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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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준비'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있다. 늘 준비 없이 여행을 다니는 편인 나로서는 여행도 아니고 여행 준비를 취미로 한다니 신기했다. 다른 종족, 다른 행성에 사는 듯한 사람. 지구인으로 분류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본다면 저자는 J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이 쓴 책이 <<여행 준비의 기술>>이다. 게다가 저자는 의사 출신의 21년 차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연대 의대를 나와, 박사 학위를 따고, 수련의를 마친 후 공중보건의사의 길을 택한 걸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고,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 같았다. 

 

시험 준비, 취업 준비, 출근 준비, 결혼 준비, 식사 준비, 이직 준비, 이사 준비 등 우리가 살면서 하는 준비는 다 재미없다. 준비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 준비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인생은 어차피 준비만 하다가 끝난다는 말도 있는데, 여행을 못 가면 어뗘랴,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그것으로도 큰 위안이 아닌가."


참 창의적인 사람이다.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다니. 마치 요리 자체보다 재료를 손질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 같다. 저자의 여행 준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여행 준비 - 외국어


여행 가기 전 그 나라의 회화책을 사는 것은 기본이었다. 요즘은 번역 앱이 잘되어 있어서 회화책을 사는 경우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외국에 간다고 생각하면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다. 


"힘들어도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는 것처럼, 여행을 준비하며 그 나라 말을 공부하는 것은 여행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는 좋은 운동이다."


그냥 막연하게 간단한 의사소통이라도 하려고 그 나라 언어를 익혀간다 생각했는데, 저자는 특이하게도 우아하게 돈 쓰려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돈 쓰는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단계, 영어를 사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단계,  영어를 못해서 돈 쓰는 것도 못하는 단계. 대부분 사람들은 돈 쓰는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아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저자는 이왕 돈 쓰는 김에 우아하게 돈 쓰라고 설득한다. 


여행 준비 - 책


보통 여행 준비하면서 또 많이 사는 책이 가이드 책, 이 단계를 넘어섰다면 테마가 있는 (박물관, 미술관, 공연, 음식 등) 여행 책을 사고, 위에서 말한 회화책을 많이 산다. 하지만 저자는 의외로 다른 제안을 한다.


"이런 책들을 읽는 건 물론 좋은 여행 준비다. 하지만 더 좋은 여행 준비는 여행과 관련 없는 책을 평소에 많이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그런 마음이 오래도록 진하게 쌓여 있는 곳에 가면 더 즐겁다. 뭐든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더 기쁜 법이니까."


여행 준비 - 자신을 알기 


저자는 여행 준비의 장점 중 하나로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꼽는다. 이 부분은 약간 자기 개발서 느낌이 났다. 여행을 준비하는데 자신을 알아야 한다니. 기승전 "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형 소환인가 싶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 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덜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여행 준비란 자신이 가장 만족할  곳을 찾아내는 일이다. 어떤 장소가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알려면 그곳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세상의 여러 곳곳을 두루 살피면서, 자신을 알게 되는 과정, 이것이야 말로 여행 준비다. 여행 준비도 하고 나 자신도 알고, 세상 곳곳도 알고 일석 삼조다. 


저자도 스스로 말하지만 이 책은 장르가 불분명하다. 진짜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며, 여행 에세이도, 인문서도 아니다. "여행 준비 혹은 여행을 하면서 느끼거나 경험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소품"이다. 

그래서일까? 편안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어차피 준비를 하는 거고 코로나 19로 어차피 지금 당장 어디로 갈 수도 없으니 느긋하게 앉아 작가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거기 갔었지, 혹은 나도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 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덜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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