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조 - 제2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송섬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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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나는 내 유년기로부터 너무 빨리 도망쳤어. 사람 모양 구멍을 남기고 탈출하는 것처럼 (126p)

엄마가 부재했던 유년의 기억을 묻어버리고 자살에 의한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주인공은 세 계단 밑 반지하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다른 이에게 자기 곁을 내주는 게 어색하고 스스로 침잠하며 절망에 익숙한 채 살아가는 그녀가 술집 주인 '조'를 만나고 동거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절망을 줄 것 같지만 그녀는 이전과 다르게 슬픔을 극복해 나간다.

조의 죽음 이후, 그녀는 슬픔에 매몰돼 시간의 미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시간을 극복하고 벗어나는 것, 때론 그 슬픔이 자신을 다시 소환하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법을 깨닫는다.

떠난자는 죽기위해 죽음을 택한 것인지, 살기위해 죽음을 택한 것인지 모르지만 슬픔은 결국 남은 자들의 몫이다.
남은 자에게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외면하고픈 슬픔이지만 책을 읽고 나면 언제든 떠오르더라도 그 슬픔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조금 생기는 것 같다.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투쟁기'에 이은 2회 수상작은 '골목의 조'이다. 연이은 '죽음'이라는 주제가 인상적이다. 역시나 환상소설답게 소설 곳곳에 설치된 환상 장치들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송섬 작가의 차기작과 내년 3회 수상작이 벌써 기대된다.

🔖다음으로 다음으로 나아가면서 나는 이전의 세계를 꼭 닫고 나와아 했어.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 반복하다 보니 남아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어. (123p)

🔖산다는 것이 마치 이야기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언젠가 조는 말했었다. 이쯤에서 의미 있는 대사를 던져야 할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고. 그렇지 않으면 슬슬 졸작이 되어버릴 텐데. 도대체가 할 말이 없어서 문제라고. 사는 것 자체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161p)

#골목의조 #송섬 #사계절출판사
#박지리문학상 #독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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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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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제공도서

🌎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는 1800년대에 500년 동안 정글에 버려져 숨어 있던 건축물 앙코르와트를 발견한다. 지도에도 없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건축물인 앙코르와트는 500년 동안 어떻게 정글에 완벽하게 숨어 있을 수 있었을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숨은 장소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영국 작가 트래비스 앨버러는 지구상에서 잊히고 사라져가는 37군데의 장소를 소개한다. 1️⃣고대 도시, 2️⃣잊힌 땅, 3️⃣사그라지는 곳, 4️⃣ 위협받는 세계라는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우리를 지도 안, 사라져가는 곳으로 초대한다.

과거 찬란했던 고대 도시들은 홍수나 지진 같은 흉작과 인구감소 또는 자연재해로 사라지기도 하고 찬란한 문화를 누렸음에도 그 멸망의 이유를 밝히지 못하기도 한다. 남은 유적과 유물들로 그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도시의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2001년 발견된 그리스의 헬리케는 신화가 덧대어 사라진 도시에 환상을 더한다. 자신의 조각상에 불만을 품은 포세이돈이 헬리케를 하룻밤 사이에 파괴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유적지들은 손쓸 방법 없이 지금도 사라져가고 있다. 댐 건설로 마을이 통째로 수장되기도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섬들은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지구에서 네 번째로 작은 투발루와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만리장성의 30프로는 장식용 기념품으로 빼돌려 사라졌다. 불법 벌목으로 열대우림은 위협받고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지도에서 사라져간 장소들은 인간이 지역 환경에 고의로 개입하거나 인간의 이기심 또는 그로 인한 환경 파괴가 큰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장소들은 사라지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이 추구하는 이상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변덕스러움을 일깨우는 한편,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긴급히 보존해야 하는지 경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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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장소들의지도 🗺
#트래비스앨버러 #성소희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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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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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인 '나인'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이야기하면서 '학교폭력'의 문제를 보여주었던 천선란 작가의 '노랜드' 또한 10편의 SF나 판타지, 호러 등 장르소설들을 통해 환경, 유전자조작, 동물권, 인격장애, 여성권, 가정폭력 등 이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들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들을 고발하고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서 작가님이 서서히 보여주시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용기와 희망, 마지막에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과의 공생을 위해 인간 스스로가 가축화한 <바티카>의 문명 인간들을 인간으로 봐야 하는지, <옥수수밭과 형>에서는 유전자 복제로 만들어진 형을 죽은 형과 같은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지, <재,제> 에서 해리성 인격 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결국 한 자아를 죽이게 되는 과정과, 이란성 쌍둥이 자매의 정반대의 서로 다른 삶의 가치관,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두 세계> 등 매 단편들이 던지는 화두는 깊게 생각해볼만하다.

특히, 가장 좋았던 SF 단편들 사이에 놓인 호러 좀비물 <이름 없는 몸>은 남자라는 이유로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불리지도 못하는 여자들과 어린 여자아이들을 지배하고 유린하며 살아가는 한 폐쇄적인 마을이 어떻게 자멸돼 가는지 보여준다.  끈질기게 숨을 이어가는 좀비가 된 이장의 모습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성범죄 사건의 범인들을 보는 것 같이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며 읽었다.

단편집을 이렇게 곱씹어 읽은 적이 있었던가.  단편집이 아니라 장편집처럼 한 편마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느낌을 곱씹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다시 톺아 읽으면 지나쳐간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고 읽을수록 인덱스가 불어나는, 멋진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다.



#출판사_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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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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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은유 작가가 한겨레 신문 지면을 통해 18명과 해왔던 인터뷰를 묶어 낸 이 책은 18명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그 18명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이고(1부),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2부),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들(3부)이다.

나의 불행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그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주는 힘, 사람이라는 희망을 절대 놓지 못하는 힘,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쳐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힘, 이런 힘들은 '그간 살아온 경험들, 생각들, 감정들에서 차차 누적되어 나온 힘이며 이렇게 형성된 것들이 그들의 삶의 얼굴을 만든다.(181p)'

매 인터뷰 말미에는 은유 작가의 인터뷰 후기가 있는데 인터뷰이의 섭외 과정이나 지면에 실리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한다. 동물권 운동을 하는 사람 인터뷰를 위해 며칠 동안 육식을 안 할 정도로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는 모습과 더불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교정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통해 인터뷰라는 것은 그녀의 말처럼 정말 '짧은 연애'가 아닌가 싶다. 그녀는 정교한 질문으로 끌어낸 대답들로 그들의 삶을 통찰한다.

자신의 목소리 또는 힘과 때론 인생마저도 약한, 힘없는, 목소리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어 주는 18명의 다양한 인생을 보며 각박한 이 세상에서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건 우리 곁에 18명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인 것 같다. 지금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보라고 하고 싶다.

🔖여성 자살의 80퍼센트는 사회적 타살이에요. 피해가 있으면 남자들은 남을 죽이는데 여자는 자기를 죽이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한테 화살을 돌려요. (53p)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두어야 하는 팬데믹 시대에 김중미가 내놓은 생존 키워드는 '곁'이다. (132p)

🔖여기에 담긴 18명의 인터뷰는 그들의 증명사진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크게 그린 그림'이다. 내 눈에 멋있게 보이는 모습이나 내가 닮고 싶은 태도, 세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메세지를 확대해서 쓴 글이므로 공정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작업에 가깝다.(299p)

#크게그린사람 #은유인터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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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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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1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0들의 이야기이다.

학생, 수험생, 취준생, 알바생을 거쳐 직장"인"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생"의 자리마저 박탈당하고 "백수"가 되어버리는 양은 위기감을 느끼고 경계선에 서있는 유령이 되길 자처하며, 다시 1로 수렴되고자 하는 그 길 위에 올라선다.  눈에 분명히 보이지만 자신의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유령 같은 존재들. 그러나 커다란 사진을 확대하면 보이는 한 칸의 픽셀들처럼 그들은 확대해야만 보일뿐 제 자리를 차지하며 단단하게 모여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만 보면 무용하고 파도에 휩쓸려 나갈 한 알의 모래알 같지만 수많은 0들은 다른 숫자에 기대어 우주의 단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양이 집회에 참여하면서 오랜만에 크게 웃고 '외롭다'라고 혼잣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자리에서 비로소 밖을 바라보았기 때문이고,  수많은 0들을 보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모였을 때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설 영의 자리는 1보다 작은 0과 1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촘좀하고 세세한 감정들을 너무 잘 묘사해서 1이 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나도 한때 존재하고 있었음을 감각하게 해주었던 소설이다.  특히, 중간에 잠깐씩 나오는 꿈같은 환상적인 서사는 주인공의 감정에 더 몰입하게 해주었다.  장복해 더 이상 효과가 없는 약을 먹는 사람이 되는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해, 비극이 산개돼 평범한 일상으로 보이는 비극을 더 이상 견디지 않기 위해, 모든게 그대로여도 조금 변한 자신의 마음을 붙잡고 다시 0부터 시작하는 양에게 나는 미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마무리가 너무 좋았던 소설이다.

올해 눈여겨볼 작가 목록에 고민실이라는 이름을 추가한다.

📖 0에서 1로 변모하는 과정은 설레면서 우울하다. 곧 1이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므로 0에 가까운 자신을 체감하게 된다. 첫 출근 날에는 0.0000001쯤 되는 기분이다. (34p)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나쁜 기억이 중요할지 몰라도 살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이 필요해. (56p)

📖경계선만큼 유동적인 세상도 없다. 아무리 잔잔한 수면이라도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끊임없는 증발과 응결이 일어난다. 물 분자가 치열하게 움직인 결과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면이다. (148p)

📖 경계선만큼 불안정한 것도 없다. 단순한 세상을 복잡하게 보지 않으면 경계선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간과하게 된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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