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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Positive T.
이미누 / 시크노블 / 2022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뒷맛이 안 좋은 영화를 좋아한다. 당장 생각나는 건 큐브, 12 몽키즈, 아이덴티티 정도.
이 작품은 그런 취향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아마 이게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었다면 휘파람 불며 환호했겠지만, BL에선 어디까지나 '파저티브'한 해피 엔딩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썬, 가슴 한 구석이 굉장히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을 한 우한도, 반항하고 버텼지만 결국 받아들인 서연도 너무 안타깝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안타까운 건, 모든 걸 포기한 듯 하지만 결국 포기 못하고 그렇다고 붙잡지도 못하는 서연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가족에게서 벗어나겠다고 말하던 서연이었지만 결국 우한때문에 '닫는 사람'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에 가서야 서연을 선택한 우한에 기뻐하지만 그래도 온전히 믿을 수 없어서 연옥을 반복하고 반복하고야 마는 게 너무 슬펐음... 사실 믿을 수 없는 게 맞지. 낙원수 한 번 마시고 잠깐이라도 미쳐서는 낙원에 보내달라고, 닫는 사람의 역할을 하라고 닥달한 건 사실이니까.
에필로그를 봐서는 조만간 그 집을 벗어날 거 같긴하다. 반복되는 와중에서도 계속 변화는 오니까. 다람쥐 쳇바퀴같은 일상을 산다고 말들 하지만 그 속에는 평소보다 조금 행운인 날도 있고 사소한 이득을 본 날도 있고 감정 다툼을 한 날도 있고, 그렇게 조금씩 다 다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일들이 모여 지금으로썬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한과 서연의 반복 중에서도 조금씩 틀어지는 사건이 계속 생기는 걸 보니 머지않아 벗어날 거 같기는 한데, 그게 과연 해피할 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현실에서는 둘 다 죽은 거니까.
대략 추리하기로는 타임라인이... 아내를 잃고 상심한 와중에 서연의 아버지가 건낸 낙원수를 마시고 아내의 환상을 본 뒤, 서연의 아버지와 계약을 맺고 의도적으로 서연에게 접근해 좋아한다며 꼬득였고, 그 와중에 서연의 형이 우한에게 낙원수를 갑작스럽게 먹여서 서연을 붙잡고 낙원에 보내달라고 추태를 부린 거 같다. 그러고 나서 우한을 낙원에 보내주기 위해 결국 서연이 닫는 사람의 역할을 받아들여서 모임의 일원과 가족들을 하나씩 보내고 마지막 대의식을 치루는 와중에 우한이 들이닥쳐서 집에 불을 질렀고 그 사이에 서연은 목을 맸고. (닫는 사람도 어쨌거나 살아있으면 안 되는 거니까) 불타오르는 집안에서 나무에 매달린 서연을 보고 창문밖으로 몸을 던진 우한도 죽은 거 같다.
하지만 이미 낙원보다는 서연을 택한 우한은 낙원에 들지 못하고 서연이가 머무는 공간, 연옥인 지 묘지기 집인지 아무튼 거기에 떨어져서는 수십 수백 번 반복해서 서연을 선택하며 죗값을 치르고 있고. 이미 더 이상 바닥이 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서연으로써는 자신을 배신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남자와 영원일 것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나름 행복해하지만 이 다음 '순환'에서는 우한이 낙원을 택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순환을 멈추지 못한다. 하지만 곧 멈출 거 같애... 그리고 그게 진정한 행복은 아닐 거 같아서 더 찜찜해...
뭐 그래도 내가 모르는 뭔가 희망이 저 안에 있지 않을까 하고 믿는 수 밖에. 믿지 않으면 내내 찜찜하고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거 같다. 서연이가 우한의 진심을 결국 믿게 되고 둘은 기억을 보존한 채 그 집에서 행복해지길. 비록 잠시라 하더라도 진실로 행복해지길.
다시 봐도 역시 표지가 가슴 아리다. 서연에게 가장 행복했을 놀이터 옆 커다란 나무에 밧줄을 매고 목을 매달면서 서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