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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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 아침 출근하기 싫어 이불속에서 겨울잠을 자면 어떨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겨울잠을 잔다면 지구의 겨울은 조용할까?


상상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작가다. <<부디, 얼지 않게끔>>(강민영, 자음과 모음, 2020)은 그 상상을 써 내려간 소설이다. 이야기는 봄의 끄트러미에서 시작해 겨울 초입에 끝난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주인공이 점점 변해가는 과정이 나온다.


최인경은 평범한 여행사 직원이다. 베트남에 학생들을 가이드하러 가게 된다. 비용처리를 위해 경영지원팀의 송희진도 함께 가게 된다.


희진은 튀는 외모와 복장의 소유자다. '평범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소외된다. 사람들은 "사무실 직원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복장 규정을 어기고 출근한 희진을 희진 만 빼놓고 만든 단톡 방에서 욕한다. 희진이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하다. 사람들의 숙덕거림에 해명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그녀가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진단한다. 그런 희진은 함께 간 베트남 출장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경을 관찰한다.


"내 몸 구석의 어딘가를 강박적으로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일이 잦아졌다."(p.30)


"대리님, 그거 맞죠? 파충류나 양서류 그런 종류요. 땀이 안 나고 온도에  따라 체온도 변하고 하는, 그거 뭐더라, 그거요, 대리님." (p.33)


그녀의 관심 덕분에 인경은 자신이 변온 동물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차별 혹은 외면당했던 희진이 먼저 인경에게 손을 내민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며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고, 함께 자신의 공간을 내어준다.


"희진 씨는 참 신기해요. 어떻게 이런 상황들에  그렇게 유연한 게 대처할 수 있는지 궁금하고, 이렇게 맹목적으로 도와주시는 것도 제 입장에서는 참 신기하고."(p.75)


자신에게 조건 없이 잘해주는 희진이 의아한 인경에게 희진은 "누구나 변할 수 있는 거"(p.80)라고 한다. 희진은 타인의 다름, 혹은 달라져가는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인경은 희진의 모습을 통해 반성한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도 동조한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진은 말한다.


"생각만 한 것과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다르니까요." (p.79)


희진은 변온 동물이 되어가면서 어렸을 때 개구리를 죽이던 학교 친구들을 떠올린다. "한겨울의 추위가 가시고 나 직후 교내 화단 구석의 흙을 뚫고 나와 기지개를 켜던 개구리들을 소위 '개구쟁이'라 불리던 남자아이들이 발로 짓밟아 죽여버리는 행위"를 봐왔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런 개구리가 되는 걸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희진의 받아들임은 인경에게 힘이 된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온다던,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분하게 찾아보자던 희진의 말. 원인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앞으로를 대비하자는 희진의 다독거림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희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p.81)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타적이고, 소외시키고,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세상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두 여성의 연대는 더 따뜻하다.


시간은 흐르고 가을이 되자 인경에게 힘든 시간이 온다. "결국 팀 내에서 '인경 씨 조금 이상하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고, 정 팀장과 곽 부장에게 차례로 불려 가며 '정상'임을 해명"(p.165)하고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키지 못해 사무실에 늦는 일이 잦아졌으나 그 무렵 시작된 유연 근무제로"(p.160) 겨우 눈치를 안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출퇴근의 동선을 미세하게 조정"하면서까지 출근하는 인경. 약을 먹기 위해 젤리를 가져다 주지만 정 팀장은 자신의 젤리만 축낼 뿐 사다 주지도 않는다. "요즘 세상에 밥그릇 맡아주는 곳이 어디 흔한가, 탄식을 하며 고개를 젓는" 인사과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꾸벅 인사를" 한다. "인사과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평범한 사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다급하고 억울하게 그 말들을 속으로 집어삼"킨다.


자신이 이렇게 변했음에도 직장에 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변신>>(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2010)의 그레고르와도 닮아있다. 그레고르도 "어쩌다가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그동안 부모를 생각해서 꾹 참아왔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작 사표를 던지고" 나왔을 텐데라고 한탄하며 "5년간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늦잠 자고 아직 출근하지 않은 자신을 질책할 사장을 걱정한다. "자네 일자리가 무슨 철밥통인 줄 아나 보지."라며 질책하는 그레고르의 지배인과 인경의 인사과장의 못마땅한 얼굴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그레고르에겐 희진이 없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도 출근과 가족을 걱정하지만, 그의 가족은 그레고르를 혐오스러워하며, 사과를 던지고 마침내 방에서 죽게 둔다. 마침내 그가 죽자 안도하며 기뻐한다.


"그러나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았고, 그레고르가 아무리 기다려 봐도 말짱 허사였다." <<변신>>


하지만 인경에겐 희진이 있다.


"정말 이렇게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사라진다면"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최첨단 세상이니 21세기니 뭐니 해도,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p.191)


인경은 죽을지도 살지도 모르지만 동면을 준비한다. 원하지 않는 선택이지만 선택해야 한다. 그녀의 다음 봄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희진은 함께 준비해준다.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인경과 희진을 보며 생각한다. 나와 다름에 대해 틀리지 않다고 그저 다르다고 인정을 했던가? 언제 어디서든 내 모습은 바뀔 수 있다. 병에 걸릴 수 있고,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다른 가족을 꾸릴 수도, 집에서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런 변화에 대해 얼마큼 수용할 마음의 공간이 있을까? 희진이 그 답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부디, 얼지 않게끔>>은 우리 마음을 향한 작가의 바람이 아닐까.



*이 책은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고슴도치 이미지 출처: https://pin.it/6xjrz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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