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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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허공에 지은 성이었다. 땅과 거기 기대어 목숨을 잇는 백성은 여전히 있지만, 백제는 허공에 있다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지금 과연 '백제국'은 어디 있으며 '백제 사람은 누구인가?(149)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쳤고, 이후 신라는 백제를 배신하고 당나라의 도움으로 백제를 멸망시킨다. 백제는 재건과 부흥을 위한 몇 차례 시도를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신라는 나.당 연합의 대가로 옛 백제 땅을 차지한 당 도독군들을 다시 몰아내기 위해 옛 고구려 군과 백제군의 도움을 받아 기나긴 나.당 전쟁 끝에 평양 이남 지역을 온전하게 차지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이기에 그 안에서 잊힌 많은 패자의 삶은 짐작만 할 뿐이다. 최시한 작가는 멸망한 백제의 무사 물참의 시각으로 당시 멸망국 백성의 삶과 그 면면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부흥 전쟁이 이 꼴이 된 것도 무엇보다 부흥군 안에서 일어난 분열 탓이 아니었던가.'(126p) 나라의 부흥에 한뜻을 모아도 어려운 상황에 부흥군 안에서도 당에 편승하려는 세력으로 힘은 하나 되지 못하고 부흥운동은 처잠하게 실패한다. '집집마다 형제들도 제각각'인 마당에 당과 신라를 몰아내고 백제 땅을 차지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당나라의 도독부 허울을 강제로 뒤집어쓰고 있는 백제 사람은, 지금 어찌해야 마땅한가?'(194p) 결국, 물참은 백제 땅에서 당나라를 내치는 큰 뜻에 따라 철천지원수의 나라지만 고구려 군과 신라군 연합을 돕기로 결정한다.

🔖이건 땅을 차지하거나 누구를 니리므로 모시는 일하고는 성질이 다른,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기나긴 전쟁을 끝내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서로 통하는 족속들이 사람대접받으며 살아가려면, 지금 그 길 말고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뜻이 통한다면, 피가 다르면 어떻고 원수 간이면 어떠냐? (254p)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극적인 상황을 가미해 가공의 인물을 앞세워 당시 상황에 깊게 몰입하게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다 보면 스토리가 건조하고 지루할 수 있고 인물 스토리나 배경이 과장되면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과 주인공 물참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아주 적절하다. 백제 부흥 전쟁 당시와 현재의 나.당 전쟁 시기 물참의 상황을 번갈아가며 보여줘 물참의 심리 변화를 좀 더 극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3일 간의 여정을 다뤘지만 3년간의 모습을 본 것처럼 스토리가 치밀하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정작 백성들은 백제인으로의 정체성이 흐려져 간다. 끊임없이 고뇌하는 물참의 심리상태는 나라 잃은 백성의 흔들리는 눈동자 같다. 그러나 물참은 옳은 선택을 하려 한다. '지금은 지금 사정이 있으며, 자기한테는 해야 할 마땅한 일'은 결국 당이나 왜가 아닌 신라 편에 서 백제 땅을 돌려받는 것, 즉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이다. 물참의 심리상태에 따른 시적인 배경 묘사는 주인공의 서정이 그대로 느껴져 영화를 보는듯 했다. 배경 묘사 한 문장 한 문장도 곱씹게 만든다. 외세에 의존했던 신라가 겪은 대가와 백제 부흥군 내부 분열에 의한 부흥전쟁 실패는 지금 현재 우리가 다시 곱씹어봐야하는 역사가 아닌가도 싶다.

🔖하여간 똑같이 상투 틀며 사는 것도 비슷한 세 나라가 밤낮 서로 물어 뜯다가 되놈들한테 몽땅 망하면 그 꼴 참 볼만하겠다.(224p)

🔖가족 역시 나라라는 바다에 뜬 가랑잎 같아서, 혼자 힘으로는 복수조차 불가능했다.(126p)

🔖잃을 것도 없으면서, 지금 당장 어찌해야 옳은가, 저는 그게 어렵습니다.(252p)

🔖'별빛 사윌 때'는 어둠이 잦아들고 먼동이 트는 때이다.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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