 암묵지를 모르면 그건 '죄'가 된다. 이 '괘씸죄'를 범하면 '조직의 뜨거운 맛'을 아프게 경험해야 한다.




4. 조직을 알자.



내가 속한 조직의 특성을 알자. 돌아가는 판을 알아야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우리나라 회사 문화는 농촌 문화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문화 인류학자인 조지 포스터에 따르면 이런 사회는 공동체주의적으로 보이나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튀면 안 되고, 잘되면 하다 보니 잘됬다고 극구 주목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일을 싫어한다.




"함께 살아가기는 하지만 현재 상태를 벗어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묶고 억제하고 견제하고 있었다. 변화보다 안정,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 이유는 경작하는 땅, 즉 좋은 것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레드 오션, 파이 나누기와 같다. 이런 사회에서 변화는 좋은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잘되면 그건 내가 손해 본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처신이 중요하고, 나서지 않아야 하며, 어쩌다 좋은 일이 생기면 한턱을 내서 자신이 공동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존재라고 증명해야 한다. 변하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보다 구조가 문제인 거다.




"무엇보다 변화를 저해하는 것은 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이기에 조직의 구조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 안 되는 조직일수록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다."




이제, 이런 걸 시도해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묵묵히 가만있으면 묻힌다."




1. 아무나 못하는 일에 손 들어라.




튀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튀어라. 그리고 보고하라. 일을 하기 전에 "oo 하겠습니다". 하는 중간에 "이러저러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끝냈다면 "이러이러하게 끝냈습니다."라고 보고한다.




2. 성능 좋은 스피커를 장착하라




내가 내성적이라면, 나 내신 나에 대해 여기저기 말해줄 사교적이고 활달한 사람과 친해져라. 내가 나를 알리기 어렵다면 인맥을 동원한다.




3. 고민을 상담하라.




상사에게 고민을 상담하라. 고민을 상담하면 상사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줬다고 생각하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민 상담하면서 자주 보게 되면 상사에게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자주 인식시킬 수 있다.




4. 상사의 마음을 알라.




상사의 기억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건 '자주'와 '상사에게 이로운 것'이다. 상사가 원하는 성과를 내거나 상사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자. 똑같은 성과라고 해도 상사가 원하는 걸 하는 게 인정받는 지름길이다.




5. 두 얼굴을 해라.




내성적이어도 무대 위의 배우처럼 연기하라. 잡스도 무대에 서기 전에 수백 번 연습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묵묵히 가만있으면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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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싱킹 - 속도를 늦출수록 탁월해지는 생각의 힘
황농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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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싱킹>> (황농문 저, 위즈덤하우스)은  <<몰입>>, <<몰입 두 번째 이야기>>, <<공부하는 힘>> 등 몰입에 대해 책을 쓴 황농문 교수의 책이다. 이 책에서는 몰입을 위한 슬로 싱킹 가이드를 제공하고, 다양한 슬로 싱킹 사례를 소개한다. 중학생이 어려운 경시 문제를 풀고, 대학원생이 문제를 잘 해결해서 좋은 논문을 내고, 직장인이 돼서도 회사나 소속된 연구소의 난제를 해결해서 핵심인재가 된 사례를 만나 볼 수 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도 스트레스 없이 기쁨과 행복이 넘치고,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1분 밖에 생각할 줄 모르면 1분 걸려 해결할 문제밖에 못 푼다." <<슬로 싱킹>>


몰입하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슬로 싱킹을 시도해보자. 쉽지는 않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감이 오지는 않는다. 어떤 순서를 밟아야 슬로 싱킹을 통해 몰입 상태가 되는지, 지금 어느 단계인지 측정하거나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상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단계 혹은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슬로 싱킹이란?


스포츠를 배울 때 초보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힘을 빼는 거다. 불필요한 힘이 잔뜩 들어가면 동작도 어색해지고 제대로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문제 해결을 위해 생각을 할 때도 뇌에서 움직여야 할 부위가 있다. 그 부분만 움직이기 위해서 다른 부위의 힘을 빼거나 이완을 시켜야 한다. 슬로 싱킹을 하면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원하는 기간만큼 최대 집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온몸에 힘을 빼고 목을 뒤로 기대고 편안하게 앉아 명상하듯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다음,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아주 천천히 생각한다. 생각할 때 괴로움이나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되, 집중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를 1초도 멈추지 않겠다는 자세로 생각의 끈을 붙들고 있는 방식이다." <<슬로 싱킹>>


몰입을 연습하라


"뇌는 우리가 요구하는 능력만을 집중적으로 발달시킨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라도 뇌에 지속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요구하면 결국에는 가능한 일이 된다.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내 뇌와 가까워져야 한다. 그리고 잠재능력 내에서 무언가를 제대로 요구하라. '뇌에 무언가를 지속해서 요구하는 행위'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도전한다는 뜻이다. 밤낮으로 축구 생각만 하고 열심히 축구를 하는 곳은 곧 뇌에 축구를 잘하도록 시냅스 배선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슬로 싱킹>>


몰입을 연습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쉬운 수학 문제풀기를 제안한다. 일단 수학이라고 하면 스스로를 수포자라 여기는 사람들은 벌써 몰입을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 풀었다는 성취감, 이 과정의 무한 반복이라는 삼 박자가 어우러져 몰입에 필요한 슬로 싱킹의 최적의 방법이다.


학생에게 추천하는 몰입 방법


아래 11가지 중 저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건 1초도 생각을 놓지 않는 연습과 하루 30분씩 규칙적인 운동이다. 5번 내용은 학습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공부하는 과목을 하루에 1과목으로 해야 뇌가 충분히 이해하고 습득해서 잘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슬로싱 킹 장기 몰입의 원칙 11


1. 자는 시간이 곧 복습하는 시간

2. 슬로 싱킹과 20분의 선잠 습관화

3. 1초도 생각을 놓지 않는 연습

4. 하루 30분씩 규칙적인 운동

5. 하루에 여러 과목보다는 한 과목을 일주일 이상 집중적으로

6. 무조건 암기보다 생각하고 이해

7. 미지의 문제를 온전히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 만들기

8.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불안감 통제

9. 선택과 집중은 요령 있게

10. 무한 반복

11. 공부하는 이유 찾기



진짜 몰입의 힘을 느껴보고 싶지만, 슬로 싱킹은 알듯 모를 듯. 쉬운 듯이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도전해보자. 어느새 가장 최상의 뇌를 가진 내가 될지도 모른다.


* 이 책은 독서모임 성장판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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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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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준비'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있다. 늘 준비 없이 여행을 다니는 편인 나로서는 여행도 아니고 여행 준비를 취미로 한다니 신기했다. 다른 종족, 다른 행성에 사는 듯한 사람. 지구인으로 분류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본다면 저자는 J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이 쓴 책이 <<여행 준비의 기술>>이다. 게다가 저자는 의사 출신의 21년 차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연대 의대를 나와, 박사 학위를 따고, 수련의를 마친 후 공중보건의사의 길을 택한 걸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고,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 같았다. 

 

시험 준비, 취업 준비, 출근 준비, 결혼 준비, 식사 준비, 이직 준비, 이사 준비 등 우리가 살면서 하는 준비는 다 재미없다. 준비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 준비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인생은 어차피 준비만 하다가 끝난다는 말도 있는데, 여행을 못 가면 어뗘랴,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그것으로도 큰 위안이 아닌가."


참 창의적인 사람이다.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다니. 마치 요리 자체보다 재료를 손질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 같다. 저자의 여행 준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여행 준비 - 외국어


여행 가기 전 그 나라의 회화책을 사는 것은 기본이었다. 요즘은 번역 앱이 잘되어 있어서 회화책을 사는 경우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외국에 간다고 생각하면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다. 


"힘들어도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는 것처럼, 여행을 준비하며 그 나라 말을 공부하는 것은 여행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는 좋은 운동이다."


그냥 막연하게 간단한 의사소통이라도 하려고 그 나라 언어를 익혀간다 생각했는데, 저자는 특이하게도 우아하게 돈 쓰려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돈 쓰는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단계, 영어를 사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단계,  영어를 못해서 돈 쓰는 것도 못하는 단계. 대부분 사람들은 돈 쓰는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아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저자는 이왕 돈 쓰는 김에 우아하게 돈 쓰라고 설득한다. 


여행 준비 - 책


보통 여행 준비하면서 또 많이 사는 책이 가이드 책, 이 단계를 넘어섰다면 테마가 있는 (박물관, 미술관, 공연, 음식 등) 여행 책을 사고, 위에서 말한 회화책을 많이 산다. 하지만 저자는 의외로 다른 제안을 한다.


"이런 책들을 읽는 건 물론 좋은 여행 준비다. 하지만 더 좋은 여행 준비는 여행과 관련 없는 책을 평소에 많이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그런 마음이 오래도록 진하게 쌓여 있는 곳에 가면 더 즐겁다. 뭐든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더 기쁜 법이니까."


여행 준비 - 자신을 알기 


저자는 여행 준비의 장점 중 하나로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꼽는다. 이 부분은 약간 자기 개발서 느낌이 났다. 여행을 준비하는데 자신을 알아야 한다니. 기승전 "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형 소환인가 싶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 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덜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여행 준비란 자신이 가장 만족할  곳을 찾아내는 일이다. 어떤 장소가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알려면 그곳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세상의 여러 곳곳을 두루 살피면서, 자신을 알게 되는 과정, 이것이야 말로 여행 준비다. 여행 준비도 하고 나 자신도 알고, 세상 곳곳도 알고 일석 삼조다. 


저자도 스스로 말하지만 이 책은 장르가 불분명하다. 진짜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며, 여행 에세이도, 인문서도 아니다. "여행 준비 혹은 여행을 하면서 느끼거나 경험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소품"이다. 

그래서일까? 편안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어차피 준비를 하는 거고 코로나 19로 어차피 지금 당장 어디로 갈 수도 없으니 느긋하게 앉아 작가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거기 갔었지, 혹은 나도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 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덜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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