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김해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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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김해서 작가의 '자기 자신 찾아가기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을 위해 모범생의 옷을 입던 시절에서, '삶의 상한 부분을 슬쩍 덮어 보려는 속셈'일까 기어코 등단하려 애를 쓰던 시 지망인으로의 삶에 이어 현재의 작가 김해서가 되기까지 그녀의 인생에는 많은 시의 문장과 언어들이 얼기설기 때론 촘촘하게 직조돼 있다.

유독 슬플 때, 그녀는 시의 언어를 만들어 자신을 위로했다.
그녀의 시는 '잊을 수 없는 것을 꺼내 다시 멋대로 그려보는 일'(22p), 슬픔을 시의 언어로 바꾸는 것은 연탄재를 눈밭에 굴리고 눈을 덧붙여 하얀 눈공을 만들어 반짝 빛나 보이도록 만드는 것처럼 그녀는 시적인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시로 치환된 슬픔들은 그녀를 위로한다. 그녀가 시를 사랑하는 것은 필연이다.

시집으로 독자들과 처음 만나고 싶었겠지만 작가님은 산문을 택했다. 시와 산문은 확실히 다른 장르지만 '쓰는 감각에 몰두'하고 자신을 '지면 위에 흘려보내는' 일이 산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쓰는 감각'에 충실한 작가님을 보니 언젠가 작가님의 '반짝이'는 산을 이루고, 그 산은 지망인 박해서가 아닌, 박해서 '시인'의 시집으로 탄생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리 나이를 먹어도 늘 책을 읽으며 배운다. 김해서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하며 자신답게 사는 것,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채운다는 믿음, 주변 사람들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깊이에 감동을 받는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책에 붙은 파란 인덱스들은 작가님 문장들에 공감한 마음이니 답장이 아닐까.

🔖나는 언제나 내가 감내할 수 있을만큼 불편해보려는 사람이다. 끼어드는 사고에 기꺼이 들이받는다. (7p)

🔖침묵:마침표가 없는 점자책 (27p)

🔖나는 여태 시인이 되지 못했고 목화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변변찮은 벌이로 변변찮은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은 변변찮은게 아니니까, 잘 살고 있다고 봐야겠지. (38p)

🔖이제는 남의 인정과 상관없이 내 시가 좋아. 나만의 토양이 된 것 같거든. 옛날엔 시가 너무 소중해서 양손으로 모시고 다녔는데, 손틈 사이로 놓친 시까지도 다 내 밑바닥이 된 것 같아. 어떤 식으로든 내가 착지하는 곳. 내 자신이 싫고, 사람들이 밉고, 돈에 질식당할 것 같아도, 엎어질 곳이 시라고 생각하면 든든해. 움켜지지 않아도 그냥 내 안에 있어. (39p)

🔖행복의 기준을 자기 자신이 세운다면 어떤 거절과 실패 앞에서도 나는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스스로 확보한 작은 행복만큼 나의 아웃라인은 선명해진다........
우리는 행복을 증명할 이유도, 행복하기 위해 앞장설 필요도 없다. 그냥 살면 된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방식으로.(70-71p)

🔖흐르는 대로 살면 그럭저럭 살아진다고 말하고 다녔다.....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 사람에겐 늘 다음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이러한 삶의 태도는 내가 아는 가장 따뜻한 절망이자 가장 성실한 모험이라는 것. (115-116p)

🔖엄마는 나를 낳고 나는 엄마를 낳았다. 이 사랑의 경험만큼 강렬한 건, 어디에도 없다.(250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감상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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