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잔뜩 묻어나는 책이었어요..^^

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내가 태어난 고향도 저녁놀이 유난히 붉게 물들던 마을이었다..
어떤 날은 해가 질 즈음에 온 마을이 붉게 물들기도 했다. 꼭 해가 질때의 모습이 아니라, 불이 났을때 주위가 붉게 물드는 그런 붉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지금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그런 저녁노을의 붉음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때,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 아련해지고 말았다. 붉게 저녁 노을이 깔릴 때쯤,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콜라 한병을 검은 봉다리에 넣어서 어린 손에 들고서 뒷산을 올랐던 기억이. 소록소록 떠올라 버렸다.. 잊고 있었던 기억..

책 속의 주인공인 나는 결혼을 한 중년 남자이다. 어릴적 이혼한 어머니와 열 살의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일어난 일을 회고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 어느 날 20년이나 전에 가족을 떠나서 제멋대로 세상을 떠돌아 다녔던 할아버지. 짱구영감이 나타난다.

여기서 왜 짱구영감일까.. 궁금한데, 그 명칭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지으셨다 하신다. 단지 그뿐. 이름은 모른다. 다들 할아버지를 짱구영감이라고 부른다. 어머니도. 삼촌도. 심지어 손자인 나까지도..

짱구영감은 집에 온 후 방 한켠 구석에서 꼼짝도 않고 웅크려 앉아 있곤 한다. 어머니는 집 나간 할아버지를 증오했으며, 한 밤중에 손톱을 깍으면서(밤에 손톱을 깍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다고 한다) 싫어했지만, 짱구영감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놓는다거나, 한 밤중에 불을 켜놓는다거나(짱구영감은 불을 켜놓아야 잠을 잔다) 하면서 짱구영감을 챙기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어머니와 짱구영감.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정이 들고..
가족이기 때문에 싫어하면서도 챙기고, 챙길수 밖에 없는.. 진정한 가족의 기분을 느낄수 있는 책이다.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동생을 유산한 어머니를 위해 어느날 갑자기 방 한켠을 박차고 나가서 직접 피조개 두 양동이를 캐 오는데....그 광경은  책의 표지 사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그 무거운 피조개를 딸을 위해 캐서 양동이에 지고 오는 모습은 가슴이 아리기까지 하다..

나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 책이었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 낸 책이다... ^^

 짱구영감은 나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할 때 복대 안에 몰래 감춰둔 오징어 색 쌈지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주었다. 50엔짜리 피스를 사오라고 하면서 “잔돈은 너 가져라.”라고 거만하게 말하며 50엔짜리 동전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몇 번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피스 한 갑 사와라.”라고 말한 후, 굵은 눈썹 밑의 강렬한 눈에 한층 힘을 주며 쌈지주머니를 꺼내기 기다리는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돈은요?”
그러면 짱구영감은 바다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쓸쓸한 녀석이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인디언 저금통에서 잔돈을 꺼내 담배를 사러 달려갔다. 짱구영감의 그 한 마디는 마법지팡이였다. 그때까지 나를 ‘○○한 녀석’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쓸쓸한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짱구영감이 차차 가르쳐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