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에서 ㅣ 암실문고
브라이언 딜런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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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떠올린다는 것은, 팅 빈 공간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들로 이어지는 흐름, 추상적인 영역을 유영하는 느낌에서 그 안에 놓인 사물들을 재발견하는 충격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그리는 일이다. (25p)❞

청소년기에 어머니를 잃고 이어 몇 년 후 아버지마저 잃게 된 브라이언 딜런은 우울감에 빠져 어두운 상실의 시간 안에 갇힌다. 집, 사물들, 사진, 몸들, 장소들을 주제로 자신의 과거를 소회하면서 자신 내면의 어두운 방을 마주하며 연이은 부모의 죽음 이후 제대로 갖지 못했던 애도의 시간을 비로소 갖게 된다.

어머니의 병으로 자신의 기억하는 모든 것이 어머니의 병이 진행되는 과정으로 구분될 정도로 자신을 잠식했던 과거. 이로 인해 생긴 건강염려증, 피부병으로 인한 공포는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마주하려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브라이언은 단순한 감정의 나열이 아닌, 문학과 비평 예술작품이라는 렌즈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바라본다. 그는 과거를 반성하거나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그의 글이 진실되게 다가온다. 브라이언의 글은 긴 투병 이후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묻혀있는 나의 어두운 방을 들어가 볼 용기를 주었다.

🔖그 어떤 목록도, 아무리 철저한 것일지라도, 결국 훨씬 무질서하고 광범위한 현실 가운데 일부의 기록일 뿐이다. 나 자신의 과거를 의미 있는 물건들로 이루어진 포괄적인 아카이브 안에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는 상상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앞에 놓인 이 몇 안 되는 연약한 물건들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들이 과거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느냐가 아니라, 그것들이 단순히 그리고 대체로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151p)

🔖나는 내 우울증이 완결되지 못한 애도 과정에서 비롯한 결과임을 기꺼이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과정은 아예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애도에는 분명, 자신의 슬픔을 어떤 식으로든 소리 내어 표현하는 행위가 필요한데, 나는 이 일을 도저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혼자 끄적거린 단상들이 내 상실을 온전히 직면하는 법을, 나를 더 먼 곳까지 이끌어 줄 방법을 알려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나는 서로 다른 이 사진들 속 이미지들의 세부적인 요소들과 그것들이 표출되는 방식에 매료되어 버렸다. 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이 담긴 이 사진들이야말로 내게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기억들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200p)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을유문화사_서평단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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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이응
김멜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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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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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으로 어느 작품 하나 가볍게 읽히는 것 없이 모두 묵직했다. 현실과 판타지가 적절하게 섞인 단편들의 소재는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하철에 살면서 사람들의 나쁜 감정을 먹고 사는 저퀴와 지하세계의 질서를 잡는 잡귀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배꼽을 통해 내면의 신진대사를 드러내는 사람들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 성적 욕구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이응'이라는 기계 (이응이응), 석기시대 죽은 인간의 독백 (물먹은 편지) 등. 작가님의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 또한, 그 이야기들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마음들이 가슴 시리고 아름다웠다.

특히, <물먹은 편지>는 사랑의 형식이 모두 사라진, 사랑 그 자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청동검으로 옆구리를 찔려 죽은 검저리, 그녀가 강물에 던져져 살점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몸이 다 분해될 때까지 아들 돌삐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물 위에 구슬프게 써내려가는 과정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작품은 중, 장편으로 더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 김멜라 작가님을 이제서야 알게 된 건지,..🥹

🔖태어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에 갇히는 일이구나. 죽을 고비에 처하면 잠시 그 마음에서 놓여나는구나. (좀비손금, 73p)

🔖사람들이 몰라야 하는 게 있다. 손금은 운명의 지도가 아니다. 손금은 손아귀로 움켜쥔 욕망의 그물이자 삶을 헤매게 하는 미로다. 그러니 손금은 보통의 해석과는 다르게 읽어야 한다. 가령 당신은 두뇌선이 좋습니다'라는 말은 머리가 좋아 성공한다는 게 아니다. 좋은 머리가 삶을 옭아매고 심지어 죽어서까지 그 욕망이 좀비처럼 되살아나 다시금 우리를 태아의 자리로 끌어간다는 뜻이다...
손금은 그 사람이 갇힌 감옥의 설계도다. (좀비손금, 83p)

🔖밤하늘을 올려보며 가상의 가로축과 세로축을 그려놓고 '저 별은 최악의 결말, 저 별은 사서 하는 걱정' 그렇게 막막한 내면의 질서를 가늠해보는 것처럼. 못난 자책이나 비관은 먼 거리의 폭발인 것 처럼.
"뇌 과학적으로 마음이란 건 없대. 그냥 정보처리 기술이래. 불안에서 초점을 돌리고 머리를 똑똑하게 하면 된대.' (아무래짜, 207p)

🔖나는 쿠키를 우유에 찍어 먹으며 해가 진다'는 말을 생각했다. 해가 진다, 꽃이 진다, 숨이 진다.....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에선 사람들의 숨이 졌다. 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 말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꽃이나 해처럼 숨이 지는 거라면 언젠가는 꽃처럼 피어나고 해처럼 다시 솟아날지도 몰랐다. (메깨라 께라,360p)

#이응이응 #김멜라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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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인사
유희경 지음 / 핀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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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무 너무 좋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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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ㅣ 암실문고
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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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두려워요, 오후가 되면 당신의 웃음이 떠오를까 봐 ❞

1973년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독재 정부가 세워졌고, 1983년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1986년 절정에 달한다. '두려워요, 투우사여'는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86년 칠레의 산티아고를 배경으로, 애국전선에 몸담고 있는 20살 청년 카를로스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비밀 운동에 자의반 타의 반으로 가담하게 된 퇴물 드랙퀸, '앞집의 미친년' 로카의, 칠레의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담고 있다.

🔖카를로스.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에 혀를 대보고, 음절을 음미하고, 하나하나 씹어보고, 그렇게 카를로스라는 소리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그녀 자신이 하나의 내뱉는 숨결로 변하는 듯했고, 그 너무도 깊고 넓은 이름 카-아를로스의 ㅋ과 ㅏ사이에 폭 안긴 듯했다. 존재만으로도 온 집을 환히 비추는 카-아를로스. (16p)

카를로스는 로카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그녀의 집을 비밀모임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고, 반정부 전단지나 암살을 위한 무기들을 숨기기 위해 이용한다. 로카는 이 모든 상황을 눈치채지만 모르는 척 그저 카를로스가 떠날까 두려워 자신의 이용당함을 용인한다. 로카는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예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카를로스를 사랑한다.

🔖아직 좀 남았는데, 무슨 선물 줄거야? 화살 하나. 그럼 활은? 내가 너의 활이 될게. (52p)

독재자 피노체트와 로카의 이야기가 병렬 구조로 펼쳐지다 애국전선의 피노체트 암살 시도가 펼쳐질 때 즈음 긴장감이 고조되며 두 이야기가 병합되면서 절정을 이룬다. 군부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국민들의 저항운동과 대조적으로 독재자 피노체트의 행동은 우스꽝스럽고 부인에게 무시당하며 늘 악몽에 시달린다. 피노체트는 자신을 콘도르에 투사하지만 오히려 악몽 속에서 콘도르에게 눈을 쪼이게 되는 나약하고 불행한 인간일 뿐이다.

카를로스의 독재자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로카는 끝내 카를로스의 사랑을 얻지 못하지만 그가 자신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순수하게 제 품을 내어주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미친년처럼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제 마음을 내어주고 끝까지 슬퍼하는 로카, '이게 로카가 끝까지 행복을 쥐어짜는, 그녀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림 속에는 작은 형상들 조그맣고 미친 어린 새들 날고 싶은 새들.... ❞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을 울리는 무수히 많은 문장들에 취하게 되고, 배경음악처럼 로카가 슬픈 목소리로 부르는 Lora Flores의 'Tengo Miedo Toreo'가 들리는 것 같다. '목소리로 꽃을 피우며' 자신이 수놓은 화려한 식탁보를 투우사의 망토처럼 흔들며 '금지된 것에 이끌려' 춤을 추는 그녀는 한 마리 벌새다.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성가시게 지그재그로 날아다니며, 아침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하지만 내 나이에 그렇게 도망칠 수는 없거든, 꿈을 좇아 떠나는 미친 늙은이처럼, 우리의 만남이 가능했던 건,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손만 잡고 있었기 때문이야. 여기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강아지처럼 네게 사랑에 빠졌고, 너는 그냥 내가 사랑하도록 놔둔 거야. (262p)

#을유문화사_서평단
#두려워요투우사여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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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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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이 책은 굴욕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폭력성과 불가피한 관계 방식에 대한 고발과 논의가 주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이 책의 핵심에 벗어나는 것이라는 역자의 말에 동의한다. 이 책은 굴욕이 가진 비관적 의미를 넘어 인간적 성찰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굴욕이라는 담론을 기꺼이 공개적인 장소에 내놓는다.

저자 웨인 케스테바움은 자신의 굴욕담과 유명 인사들의 굴욕담을 이보다 더 적나라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하게 서술한다. 저자가 자인하듯 상당수가 성적인(남근적인), 육체적인 굴욕담이라 읽는 도중 책을 여러 번 덮어야 할 정도로 거북하기도 했다. 이토록 저자가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솔직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굴욕은 거짓말로 꾸며낼 수 없기에' 스스로가 완전한 굴욕 전문가가 되어야만 굴욕이 가진 함의를 진정성 있게 얘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 굴욕 상황을 대리 체험하는 타자에게 일정 부분 '자신도 모르게 굴욕을 가하는 사회적 엔진의 일부(100p)'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저자의 표현으로 '속뚫림 작용의 효과'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된다.

🔖나에게 굴욕은 불티를 날리고 소낙비를 오게 하는 기관차이자 기폭제이자 교훈담이자 신령한 장면이며, 나는 굴욕이 왜 나에게 그런 장면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나 자신의 삶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43p)

굴욕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나면 '쓰레기 더미 같은 굴욕이 자기 인식을 위해 선행 사건'임을 수긍하게 된다.

🔖우리는 굴욕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또 시도한다. 그러다가 몸이라는 감옥으로, 덜컥, 다시 밀어 넣어진다. 몸이라는 무대에서 대본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대본은 우리더러 실패하라고 하고, 죽으라고 하고, 더럽다고 한다. 쓰레기통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다.(96p)

🔖TV 그 자체가 굴욕의 몸종, 굴욕의 첩자, 굴욕의 프락치, 굴욕의 선교사, 굴욕의 바이러스다. (137p)

🔖굴욕은 아픔이지만 초월로 가는 우회로이기도 하다. (141p)

#굴욕 #웨인케스텐바움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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