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하는 정신 소설, 향
한은형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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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는 패딩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쩍 추워진 날씨다. 이런 때에 서핑하는 이야기라니! 나에게 서핑은 베드 서핑일 뿐.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서퍼들의 성지, 강원도 양양의 파도는 추운 겨울이 돼서야 서핑하기 좋은 높이고 사람들도 없다는 것. 게다가 바다의 수온은 육지보다 2-3달 늦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10년을 살았음에도 서핑을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제이는 뜻하지 않게 큰이모로부터 상속받은 양양 해변 아파트에 찾아가고, 우연치 않게 아파트 주변 술집에서 만난 서핑 강사 양미 씨에게 서핑 강습을 받게 된다.

🔖서핑하는 정신은 '자유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몸부림' (307p)

자신이 이기고 싶은 싸움이 뭔지, 꽉 막힌 듯 답답하고 화는 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낼지도 모르는 제이는 코엑스 광장의 커다란 수조 안에 갇힌 파도 같다. 양양에서의 서핑 강습 이후 일상으로 돌아온 제이의 주변 상황은 그대로이고 제이에게 엄청난 심적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그녀는 이제 '보통의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면서 보통의 서핑을 하는 것에 관심'(233p)이 생겼을 뿐이다. 그러나, 이전처럼 자기 자신에 침잠하기보다는 자신 너머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조금 생겼다. 하와이에 살 때 주변이 온통 서핑이라는 공기로 채워져 나만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인생을 서핑에 비유하는 뻔한 메타포와 클리셰를 경멸하고 서핑이라고 해봐야 베드 서핑만 하던 그녀가, 이제는 '진짜 서핑'을 하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Jack Johnson이라는 가수를 알게 돼 기뻤다. 잭 존슨의 'In between dreams' 앨범 커버엔 이 책에 나오는 나무 윌리윌리가 그려져 있다. 실패한 서퍼인 잭 존슨은 바다를 동경하는 윌리윌리에게 '바다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위험하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Jack Johnson과 Beach boys의 노래를 들으니 하와이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최소한 양양 서피비치의 한 빈백에 앉아 라임 조각을 끼운 코로나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서퍼들을 바라보며.

내가 서핑을 배우는 일은 요원할 수 있겠지만 머릿속으로는 롱보드에 몸을 싣고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상상하기 쉽다. 양미 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패들, 패들, 업, 원 투! 반복해 말하니 기운이 나는 느낌이다.
나를 위로하며 다독이며 자유롭게 하는 구호 같은.
어차피 나를 위로하는 건 나 자신이니깐.

🔖하나가 나쁘면 하나는 좋다. 세상은 그렇게 시소처럼 양쪽으로 기울게 만들어져 있다고. (11p)

🔖위대한 게 뭔데?
지지 않는 거.
뭐에 지지 않는?
자기에게 지지 않는 거. (274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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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김해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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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김해서 작가의 '자기 자신 찾아가기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을 위해 모범생의 옷을 입던 시절에서, '삶의 상한 부분을 슬쩍 덮어 보려는 속셈'일까 기어코 등단하려 애를 쓰던 시 지망인으로의 삶에 이어 현재의 작가 김해서가 되기까지 그녀의 인생에는 많은 시의 문장과 언어들이 얼기설기 때론 촘촘하게 직조돼 있다.

유독 슬플 때, 그녀는 시의 언어를 만들어 자신을 위로했다.
그녀의 시는 '잊을 수 없는 것을 꺼내 다시 멋대로 그려보는 일'(22p), 슬픔을 시의 언어로 바꾸는 것은 연탄재를 눈밭에 굴리고 눈을 덧붙여 하얀 눈공을 만들어 반짝 빛나 보이도록 만드는 것처럼 그녀는 시적인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시로 치환된 슬픔들은 그녀를 위로한다. 그녀가 시를 사랑하는 것은 필연이다.

시집으로 독자들과 처음 만나고 싶었겠지만 작가님은 산문을 택했다. 시와 산문은 확실히 다른 장르지만 '쓰는 감각에 몰두'하고 자신을 '지면 위에 흘려보내는' 일이 산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쓰는 감각'에 충실한 작가님을 보니 언젠가 작가님의 '반짝이'는 산을 이루고, 그 산은 지망인 박해서가 아닌, 박해서 '시인'의 시집으로 탄생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리 나이를 먹어도 늘 책을 읽으며 배운다. 김해서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하며 자신답게 사는 것,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채운다는 믿음, 주변 사람들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깊이에 감동을 받는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책에 붙은 파란 인덱스들은 작가님 문장들에 공감한 마음이니 답장이 아닐까.

🔖나는 언제나 내가 감내할 수 있을만큼 불편해보려는 사람이다. 끼어드는 사고에 기꺼이 들이받는다. (7p)

🔖침묵:마침표가 없는 점자책 (27p)

🔖나는 여태 시인이 되지 못했고 목화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변변찮은 벌이로 변변찮은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은 변변찮은게 아니니까, 잘 살고 있다고 봐야겠지. (38p)

🔖이제는 남의 인정과 상관없이 내 시가 좋아. 나만의 토양이 된 것 같거든. 옛날엔 시가 너무 소중해서 양손으로 모시고 다녔는데, 손틈 사이로 놓친 시까지도 다 내 밑바닥이 된 것 같아. 어떤 식으로든 내가 착지하는 곳. 내 자신이 싫고, 사람들이 밉고, 돈에 질식당할 것 같아도, 엎어질 곳이 시라고 생각하면 든든해. 움켜지지 않아도 그냥 내 안에 있어. (39p)

🔖행복의 기준을 자기 자신이 세운다면 어떤 거절과 실패 앞에서도 나는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스스로 확보한 작은 행복만큼 나의 아웃라인은 선명해진다........
우리는 행복을 증명할 이유도, 행복하기 위해 앞장설 필요도 없다. 그냥 살면 된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방식으로.(70-71p)

🔖흐르는 대로 살면 그럭저럭 살아진다고 말하고 다녔다.....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 사람에겐 늘 다음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이러한 삶의 태도는 내가 아는 가장 따뜻한 절망이자 가장 성실한 모험이라는 것. (115-116p)

🔖엄마는 나를 낳고 나는 엄마를 낳았다. 이 사랑의 경험만큼 강렬한 건, 어디에도 없다.(250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감상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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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 강화의 자연 속에서 삶을 그립니다
김금숙 지음 / 남해의봄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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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만화계의 오스카 '하비상'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님은 아이들이 어릴 때 즐겨보던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되던 꼬깽이라는 만화로 처음 접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문득문득 떠올랐던 꼬깽이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만화였다.

이 책은 작가님의 첫 에세이로 작가님의 어린 시절과 프랑스 유학시절을 떠올리거나 현재 살고 있는 강화에서의 일상을 쓴 에세이다. 그녀가 되돌아보는 시간에는 동물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고,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이웃에 대한 애정이 있다. 특히, 반려견인 감자, 당근, 초코를 키우면서 벌어진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그녀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녀 삶의 이 소박한 일상은 창작의 주 소재들이 된다.

도시의 편리한 생활을 버리고 문을 열면 흙을 밟을 수 있는 강화의 집을 선택한 그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것 같다. 여성문제나, 환경문제에도 거창하지 않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과 방법으로 참여한다. 그녀의 그림은 굵은 붓 터치가 힘차게 살아있으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작가들의 글투처럼, 그녀의 그림도 강하지만 따뜻한 그녀의 성정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올해 나올 지금 한창 작업 중이라는 작가님의 새로운 그래픽 노블을 기다려진다.

🔖좋아한다고 늘 먹을 수는 없다. 가끔 취하면 탈이 되지 않지만 자주 취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좋아할수록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인간관계가 그러하다. (28p)

🔖종종 가진 자가 비우며 살라고 한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있어 보일 뿐인 말은 가난에게는 사치며 폭력이다. (103p)

#시간이지날수록빛나는 #김금숙
#남해의봄날 #시날빛 #독서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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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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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지나온 제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머리카락이 자라온 세월과 비슷하네요. 따뜻하고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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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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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허공에 지은 성이었다. 땅과 거기 기대어 목숨을 잇는 백성은 여전히 있지만, 백제는 허공에 있다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지금 과연 '백제국'은 어디 있으며 '백제 사람은 누구인가?(149)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쳤고, 이후 신라는 백제를 배신하고 당나라의 도움으로 백제를 멸망시킨다. 백제는 재건과 부흥을 위한 몇 차례 시도를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신라는 나.당 연합의 대가로 옛 백제 땅을 차지한 당 도독군들을 다시 몰아내기 위해 옛 고구려 군과 백제군의 도움을 받아 기나긴 나.당 전쟁 끝에 평양 이남 지역을 온전하게 차지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이기에 그 안에서 잊힌 많은 패자의 삶은 짐작만 할 뿐이다. 최시한 작가는 멸망한 백제의 무사 물참의 시각으로 당시 멸망국 백성의 삶과 그 면면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부흥 전쟁이 이 꼴이 된 것도 무엇보다 부흥군 안에서 일어난 분열 탓이 아니었던가.'(126p) 나라의 부흥에 한뜻을 모아도 어려운 상황에 부흥군 안에서도 당에 편승하려는 세력으로 힘은 하나 되지 못하고 부흥운동은 처잠하게 실패한다. '집집마다 형제들도 제각각'인 마당에 당과 신라를 몰아내고 백제 땅을 차지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당나라의 도독부 허울을 강제로 뒤집어쓰고 있는 백제 사람은, 지금 어찌해야 마땅한가?'(194p) 결국, 물참은 백제 땅에서 당나라를 내치는 큰 뜻에 따라 철천지원수의 나라지만 고구려 군과 신라군 연합을 돕기로 결정한다.

🔖이건 땅을 차지하거나 누구를 니리므로 모시는 일하고는 성질이 다른,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기나긴 전쟁을 끝내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서로 통하는 족속들이 사람대접받으며 살아가려면, 지금 그 길 말고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뜻이 통한다면, 피가 다르면 어떻고 원수 간이면 어떠냐? (254p)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극적인 상황을 가미해 가공의 인물을 앞세워 당시 상황에 깊게 몰입하게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다 보면 스토리가 건조하고 지루할 수 있고 인물 스토리나 배경이 과장되면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과 주인공 물참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아주 적절하다. 백제 부흥 전쟁 당시와 현재의 나.당 전쟁 시기 물참의 상황을 번갈아가며 보여줘 물참의 심리 변화를 좀 더 극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3일 간의 여정을 다뤘지만 3년간의 모습을 본 것처럼 스토리가 치밀하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정작 백성들은 백제인으로의 정체성이 흐려져 간다. 끊임없이 고뇌하는 물참의 심리상태는 나라 잃은 백성의 흔들리는 눈동자 같다. 그러나 물참은 옳은 선택을 하려 한다. '지금은 지금 사정이 있으며, 자기한테는 해야 할 마땅한 일'은 결국 당이나 왜가 아닌 신라 편에 서 백제 땅을 돌려받는 것, 즉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이다. 물참의 심리상태에 따른 시적인 배경 묘사는 주인공의 서정이 그대로 느껴져 영화를 보는듯 했다. 배경 묘사 한 문장 한 문장도 곱씹게 만든다. 외세에 의존했던 신라가 겪은 대가와 백제 부흥군 내부 분열에 의한 부흥전쟁 실패는 지금 현재 우리가 다시 곱씹어봐야하는 역사가 아닌가도 싶다.

🔖하여간 똑같이 상투 틀며 사는 것도 비슷한 세 나라가 밤낮 서로 물어 뜯다가 되놈들한테 몽땅 망하면 그 꼴 참 볼만하겠다.(224p)

🔖가족 역시 나라라는 바다에 뜬 가랑잎 같아서, 혼자 힘으로는 복수조차 불가능했다.(126p)

🔖잃을 것도 없으면서, 지금 당장 어찌해야 옳은가, 저는 그게 어렵습니다.(252p)

🔖'별빛 사윌 때'는 어둠이 잦아들고 먼동이 트는 때이다. (295p)

#별빛사윌때 #최시한 #문학과지성사
#역사소설 #독서 #북스타그램
#별빛사윌때_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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